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이야기할 내용은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즉 어떤 법적/이론적 근거를 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예민하고 감각이 살아있는 사람만이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남보다 한 치 앞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변명을 해봅니다. 한 개인의 단독적인 의견이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게 되길 바라며 글을 써보겠습니다.
오늘 오후 신규통장 개설을 위해 동네에 있는 우체국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이제는 통장개설을 하려면 복잡한 구비서류가 있어야 함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다소 황당하고 짜증이 났지만 규정이 그리 바뀌었다니 체념하고 구비서류를 준비해 다시 방문했습니다. 우체국이 요구한 구비서류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사적질문과 무례한 언행으로 기분을 상하게 하더군요. 직원분과 약간의 언쟁 후 다른 은행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우체국을 나왔습니다.
이번엔 근처 외환은행에 먼저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습니다. 필요서류를 갖춰 방문하면 통장을 개설해 준다하여 외환은행으로 갔습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창구에 앉은 직후부터 1시간 동안 은행원의 질문에 답하고, 20장이 넘는 온갖 서류에 대해 일일이 설명을 듣고 서명을 해야 했습니다. 우체국 직원과 은행원의 한결같은 변명은 “대포통장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금감원의 지시사항”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지침을 보여 달라고 요구해서 봤는데 여러 문구 중 가장 황당한 내용은 맨 마지막 줄에 적혀 있는 “해당 직원의 판단하에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개설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기들 마음대로 통장개설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결국 은행이 원하는 것은 통장발급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닌 통장발급을 하지 않는 것이네요”라고 말했더니 수긍을 하더군요.
여러분들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보이스피싱과 대포통장에 의한 범죄피해가 심각하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은행이 너무하네. 금감원 놈들은 자기들 할 일을 일반 국민들에게 전가하나’ 하는, 약간의 분노 정도인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 정부와 은행권들의 노림수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보이스피싱에 의한 피해를 적다 할 수는 없으며, 피해를 당하신 분들의 고통을 외면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부와 은행이 그 분들의 피해를 핑계삼아 온 국민을 자신들의 통제하에 놓으려 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이익에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한 해 금융권에서 유통되는 화폐량 중 대포통장에 의한 피해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이번 조치는 정말 악의적인 조치임에 틀림없습니다. 사기꾼으로부터 피해를 막는다는 핑계로 사람들끼리 대화자체를 못하게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며, 기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줄인다는 이유로 기업설립 자체를 불허하는 조치와 같기 때문입니다. 즉 빈대 잡으려고 초간 삼간을 모두 태워버리는 조치라는 말입니다.
지금 은행권에서 자행되고 있는 신규통장 개설에 대한 통제는 은행의 수익률 저하로 인해 예금자체를 받지 않으려는 것이 본래 목적입니다. 고객들의 예금은 은행에겐 이자를 내줘야 하는 빚입니다. 이미 발행된 통장의 예/적금을 고객들에게 되돌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되면 금융에 대한 신뢰하락과 저항감으로 인해 금융 시스템 자체가 붕괴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은행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최대한 신규 예/적금의 거부’뿐입니다. 그래야 급격한 예대마진 감소폭을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모든 경제위기는 ‘금융에서 시작해서 금융에서 마무리’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금융에서 마무리되었다고 선언할 뿐 일반 기업과 대중들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암튼 정부와 언론은 금융권만 안정을 찾으면 ‘경제위기는 끝났다’고 선언해버립니다. 대중의 고통은 자기들 알 바 아니라는 말이겠지요.
저는 마흔 중반의 나이를 먹는 동안 은행이 예/적금을 거부하는 사태는 처음 경험합니다. 70이 넘으신 어머니에게 여쭤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우가 100여 년 전 미국에서, 150여 년 전 영국에서 있었습니다. 경제공황 직전에 말입니다.
금융의 순환고리가 끊어지고 있는 것이며, 이는 경제의 순환고리도 끊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사태입니다. 금융의 순환고리를 간단히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노동자 대중이 임금을 받아 은행에 예금을 합니다. 은행은 그 예금을 종잣돈 삼아 신용을 창출해 기업에 대출을 해줍니다. 기업은 사업을 통해 원금과 이자를 은행에 갚고, 은행은 그 돈으로 예금자에게 이자를 지불합니다. 그런데 이 순환고리 중 첫 번째인 예금자의 예금이 끊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신용경색, 자금경색이 올 것입니다. 문제는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것엔 상관없이 일반 국민들은 항상 현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현금을 필요로 하는 다수 대중들로 인해 부족한 현금의 가치는 치솟을 것입니다. 현재 그 현금을 누가 가장 많이 갖고 있을까요? 대기업들과 부자들이죠. 경제가 호황일 때에도, 그리고 불황일 때에도 여전히 부의 여신은 대기업과 부자들의 편이라는 씁쓸한 현실에 곧 맞닥뜨리게 될 듯 싶습니다. 불길하면서도 안타깝게도 말입니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졌는데, 밤이 늦은 관계로 내일 이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내일은 좀 더 집중적이고 색다른 관점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좋은 내용입니다.
수신의 거부라...
어떻게 봐야하는 걸까요?
은행신용창출의 시작이 수신인데 그것을 거부한다. 예금을 받으면 빌려줘야하는데 빌려줘봐야 부실위험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봐야하는 것인가요? BIS자기자본비율...
미국금융위기시 중앙은행에서 시중은행에 제로금리로 돈을 빌려주었지만 시중은행은 그 돈을 중앙은행에 재예치했지요. 유럽에서는 그 때문에 마이너스 금리라는 초강수를 도입한 상태죠...
금리는 이자입니다. 이자는 이윤율이죠. 이윤율은 기업과 가계의 수익률입니다. 즉 은행이 예금자에게 지급하는 이자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은 그 원천인 기업과 가계의 대출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과 가계가 대출을 꺼리는 이유는 대출이자만큼의 수익을 올리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경기불황이 깊어져 금융과 경제의 순환이 멈추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제가 댓글을 적어놓고도 조금 너무 갔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은행은 뭔돈으로 대출을 해줄까요? 그리고 그렇게 걱정이 되면 뭐하러 인터넷은행 같은건 왜 만들었을까요? 은행이 현금을 많이 갖고 있어서 그런걸까요? 이해가 안가네 통장개설을 못하게 하다니. 하긴, 우리는 풍차돌리기 적금을 하려고 하는 중이라서 10번째 통장 만들려고 국민은행 갔는데 안 만들어 줘서 다른 은행으로 갔잖아요. 뭔 꿍꿍이 속일까?
은행의 대출 여력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충분할 것입니다. 문제는 은행에게 대출을 얻고 이자를 내야하는 기업과 가계의 여력이 사라지는 것이죠. 부의 생성은 돈 놀이 하는 은행이 아닌 노동력이 투입되는 산업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노동시장이 붕괴되는데 어떻게 이자라고 하는 부가 만들어지겠습니까? 은행과 정부가 지금처럼 계속해서 노동시장을 잡아먹으면 이런 악순환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꿍꿍이 속은 시중에서 소비에 돈이 돌아가라고 통장개설을 안해주고 예금을 안받는 것일까요?
윗 답글의 동어반복이겠지만 은행이 예금을 안 받는 것은 예금자에게 지급되는 은행이자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대출해주고 벌어들이는 대출이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정기예금 정기적금은 해당이 없고 요구불예금에 대해서만 통장개설 목적을 확인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통장개설이 너무나 쉬웠습니다.
저도 얼마전 우리,농협통장 만들려고 갔더니 거부하더라구요 근데 무조건 안되는 건 아니고 신규로 할때는 안해주고 기존에 거래하던 은행인데 통장을 추가로 개설하는 거는 바로 해주던데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대포통장 피해금액이 너무많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저도 통장 만들려면 힘들고 이미 만든 통장도언제 사용정지될지 모르지만 보이스피싱피해금액줄이는 거라면 불편 감수할수박에 없을듯 싶기는 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2000만원이상 인출은 다 보고가 된다네요
굿입니다.
음 분명히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 일반사람만 모르는것 같은데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