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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불에 절인 위스키
착한 여자는 천국으로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
-우테 에어하르트,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1화
2화
3화
*
온누리의 이름은 워낙 특이해서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이름이었다. 입시가 끝난 뒤 대학에 합격하고, 다시 페이스북을 깔았다. 그 무렵은 대부분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지만 노는 애들의 근황을 확인하는 것에는 여전히 인스타그램 보다는 페이스북이 편했다. 원래는 인스타그램만 깔으려 했지만 페이스북까지 설치했던 이유는 순전히 온누리의 근황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애들의 근황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혹시나 온누리의 근황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녀가 잘 살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 내게는 그 마음이 전부였다.
‘얘가 왜 여기서 살고 있지?’
그녀는 뜬금없이 땅 끝의 소도시에서 지내고 있었다. 000님과 연애 중이라고 띄운 글을 타고 들어가 확인한 그녀의 남자친구는 포르쉐를 끄는 24살의 사업가였다. 팔 전체에는 문신이 있었고 그의 팔에는 롤렉스가 채워져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무언가 이상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지금 다른 사람의 페이스북을 보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건 온누리의 계정이 맞았다. 쌍커풀 수술을 하고 짙은 속눈썹 연장을 한 그녀의 얼굴이었지만 여전히 온누리의 얼굴은 맞았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BMW 차키를 가지고 있고 루이비통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없는 채로, 오직 화려한 네일아트를 얹은 얇고 가녀린 손만이 대충 그녀이겠거니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상한 마음이 들어 그녀의 타임라인을 전부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일을 그만둔 후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글은 전부 삭제되어있었다. 글을 확인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최고급 명품을 들여와 부잣집 사모님들에게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사모님들 역시도 가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이 싸게 명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가성비있게 지위를 자랑하기 위해서. 신상은 갖고 싶고 돈은 없는 마음. 그게 그들의 마음이었다. 그런 것들은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 워낙에 빈번한 일이니까.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일은 온누리 그녀가 몰라볼 정도로 뻔뻔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그녀의 얼굴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계정에서 자랑스럽게 가품을 팔았다.
[루이비통 신상 ss급 들여왔어요. 고급진 울 사모님들 연락 주세용. ]
[비밀 완벽 보장 V. 절대 실망할리 없을 선택. 총알 배송 당일 배송. ]
[내 이름 걸고 당당히 파는 상품. 최상위 클라스 보장.]
그 글에는 그녀의 고객인 듯한 사람들이 보낸 후기 카톡들도 함께 첨부되었다.
[마침 갖고 싶은 신상이었는데 넘 만족스럽게 구매했어용. ^^ 가지고 나갔더니 엄마들도 아무도 가품인지 모르고 엄청 부러워 하더라구용. 이렇게 퀄리티 있게 파는 곳은 여기밖에 없는 것 같아용 감사해요 번창하세용 ㅎㅎ ]
[톰브라운 가디건이 갖고 싶었는데 학생이라 너무 비싸서 못 샀습니다. 그런데 구매하니 다들 감쪽 같이 믿네요. 앞으로도 구매하겠습니다.]
웃긴 것은 가품이라는 상품 자체가 결국은 타인에 의해 시험받아야만 비로소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후기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점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전까지 가품의 가치는 그저 싸구려에 불과했지만 타인에게 인정받는 순간 가치가 증명된다는 것이었다.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통해 비로소 그것이 쓸만한 소비였다는 것이 인정되는 것. 그렇게 가품은 그들을 우쭐하게 했고 한층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비로소 가품이라는 것이 타인에게 들키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그들은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 인생 자체가 가품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평생 그렇게 타인의 눈치를 보고 확인을 받고 불안해하는 삶. 아류의 삶. 그렇게까지 타인으로부터 부를 확인받아야 하고 눈치를 보는 일. 가품이 그들의 삶에 스며듦으로써 발생하는 일은 바로 그러한 점이었다. 언제 타인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조바심과 불안함이 존재한다는 것. 사실은 그 자체가 그들이 결코 진짜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단순히 가품을 사들인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한 층 격하시키는 일을 한 것이었다.
과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가품인 것을 몰랐을까? 그것은 직접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는 이상 입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냥 그러겠거니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원단 처리를 보고 의심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혹여나 만약 가품임을 알았어도 그 앞에서 굳이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가 됐든 기이한 일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없는 사정에 중고 명품을 구하려고 발악했으니 그런 허황된 마음을 가진 건 똑같았다. 나 역시도 새로 만난 부잣집 남자애들에게 우리 집을 숨겼으니까. 내가 진짜 부잣집 딸인 것처럼 행동했으니까. 그들과 똑같이 평생 타인의 눈치를 보며 가난을 들키지 않으려 했던 삶이 내 인생이었으니까. 그래. 어쩌면 나도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치만 나는 그들 처럼 불법을 저지른 건 아니잖아? 그건 좀 다르지 않나? 아니지. 그래도 허황된 마음은 다 똑같은데. 그런데 그 사람들이랑 나는 다르지 않나? 그건 범죈데. 난 범죄는 아닌 것 같은데.
웃기기 짝이 없는 자부심이었다. 머릿 속에서 나의 뿌리깊은 허영심과 그들의 부도덕함이 충돌한 채로 마구 갈등했다 아.. 이건 아니지 않나. 나도, 그들도. 이건 아니지 않나.
*
그녀의 뻔뻔함은 점점 최근 근황으로 올라올수록 더욱 심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으로 올라올수록 가품을 파는 글은 없어졌고 대신 그녀가 진짜 명품을 구매해 백화점 영수증을 인증하는 사진들이 올라왔다. 대부분 매장에서 구매하고 있다는 식의 매장샷을 인증한 뒤 영수증과 명품을 함께 찍어 올리는 식이었다. 비슷하고 똑같은 영수증 인증샷 속 오늘은 뭘 구매했고 오늘은 뭘 구매했다는 말. 샤넬 오픈런을 했으나 구할 수 없었고 결국은 직접 프랑스로 건너가 구매를 해야겠다는 고민이 담긴 말. 대부분 명품에 대한 글이었다. 그 순간 SS급의 최고급 가품을 들여오는 그녀의 고객이었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사람은 본래 가장 좋은 것은 본인이 가지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그들도 그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본인들에게는 가품을 팔고 백화점에서 진품을 사는 그녀를 보면서. 결국 가품을 팔고 있는 사장 본인마저도 진품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가품을 판 것이라는 것을, 가짜가 진짜를 따라 잡을 수 있는 것은 죽어도 만무한 일이었으며 약삭빠른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니 그녀의 행동은 모순 그 자체였다,
타임라인을 올릴수록 보이는 글들은 돈에 대한 이야기였다. 비트 코인 투자를 시작했고 얼만큼이 올랐다는 말. 주말엔 남자친구와 백화점을 다녀왔으며 조만간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는 말. 이쯤되면 더 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기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누군가 나를 흙구덩이에 눌러넣고 나오지 못하게 머리를 누르는 기분이었다. 도무지 참을 수 없다 싶어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기 위해 손가락의 위치를 옮겼다. 그런데 이상한 글이 튀어 나왔다. 그 글은 최근부터 올라오기 시작한 글이었다.
[일당 200만원. 아무나 한 명 페메 ㄱ]
[제 밑에서 일할 분. 일한지 몇 달만에 포르쉐 뽑기 가능. 매일 신라호텔 다니고 5성급 다니면서 백화점 쇼핑 하실 분]
뭘까.
이게 뭐지?
도대체 어떤 일이 이렇게 빠르게 돈을 벌까.
마치 이성을 붙잡고 있던 끈이 통째로 잘려나간 듯이 나는 그녀의 타임라인을 맹렬하게 읽기 시작했다. 제발 이것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빠르게 타임라인을 올리자 부동산 계약서와 그녀의 심정을 담은 글이 보였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어엿한 내 가게 사장. 이제 어린 친구들을 도와 일거리를 연결하는 사장이 되었다. 내 자신이 너무나 뿌듯하고 기특하게 느껴진다. 수고했다 가온누리. ]
자세히 확대해서 들여다 본 부동산 계약서 속 상호명은 나의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유흥업소. 순간 사고회로가 정지하는 듯 했다.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 제발 다른 건 아니어도 이것만큼은 아니었으면 한다는 내 회피는 보란 듯이 무너졌다. 결국은 그랬구나. 결국은 그런거였어. 애초에 그런 문신 가득한 양아치같은 남자를 만나는 그녀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같이 알바를 할 때 네가 말했던 이상형은 키가 크고 하얀 기생 오라비 같은 남자였는데. 뭘까. 그 남자는 어디서 만난거니? 너도 그런 방식으로 만났어? 여고를 다니고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던 네가 어떻게 만난거야? 의심하고 싶지도 않고 확신하고 싶지도 않은 것들이 머릿 속을 가득 메웠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순간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거기, 거기. 분명 거기 사는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온누리가 부동산 계약을 하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 동네에 분명 나의 친구 중 한 명이 살고 있었다.
빠르게 사고를 돌리자 어떠한 얼굴 한 명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정윤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전국 청소년 캠프에서 만났던 애. 멀리 땅 끝 마을에서 와서 자기는 어떻게든 공부를 해서 서울로 올 것이라 순수하고 재치있던 그녀. 그녀와 나는 우리 스무살에 꼭 서울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진 뒤로 종종 근황을 주고 받는 사이였다. 그 후로 한번도 만나지는 않았으나 종종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윤의 근황을 확인하고는 했다. 나는 정윤에게 당장 전화를 걸었다. 온누리의 근황을 내 두 눈과 귀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통화음이 울린지 얼마 되지 않자 정윤이 전화를 받았다.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 우선은 어색한 말부터 뱉었다.
“어, 오랜만이다 정윤아. ”
정은은 마치 어제 만난 사이인 듯 친근하게 전화를 받았다. 여전히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와.. 김은아. 얼마만이냐. 이제 수능 끝났다고 전화까지 오고.
너 인스타 삭제해서 너 뭐하고 사는지도 몰랐어. 수능은 잘 봤냐?”
“...응. 수능은 잘 봤어. “
“그런데 갑자기 웬일이야?연락도 없던 애가.“
있잖아 실은 그게 아니고.. 좀 뜬금없는 질문일수도 있는데.. ”
“뭔데?”
말을 하려고 했으나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서 걔 근황을 알아야 하지? 나랑 걔가 무슨 사이인데? 굳이 연락도 하지 않던 친구에게 까지 근황을 확인해야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의 의중만으로는 온누리의 행태를 확신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정윤에게 모든 것을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 너 온누리라는 애 알아?”
“갑자기 ? 뜬금없이? ”
“아니. 뭐 잠깐 물어볼 게 있어서. 너 온누리 알아? 가온누리라는 여자애. 그 너네 지역에 최근에 커다란 유흥업소 안 생겼어?”
“유흥업소? 갑자기? 너 갑자기 전화해서 그게 무슨 말이야? ”
“미안. 내가 사람 대신 찾아달라고 부탁을 좀 받아서..너희 지역에 관련된 일이거든. ”
나는 온누리라는 사람을 간절하게 찾는 이가 있다는 말을 했다. 그 아이와 동창이었던 여자애가 있는데 갑자기 잠적해버리는 바람에 근황을 찾지 못했다고, 그런데 며칠 전에 페이스북을 들어가니 그 여자애 근황이 바로 정윤이 너네 동네에서 업소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고자 너에게 전화를 걸게 된 것이라고. 사실 3인칭으로 지칭된 그 사람은 바로 나였지만 그것을 굳이 정윤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 그 최근에 젊은 여자 사장이 만든 유흥업소 있다고는 들었는데.”
중학교 시절 캠프에서 만났을 때도 성격이 모나지 않고 둥그렇던 정윤은 의심의 눈치없이 내가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시 정윤이 말했다.
“뭐 그여자 이름이 특이하다고는 들었는데 . 네가 찾는 그 사람 아니냐? 온뭐시기? 여튼 생긴지는 한 세달 됐나. 이 좁아 터진 동네에서 다 알지 그럼. 다 소문나. 그것도 타지 사람이 와서 개업을 했는데 그걸 누가 몰라. 아니 근데 이 좁아 터진 동네에서 그딴 걸 대체 누가 가는거냐? 멍청한 아재들이나 침 질질 흘리면서 가겠지. 하여튼 존나 한심...그런데 왜. 너 설마 그 여자애랑 아는 애야? 동네가 좁아서 도는 소문 같은게 있긴 했는데. 야. 근데 갑자기 뭐야 너? ”
그 날 나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윤과 함께 온누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대학 입시 이후 내게 주어진 하나의 퀘스트 와도 같았다. 끈질기게 추격하고 싶었고 진실을 알고 싶었다.
정윤의 말에 의하면 온누리는 그 지역을 주름잡는 마담이라고 했다. 어린 여자아이들을 회장들에게 스폰을 이어주고 주선하는 마담. 정윤이 살고 있는 그 지역은 바다가 보이고 관리 잘 된 잔디가 펼쳐진 고급 골프장이 있는 곳이었다. 워낙 가격이 비싸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곳은 아니었고 땅 끝까지 내려와 골프를 할 여유가 있는 고급 인사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녀는 그런 지역 특수성을 이용해 그 지역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돈을 벌고 싶은 가난한 여자애들은 기차를 타고 그곳까지 내려가 숙박을 하며 돈을 벌었다. 온누리는 그것을 일찌 감치 파악해서 그들을 타겟으로 한 업소를 연 것이었다. 스폰을 하는 형태로. 보통 스폰을 얻은 여성들은 회장을 따라 그 지역으로 떠나기도 했으며 얻지 못한 이들은 하룻밤 대화 상대가 되어 주는 식으로 일당을 채웠다. 그렇게 그녀는 그 지역의 소문난 마담으로 자리를 꿰찼다. 단 삼개월만에. 지역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는 식의 뒷소문을 널어 놓았다. 그녀가 사실은 서울 어느 유명한 회장의 내연녀이고 스폰이 끊겨 하는 수 없이 사업을 차렸다는 말, 강남에서 제일 유명한 유흥 업소에서 활약하다가 빠르게 돈을 모으고 탈주했다는 말.. 이삿짐 운반 차 그녀의 집을 갔던 사람이 몇십개의 명품백과 고급 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말.. 그녀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들이 오고 갔다.
하지만 내가 보아온 그녀가 정말 그런 애였던가? 같이 알바를 하던 시절 온누리의 옷은 지하상가에서 5천원 언저리에 파는 골지 니트, 만원 쯤 되어보이는 청바지, 앙증맞은 번개가 그려진 폴스부띠끄 가방과 같이 단순한 옷들이 전부였다. 나는 그때 그녀를 보고 그녀가 여타 다른 또래 노는 아이들에 비해 조금은 검소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녀가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도대체 뭐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세상이 그녀를 절망적이게 놔두었으니 그런 식으로 뻔뻔해져도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 너무 뻔뻔해서 어떻게 말하지도 못할 그녀의 그런 행동은 어떠한 발악이자 표효로 보일 정도였다. 믿고 싶지 않았고 믿어지지 않았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 누구나 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하기도 하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깨달았다. 아무리 착하다고 믿어도 인간은 그에게 놓여지는 상황에 따라 언제 어떤 식으로 뒤통수를 치게 될지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간에게 함부로 마음을 내어주고 착하다고 힘부로 믿으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이 사랑에 빠져 서로를 믿고 평생 그의 곁을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했더라도 방심할 수 없다. 이혼이라는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영원은 없다. 선과 악도 없다. 인간은 결국 선과 악의 기로에 놓여 언제나 흔들리는 존재다. 수많은 생각에 지쳐 흔들리다 결국 지쳐서 잠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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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분노가 차오르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본인이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도 모자라 그걸 다른 애들에게
부추기고 있다니. 어떻게 같은 여자인 네가 그럴 수가 있어. 다 알잖아. 그게 얼마나 추악한지 잘 알잖아. 근데 네가 어떻게 그걸 쉬운 일이라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어린 여자애들을 꼬실 수 있어. 난 온누리 너 같이 성공하는 사람은 되지 않을 거야. 하더라도 너같이 결코 남자 따위에 매달려서 성공하는 사람은 되지 않을 거야. 갑자기 분한 마음이 벅차올랐고 이것은 어떻게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많고 많은 합법적 수단 중 겨우 그런 것을 택한 그녀는 분명히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마땅한 일을 하고 있었다. 미칠듯이 슬펐고 화가 났다. 공부에 몰두하느라 잊고 있던 현실의 크기가 성큼 코 앞으로 다가와 나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 그녀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면 돌을 맞을까. 사회로 먼저 나간 그 아이는 그 나이에 보지 말아야 할 못볼꼴을 전부 다 보았겠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더러운 광경들을 보았겠지.하지만, 하지만. 어린 여자를 구매 하는 추악한 기득권들은 어떠한가. 그들에게도 도덕적인 잣대를 뉘여야 마땅하지 않은가. 놀랍도록 깨끗한 척을 하고 사회에서 떵떵거리는 역겨운 기득권 남성들이 없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곧 있으면 국회의원 선거를 나가는 둥, 임원 출마를 하거나 계약을 따내는 둥의 커리어를 가진 이들이 사회에서는 마치 본인들이 세상에서 제일 청렴하고 개념있는 인간이라도 되는 듯 역겹게 행동하는 것이 아직까지도 만연하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 아니겠는가. 그들에게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이들은 골프를 친다는 핑계로 소도시로 내려와 어린 여자애들을 물색했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역겨운 아재들이다.
이런 것들은 신고를 해도 없어지지 않았고 고쳐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 점이 나를 더욱 무력하게 했다. 나는 더욱 본질적인 것을 고민했다. 왜 남성이 여성의 성을 구매하는 것이 이토록 일반적인 일이 되었는가? 왜 이것이 돈이 되는 일이 되고 그래서 이렇게 기이한 성착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가? 온누리의 행동을 보고도 내가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좌절했고 내 자신에게 실망했다.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제 남과 남인지 오래되었고 사실상 내가 그녀에게 무엇이라 할 명목도 없었다. 가족도 아닌데. 다만 흐린 눈을 한 내가 치러야 할 대가는 가난한 여자들이 저렇게 성을 팔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제 능력으로 성공한 여자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만큼 기득권이 위기를 느끼는 일은 없겠지. 대부분의 남성들은 결코 자신의 성을 팜으로써 신분 상승을 꿈꾸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지당한 노력으로, 혹은 물려 받는 권위를 통해 지위를 얻고 돈을 얻는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적어도 온누리의 인생에서는 그것이 정당한 일로 확신에 굳혀져 있을 것이었다. 그녀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착한 여자는 천국을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는 말은 그녀에게 적용되는 말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적용되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룸살롱 사장을 하기까지는 때때로 몸을 파는 일을 했지만 사장이 된 이후로는 그 일에서 손을 뗀 그녀였다. 두뇌 회전이 잘 되는 그녀는 그 일에서 홀랑 손을 털고 짝퉁을 팔다가 이내 다시 돈이 되는 일에 손을 댔다. 바로 그녀가 룸살롱 사장이 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가난하고 예쁘장한 여자 애들을 고용해 사장들에게 넘겼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성상납을 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도 그것이 지옥같고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증명했다. 그녀는 약삭빠르고 영리했기에 본인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부터는 어떻게든 손을 뗐다. 마치 그때 일하던 레스토랑을 그만뒀듯이. 하지만 그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까지 남자의 지위에 속박될 것이란 말인가. 애초에 그렇게 돈을 많이 번 회장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를 살피는 것이 더욱 옳은 길이라면 옳은 길이었을텐데.
그 순간 그녀의 수많은 영수증과 명품들이 가짜처럼 보였다. 그녀가 그 어떤 비싼 물건을 사도 부러울 것 같지 않았다. 부러운 마음이 들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었다. 내 자신이 한없이 냉철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벌고 쓰는 돈은 도대체 무슨 의미지? 뉴욕에서 만났던 부잣집 유학생 여자 애들과 그녀의 공통점은 사용하는 브랜드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부잣집 여자 애들이 돈을 펑펑쓰며 대부분 연애사나 학업 스트레스가 전부인 평온한 하루를 보내는 동안 그녀는 매일 같이 거지같은 남성들을 상대하다가 눈물 흘리는 어린 여자애들을 달래주는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이런 말을 내뱉는 나 자신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나에게도 허영을 채우기 위해 내 스스로를 괴롭히고 나아가 타인에게 거짓말을 했던 날이 있지 않은가? 뼈 빠지게 일을 해서 중고 명품을 사고, 부잣집 남자애들에게 사는 집을 거짓말 했던 순간들. 내게도 이런 가짜같은 면모가 존재하지 않는가? 내가 그녀의 삶을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 갑자기 내 삶 전체가 가짜가 된 기분이었다. 누군가 내 주위를 둘러싸고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진짜는 진짜, 가짜는 가짜. 아무리 노력해도 진짜는 진짜, 가짜는 가짜...’
첫댓글 나도, 그들도. 이건 아니지 않나.
라는 구절 너무나 공감된다
아닌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모순적인게 삶인거같아
항상 잘읽고있어!!공감도 되고 여러가지생각을 하게되네..
생각하게 하고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글 좋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