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의 탑>
인간이 문화생활을 영위하면서 낳고 만들어진 것을 문화유산이라 한다. 대부분 이를 통해 그 시대의 문명과 삶의 수준을 가늠한다. 후세에 전해지는 것 중 불가사의한 것들도 많다. 이집트 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아르테미스 신전, 만리장성, 콜로세움, 타지마할 등 인류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하고 신비한 유적들이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명들은 꾸준한 연구 결과 대체로 왜 만들었는지, 언제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상당 부분 해결된 상태이다. 그러나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와 같은 문명의 소산들이 더러 있다. 결국 그 시기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에 계단식 적석탑(階段式 積石塔)이 있다. 얼핏 보면 백제와 고구려에서 유행했던 적석총(積石塚)이 떠오를 것이다. 적석총은 달리 돌무지무덤이라고도 하는데 돌을 피라미드식으로 쌓아 올려 만든 무덤을 말한다. 적석총의 범주에는 고구려의 적석총을 포함하여, 백제의 초기 묘제로 추정되는 북한강, 남한강, 한탄강 등지에 분포하는 이음돌 분구묘(墳丘墓)들도 이에 해당한다. 안동 북후면 석탑리의 적석탑과 유사한 탑의 사례는 또 어디에 있는가?
먼저 우리나라를 살펴보자면 두 곳에서 더 확인된다. 하나는 문경시 산북면 소야리에 미면사지 적석탑이 유사한 사례이고, 또 하나는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이 그러하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부흥사 방단적석유구와 제천시 청풍면 교리 방단적석유구가 적석탑일 가능성에 학계에서는 조심스럽게 무게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는 이와 비슷한 탑이 있을까.
현재까지 확인된 그곳은 일본에 유사한 탑이 세 곳에 분포한다고 확인되었다. 세 탑 모두 일본 혼슈 지역에 위치하며 그중 하나는 오카야마현 남부의 구마야마에 국가유산 사적으로 지정된 삼단 방형 석축 유구가 있고 두 번째로 오사카부 사카이시 나카구 토탑정에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 형상의 토제 불탑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나라현에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도다이지 남대문에서 남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 모양의 방형 탑으로서 일명 두탑(頭塔)이라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10점도 되지 않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종류의 탑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방단형 적석탑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3기가 확인되고 있으며 일본에 3기가 밝혀져 있다. 이 외 다른 나라에서는 명확한 근거가 아직 없으니, 현재로선 전 세계적으로 6기가 되는 셈이다.
국내에 현전하는 적석탑의 위치는 모두 깊은 산속에 있다. 안동 적석탑은 학가산 아래에, 문경의 적석탑은 천년고찰 대승사가 있는 공덕산의 줄기에 있으며, 의성의 적석탑은 안평면 석탑리의 낮은 산지 아래에 있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쳐 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절터는 조망권이 확보되거나 접근이 쉬운 곳에 위치하는 것이 대다수이다. 세 곳 모두 일반적인 사찰이 가지고 있는 지형과는 조망권이 전혀 없고 접근조차도 매우 어려운 곳에 있다. 수행 관련 사찰이었을 가능성도 열어두어야겠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많지 않은 계단식 적석탑의 형식은 분명 특별하고 미스터리적인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 과연 탑으로서 분류해야 할지, 아니면 적석총으로 만들어졌는데 후대에 탑의 기능으로 변했는지에 대한 부분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 문경과 의성의 적석총은 각각 불교임을 알 수 있는 유물의 출토와 감실 안의 석불을 통해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안동의 적석탑에서는 그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각적인 검토가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안동의 적석탑이 탑으로서 불리기 위해서는 의성과 문경 적석탑과의 비교 분석이 필요하며, 아직 분류조차도 되지 못한 충주의 부흥사 방단형적석유구와 제천의 교리 방단적석유구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이외에도 적석총으로 분류되고 있는 울산의 운현리 적석총, 연천의 학곡리 적석총, 춘천의 중도 적석총, 단양 사지원리 방단적석유구에 대한 속 시원한 조사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적석탑 또는 적석유구로 확인된 유적은 일부 경남과 강원에 분포하지만 대부분 경북의 북부지역, 충북의 동쪽 지역에 위치한다. 경기와 호남지역에서는 아직 발견된 사례가 보이질 않으며 국토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국토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모두 치우쳐서 축조되어 있다. 이 부분은 적석총이 발달했던 고구려의 남하시기와 진출영역도 함께 확인이 필요하다. 고구려 적석총은 기원전 2세기경 압록강 본류의 중하류와 지류를 중심으로 축조되기 시작하여 고구려 멸망 시점까지 전 시기에 걸쳐 축조되었다. 축조 기간도 긴 세월이지만 범위도 꽤 널리 분포된 점을 보면 묘제와 관련하여 주변에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성 백제 지역에서 나타나는 적석총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이미 학계에서도 밝힌 바 있다.
문화와 양식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오랜 기간 축적되어 온 기술의 발달과 외부와의 접촉, 동화되어 상호가 인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안동 적석탑 주변엔 적석유구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물론 백여리가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의성의 적석탑과 문경에 적석탑이 있기는 하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물리적 거리가 있으므로 상세한 학술적 확인절차가 필요하다. 계단식 적석탑에 대해 발표된 글 중 일본 도쿄대 김춘호 교수의 주장을 눈여겨볼 만하다. “단탑(段塔)은 7세기말 한반도에서 출현한 새로운 형태의 불탑이며, 681년경 만들어진 능지탑(陵旨塔)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한다 할 수 있다. 그리고 방형층단구조라는 새로운 형태의 불탑인 陵旨塔도 그보다 4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통도사계단에 그 발상원(發想源)을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726년 이후에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일본의 단탑들 역시 신라에서 발생한 단탑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이처럼 김 교수의 주장이 틀리지 않는다면 안동 적석탑의 건립 시기는 8세기 초엽 이전으로 올려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안동에 남아 있는 탑 중에 8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탑은 국보로 지정된 “안동 법흥사 칠층전탑”은 건립 시기가 명확하진 않지만 대체로 7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이는 의성과 문경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특히 다른 지역보다 유달리 전탑이 많은 안동의 경우 북후면 석탑리의 적석탑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물론 무리한 주장일 수도 있겠지만 적석탑의 축조가 전탑 발생의 관련성 여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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