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
-삐삐 삐삐
알람소리가 울리자 마자 양노인은 시계를 껐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언제부턴가 알람소리가 울리기 전에 자신의 눈이 떠졌다.
“얼른 만들어야겠군.”
한번의 뒤척임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양노인은 문밖을 나가며 혼자 중얼거렸다.
며칠 전부터 항상 같은 시간 자신이 젤 처음 만든 고로케를 사가는 아가씨가 생각났다.
항상 정해진 듯 움직이는 아가씨를 보며 그나마 자신이 일찍 일어나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아가씨가 고맙기까지 했다.
대강의 준비를 끝내고 5평 남짓한 가게의 문을 열어젖혔다.
훈훈하던 공기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갔다.
전날 허리의 통증을 느끼고는 미처 재료를 다듬지 못한체 들어간 것이 더욱 아침을 분주하게 만들고 있었다.
7시 30분.
앞으로 몇분후면 아가씨가 자신의 가게 앞을 지나간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인사한번 없이 돈만 건네고는 미리 포장해논 고로케를 들고 사라졌다.
인사 한마디 없었다.
어쩌면 아가씨가 말을 못할지도 모른다고 양노인은 생각했다.
대신 ‘또 오세요’란 말을 건네면 다음날 같은 시간에 오는 것을 보고 듣기는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땡.
알맞게 익은 고로케가 다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을 제쳐둔체 고로케 두 개를 꺼내 기름을 털고는 분주하게 포장을 시작했다. 갓 튀긴 빵이라 그런지 아직 뜨거웠지만 나이가 든 손은 이미 그런 뜨거음 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7시 42분.
양노인은 고로케를 들고 진열대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7시 43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검은색 자가용 한 대가 자신의 가게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 잠시뒤 차안에서 예쁘장한 아가씨 한명이 내렸다.
“여기. 오늘은 금방 튀긴거라 좀 뜨거울지 몰라요. 조심조심 들어요.”
양노인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듯 아가씨는 그가 건네는 봉투를 쥐고는 만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양노인은 미리 준비되었다는 듯 잘 정리된 천원짜리를 아가씨 손에 건넸다.
“또 와요.”
언제나 그렇듯 아가씨는 한마디 말없이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내 차는 자신의 가게 앞에서 사라졌다.
7시 44분.
그제서야 아침을 시작하는 듯 양노인은 미처 꺼내지못한 고로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손놀림에 좀전보다 더욱 노릇한 고로케가 건져지고 있었다.
“이번 정리해고자 명단입니다.”
사장은 신비서가 건네준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딴 식으로 일하고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가는 족속이 이렇게 많았단 말이야?”
사장은 한심하다는 듯 거칠게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대로 처리하세요. 그리고 한번 더 조사하시고”
사장은 보던 서류를 신비서에게 다시 건네주고는 다음 서류로 눈을 돌렸다.
“정말 이대로 처리할까요?”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던 신비서가 사장에게 되물었다.
사장은 쳐다보던 서류에서 눈을 옮기고는 신비서를 쏘아보았다.
“왜요? 그 속에 신비서님의 이름이라도 추가해 넣을까요?”
“아.. 아닙니다.”
하마터면 자신의 목이 떨어질뻔한 상황에 움찔거리며 신비서는 서류뭉치를 꼭 쥐었다.
“나가보세요.”
이제는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없다는 듯한 말투와 행동의 사장을 보며 신비서는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자신이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란 조용히 방을 나서는 것 뿐이었다.
“실장님. 어떻게 됐어요?”
좋지않은 표정으로 사장실을 나오는 신비서를 향해 부하직원의 걱정스런 물음이 이어졌다.
“뭘 어떻게 해? 마녀 손에 걸렸는데..”
신비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서류를 부하 직원에게 건넸다.
“이대로 처리해. 빠른 시일내로.. 아니면 나나 미자씨 이름이 그 명단에 올라갈지도 몰라.”
신비서에게 서류를 건네받은 부하직원은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과장님.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능글맞은 웃음을 띄며 숙취에 책상에 엎드려 있던 전과장에 드링크를 건네며 차대리가 말했다.
“아직도 속이 느글거려.”
드링크를 한 번에 입에 털어넣던 전과장은 그제서야 약간의 숙취가 풀리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과장님도 참 고생많으시지. 술 국 끓여줄 사모님도 없으시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송대리가 자리로 돌아가며 혀를 찼다.
전과장은 자신의 책상에 놓인 사진 한 장을 바라보았다.
그속엔 해맑게 웃고 있는 전과장과 부인 아들이 함께 있었다. 몇 해전 유학을 떠난 아들과 그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떠나는 부인과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후 가족사진은 그것 하나 뿐이었다.
“올 방학에는 들어온다니. 그때 많이 얻어먹지.”
낙천적인 성격의 전과장은 사진을 보며 씩 웃더니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 이거 뭐야? 과장님.”
자신의 컴퓨터를 가만히 지켜보던 차대리가 급하게 전과장을 불렀다.“
“왜? 주식이라도 떨어졌어? 어제 오늘 일도 아니잖아. 그러게 내가 뺄때 같이 빼라니까. 꼭 고등어를 사야 정신을 차리지.”
송대리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차대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아니고. 과장이 오늘 올라온 공문 보셨어요?”
“왜? 월급인상이라도 결정된거야? 살림살이 좀 나아지겠군.”
공문 따윈 관심도 없다는듯 전과장은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에 싸인을 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고..”
차대리는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전과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사무실 안의 모든 직원들이 전과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뭔데 그래?”
전과장은 자신의 앞에 놓인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독수리 타법으로 자신의 아이디를 입력했다.
로그인과 동시에 공문이 자신의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정리 해고 대상자 명단>
큼지막한 글씨의 화면이 뜨고 그제서야 모든 사무실 직원들이 자신을 바라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획팀 과장 전문식>
-띠띠띠 띠리링~
“아이..씨..”
산은 귀찮은듯 베게에 머리를 파뭇고는 자신의 잠을 깨우는 핸드폰을 손으로 더듬거렸다.
“여보..컥..켁켁. 여보세요.”
막 잠에서 깬 탓인지 잠긴 목을 시원하게 풀고는 전화를 받았다.
-땡땡쇼핑몰입니다. 천 산 고객님 맞으시죠? 이용에 감사드리고자..
“필요없어요.”
산은 관심없다는 듯 안내원의 말을 끊었다.
- 아.. 이번에 고객님에게 더 큰 혜택을 드리고자..
“필요없어요.”
- 아.. 예.. 그럼 좋은 하루되세요.
안내원은 더 이상 산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고 느낀 탓인지 전화를 끊었다.
“덕분에 좋은 하루되긴 글렀네요.”
산은 혼자 중얼거리고는 핸드폰 시계를 봤다.
10시 41분.
“하...”
다시 베게에 머리를 파뭇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30살.
산 그 역시도 청년 실업의 피해자였다.
어디든 자신이 갈 곳은 있다고 느끼는 그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은 점점 절망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그 절망은 이제 자신이 정말 일할수 있는 곳이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바뀌었다.
“하...”
산은 다시 긴 한숨을 쉬며 자던 잠을 마저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순간 산의 머리가 베게와 급격하게 멀어졌다.
“늦었다.”
산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더욱 빠른 몸놀림으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양자는 자신 앞에 놓인 솥단지를 낑낑 거리며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솥단지는 도무지 앞으로 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에허.. 이모 그러다 허리 다쳐요.”
언제 왔는지 젊은 총각 하나가 솥단지를 꺼뜬히 들고 있었다.
“어. 산이 총각왔어?”
친숙한 듯 양자는 허리를 세우며 반갑게 그를 맞았다.
“어이구.. 꽤 무겁네. 이거 뭐예요?”
“날씨도 싸늘하고 해서 호박죽 좀 쒔어.”
“이야.. 오늘 어르신들 이모덕에 기운이 펄펄 나겠는데요?”
총각은 연방 생글거리며 솥단지를 옮기고 있었다.
“노인네들이 기운 펄펄나면 뭣혀. 산이 총각같은 젊은 사람들이 펄펄나야지.”
“지금도 이렇게 펄펄 나는데 더 펄펄나면 어쩌게요.”
솥단지를 든 총각은 엉덩이를 실룩거렸다.
“어허... 그러다 쏟을라...”
양자는 그런 총각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뭐를 했길래 솥이 저렇게 커?”
양노인은 차에 올라타며 트럭에 뒤에 실린 솥을 가리키며 말했다.
“노인네들 추운데 몸 좀 녹으라고 호박죽 좀 쒔어.”
양노인에게 자리를 내주며 양자가 말했다.
“거.. 노인네들 몸 녹이려다 할멈이 골병 들겠네.”
“영감 말하는 본세하고는.”
“자.. 벨트 단단히 메시고 출발합니다.”
산은 두 노인의 다툼이 길어지기 무섭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띡 띡 띡 띡..띠리링.
미선은 이제는 익숙해진 전자식 열쇠의 버튼을 누르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한듯 제일 먼저 거실의 커튼을 젖혔다.
깜깜하던 집안이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으로 환하게 변했다.
미선은 가지고온 물건들을 주방식탁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싱크대를 바라봤다.
여전히 깨끗했다.
간혹 싱크대 안에 컵들이 들어있긴 했지만 그나마도 정말 간혹있는 일이었다.
미선은 익숙한듯 싱크대 밑을 열더니 커다란 솥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가져온 나물들을 손질하여 삶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익숙한듯 청소기를 꺼내 집안 이리저리 닦기 시작했다.
어제 대청소를 한 덕분에 먼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사실 어제 대청소 중에도 먼지는 별로 없었다.
“이런 큰 집에 혼자 살면 심심하지 않나.”
처음 미선이 이 집의 도우미를 시작한건 두 달 전쯤이었다.
식당일보다는 조금 수월한. 무엇보다 식당일보다는 더 많은 월급에 끌린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 이집에 들어선 날부터 지금까지.
이 집 주인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간혹 저 아래 슈퍼주인의 말로는 집주인이 미망인이라던가 이혼녀라던가 하는 말을 들었지만 전혀 그런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집에는 사진 한 장 없었다.
-치~~이~익
시끄럽게 울려대던 냄비소리에 미선은 하던 일을 멈추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잘 삶겨진 콩나물을 꺼내고는 다시 고사리를 삶기 시작했다.
조금 뒤 미선은 청소기 대신 빨래 바구니를 들고 나왔다.
빨래 더미에서 이것 저것 옷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사실 세탁기를 돌리는 일은 드물었다.
옷들마다 세탁소의 드라이클리닝을 맡겨야 되는 물건이었다.
미선은 자신이 손빨래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도우미 소개소에서는 무조건 시키는 일만 하라고 신신당부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 이집에서 나물을 삶는 다는것 자체가 그녀로서는 대단한 결심이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세탁기를 돌려야되는 빨래는 티 한 장과 양말 한켤래 수건 두장 뿐이었다.
미선은 세탁소에 맡길 빨래를 잘 정리한뒤 옆에 놓아두었다.
-치~~이
다시 냄비가 끓기 시작했다.
고사리를 꺼내고 또 그안에 다듬어 놓은 시금치를 넣어 삶았다.
그리고 미선은 식탁에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과장님. 식사는..”
외투를 챙기며 자리를 일어서는 차대리가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는 과장을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전과장은 손을 두어번 휘젖더니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허.. 눈치 없긴..”
송대리가 눈치없는 차대리를 탓하더니 그를 이끌고 나갔다.
“다녀오겠습니다.”
직원들이 사라지고 한참 뒤 전과장은 책상에 엎드렸다.
그리고 이내 그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이거 꼭 갖다드려. 세희한테는 정말 좋은 기회야.”
운동장 한켠에서 봉투를 든체 여자아이는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자신도 그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형편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10살짜리 여자아이의 생각이었다.
“하..”
나이에 걸맞지 않는 한숨이 여자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뭐. 다음 기회가 오겠지.”
여자아이는 봉투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결심한 얼굴로 운동장을 빠져나왔다.
“그래요? 알았어요. 네. 이따 봐요.”
사장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비서는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잠시후 사장실에서 그녀가 나왔다.
“오늘 저녁 스케쥴은 비워주세요.”
“오늘 스케줄이라.. 아.. 오늘은 대영그룹 김전무님과 식사가..”
“제가 따로 전화드리죠.”
“네.”
“가죠.”
“네.”
신비서는 사장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1.어느정도의 분량을 올려야 부담없이 읽을실지 모르겠네요^^
대충 5장 내외 분량으로 올려드리고 있는데 부족하시거나 길다싶으시면 댓글 남겨주세요.
(그외 요청 댓글시 직접 업쪽 보내드리겠습니다. ^^)
2. 부제에 관련한 여담하나 전해드리자면
'난장이'란 단어는 '난쟁이'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다만 변형에 따른 어감차이로 '난장이'라는 표기를 하였기에 이해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점점 재미가 붙을려고 하는 중^^ 업뎃쪽지부탁드려요~
업뎃 쪽지 드렸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_^ 앞으로도 기대하겟습니다. 업데이트 쪽지 부탁드려요 ^_^
업뎃 쪽지 드렸어요~ 댓글 감사^^ 기대에 부응해야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