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허기지거나 고달픈 바람결에 나부길 때면 시장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 시장이 그리웠던 것은 딱히 장날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 냄새가 그리웠는지 모른다.
녹동시장에 간 것은 해가 뉘여뉘엿 기울어가는 오후였다. 옛날의 시장이 난전을 펼치는 돗대기 시장 같았다고 한다면 요즘 시장은 개량화되어 노점상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특히 녹동시장은 장날임에도 불구하고 노점상이나 좌판을 펼친 곳은 거의 없었다.
시장 초입을 지나자 천막집 아줌마가 나를 보더니 해맑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한다. 50대로 보이는 그 아줌마는 체구가 좋았으며 피부가 고왔다. 늘상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어패류를 살 때면 지전보다 입가의 웃음을 먼저 거슬러 주고는 했다.
녹동시장에는 생선가계에서만 어패류를 파는 것이 아니다. 바다 옆에 이웃한 시장이어서 그럴까. 천막집 아줌마도 어패류를 까서 팔고, 철물점 아줌마도 어패류를 까서 팔고, 이불집 아줌마도 어패류를 까서 판다.
그들이 까서 파는 어패류는 정형화된 계절의 나이테를 갖고 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아줌마들은 점포 앞에서 긴 앞치마를 두르고 석화를 까서 판다. 석화는 스텐레스 밥사발에 담아서 주는데 오 천원어치면 날굴과 숙회굴을 먹기에 충분하다.
석화에서 바지락으로 바뀌면 어느새 봄이 잇대 왔다는 것이다. 바지락은 진달래가 빨갛게 피려고 하는 무렵이 제일 맛있다. 바닷가 사람들도 그것을 알기에 이 무렵 조개류를 넉넉히 사서 냉장고에 쟁여놓고 찬 바람이 불때까지 먹는다. 우리집 냉장고에도 올 겨울까지 먹을 바지락이 속살 훤히 보이는 하얀 지퍼백 옷을 입고 우표처럼 얌전하게 있다.
사람들은 겨울에 바지락칼국수를 먹고는 이 맛이 아니라고 실망을 한다. 사실 바지락이 가장 맛이 없을 때가 겨울이다. 바지락 칼국수는 봄에 먹어야 한다. 그것도 진달래가 막 꽃망울을 터트렸을 때 먹어야 물이 통통히오른 진정한 국물맛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녹동 어시장에도 갔다. 코로나가 진정되지 않았음에도 주말 관광객들로 인하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코로나 물러가라고 기독교 단체에서 행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코로나를 볼모로 전도활동 하는 것 같았다.
수산물이 제일 비쌀 때가 주말이다. 바다 옆에 사는 사람들은 굳이 고가를 부르는 주말에 수산물을 살 하등의 이유가 없다. 평일에 저렴한 가격에 언제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눈요기만 하고 집으로 왔다.
소록도에 서서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첫댓글 소록애님의 일상인데
재미지고
고흥을 보여주셔서 '아하그렇군'알게되는 바 있습니다.
파도님, 반갑습니다. 몇 년 전 고흥 땅을 처음 밟아 봤을 때만 해도 제가 여기에서 살아가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우연이었고 행운이었습니다.
같은 상황이나 현상을 ...
이렇게 곱게 표현하는군요~~^^
감사합니다 ~~~!
꽃편지님, 반갑습니다. 곱게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옛생각에 잠기게하는 정감어린 글이군요. 어린 시절, 엄마가 장에 가는 날은 '나도 갈래 나도갈래' 떼를 쓰다 간단한 장보기일 때는 동행이 허락되고, 그날은 풍성한 먹거리 볼거리를 경험했죠. 질척한 장바닥, 손끝에 잡은 치맛자락, 쓰데없는 쓰리꾼(소매치기)까지 조심하며...반면 동행 불가일 땐 집에서 기다리면서, 기대감에서 그리움으로, 서러움으로 끝내 원망으로 감정 변화가 생기면서 귀가한 엄마한테 동행하지 못했을 때 몇배로 악다구니 쓰다. 누런 회푸대 봉투속 통닭 헌마리에 공연한 민망함에 맺음을 했었던...이젠 거꾸로 집에서 기다리셔야되는 어머니
진흙에님, 긴 댓글 감사합니다. 시장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닻을 내리고 있는 우리들의 고향입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엄마와 함께 장에 갔던 소중한 기억이 저마다 곱게 숨어져 있습니다.
진흙선생님^^~~~~~!!!
시골에서 나고자란 분들은....
대부분~^^
그런추억 있습니다...ㅎㅎㅎ^^ ♡
선생님의..추억과 좋은글~!
생각날때마다~~~~올려주세용..
공손하게 부탁드립니다~~♡
이게모두~!
고흥으로 귀농귀촌.귀어.하신
분들께 도움이될듯 합니다...^^
@꽃편지(순천~고흥) 저도 공감적극추천~~!!
소록애님,진흙에꼬리를님
선생님들의 고흥에서의 일상이 제게도 도움을 주고있습니다.
한가지 배우고 갑니다
바지락은 봄에 먹어야 맛나군요~~^
맛의 극명합니다. 이번에 소록도병원 원장님은 일곱번을 그릇에 담았다가 사모님한테 혼났다고 합니다. 진달래가 필 무렵의 바지락은 감히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감있는 글,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소록애님은 작가라고 생각이 드네요~ 직업은 아니실지라도^^
다미와이니님, 댓글 감사합니다. 과역은 평화가든의 국밥이 유명합니다. 저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과역장에 가서 사온 풍란이 제 집무실에서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소록애(소록도) 소록도는 제게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한 25년전쯤에 혼자 고민을 안고 무작정 여행을 다니던 중 책에서 보았던 소록도를 찾아갔고, 2박3일동안 천사들과 같이 지내다가 왔었습니다. 그런곳에 지금 이렇게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네요~인생이란~^^
시장에가면 사람 냄새가 납니다. 사람들이 살아 숨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저도 한때는 사람이 그리울때 시골장 구경을 가곤 했던적이 있었네요.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이렇게 멋지게 엮으셨군요. 감사합니다~~
아름아리님,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시장에 가면 사람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삶이 허기지고 고달플 때는 새벽시장에 나가 보아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두서없이 쓴 일기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