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4일 오류 논란을 빚은 2008년 수능 물리Ⅱ 11번 문항에 대해 복수정답을 인정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국가 단위 시험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문제 오류로 인해 학생들이 입는 피해가, 채점을 다시 해 입시일정을 늦춰서 수험생들에게 돌아가는 피해보다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평가원도, 대학 입시를 총괄하는
교육인적자원부도 치명적 신뢰 추락을 감수케 됐다. 교육부는 오류 논란 직후 “평가원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면서 평가원의 손을 들어줬지만 수능 채점을 다시 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사의를 표명한 정강정 평가원장에 이어
김신일 교육부총리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 관심은 수험생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와 향후 입시일정에 모아지고 있다. 일단 불이익을 받는 수험생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평가원측이 “수능 채점을 다시 하더라도 등급이 상향조정되는 일만 있고 하향조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의 등급분포인 1등급(4%), 2등급(7%), 3등급(12%) 등의 비율 배분은 물리Ⅱ 과목에 국한돼 조정될 전망이다. 따라서 물리Ⅱ 11번 문항이 정답 처리돼 등급이 올라가는 학생들의 재지원이 쇄도할 전망이다.
우선 수시모집에서 물리Ⅱ로 인해 수능 최저학력 기준에 못 미쳐 지원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학생들에게는 재응시의 기회가 주어졌다. 정시모집에 이미 원서접수를 했더라도 재채점 결과 등급이 상향조정되는 학생들은 지원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대학들은 다급해졌다. 현재 진행 중인 2008학년도 대입 일정을 잠정 중단하고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수시모집 재전형과 정시모집 일정 연기가 불가피해져서다. 특히 물리Ⅱ는 상위권 대학에 지망하는 학생들이 주로 치르는 과목인 만큼 수도권 소재 상위권 대학들의 입시 일정은 전면 재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내년 학사일정도 일부 조정이 뒤따를 전망이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김경범 교수는 “이미 합격자가 발표된 수시모집에서 수능시험 성적을 최저학력기준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시모집 전형은 재채점 결과가 언제 통보되는지에 따라 연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교육부의 지침이 내려오는 대로 입학 관계자 회의를 열어 방침을 결정할 계획이다.
고려대는 수시모집에서 물리Ⅱ 시험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학생들을 구제하겠다는 방침이다. 고려대 박유성 입학처장은 “전형 일정은 교육부 방침을 따르겠지만 올해만큼은 수시에서 불이익을 당한 학생들만 합격시켜 주는 방안을 교육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이의신청 기간에 평가원과 교육부가 제대로 했다면 이런 혼란이 발생했겠느냐”며 “사고는 교육당국이 저지르고 피해는 수험생과 대학에 전가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