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두 번째 글을 씁니다. 생각을 정리해 놓은 메모를 보니 이번 글로 마무리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글이 길어질 듯싶으면 한 번 더 쓰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어제 쓴 글의 댓글 중 미처 답변을 못한 것에 대한 대답부터 하겠습니다.
1.‘한국은 그동안 통장개설이 너무 쉬웠다. 그래서 이제는 좀 까다로워질 때도 되었다.’는 분이 계신데요.
이 질문은 ‘그동안 한국은 왜 그리 통장개설을 남발했는가?’로 바꿔서 질문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원해서 통장개설이 남발되었나요? 절대 아니죠.
보통 직장마다 주거래 은행이 다릅니다. 새로 취업을 하거나 이직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새로 통장개설을 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90년대부터 시작된 은행의 카드영업으로 인해 A라는 은행카드를 만들면 그 은행통장을 결제통장으로 만들어야 했으며, 심지어 각종 개인보험가입 때조차 요구하는 결제은행 통장이 달랐습니다. 그동안 남발된 통장개설을 국민 탓으로 돌리는 듯한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국민 탓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취지라 하더라도 이번 은행의 방식은 일방적이며 매우 폭력적입니다.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이고요.
2.‘대포통장의 피해액이 너무 큰 게 아닌가?’라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이 역시 침소봉대이며, 눈속임일 뿐입니다. 한.미.일.중국의 한 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이렇습니다.
한국 - 연간 약 2천 100억 원,
일본 - 약 3400억 원,
중국 - 3조 8천억 원,
미국 - 약 17조 원 정도 됩니다.
이중 미국은 보이스피싱에 의한 피해이기 보다는 인터넷 해킹을 통한 금융사기 피해액이 대부분입니다.
반면 각국의 한 해 총 통화량(M2)을 보면
한국 – 약 2천 200조 원,
중국 –약 14조 달러,
미국 – 11조 달러 정도 됩니다. 통화량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것이 의외라면 의외이죠.
통화량 대비 보이스피싱 피해액을 보면 한국의 경우 약 0.0001%, 즉 만분의 1정도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한 해 삼성이나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조작되는 환율 피해액이 이보다 수십, 수백배는 더 클 것입니다. 그렇게 국민의 피해가 염려스러우면 수출로 인한 환율방어로 한 해 수십조 원씩 낭비하는 대기업을 모두 없애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미국처럼 피해액이 큰 나라에서는 아예 인터넷과 컴퓨터의 사용을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앞으로도 보이스피싱 기법은 진화할 것이며 기술발달에 따라 더 기발한 금융사기수법이 등장할 것입니다. 만일 경제호황으로 금융수요가 증가한다면 그때도 국민피해를 핑계로 은행이 통장개설이나 예/적금을 거부할까요? 절대 아니겠죠. 그렇다면 답은 이미 나온 것입니다.
어제 제가 얘기한대로 지금은 그냥 은행이 자기들 주머니에서 나가는 이자를 줄이려고 하는 꼼수일 뿐이라는 거죠. 그 방법이 워낙 치졸하고 일방적이라 화가 나는 것이고요.
한 해 은행권을 통해 유통되는 총 통화량의 만분의 1도 안 되는 범죄를 그동안 언론을 통해 얼마나 부각시켜왔습니까? 그 모든 것이 이런 꼼수를 부리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는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경제상황이 더 나빠지면 이보다 더한 후속조치가, 그것도 매우 급작스러우면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1930년대 유럽과 미국,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70년대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국가에 벌어졌던 금 몰수와 금 거래 금지, 은행에서의 현금인출금지와 같은 조치들이 21세기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질 것입니다. 은행과 정부는 원래 그렇게 폭력적인 집단임을 이번 일을 통해 미리 감지해야 합니다.
제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정부를 앞세운 금융권력의 폭력성과 그로인한 대중들의 피해입니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말했던 ‘빅 부라더’와 조르쥬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에서 말한 ‘벌거벗은 생명’이 현재 한국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사업실패나 실직으로 인해 대출상환불능에 빠진 신용불량자들이 300만 명이 넘습니다.
이중 일부는 노숙자로 전락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상당수는 주민등록 말소나 의료보험 연체로 인해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전산시스템 구축이라는 미명하에 금융권이 통합되고 건강보험 등 국가기관과도 연계 되면서 신용불량자들이 이중 삼중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혹여 ‘남의 돈을 떼어먹었으니 그것은 인과응보다’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나요? 국가와 그 국가의 실제 빅 부라더인 금융권력에 세뇌당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18세기 독립전쟁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 제1의 패권국가로 등극하게 된 원인과 지난 30여 년 간 이루어진 중국 급성장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런 말을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8세기 이후 미국은 서부개척과 골드러쉬, 대륙횡단철도 건설, 이민자의 급증 등 에너지가 넘치는 시대였습니다. 수많은 인종들 속에 존재하는 인재들과 그 인재들의 창의력 넘치는 에너지를 발현시킬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바로 ‘파산법’ 때문이었습니다. 즉 넘어져도 금세 일어날 수 있었기에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미국을 대성공으로 이끌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중국 역시 한국과는 다른 금융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기업들은 인민은행과 각 지역 은행들에게 진 빚에 대한 상환염려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전통은 청나라 건륭황제와 옹정제, 강희제를 거치면서 확립한 화폐제도의 전통을 중국이 여전히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 전통을 무너뜨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고요.
현재 한국은 어떻습니까? 한 번 실패하면 본인 인생은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안녕이 붕괴되기에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가장 관료적이고 비창의적인 공무원조직에 들어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이 선호되는 사회라는 건 거꾸로 그만큼 사회의 토대자체가 불안정하다는 반증입니다. 한창 창의적이고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실패가 두려워 시도자체를 못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창조경제가 이루어지겠습니까?
또한 그깟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으로 인해 인간의 기본권인 건강에 대한 배려마저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무슨 애국심을 논할 수가 있겠습니까? 질병과 사고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호모 사케르’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금융에 의해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벌거벗은 생명’, ‘죽어도 되는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경제위기가 오고, 지나가는 동안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내 주위 약자들에 대한 배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싸워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정작 내 자신이 그리 되었을 때 내 곁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통장발급이라는 사안을 통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1년 365일 중 사소해 보이는 364일이 있기에 오늘이 있고, 영광된 그 어떤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사소하다며 364일을 모두 없애버리면 오늘도, 내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하나의 사안을 통해 현재 한국의 모습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정말 입출금통장 안만들어주더군요. 국가의 통제가 점점 강화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소한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글 감사합니다.^^
은행직원하고 몇 번 만나기만 했는데도 눈웃음치면서, 콧소리 내면서 통장 있다는데도, 굳이 하나 더 만들라고 한게 작년 여름이었는데... 어찌?
미국 파산법과 중국의 금융환경...그리고 한국....경영을 잘못한 댓가로 위기에 몰린 대기업들에게는 세금을 퍼부으면서까지 워크아웃이네 뭐네 지원을 하고 없는 개인에게 만큼은 철저한 빚독촉을 하는...그런 환경에서 개인이 어떻게 창의력, 도전정신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뭔가를 만들 수 있을까...이러저러 생각이 드네요.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내용은 훌륭한 글이지만 제목이 내용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듯 싶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알찬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입출금 통장 없이 예금 통장 만들면 쉽던데..
그리고 미 금리 인상 후에는 예금 이율 높은 특판상품 판다고 문자도 날라 오던데..
저는 개인간 증여시 세금을 제대로 물리고, 개개인의 금융거래가 훤히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속셈이 있을 수도 있네요.
좋은글잘읽었습니다
일반시중은행도 입출금 통장 만들기 힘든가요??
우체국은 정말 힘들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통장개설은 보통예금을 말하고, 보통예금 이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이익이 목적이라면 고객으로 하여금 통장 개설을 하게하고, 이후 이체 수수료 발생시키는것이 은행 입장에서는 더 많은 수입을 버는 방법이지요. 잘은 모르지만 뭔가 다른 목적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