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
개딸이 민주주의를 잡아먹는 이유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는 방사능 테러다!’ 더불어민주당 회의실엔 이런 백드롭이 걸려 있다. 국민의힘은 ‘괴담·선동=공공의 적’ 백드롭으로 맞서더니 최근 ‘의회 정치 복원’으로 바꿔 달았다. 13일 야당 의원들이 ‘원전오염수 해양방류에 따른 피해 어업인 지원 및 해양환경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하자 15일 김기현 국힘 대표는 “민주당발 선전선동을 세금으로 메우려 한다”며 이번엔 말로 맞받았다.
더불어민주당(위)과 국민의힘 회의장 벽에 걸린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관련 문구. |
그들은 재미날지 몰라도 보는 국민은 지겹고 불안하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여야가 문제 해결에 머리를 맞대야지 공방을 벌일 일인가. 그러라고 국민은 피 같은 혈세로 의원 1인당 세비를 연(年) 1억5500만 원씩이나 주고 있는 거다.
우리나라 의원들은 만날 싸움질이다. 당신네 당이 죽어야 우리 당이 산다는 식이어서 협력하는 꼴을 보인 적이 없다. 민간인도 그 모습을 보며 같이 댓글로 투쟁한다. 이런 온 국민의 ‘정치적 양극화’로 더불어 행복해지면 얼마나 좋겠나.
● 대통령선거가 나의 행복을 좌우한다
대통령선거가 행복을 좌우한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가 올 초 처음 나왔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행복연구센터의 지원으로 진행된 ‘선거와 행복’ 논문인데 이재명을 뽑은 사람들은 대선 뒤 주관적 안녕감이 크게 떨어졌다는 거다. 대선 한 달 후엔 좀 나아졌지만 그래도 대선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진 못했다(‘선거와 행복; 20대 대통령 선거에 따른 주관적 안녕감의 변화’).
승자를 뽑은 윤석열 지지자들은 달랐다. 대선 직후엔 조금, 2주 후에는 좀 더 높아졌다가 한 달 뒤 대선 직후 수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통계적 의미가 있다고 하긴 어렵다는 분석이고 보면, 패자 측 지지자 즉 국민의 47.8%는 대선 뒤 불행감을 느꼈다는 결론이다. 조사 기간이 대선 뒤 한 달이니 망정이지, 미국선 2016년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반년이 지나고도 낙담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연구도 있다.
이런 국민감정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엮어낼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승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아량이 중요하다. 대통령마다 당선 뒤 ‘통합’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일 터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까지 섬기는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사의 다짐은 설령 의례적일지언정 그를 뽑지 않았던 이들의 심정도 달래줄 수 있다.
● ‘통합’을 한 번도 언급 안 한 대통령
윤 대통령은 이례적이었다. 취임사에서 ‘자유’는 35번이나 언급하면서도 ‘통합’은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작년 5월 11일 첫 출근 소감에서 기자들이 묻기 전에 답했다. “제 취임사에 통합 이야기가 빠졌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데 (통합은)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 당연한 걸 윤 대통령은 입때껏 보여준 것 같지 않다. 통합의 메시지를 가장 쉽게, 두드러지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인사인데 그게 ‘윤석열 사전’에선 아직 안 보인다. 취임 100일 기준 장차관급과 대통령실 비서관급 114명의 출신 지역을 분석한 한겨레 21에 따르면 영남 36%, 수도권 27%, 충청 13%이고 호남은 9%에 불과했다(정말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문재인 정부 때는 영남 27%, 호남 27%, 수도권 21%, 충청 10%이었다).
2023년 5월 10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자유홀에서 진행된 기념 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물론 윤 대통령은 “능력과 인품을 겸비해 국민만을 잘 모실 수 있는 (장관) 후보를 뽑는 게 인사 원칙”이라며 지역 안배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헹. 지난 1년간 윤 정부 장관들 능력과 인품이 그리 출중했던가? 특정 지역엔 그만한 분들이 없었단 말인가? 서울 출신인 나로선 감히 이해 못 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통합과는 거리가 먼 소리가 아닐 수 없다.
● 개딸을 홍위병처럼 이용하는 이재명
대선 패자 이재명도 이례적인 점에선 1도 뒤지지 않는다. 보통 패자들은 잠시 속세를 떠나 심신을 다스리는 시간을 갖는데 이재명은 턱도 없다. 대선 패배하자마자 생겨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극성맞은 개딸(개혁의 딸)들의 요란한 난리 블루스를 보시라.
이들 강성 지지자들 힘으로 당 대표가 된 이재명이 “통합된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외치긴 했다. 입에 발린 소리였다. 지도부를 친명으로 채운 건 물론 개딸을 중국 문화혁명 때 마오쩌둥의 홍위병처럼 활용한다. 조반유리(造反有理‧반동파에 대한 그대들의 반항은 옳다)! 개딸들을 독려하는 식의 수박 먹는 퍼포먼스는 겁나게 유치하다.
2022년 8월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수락 연설을 하는 이재명 대표를 향해 박수를 치는 지지자들(왼쪽)과 2022년 6월 ‘민주당 개혁 촉구 집회’에 동물 탈을 쓰고 참석한 개딸 사진. 동아일보DB |
주로 문자, 인터넷으로 활개 치는 이들 개딸이 정확히 누군지 알 순 없다. 다만 어떤 심리인지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을 같은 당 이수진 의원이 보여줬다. 대선이 끝난 지 1년하고도 석 달이 가까워 오던 5월 말 유튜브 채널 ‘시사의품격’에 나와서다. “저는 요즘 윤석열 그분을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이 너무너무 싫어요. 너무 싫어 죽겠어요. 지금도 윤석열하고 사진 찍고 싶다고 그러고, 잘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피가 끓죠.”
● “윤석열 뽑은 사람 너무 싫어 죽겠다”
오해 없기 바란다. 이수진이 개딸이라는 주장이 아니므로(그는 판사까지 지낸 멀쩡한 69년생이고 강성 초선모임 ‘처럼회’ 소속이다). 친민주당 성향의 유튜브 채널에서 한 말이니 스스럼없이 털어놓은 소리가 틀림없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서울 동작을) 의원. 동아일보DB |
이수진 같은, 즉 ‘개딸 같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지지하는 정당(정치인)과 그렇지 않은 정당(정치인)에 대한 감정적 태도가 이념이나 정책 차원을 넘어 다른 진영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갖거나 심지어 손절하는 현상을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라고 하는데 속을 잘 안 터놔서 그렇지, 한번 시작하면 겁날 정도다. 개딸만이 아니다. 국힘 지지자들도 “어떻게 이재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나” 식으로 일단 말을 트고 나면, ‘저쪽’ 사람들은 상종 못 할 집단으로 결론을 내게 된다.
국민대 장승진 장한일 교수는 2020년 논문 ‘당파적 양극화의 비정치적 효과’에서 “정당 간 감정적 선호의 차이가 큰 사람일수록 자신과 정당일체감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선별적 관계를 더욱 선호하고 타인이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도덕적 지적 능력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교수님들은 학술 논문을 어렵게 쓰는 경향이 있는데 쉽게 말해 이수진 같은 찐명은 민주당 지지자, 그것도 친명이 아니면 같이 어울리는 것도 싫어하고, 열등한 존재로 친다는 뜻이다. 국민의 거의 절반이 불행한 것도 모자라 나머지 절반을 열등한 종족으로 치는 나라…얼마나 살벌한가.
● 내가 지지하는 정당은 나의 종교
지지 정당은 거의 종교다. 처음 투표할 때 선택한 정당을 미우나 고우나, 잘하든 못하든 그냥 껴안고 산다. 그래서 장승진 하상응은 2022년 논문 ‘한국 유권자의 정당일체감’에서 지지 정당을 정책이나 성과를 보고 택하기보다, 종교처럼 한 번 택하면 좀처럼 변치 않는 ‘표현적 당파심’의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민주당에 표현적 당파심을 강하게 느끼는 개딸은 민주당이 어떤 법안을 내놨을 때 무조건 지지한다. 여기 반대하는 비명은 ‘수박’일 뿐이다. 같은 법안이라도 국힘에서 내놓으면 덮어놓고 반대하는 ‘정파적 편향’을 보이는 건 물론이다.
문제는 이런 극렬 지지자들을 못난 정치인들이 매우 이용한다는 거다. 전임 대통령은 ‘양념’이라며 이들 강성 지지자만 믿다 5년 만에 민주당 정권을 내줘야 했다. 내부 총질? 노노노! 단일대오! OK! 상대를 ‘충성스러운 반대자’ 아닌 ‘인민의 적’으로 보고 타협의 여지 없이 제거해야 할 존재로 간주하는 전체주의적 민주주의관이다. 군사독재 시절부터 3김 시대를 거쳐 이른바 86그룹, 심지어 70년대 학번 이해찬과 노(老)사제 함세웅에게 전수받고자 했던 그 민주주의 의식이 이재명까지 이어져 온 셈이다. 이름하여 한국적 민주주의라고나 할까(아! 박정희…).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2017년 4월 MBN 인터뷰에서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 행동에 대해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MBN 방송화면 캡처 |
그래서 개딸 같은 강성 지지층이 민주주의를 잡아먹는다고 정치학자들이 주장하는 거다. 히틀러와 마오쩌둥이 그랬듯, 전임 문 대통령이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 연성 파시즘을 자행했듯, 개딸 또한 이재명 정책(과 공천)만 밀면서 민주당이야 망하든 말든, 심지어 나라도 망하든 말든 극단으로 몰고 갈 공산이 크다.
● 국민을 불행하게 하는 정치와는 결별을
최근 ‘민주당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쓴 원조 친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도 개딸과의 절연을 주장했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과반이라도 얻으려면, 이재명이 그 당을 염치없고 상식 없는 당으로 만든 강성 지지자들과 절연하고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거다.
그 말을 이재명이 들을 것 같은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수진은 이재명의 ‘휴머니티’를 보고 여기까지 왔다고 했지만 가장 악착스럽게 손가락혁명군을 일궜기에 그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 이재명이다. 생존본능으로 온몸을 꽉 채운 그가 설사 당이 다친다고, 나라가 흔들린다고, 심지어 가족한테 험한 일이 생긴다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리라곤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재명 빼고 나머지가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정치인과 결별하는 수밖에 없다. 민주당에서 용기가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고, 못한다면 계속 끌려가다 더 크게 망해 정신 차리기 바란다. 종교처럼 젊은 날 택했던 민주당을 버리지 못하는 40대도 돌아서고 있다니 다행이다.
호남도 ‘광주학살의 주역 민정당’의 후계정당이 국힘이라는 이재명의 프로파간다에서 깨어났으면 한다. 좋은 일만 말하고 살아도 부족할 인생이다. 국민 증오와 혐오를 자극해 자기 이익만 꾀하는, 그래서 대선이 끝나고도 국민을 계속 불행하게 만드는 정치는 우리 스스로 끊어낼 때가 됐다.
김순덕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