산행일 : 2013.09.15 (일)
산행지 : 도봉산
산행인 : 나홀로
토요일 하루종일 전국적으로 비온다는 예보를 보았지만 산행을 어떻게
할 건지 연락은 해보지 않았다. 어쩌면 먼저 전화해서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금요일 퇴근하고 와서 저녁까지 먹었는데.. 누구한테서도 연락이
없다. 그래! 좋다. 우중산행 한두번 해본것도 아니고…..우산, 우비
갈아입을 옷들, 밥먹을때 대비해서 비닐 프라이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배낭을 꾸리고 5시에 알람을 맞춘 다음 잠이 들었다.
새벽에 빗소리에 잠이 깨서 시간을 보니 4시가 조금 넘었다. 거실
베란다로 나가 밖을 보니 비가 장난이 아니다.
6시가 다 되가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생각하면서 집을 나서려는데 메시지가 뜬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오늘 산행 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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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넘어서 밖을 보니 빗줄기가 많이 가늘어진거 같다. 오후에 가볍게
가까운데 아무데나 갔다올까하고 바우에게 전화했더니 그냥 쉬겠단다.
에이~ 나도 그냥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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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산행하기 정말 좋은 날씨다. 이런 날
도저히 집에 그냥 있을 수가 없지… 배낭도 그대로고… 정말 오랜만에
홀로 산행이나… 근데 어디로? 도봉산 가본지 오래됐는데….
지하철 역에서 문득 지설님이 연가팀 이끌고 오봉 암벽한다는게 생각났다.
오늘 일진이 나쁘기를 바라면서 문자 하나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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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봉산 망월사로 오르는데 걷는 느낌이 너무 좋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그저 눈에 들어오는 주변의 사물들과 귀에 들려오는 소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걷는다. 오랜만에 홀로 산행의 편안함을 만끽한다.
망월사!
뒤의 능선을 배경으로 산의 풍광과 잘 어울리는 빼어난 절이다.
산지가람이어서일까.. 작은 규모의 사찰이 아님에도 적막하고 고요한
분위기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예전에 이곳의 설경에 반해 눈이 오면
잘 찍지도 못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달려오곤 했었다.
망월사 뒤로 돌아 포대능선으로 오르는데 다리 컨디션이 좋지않다. 천천히
속도를 조절하며 호흡을 조절한다. 원래 허약 저질 체력인데 꾸준히 산에
다닌 덕에 그나마 이정도 된 것이다.
능선에 올라서니 멀리 주봉들이 보이고.. 산행하기에 최적의 날씨다.
바쁠 것 없이 천천히 능선을 진행하니 어느새 Y계곡 우회로 갈림길에
도착한다. 천히 걷는게 좋아서.. 또 오늘 다리 컨디션도 안좋은거 같아
우회로로 방향을 잡는다.
계단을 오르는 도중 다리에 쥐가 나서 한참을 앉아서 다리를 풀어주어야
했다. 몸이 가벼워 오르는 것은 자신 있었는데 이젠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계속 산에 다닐려면 별도의 웨이트 단련이 필요한게 아닌지 모르겠다.
오봉 이정표 있는 삼거리 지나고.. 칼바위의 멋진 자태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우봉을 지나면서 정말 좋은 날씨라고 또한번 칭찬해 주고…
어느새 오봉 아래 헬기장. 오봉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에 또 쥐가 난다. 계단기둥을
붙들고 서 있는데 내려오는 산객이 “아저씨 정말 힘든가봐요!”한다. 계단줄 옆으로
넘어가 의자를 펴고 앉아 한참동안 다리를 풀어주고 나서…간신히 오봉에 올라선다.
시간을 보니 12시 40분이다.
2봉과 3봉 사이에 암벽팀들이 보이는데.. 연가팀인지는 확실치 않다. 2봉까지는
갈수 있지만 공단직원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공단직원에게 암벽팀들에 대해
물어보니 10시 좀 넘어서 간 것 같고 한 팀이 아니라고 한다.
지설님한테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는다. 출발할 때 보낸 메시지도 답이 없었는데….
일단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공단직원을 피해 옆으로 돌아 내려서니
명당이 눈에 들어 와 자리를 편다.
오봉 방향으로 시야가 트이고.. 둘이라면 조금 좁겠지만 혼자 앉기는 넉넉하다.
술은 산사춘이다.
도수가 와인 수준이고 향이 좋다. 한모금 적당히 입에 물고 있다 한꺼번에 목구멍으로
넘기고 숨을 멈춘다. 다시 적당히 들이쉰 다음 천천히 내쉬면 코로, 입으로 술의 향이
은은하게 퍼져나온다. 예전에 수락산에 혼자 다닐때는 세병까지 들고가서 마시고 왔던
때도 있다.
머리 위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음악이 없는 것이 아쉽다. 청력에 문제가 있어 최근에는 MP3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가져온 것을 다 비우고... 누워서 잠시 눈을 붙인다.
잠시 눈을 붙인다고 했는데.... 3시가 가까이 되었다.
오봉쪽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자고 있는 동안 암벽을 끝내고 간 것일까?
자리를 정리하고 오봉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3봉... 2봉까지 가서 바라 본.
2봉.. 되돌아 오며
1봉.. 되돌아 오며..
오봉샘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선다.
오봉샘에서 물한잔 마시고 도봉 주능선으로...
은은하게 올라오는 취기가 좋다.
어느 아줌마 산객이 휴대한 오디오에서 고속도로 카세트인지
뽕짝이 울려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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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다 내려와서 지설님께 전화를 하니 한참 신호가 간 후에 전화를 받는다.
"오늘 산행 어땠어요?"
"..... 누구시지요? 죄송한데 제가 번호가 입력이 되지 않아서...."
"저 돌입니다!"
"돌? 시커먼 돌?"
"ㅎㅎ 맞아요"
"미안. 아까 문자 봤는데.. 번호가 다른 사람으로 되어 있어가지고...."
"지금 어디예요?"
"송추로 내려와서 뒤풀이 하러 가는 중이야"
"저는 도봉동 다 내려왔는데요"
"택시타고 와."
"ㅎㅎ 못가요"
결국 지설님 얼굴을 못보고 산행을 마쳤다.
오늘 일진이 나쁘기를 바랬지만...
결과적으로 일진이 좋은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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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허허.... 왠일이래요?? 쥐가 다나시고?
몸을 장기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근력운동에 투자할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꾸준하게 산을 다니면 그게 곧 근력운동이지만......
저는 시력이 안좋은데다 이제 겨우 이틀째 적응하고 있는 "누진다촛점렌즈" 덕분에
음악이 없는 것이 아쉽다. 청력에 문제가 있어 ---> 정력에 문제가 있어 로 읽고서는
잠시 이게 믄 소린가 어리둥절했네요..ㅋㅋ
이제 갈수록 산은 힘에 겨워지고 사람만 정에 겨워지나봅니다.
다리뿐만 아니라 어깨도 약해 늘 배낭 무게에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산거북님 정도는 아니라도 어느정도 평소 근력운동에 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팀중에 일흔넷 되신 분이 있는데 그분에 비하면 한참 젊은 나이인데…
같이 산행하면서 자극도 많이 받고 반성도 많이 하게 됩니다.
명절은 잘 보내셨지요?
올려주신…가족들끼리 보낸 명절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