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해 삭제한 ‘과거’
권 순 긍(세명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고전문학회 회장)
임진왜란을 다룬 고전소설 <임진록(壬辰錄)>을 보면, 이순신, 사명당, 곽재우 등 민족영웅들이 왜적에 맞서 싸우는데 흥미로운 것은 허구가 역사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승군을 일으켜 왜적에 맞섰고, 강화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포로 3천 명을 데려온 사명당(四溟堂)이 소설에서는 일본왕의 항복을 받는다. 큰 비를 내리게 하여 일본열도가 물에 잠기자 일본왕은 어쩔 수 없어 항복하고 조선을 ‘형의 나라’로 섬기며 매년 삼백 명씩 일본인을 파견하여 조선의 국경을 지키도록 했다. 일본의 침탈과 파괴를 이렇게 허구를 통해 통쾌하게 복수했다.
‘과거’가 없는 ‘미래’
일본에 의해 침탈당한 과거로부터 형성된 반일감정은 식민지 지배 36년 동안 인적, 물적 고통과 피해를 겪으면서 우리 민족의 DNA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러니 해방 이후의 한일관계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 한일 정상간 ‘셔틀외교’를 통한 ‘밀월’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우선 정부당국은 3월 강제동원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하여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2018년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무시하고 한국기업이 대신 배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4월에는 대통령이 미국방문을 앞두고 가진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100년 전 우리 역사 때문에 그들(일본인)이 (용서를 구하며)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오히려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무릎을 꿇는다.”는 발언은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추념비 앞에 무릎을 꿇은 ‘바르샤바 무릎 꿇기(Kniefall Von Warschau)’를 기억나게 한다. 그는 총리로서 과거 나치 정권이 유대인에게 저지른 끔찍한 만행에 대해 독일을 대표해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독일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불명예’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존엄성’을 되찾았다고 한다.
더욱이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가 기시다 일본 총리가 서울을 방문했던 5월 7일 "양국이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과거사 문제를 덮자고 못을 박았다. 이제는 식민지 침탈로 얼룩진 과거사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덮고 ‘미래’로 나가자는 말이다.
어두운 ‘과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장밋빛 미래’로 나가자는 말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이지만, 과연 ‘과거’가 없는 ‘미래’가 존재할 수 있을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듯이 우리가 역사에서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은 ‘과거’뿐이다. 현재도 지나가면 과거가 된다. 그러기에 ‘과거’를 통해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픈 ‘과거’를 다 삭제해버리고 어떻게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로 나갈 수 있겠는가?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독일의 경우처럼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 다음에 우리의 용서와 화해가 있는 것이다. 과연 일본이 언제 우리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적이 있었던가?
서울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로부터 ‘사죄’의 말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총리는 “역대 내각의 정신을 계승한다.”며 ‘개인적’이라는 단서를 달아 “마음이 아프다.”고만 했다. 그런데 이미 서울에 오기 전인 4월 21일 기시다 총리는 개인이 아닌 일본 총리 자격으로 침략 전쟁의 주범들이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에 공물을 봉납했으니 이야말로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마음속에 칼을 품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이 아닌가?
‘절반의 컵’에 채운 물
3월 도쿄에서의 한일정상회담 직후 박진 외교부 장관은 “절반의 컵, 남은 물은 일본이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주장대로라면 총리는 침략의 사죄와 강제동원의 배상을 언급했어야 했다. 그런데 한일관계의 ‘장밋빛 미래’ 대신 돌아온 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강행이었다.
일본은 우선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며 한국의 이해를 요구했다. 여기에 화답하듯 윤대통령은 3월 도쿄에서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를 만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의 2차 정상회담에서는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시찰단 파견에 합의하고,
공동 기자회견에서 "과학에 기반한 객관적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우리 국민의 요구를 고려한 의미 있는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시찰단은 한국인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현장시찰’이지 결코 오염수의 ‘안전성 평가’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예상대로 한국 현장시찰단은 독자적으로 시료도 채취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 보고서를 기다려야 할 처지다. 이미 5월 19일 개최된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는 공동성명에서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진행하는 폐로 작업,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IAEA와 함께하는 일본의 투명한 노력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뻔한 결론이 예상된다.
‘과학적’ 증거에 기반하여 객관적으로 검증한 오염수가 그렇게 안전하다면 자국의 농업용수나 공업용수로 쓰면 될 일이다. 그런데 육지에서 1km나 떨어진 먼 바다로 방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절반의 컵’에 일본이 채운 물은 ‘후쿠시마 오염수’였던 셈이다.
일본왕에게 항복문서를 받아 온 사명당 정도는 아니더라도 정부 당국은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코앞에 다가온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저지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