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0-3
조선공업 3
민간 조선 3사를 지정하다
1. 박정희가 현대를 지정하다
71년 10월에 EPB (황병태 기획차관보)는 방산 육성을 위하여 건의한 4대 핵공장중의 하나로 조선소 건설이포함돠어 있었다
EPB(김학렬 부총리)는 건설업이 조선업과 가장 유사하다고 보고 현대건설의 정주영사장을 불러 조선공업을 할 것을 권유했다.
정 회장은 당시는 건설 밖에 몰랐으므로 일본의 몇 개 회사와 합작을 교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일본의 공식적 거절이유는 한국의 조선소는 전쟁용 목적이라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정 회장은 공식적으로 김학렬 부총리에게 못하겠다고 보고 했다.
조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박정희대통령은 정 회장이 조선소 건설을 거절했다는 정보를 들었다.
박정희늗 청와대에서 있은 어떤 회의가 끝난 후 정주영사장에게 "이제 건설도 좋지만 조선소도 한번 해보시지요" 했다.
정주영은 "조선에는 경험이 없어 일본과 합작코자 교섭했으나 실패했습니다"라고 답변함으로써 거절의 의사 표명을 한 것이다.
박대통령은 "내가 도와주겠소! 그래도 못하겠소"하고 무서운 눈으로 마주 대하고 나니 정 회장은 "예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오원철 담)
부총리에게 못하겠다고 한 정주영의 결심을 바꾼 것은 박대통령의 힘이었다. 이리하여 현대가 조선공업 개척자로 나서 한국의 조선강국 건설에의 사실상의 제일주자가 된 것이다.
70년대 초의 한국의 기업체는 대기업이라고 할지라도 조선공업에 단독으로 진출할 능력이 없었다.
국영으로 해야 한다는 끈질긴 반대를 물리치고 박정희 대통령의 민간건설철학에 따라 현대건설의 정주영 사장에게 조선을 맡긴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여 한국 조선의 선구자 역할을 맡은 정주영 사장은 현대를 세계제일의 조선사로 만든 것이다.
2. 제2주자로 삼성지정
조선소 건설의 제1주자로 현대건설이 지정된 이상 다음 주자는 당연히 한국의 제일의 기업인 삼성이었다.
오원철수석은 삼성의 대정부 교섭 책임자(강진구사장, 김동철전무)를 불렀다. 박대통령의 의도를 전하고 삼성의 조선업 참여에 대한 Yes or No를 빠른 시일 내에 알려 달라고 했다.
삼성은 일주일 이내에 이병철 회장의 지정에 감사하다는 말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는 말로 이병철 (BC) 회장이 삼성조선을 맡게 된 것이다. 일본의 Ishi-Hari와 합작설도 있었다.
BC회장은 정부의 계획사업 참여에 반대한 역사가 없다.
BC회장은 실지로 창원기계단지에 삼성항공과 삼성테크윈을 설립하여 KF16 전투기의 엔진과 K9 자주포를 개발생산하였다. BC회장과 삼성은 K방산의 선구자이다.
박대통령과 BC 회장은 서로가 존경하는 사이였다. 삼성이 한국 제일의 기업체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추진하는 방산과 조선을 하게 된 데에는 김동철 동문의 공이 큼에 감사드린다.
BC회장의 신사업에 참여할 때의 특이한 점은 기존 선발 업체를 먼저 매입한다는 것이다 신규사업에 적극적이면서도 철저를 기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의 경우는 통영에 있는 우진조선을 매입하기로 결정하고 정부에 Yes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실제로 삼성은 초기에 우진조선이 위치한 통영만에 건설키로 하였다.
대규모 조선소를 짓기 위하여 지질조사를 한 결과 우진조선이 위치한 지대가 지내력이 약하다고 판명되었다
결과적으로 삼성조선은 현재 위치한 거제의 죽도로 변경하여 그 후 삼성 죽도조선소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3. 제3주자는 조공에서 대우로 변경
현대식 기존의 조선소는 일제 때부터 이어 온 부산 영도에 있는 대한 조선공사(남궁 연, 남궁호, 남궁욱강)밖에 없었다.
중화학에 의한 조선기지에 조공에 대형 조선소 건설 하나를 맡긴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조공은 거제도 옥포에 먼저 입지를 선정해서 옥포 조선소라고 명명하고 70년대 초에 제일 먼저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조공옥포 조선은 약 약 3년간을 건설에 전념하는 한편 수주도 활발히 진행하여 옥포조선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옥포조선은 70년대 중반에 와서 자금조달에 문제가 있어 진행이 지지부진해서 옥포조선을 인수할 희망업체를 찾게 되었다.
70년대에 대기업 중 사업 확 창에 제일 활발한 업체는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 )이었다.
대우는 한국 수출의 개척자임과 동시에 건설, 전자, 중공업등 분야에서 그룹을 조직하여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공의 옥포조선을 인수할 최적 격의 그룹이었다.
청와대 오원철 수석은 대우의 김우중 회장을 불러 옥포조선의 인수를 타진했더니 그 자리에서 Yes였다.
정부의 부실기업체 정리방침에 의거 산업은행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대우가 옥포조선소를 인수한 것이다.
한국의 조선공업은 울산의 현대 조선선, 거제의 삼성죽도 조선과 대우의 옥포조선으로 최종확정 되었다.
(현재 대우 옥포조선은 장기간의 우여곡절 끝에 주인을 만나 한화가 인수하였다. 감사드린다.)
(조선공업 4로 계속)
2024.7.27
김광모
< 본원고는 대통령 비서실의 중화학 담당 비서관이 파악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기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