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 향교
일시:2024년 9월 18일 수요일
장소:강원도 횡성만세공원.횡성 향교.횡성 3.1광장
* 횡성 만세공원
이곳은 전에도 탐방했던 곳이다. 오늘은 횡성 향교를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 여전히 횡성 한우 세 마리 동상이 평화롭게 자리하여 반긴다. 연못 위 정자도 아름답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넘어가니 만세공원에 대한 설명과 돌비, 그리고 평화의 소녀상이 외로이 앉아있다. 신발이라도 신을 것이지, 애처롭게도 맨발이다. 횡성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4월에 세 차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내 장터에서 일어났다. 강원도 최초, 최대의 만세운동이다. 1919년 3월 27일에는 수백 명의 군민들이 읍내 장터에 모였다. 태극기를 앞장 세워 만세 운동을 하다가 8명이 체포되었다. 4월 1일에는 군민 1,300여 명이 몰려들어 태극기의 물결을 이루었다. 4월 2일에는 200여 명이 일본 헌병분견소에 모여 대한민국 독립과 체포자 석방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4월 12일에는 각 면마다 거센 만세운동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몇 명의 의사는 현장에서 또는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참으로 아픈 역사다. 그 현장에 와서 보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이제는 밝고 아름다운 내 조국 잘 지켜나가겠습니다.
* 횡성 향교 외경
한번은 꼭 와보아야 하는 역사적 유적라고 생각해 왔다. 오늘 추석 연휴를 맞아 뜻깊은 탐방하였다. 9월 중순인데도 날씨가 한여름처럼 데워 걷기에 불편하지만 날은 청명하여서 탐방하기 좋았다. 횡성향교는 조선 태조 7년 1398년에 세웠다. 그 이후 몇 차례 옮겨 지었다. 1985년에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0호로 지정되었다. 향교에 다다르니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공자에 관련된 비석이었다. 그 곁으로 향교 건물이 줄지어 있다. 향교는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세웠다. 처음에는 문이 잠겨 있다고 보여서 들어가지 못하고 외경만 둘러보았다. 17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우람한 역사를 말해준다. 향교 약수에 다녀오다가 다시 문을 보니 열쇠는 꽂혀 있어도 잠기지 않아서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 향교 약수
향교 건물 계단 곁에 향교 약수를 안내하는 글씨가 있다. 그 안내를 따라 걸어가니 산자락 아래 향교 약수가 있다. 그런데 약수는 정지되어 나오지 않았다. 좀 아쉬웠다.
* 횡성 향교 내경
향교 약수에 다녀와서 다시 향교 안으로 들어왔다. 아담한 건물들이 빙 둘러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300년 수령의 은행나무다. 무성하진 않지만 우람하게 솟구쳐 오랜 세월의 연륜을 그려낸다. 공자를 비롯한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제외한 건물과 소장품과 자료가 6.25전쟁으로 소실됐다. 1954년에는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지었다. 1960년에는 강당인 명륜당을 다시 지었다. 현재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 서재 등이 남아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한국의 성현의 위패를 모셨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와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다. 그러나 오늘날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횡성 지방의 교육에 대한 역사 유적을 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 횡성 3.1 광장
횡성 향교에서 만세공원으로 나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광장이다. 만세운동을 벌이던 그날의 횡성 3.1 광장이 아직도 큰 눈으로 조국을 지키고 있다. 이곳은 원주행 버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