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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하는 한 알의 밀
요한복음 12:1-50(신p.167) 찬송 288장 / 사도신경 / 찬송 269장 20250122
오늘도 요한복음 12장에 기록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 요한복음 12장 말씀에는 종려주일에 대한 사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것은 십자가의 사역을 위한 것이고, 이 십자가의 사역은 이미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영생을 얻게 되는 하나님이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요한복음 12장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요한복음 12:1절 말씀에 보시면 유월절 엿새 전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 때문에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하게 되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2절 말씀에 보시면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아마 나사로의 집에서는 잠시나마 나사로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사람들을 초대해 놓고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배설했던 것 같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
이 때 예수님께서는 기름부음을 받으시면서 속죄를 위한 제사장으로서 준비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 3절 말씀에 보시면,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에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다 기름을 부은 것으로 기록을 하고 있지만,
마태복음 26장이나 마가복음 14장 말씀에는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름을 부음의 의미는, 구약에서 대제사장이 백성들을 위해 속죄를 하기 전에 기름을 부어 구별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죄인들을 속죄하는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제자들은 이런 영적인 의미보다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그 향유의 가치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특히 4절 말씀에 보시면 계산에 빠른 “가룟유다”가 이 향유의 가치가 300데나리온이나 하는데 차라리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 라고 하면서 책망을 합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기 때문에 10만원만 잡아도 3,000만원이나 되는 큰 돈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6절 말씀에 보시면, 가룟유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가난한 자를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 감이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룟유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가룟유다의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도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예수님이 사역은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물질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왜 이렇게 하셨는지 설명을 하게 됩니다. 7절 말씀에 보시면, “그를 가만 두라 그리고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해 간직해 두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마태복음 26:12절에는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라”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대제사장으로 사역을 준비하는 것이면서 또 나의 죽음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이고, 무덤에 들어갔을 때 바른 향유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면서 죄인을 위한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름부음으로 예수님의 속죄의 사역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6:13절 말씀에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인의 행한 일도 말하며 그를 기억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귀를 타신 메시야
그리고 그 이튿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메시야로 찬송을 받으시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종려주일의 기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수없이 드나드셨지만 이 날이 특별한 것은 구약의 예언대로 나귀를 타고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절기를 지키러 왔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에 대한 찬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 말씀에 보시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여기 “호산나”라는 말이 “어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메시야를 향해서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당시에 제자들은 이 의미를 몰랐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뒤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16절 말씀을 잘 보시면,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부활하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말은 구약 성경, 스가랴서 9:9절 말씀에 “기뻐하고 노래하라 너희를 구원할 메시야는 겸손하여 나귀를 타고 오신다”라고 예언 되어있는 내용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예루살렘 입성이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증거가 되었고,
이 예루살렘 입성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역사 속에 그대로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으러 오신 메시야
그리고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목적이 뭐냐?
죽으시러 왔다는 것을 말씀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은 20절-50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십자가의 사역에 대한 의미를 설명을 합니다.
특별히 요한은 이 십자가의 사역을 설명하기 전에 헬라인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 때 예수님께서 이것을 설명하셨다! 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21절 말씀에 보시면, 이방인들이 “예수를 뵙고자 하나이다”하면서 이 예수를 찾았을 때,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이 말씀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유대인들만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23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정한 때, 이미 결정 되어 있는 그 날이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농사로 비유하면 파종할 때가 있고, 추수할 때가 정해진 것처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때가 되었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역을 밀 알을 가지고 설명을 하게 됩니다.
24절 말씀에 보시ㅕ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밀은 죽어야 열매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나도 죽어야 부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한 알의 밀은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밀 알이 죽는 것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의미하는 것이고, 밀 알이 열매를 맺는 것은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영적으로 해석을 하면,
밀 알이 땅에 묻혀 썩어지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죄의 값이 지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밀이 싹이 나서 다른 생명으로 올라와 열매를 맺는 것은 예수를 믿는 자들이 또 다른 생명을 얻어서 영생하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을 때 우리의 죄가 소멸되는 것이고, 예수의 부활을 믿을 때 영원한 생명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5절 말씀에
“자기의 생명(육신)을 사랑하는 자는 (영혼을)잃어 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육신)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영생을 얻게 된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26절 말씀에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 부활의 길을 가게 되면, 주님 가신 그곳,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 귀하게 여김을 받게 된다, 존귀한 자, 가치 있는 자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포
그리고 예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이 십자가의 길은 쉽지 않은 길, 괴로운 길이지만, 이것을 위해 내가 왔다! 라고 선언하십니다.
여러분 27절 말씀에 보시면,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이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를 위해 하나님의 때에 내가 왔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인정하시는 말씀을 하시게 됩니다.
여러분 28절 말씀에 보시면,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을 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역에 순종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러 오셨고, 영생을 위해 부활하러 오셨다는 것을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분명히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십자가의 의미
그리고 또 십자가의 중요한 의미가 하나 있습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은 자기 백성들은 구원하는 것이면서, 또한 마귀를 심판하시는 사역이라는 것을 말씀을 합니다. 마귀의 권세를 멸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31절-32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세상의 임금은 세상을 주관하는 마귀를 말합니다.
그리고“내가 땅에서 들리면”이라는 말은 영광을 받으신다는 뜻이기 때문에, 내가 부활하면, 승천하면!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활함으로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은 결국 마귀를 심판하는 것이고,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 마귀의 권세라는 것이, “사람들이 죄를 짓게 함으로 그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권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활하심으로 “영생의 문을 열어 놓으심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의 임금, 마귀를 심판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를 믿으라!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5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내가 죄가 관영 한 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왔고, 내가 지금 빛으로 있을 동안에 나를 보고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빛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내가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36절 말씀에 보시면,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누가 이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요한은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이 구원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고, 예수를 믿는 자가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으로 바른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당시에 많은 유대의 지도자들은 “세상의 권세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눈을 가려서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책망을 하십니다.
37절 말씀에 보시면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38절 말씀에 보시면, 이사야서 53:1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고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안 믿느냐? 40절 말씀에 보시면
“…그들의 눈이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는 못 보게 하시고, 못 듣게 하셔서 망하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멀게 하시고 마음의 귀를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은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 42절 말씀에 보시면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관리들 중에서 예수를 믿는 자도 있었지만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게 될 때, 결국 그 믿음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두려움만 가질 뿐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온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온전한 믿음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설명을 하십니다.
이 온전한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나를 믿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는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죄인들을 구원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여자의 후손을 통해 뱀(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라”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할 것을 이미 계획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고, 이 하나님의 계획이 성경과 역사를 통해 이루어 졌다는 것을 믿고, 그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44절-45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을 믿는 것이며 /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 만 믿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그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보내신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도 믿지 못하면 결국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48절 말씀을 보시면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 말이 아니고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나를 보내신 하나님, 창조주의 말씀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49절-50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한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고, 이 말을 전하게 하셨다”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영생을 얻는 방법도 가르쳐 주셨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좀 알아듣고, 이것을 믿어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것에 마음이 빼앗기고, 시간을 허비하고, 재물이나 음란이나 쾌락에 마음이 빼앗겨 있으면, 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도 않고, 깨달아지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시간 동안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믿고, 그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그대로 순종한 이 예수님을 바로 믿게 될 때 죄사함도 받고 영생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세상사람들처럼 살 수 없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배우겠지만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 보시면, 골로새서 3:20절 말씀에 보시면,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욕심)은 우상 숭배와 같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에베소 4:22절-32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요한복음의 말씀과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부활을 믿는 자가 되었다면, 육신의 모습을 따라 죄와 욕심에 이끌려 살기보다는 이제 마음에서부터 변화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문
합심기도
1. 오늘도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로서 거룩한 삶, 성도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섬기는 교회와 직분자들과 교회의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3. 개인의 기도제목을 따라 기도하고 오늘 하루 삶을 또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