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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으로 세상을 바꾼 -
구글 스토리
존 바텔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 2005년 12월 / 448쪽 / 18,000원
http://cafe.daum.net/alchemyer
1. 세상을 바꾸는 힘, 검색
의도의 데이터베이스, 검색
검색은 물질문화의 산물이다
이 시대의 키워드, 검색
검색과 인간과 기계의 만남
검색이란 행위가 갖는 의미
인공지능으로 가는 길목의 검색
2. 검색은 어떻게 가치를 창출해내는가
검색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누가 검색을 하는가
사람들은 무엇을 검색하나
검색은 어디에서 왜 일어나는가
언제 검색을 하나
여기에 돈이 되는 검색의 해답이 있다
3. 구글 이전의 검색엔진들
초기의 검색엔진들은 어떠했나
제대로 된 최초의 검색엔진, 알타비스타
인터넷에 색을 입힌 루이스 모니에르
기업용 미니컴퓨터에서 벗어나지 못해 무너진 DEC
알타비스타의 흥망성쇠
컴팩에 인수된 알타비스타, 포털이 되다
알타비스타의 전철을 밟은 라이코스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익사이트
포털의 절대강자 야후의 시작
야후, 날개를 펴다
4. 검색의 새 장을 연 구글의 탄생
자신의 발명품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래리 페이지
래리 페이지, 스탠포드에서 세르게이 브린을 만나다
인용과 역방향 추적에 관한 프로젝트
대담하게 웹페이지에 순위를 매기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검색수요가 '구글'의 탄생을 이끌다
여자친구의 차고에서 시작한 초창기 구글
2,500만 달러를 투자받다
검색과 광고를 연결시키지 않은 채 수익을 창출하려 하다
5. '구글'이 되었을지도 모를 고투닷컴의 성공과 실패
사업의 귀재 빌 그로스, 인터넷에 발을 들이다
끊임없는 '아이디어'로 성공의 축배를 들다
오로지 트래픽 계약만이 중요했다
트래픽의 '양'이 아닌 '질'에 어떻게 가치를 지불하게 할 것인가
검색자들이 클릭한 만큼 광고주에게 돈을 받다
광고주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고투닷컴
고투닷컴, 유료 검색 광고 분야를 평정하다
오버추어가 된 고투닷컴, 구글에 주도권을 빼앗기다
검색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포털들
오버추어의 막은 내렸어도 새로운 검색엔진을 꿈꾼다
6. 구글, 5년 만에 30억 달러의 기적을 이뤄내다
광고보다 홍보를 통해 성장해나간 구글
뛰어난 검색결과와 빠른 검색 속도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
구글의 CEO를 찾아라
에릭 슈미트를 영입하다
구글의 슬로건 '악해지지 말자'
끊임없이 세력을 확장해나가다
9.11 사태가 구글 뉴스를 탄생시키다
구글, AOL과 계약을 맺다
사람들의 반감을 사기 시작한 구글
그러나 구글의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
7. 검색,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구글이 준 것, 구글이 앗아가다
인터넷 세계에 몰아닥친 강력한 허리케인, 구글 댄스
검색엔진 최적화 세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나
스팸을 어떻게 정의하고 걸러낼 것인가
'플로리다'는 '애드워즈'를 사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검색, 마케팅의 개념을 변화시키다
모든 산업이 검색으로 연결된다
지역검색에 대한 가상의 시나리오
검색이 모든 산업을 바꾼다
하지만 검색에도 문제는 있다
검색결과에 대한 신뢰가 키워드이다
'검색'을 위협하는 부정클릭
8. 검색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
검색엔진에서 '나' 찾아보기
구글이 내 이메일을 엿본다고?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개인에 대한 부당한 수색
중국에서 서비스되는 구글은 왜 다른가
9. 구글, 기업공개를 단행하다
구글의 기업공개에 사람들이 거는 기대
그들은 너무도 오만했다
구글은 과연 기업공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구글, 운명을 시험하다
기업공개를 끝낸 구글은 이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10. 미래의 구글은 어떤 모습일까
빠르게 성장한 만큼 따르는 고통도 크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구글과 야후에서 검색어 '어셔'가 의미하는 것은 다르다
구글, 디지털 시대를 대비하다
11. 완벽한 검색은 어떻게 가능한가
검색에 장애물이란 없다
이동경로가 완벽한 검색을 좌우한다
완벽한 검색으로 가는 길목의 개인화된 검색
새로운 인터페이스 등장하다
차세대 지능형 웹, 시멘틱 웹이 온다
시멘틱 웹과 블로그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시멘틱 웹의 미래를 엿보다
그렇다면 왜 지금 웹파운틴인가
구글과 웹파운틴이 만난다면
특정영역 검색이란 무엇인가
시간마저도 초월해 검색 가능한 웹
완벽한 검색을 찾아서
에필로그 - 나는 '불멸'에 대해 검색하고 싶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 검색
2001년 가을 인터넷 업계는 누가 보기에도 쇠락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세웠던 회사를 포함해 한때 잘나갔던 신생기업 수백여 곳이 파산했다. 나 역시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내가 경영하던 인터넷기업의 실패는 뼈에 사무칠 정도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나와 ‘구글’의 만남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인터넷사업을 다시 부활시킬 가능성이 있을지 궁리하던 가운데 우연히 ‘구글 자이트가이스트 Google Zeitgeist’의 제1판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구글 자이트가이스트는 특정 시기 동안 인기를 얻거나 잃은 검색어들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똑똑한 홍보수단이라 할 수 있다. 구글 자이트가이스트는 인기 검색어를 찾아내 집계함으로써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나 흥미로워하는 것, 반대로 예전에는 인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대중적인 관심을 잃고 있는 것들을 요약해서 한눈에 보여준다.
목록들을 살펴보며 순간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이트가이스트는 내게 구글이 우리 문화를 진단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문화의 신경체계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는 걸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거대한 힘을 가진 살아 있는 인공물’에 비유될 수 있으며, 후에 내가 ‘의도의 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르게 되는 것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 것이다. 이럴 수가! 매시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검색어들이 서버로 흘러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구글은 우리 문화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글과 같은 기업들이 세계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면, 강력한 힘을 가진 조직들이 이런 기업들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며 반대로 허약한 개인들은 그러한 조직들을 하나의 ‘공포’로 여길 것이다. 구글의 15만 개가 넘는 서버들의 실리콘칩에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 동성애자의 고뇌하는 움직임과 폭탄제조를 꿈꾸는 테러리스트의 은밀한 속셈, 그리고 연쇄살인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구글과 같은 기업들과 그들이 일으키는 결과를 통해서 개인의 디지털 정체성은 영구적 생명을 얻게 되지만, 반대로 이러한 정체성은 외부의 요구에 의해 검색가능하기도 하다.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현재까지 그러한 요구가 있었던 적도, 또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켜준 적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이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면 그러한 외부의 요구를 과연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궁극적으로 개인의 디지털 정체성을 검색하고자 하는 요구는 앞으로 충분히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요구에 대한 압력은 강력하다. 또한 악의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될 위협도 상당하다. 2001년 9.11 사태가 터진 후 미국 정부는 국내감시권한을 강화하는 법률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의회는 아무 논란없이 순식간에 미국애국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의 한도 내에서 미국 정부는 구글과 같은 회사들에게 정부기관이 요구하면 정보를 ‘비밀리에’ 제공해줄 것을 강제할 수 있다. 미국연방수사국과 미국국가안전보장국, 그리고 국방부 등 전 부서가 인터넷에 기초한 감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AOL이나 구글, 또는 야후 등이 갖고 있는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들은 결코 소홀히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이 정부에 제공할 정보에 대해서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법적 의무를 지게 되는 이상 그들은 정부와 수백만 명의 아무것도 모르는 고객들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어떤 하나의 조직이 휘두르는 잔인한 힘은 지금까지 모두 실패해왔고, 앞으로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검색은 그보다는 이미 인터넷상에서 존재하는 지능, 다시 말해 내가 ‘의도의 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르고 있는 수많은 일상적인 거래와 발언과 행동과 웹의 기반을 형성하는 링크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알고리즘을 똑똑하게 적용시킴으로써 지능을 갖추게 될 가능성이 더욱 크다. 결과적으로 볼 때 구글은 바로 이러한 생각에 기초해서 출발한 것이다. 지능이 있는 검색엔진을 창조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기업이 있다면 그건 바로 구글뿐이다. 과연 세상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온갖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기업을 세운다면 마케팅과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인간 문화 그 자체와 관련된 가장 난해한 수수께끼를 해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구글이 바로 그런 회사로 자리매김해왔다 할 수 있다.
검색은 어떻게 가치를 창출해내는가
검색에는 3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 첫째 검색엔진은 크롤(정보수집)을 하고, 둘째는 인덱스(색인)를 만들며, 셋째 결과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세 부분은 웹의 크기와 지속적인 성장에 맞춰 함께 성장해야 한다. 검색엔진이 크롤을 하고, 인덱스를 만들고, 결과를 제공하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구글만 하더라도 이 일을 처리하는 데 17만 5,000대 이상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1970년대에 지구상에 있었던 컴퓨터 수보다 많은 것이다. 사실 우리는 아주 게으르다. 우리는 기껏해야 단어 몇 개를 입력해놓고는 검색엔진이 완벽한 결과를 찾아주기를 기대한다. 검색자들 중 95퍼센트 이상은 대부분 검색엔진이 제공하는 고급검색기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검색 전문가들 대부분은 이 비율을 낮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고급검색기술을 잠깐이라도 공부하면 상당히 나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2004년 여름, 미국의 비영리 인터넷 조사 기관인 퓨 인터넷&아메리칸 라이프 프로젝트는 미국인의 인터넷 사용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모든 미국 인터넷 사용자들 중 85퍼센트인 1억 700만 명 이상이 검색엔진을 활용하고, 평균 한 달에 30건을 검색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렇다면 검색엔진을 사용하는 이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일반 미국인들과는 다른 사람들인가? 한마디로 답은 “그렇다”이다. 퓨 인터넷&아메리칸 라이프 프로젝트는 인터넷 사용을 주도하는 기술 엘리트 집단을 찾아냈다. 그리고 미국 인구의 31퍼센트가 이 엘리트 집단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퓨 인터넷&아메리칸 라이프 프로젝트에 따르면 나이가 어릴수록, 혹은 공부를 잘할수록 검색을 더욱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결과가 있는데, 그것은 검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인터넷에서 더 오래 시간을 보내며, 더 많은 디지털 기능을 사용하고, 정보 서비스에 더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투자은행인 파이퍼 재프리의 연구에 따르면, 2003년에 세계적으로 매일 5억 5,000만 건의 검색이 이루어졌으며, 이 수치는 앞으로 연간 10~20퍼센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일 5,000만 개의 독특한 키워드 조합이 검색엔진에 입력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구글은 이보다 많은 키워드 조합이 입력된다고 보고 있다. 구글은 1일 검색어 중 50퍼센트 가까이, 다시 말해 1억 개 이상이 독특하다고 본다. 이러한 검색어의 풍부한 다양성은 검색 자체의 복잡성뿐만 아니라, 검색을 지원하는 확실한 광고모델을 만들어낸다. 어떤 시기에 누군가에게 경제적인 가치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키워드의 수는 말 그대로 수백만 개에 이른다. 논란의 소지는 있겠지만 인터넷에서 모든 의도는 어느 정도 상업적이다. 할머니의 가계(家系)를 찾아보고 있거나 희귀 돌고래에 대한 글을 읽으려 할 때에도 당신의 관심은 누군가에게는 상업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검색자들은 검색을 하는 내내 수많은 광고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런 링크들은 곧 검색엔진업체들이 가공할 만한 수익을 올리는 노다지가 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검색자들은 편하게 느껴지는 곳에서 계속 검색하려고 한다. 검색자의 85퍼센트가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구글, AOL 등 4대 포털사이트를 이용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 사용해본 검색엔진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검색을 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우리는 대답 이상의 것을 찾기 위해 검색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찾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찾으려 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 무엇이 존재하는가를 이해하려는 욕구는 우리가 인터넷을 더욱 잘 알게 되면서 수그러들었고, 이제 우리는 인터넷에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방대함은 또 다른 종류의 웹문맹을 낳고 있다. 다시 말해서 찾고자 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떻게 찾아야 할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우연히 발견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검색을 한다.
이 모든 검색과 검색자들은 중요한 수익창출 사업의 기회가 되었다. 사실 이것은 미디어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사업임에 틀림없다. 1990년 대 후반 처음 시작해서 2004년까지 하나의 사업으로서 유료 검색 광고는 몇 백만 달러에서 총매출 4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으며, 2010년에는 230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파이퍼 재프리는 추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수치로 볼 때 구글이 기업공개를 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주가가 주당 200달러로 솟구친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못 된다. 어째서 이와 같은 엄청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해 유료 검색 광고가 통하기 때문이다. 수억 명의 검색자들이 입력한 검색어에 맞춰 짧은 텍스트 기반 광고를 올림으로써 지극히 효율적으로 마케팅 우위를 창출할 수 있고, 이러한 우위는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가 된다.
검색의 새 장을 연 구글의 탄생
캘리포니아 북부 스탠포드대학에서 컴퓨터과학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을 때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래리 페이지에게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대학교수가 되거나 회사를 창업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스탠포드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하고 있었다. 내가 갖고 있던 열정을 충족시켜주기에 스탠포드대학만한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실리콘밸리에 가고 싶었다.” 스탠포드대학은 휴렛팩커드, 실리콘 그래픽스, 야후, 익사이트 등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탄생한 온상지이다. 컴퓨터과학 교수들 대부분은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기업들을 창립하고, 운영하고, 매각하거나 혹은 그런 기업들에 자문을 해준 경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스탠포드대학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회사 창립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신입생으로 스탠포드대학에 발을 들여놓은 래리 페이지는 지도교수로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분야의 선구자인 테리 위노그래드 교수를 택한다. 그러나 래리 페이지가 처음부터 웹 기반 검색이라는 아이디어에 끌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완전히 달랐다. 스탠포드대학 졸업생들이 인터넷기업을 창립하면서 부자가 되고 있긴 했지만, 그는 무엇보다 수학적인 특성 때문에 웹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테리 위노그래드 교수는 바로 이 점 때문에 래리 페이지에게 월드와이드웹을 논문 주제로 할 것을 권유했고, 래리 페이지는 웹의 링크 구조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한편 세르게이 브린은 래리 페이지의 프로젝트가 갖고 있는 복잡성과 규모에 끌렸다. 논문 주제를 찾지 못하고 이 프로젝트에서 저 프로젝트로 떠돌아다니던 박학다식한 세르게이 브린에게 백럽(Backrub, 링크추적엔진)의 배후 전제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검색엔진은 단지 성능만 좋은 것은 아니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웹이 커질수록 검색엔진 또한 커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페이지랭크(PageRank, 래리 페이지가 발명한 것으로, 웹사이트의 인기도를 다른 사이트가 링크한 개수에 의거해 계산해내는 방식)는 링크를 분석하는 형태로 작동하기 때문에 웹이 더 커질수록 이것은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게 된다. 이 사실이 계기가 되어 그들은 새로운 검색엔진을 ‘구골(googol, 1에 0을 100개 붙인 수학적 용어)’이란 말을 패러디해서 ‘구글’이라고 불렀다. 1996년 8월 그들은 구글의 첫 번째 버전을 스탠포드 웹사이트에 올렸다. 스탠포드 내 소수의 사용자들 사이에서 구글은 히트를 쳤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프로젝트는 규모가 엄청났기 때문에 컴퓨터과학과와 캠퍼스 네트워크 관리사무소 내에서 거의 전설적인 프로젝트로 부상했다. 이 프로젝트 때문에 스탠포드대학의 인터넷 연결이 마비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스탠포드대학을 통해 실리콘밸리의 뛰어난 사업가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 때 이 발명가들은 사업가의 고전적인 딜레마에 부딪쳐야 했다. 즉 회사를 창업할 경우 자금이 풍부하고 규모가 큰 경쟁업체에 짓밟힐 가능성이 있는 반면, 성공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되면 무한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1998년 후반 구글은 하루에 1만 건 이상의 검색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서비스 수요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걸하다시피해서 얻을 수 있는 컴퓨터 자원의 성능을 능가하게 될 것이 확실했다. 이제는 회사를 창업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또다른 지도교수인 데이비드 체리턴에게 자문을 구했다.
체리턴 교수는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에게 신생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던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창립자인 앤디 벡톨샤임을 만나볼 것을 권했다. “우리가 금액을 제안하자, 그는 ‘충분한 것 같지 않군요. 저는 그 액수의 2배 정도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라고 말했다”라고 래리 페이지는 말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깜짝 놀랐지만, 당연히 앤디 벡톨샤임이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였다. 앤디 벡톨샤임은 수표에 회사명을 뭐라고 적어야 하는지를 물었다. 구글의 창립자들은 그때까지 회사 이름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자 앤디 벡톨샤임은 서비스의 이름을 따서 구글사로 하자고 제안했고, 그들은 그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리고 몇 분 뒤 그들의 손에는 10만 달러짜리 수표가 쥐어져 있었다. 바로 이런 데 회사를 창업하는 맛이 있는 것이다. 1998년 9월 7일 구글이 공식적으로 첫발을 내딛었고, 래리 페이지는 CEO를, 세르게이 브린은 사장을 맡았다. 1999년 구글은 팔로알토의 중심부에 있는 유니버시티 애버뉴에 보금자리를 튼다. 임대사무실을 쓰면서 직원 수가 10명 가까이 늘어난 이 신생업체는 현금을 만들어낼 수익모델이 필요했고, 결국 영업사원을 충원해야만 했다.
당시 1999년 초는 인터넷 거품이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벤처펀드에는 자금이 넘쳐흘렀고, 구글은 포털이 될 의도가 없었지만 인터넷 프로파일의 거래수요는 매우 높았다. 그래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많은 투자자들 가운데서 선택을 할 수가 있었는데, 그들이 선택한 업체들은 실리콘밸리 내 독특한 업체라는 구글의 이미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가장 경쟁력 있는 최고기업인 세쿼이아 캐피털과 클라이너 퍼킨스 카우필드&바이어즈에게 공동투자를 부탁했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투자회사 2개사가 동시에 투자를 한다면 업계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기 마련이다. 그 두 회사로부터 받은 2,500만 달러 투자는 구글의 실리콘밸리 입성의 신호탄이 되었다. 구글은 이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구글의 놀라운 질주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다.
1999년 6월, 자금조달이 마무리된 후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투자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 받는 신생기업의 리더라는 새로운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벤처투자자들은 자신들의 투자금을 지키는 데 냉혹한 것으로 아주 유명하다. 그들은 보험을 드는 식으로 종종 자신들의 인맥을 CEO자리에 앉히고, 창립자들에게 물러나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투자회사의 파트너로서 이사진에 합류한 존 도어와 마이클 모리츠 역시 구글에 래리 페이지를 대신할 새로운 CEO를 서둘러 찾으라고 요구했다. 야후에서 팀 쿠글이 제리 양을 대신하고, 익사이트에서 조지 벨이 조 크라우스를 대신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사회 멤버 모두가 찬성하는 사람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이사진으로부터 일일이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화가 났다.
또한 CEO 물색 결과와 상관없이 새로운 투자자들은 설립자들이 수익성 있는 사업모델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세르게이 브린은 “우리의 동기는 최고의 검색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배너광고를 두는 것이 검색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는데, 그렇게 하면 페이지가 뜨는 시간이 아주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런 사태를 피하고 싶었다. 우리는 또 ‘광고는 검색과 상관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것을 보여줘야 하지? 광고는 정신을 산만하게 할 뿐이다’라고 생각했다”고 밝힌다. 마이클 모리츠가 말했듯이 광고에 대한 구글 창립자들의 이런 알레르기성 반응 때문에 구글은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옮겼다. 사용자 웹에서 거의 단 하나의 사업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포털을 창립자들이 거부한 상태에서 구글은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사실 2001년 초까지 구글에겐 돈이 될 만한 현실적인 계획이 없었다.
구글, 5년 만에 30억 달러의 기적을 이뤄내다
그러나 확실히 구글은 성장하고 있었다. 매출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서비스 업체로서의 구글은 승승장구했다. 2000년도 중반에 이르자 구글의 1일 검색건수는 1,800만 건으로 불어났고, 구글의 인덱스는 10억 개를 넘어서 단연 인터넷상의 최대 검색엔진 자리를 차지했다. 사업모델은 위태로웠을지 몰라도 하나의 브랜드로서의 구글은 분명 뜨고 있었다. 그때까지 마케팅에 한 푼도 쓰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베테랑 홍보 전문가인 신디 맥카프리를 기업 커뮤니케이션 이사로 고용했다. 2000년 3월 「타임」지에 실린 기사에서 신디 맥카프리의 초기 전략이 어떻게 결실을 맺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구글의 팬’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한 애니타 해밀턴은 “구글의 가장 훌륭한 점은 검색이 잘된다는 것이다. 1명도, 2명도 아닌 3명의 친구가 구글을 추천했을 때 여긴 뭔가 다른 점이 있겠구나 싶었다”라고 털어놓고 있었다. 언론이 이렇게 호의적인데, 굳이 슈퍼볼 광고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2000년 구글은 인력확충을 시작했다. 구글은 몇 안 되던 직원을 첫해에 40명 가까이로 늘렸고, 2000년 말에는 직원 수가 150명 가량으로 늘어났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그들을 대신할 CEO를 찾으라는 투자자들의 압력이 있었나”라는 나의 질문에 마이클 모리츠는 “그렇다”라고 답한다. 1999년 6월부터 2001년 초까지 18개월 동안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75명이 넘는 CEO 후보자들을 심사했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도 마케팅이나 영업 경력을 가진 중역들 중에서 창립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쉽게 말해 자신들과는 생각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분명히 엔지니어링 방면에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했고, 확연히 드러나는 그들의 통제 성향을 견뎌낼 수 있어야만 했다. 물론 이어지는 투자자들의 검열까지 통과하려면 후보자는 상당한 관리 및 리더십 기술도 갖추고 있어야만 했다. 이런 모든 조건을 다 겸비한 이상적인 사람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에릭 슈미트는 겉보기에 편안한 사람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는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최고기술경영자로서 첫 번째 작은 성공을 이뤄냈고, 대형 IT업체인 노벨의 CEO가 되어 두 번째 성공을 거두는 등 20여 년 동안 CEO 혹은 주역으로 일해 왔다. 대기업 경영에 지친 에릭 슈미트는 결국 존 도어의 설득으로 구글과 계약을 맺게 된다. 그는 “대기업의 일은 힘들고 오랜 기간 동안 잘해내야만 비로소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나는 그보다는 집에서 가깝고 규모는 더 작고 제어하기 쉬운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에릭 슈미트는 우선 2001년 3월초에 노벨의 CEO직을 그만두겠다고 발표하고, 구글에 천천히 합류했다. 2001년 여름, 인터넷 업계는 끔찍한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에릭 슈미트가 합류한 타이밍은 아주 적절했다. 구글은 에릭 슈미트가 합류한 바로 그 달에 처음으로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그 후 구글은 단 한 번도 분기 실적이 악화된 적이 없다. 에릭 슈미트는 천재이거나, 혹은 아주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2001년 7월 에릭 슈미트가 구글에 합류한 지 한 달 후 세 사람 -두 명의 창립자들과 에릭 슈미트- 은 구글의 앞날에 중요한 도전이 무엇인지, 즉 어떻게 성장을 이뤄나갈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했다. 창립자들은 구글의 인사 총책임자인 스테이시 설리반에게 ‘구글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고, 구글 직원들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며, 사업체이자 직장으로서 구글의 핵심 원칙들은 무엇인지’ 등 구글의 핵심가치관에 대해 초창기 직원들이 토론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주문했다. 2001년 7월 19일, 10여 명의 초창기 직원들이 창립자들의 지령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바로 그때였다. 엔지니어 폴 부크하이트가 구글의 기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 단어가 될 말을 불쑥 내뱉은 것은. “악해지지 말자. Don't Be Evil". 이 말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악해지지 말자’는 말은 처음에는 구글 직원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문화적인 슬로건에 불과했으나, 곧 구글이 세계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슬로건이 되었다.
2002년 2월 구글은 경매와 클릭당 지불방식 기능을 포함한 애드워즈의 새 버전을 내놓았다. 이 서비스에서는 광고주들이 돈으로 목록의 상위자리를 살 수 없었다. 대신 구글은 광고의 인기도, 즉 클릭률의 개념을 전체 랭킹에 포함시켰다. 광고주의 랭킹에 클릭률을 반영하기로 한 구글의 결정은 클릭당 지불방식 모델에 관련성을 포함시켜 수익을 창출해내는 것이었다. 결국 클릭당 1달러를 내는 업체가 1.50달러를 내는 업체보다 클릭률이 5배 높다면 1달러를 내는 업체에 검색 목록의 상위자리를 내주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이치에 맞는다. 클릭당 1달러를 내는 업체가 클릭당 수수료를 받는 구글에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이나 업계는 그런 관점에서 보지 않았다. 대신 구글은 경쟁업체보다 ‘덜 악하다’는 평판을 받았다. 구글은 광고주들이 수많은 광고 중에 상위자리를 단순히 돈을 주고 살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글의 성공한 홍보 사례 중 하나일 뿐이었다. 구글은 사용자들의 최고 관심사만을 염두에 두는 작은 회사였고, 악하지 않음으로써 언론들의 찬사와 광고 신청 증대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2001년 9월 11일, 소위 9.11사태가 터지자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부하로 인해 전통적인 뉴스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게 된 이들은 구글에 접속했고, ‘오사마 빈 라덴’, ‘노스트라다무스’, ‘세계무역센터’ 등의 검색어들이 서버에 쇄도했다. 세상은 변했고, 구글 사용자들은 구글이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기를 기대했다. 구글은 이러한 관심의 변화에 맞춰 사용자들이 다른 사이트들에서는 트래픽 로드 때문에 찾을 수 없었을 기사들을 찾아서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뉴스 서비스를 처음으로 내놓았다. 막대하면서도 확장가능한 네트워크 아키텍처 덕분에 9.11 사태 이후 며칠 동안 구글은 세계 최대의 뉴스 서비스 업체가 되었다. 앞으로 구글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9.11 사태는 구글과 전 세계에 구글이 검색 서비스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다시 말해 구글은 비범한 자산, 즉 어떤 정보라도 저장해두었다가 언제라도 요청에 따라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구글은 2002년 말 회사 내부의 주요 수치들의 공개를 중단했다. 1,000명 이상의 직원, 2002년 12월에 4억 개를 넘어선 웹 인덱스 규모에 대한 자랑은 여전했다. 하지만 매출규모는 철저히 숨겼는데, 아마도 너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구글은 2002년 4억 4,000만 달러 가량의 총매출에 이익은 1억 달러 가까이나 났다. 이는 정말 엄청난 규모이다.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수록 구글은 추가적인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검색 서비스로서의 구글에서는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기업으로서의 구글에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분명 이런 경향은 창립자들, 특히 래리 페이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2002년 후반부터 2003년 초반까지 구글은 전보다 더 실적을 감추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것은 경쟁상의 이득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기업공개에 대한 준비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검색,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2003년 11월 14일부터 검색에 매달려 살아가던 업계 사람들은 완전히 긴장했고, 최근에 실시된 구글 댄스에 대한 추측이 인터넷 게시판들에 쇄도했다. 구글 댄스란 구글의 주기적인 알고리즘 업데이트에 붙여진 별칭이다. 구글의 업데이트는 점점 급격해져갔고, 가장 최근에 실시된 업데이트를 검색 업계에서는 캘리포니아를 휩쓸고 지나간 수많은 허리케인들에 이어 ‘플로리다’라고까지 이름붙일 정도였다. 이것이 지금까지 구글의 업데이트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카메라’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구글의 상위 결과는 모두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리뷰 사이트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3년 11월 불어닥쳤던 플로리다 이전에 검색결과의 상위는 대부분 카메라를 파는 상업적인 사이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을 구글은 검색자가 검색엔진에 ‘디지털 카메라’를 입력했을 때 그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상업적인 사이트가 아니라 리뷰일 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편집상의 판단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는 구글의 알고리즘 변경 결정의 중심에는 이런 명백한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 구글은 카메라와 관련해서는 카메라 판매의 최적화를 시도하는 이들을 벌하겠다고 결정했고, 편집적 관점에서 방향성을 가진 리뷰 사이트들만이 자랑거리가 되는 상위자리에 오를 수 있다. 여기서 구글이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를 거부하는 이런 결정들이 내려지는 방식에 의문이 제기된다. 순수하고 조직적인 목록과 돈을 지불한 목록 사이의 선을 과연 어떻게 그을 것인가? 결국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은 관련성에 대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접근법이 무엇인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또 가장 관련성이 높은 결과가 제일 먼저 나오도록 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변경할 것이다.
한편 검색이 구조적으로 관련을 맺게 될 것은 광고만이 아니다. 검색이 산업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미디어사업, 더 구체적으로 뉴스 사업을 생각해보자. 검색으로 인해 뉴스는 세분화되었다. 사람들은 검색결과의 형식으로 나오는 거의 모든 토픽에 대한 뉴스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세심하게 배열된 지역신문 1면에 실린 기사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사실 구글이 무료로 제공하는 컴퓨터가 생성한 뉴스서비스인 구글 뉴스는 현재 웹상의 가장 큰 뉴스 사이트 가운데 하나이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블로그와 이메일, 오려붙이기 문화로 뉴스가 사람들의 대화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즉 내가 「월스트리트저널」이나 「이코노미스트」를 읽었다고 해도, 야후나 구글 뉴스에 올라온 뉴스만큼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논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내 친구들이나 동료들은 내가 인쇄된 매체에서 읽은 것을 읽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언가를 공유할 수 없다면 그건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사이트들은 시대에 점차 뒤떨어지게 된다. 기사작성이나 분석에 꼭 흠이 있다기보다는 그들의 사업모델의 결함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뉴스 세계에서 가장 큰 죄악은 스스로를 대화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이 바로 그러한 실수를 범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의 제안은 간단하다. 과감하게 링크를 허용해야 한다. 다른 인터넷 사이트들이 뉴스를 링크할 수 있도록 하라. 전 세계에게 링크를 허용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잠재적으로 상실할지도 모를 고객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게 된다는 데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이제 링크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컨텐츠를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 편집자들이 사람들에게 대화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면, 뉴스 기사가 만들어내는 대화 속에 함께 하고 싶은 광고주들을 포함해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서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검색 경제에서 모든 것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검색은 혁신적이고 비교적 새로운 사업모델이란 것 때문에 몇 가지 면에서 사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경계를 시험하게 된다. 부정클릭이 구글과 야후의 성공 전체를 저해할 정도로 위협적이라고 말한다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니다. 부정클릭은 이베이 제휴업체들처럼 기본 검색 결과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구글의 중심에 있는 유료 검색 광고를 조작하는 확실히 불미스러운 관행이다. 많은 광고주들이 자신들의 예산의 25~30퍼센트 가량을 부정클릭으로 잃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 유료 검색 광고를 클릭할 때마다 검색엔진은 돈을 번다. 단기적인 재정적 관점에서 볼 때 약간의 부정 클릭은 사업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그런 사기수법이 번성하도록 놔두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매수, 뇌물, 사기는 과거 미국 서부시대에서부터 현재의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신흥 자본주의 경제의 초기 단계에서 만연하는 것들이다. 검색 경제도 결코 다르지 않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법의 제재가 이기게 된다. 구글, 야후, 마이크로소프트 등 일류 업체들 사이에서 부정클릭은 이미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이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
검색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
구글은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화들짝 놀랄 수도 있겠지만, 이미 이런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또한 구글이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 아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구글이 만약 누군가가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 묻는다면 그에게 당신의 주소를 알려줄 것이라는 점이다. 구글은 대체 자신이 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당신만이 갖고 있는 개인적 신분증이나 다름없는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당신의 집 약도가 뜬다니! 이런 것을 단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은 “세상에, 이 사람들이 내가 사는 곳을 알고 있다!”이다. 전화번호를 검색해서 인명과 사업체를 찾는 ‘역디렉토리 지역검색’으로 알려진 이런 간단한 기능에 대해 우리가 느끼게 되는 공포감은 검색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미국 사회는 대중의 알 권리라는 다소 소름끼치는 개념 위에 세워진 곳이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운영되도록 되어 있다. 법원도 마찬가지이다. 재판관이 공개불가 판결을 내리지 않는 한, 이혼, 살인, 중죄, 경범죄, 주차위반 딱지 등 모든 것이 대중에게 공개된다. 일반 대중인 우리들이 이런 정보를 검토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런 권리를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알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욕구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 사실들을 알아내기 위해 지방법원 지하에서 오후시간을 날려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이런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 그 정보를 그대로 묻혀 있게 하는 역할을 하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구글에 그의 이름을 입력하는 것과 같이 간단하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컴퓨터를 갖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를 구글에서 찾아볼 것이다. 당신이 지식노동자라면 거의 매일, 혹은 그보다 더 자주 다른 사람들을 구글에서 찾아볼 가능성이 높다. 면접을 볼 것인가? 면접관을 구글에서 찾아보라. 상사보다 앞서가고 싶은가? 다음 평가에 앞서 그를 구글에서 찾아보라. 새로 알게 된 사람과 데이트를 하게 되었는가? 그가 누군지 구글에서 찾아보라. 어쩌면 그는 FBI가 수배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다. 뉴욕시에 사는 한 여성은 처음 데이트를 하기로 한 ‘라숀 페터스-브라운’이라는 사람을 실제로 구글에서 찾아보았다. 그리곤 FBI가 이 남자를 수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깜짝 놀란 여성은 신고를 했고, 남자는 체포되었다. 이처럼 우리 생활 전반에 검색이 널리 퍼져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모든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구글에서 찾아볼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구글은 2004년 중반 1기가바이트 용량의 새로운 이메일 서비스인 지메일의 베타버전을 출시하면서 이같은 상황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메일의 광고는 지나치게 관련성이 높아져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기 직전 상태까지 나아갔다. 예를 들면 엄마가 아들에게 애플파이에 관한 메일을 보내면, 아들은 엄마가 보낸 메일 옆에서 애플파이 요리법에 대한 광고를 보게 되었다. 이것을 보고 일부 사용자들이 놀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선이 허물어지지 않았는가. 마치 구글의 누군가가 엄마의 이메일을 실제로 읽고, 그에 맞는 광고를 고른 것만 같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초기 반응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구글의 내부 작업에 대한 정보 공개에 주력하고 있는 비영리단체인 구글워치의 다니엘 브랜트와 같은 프라이버시 옹호론자들은, “구글은 당신의 이메일 주소를 알기 때문에 컴퓨터를 식별하기 위해 브라우저가 사용하는 고유 넘버인 당신의 IP주소를 잠재적으로 당신의 신분과 연결할 수 있다. 이것은 온갖 종류의 프라이버시 악용 가능성을 일으켰다”고 지적한다. 아무튼 이론적으로 구글은 당신의 이메일뿐 아니라 당신이 사용한 웹 전체를 추적할 수 있다.
물론 구글의 슬로건은 ‘악해지지 말자’이고, 모든 선의의 기관들이 프라이버시 보호정책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한결같이 매우 다양하고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예외조항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보호정책들을 누가 읽기나 하는가? 예를 들어 모든 기업들은 법원의 명령을 받으면 당신에 대한 정보를 내놓아야 한다. 또 많은 기업들은 당신이 그들의 내부정책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고 의심될 경우 당신의 개인정보를 검토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당신은 당신과 관계하는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당신의 메일을 절대로 읽지 않거나, 당신의 승인 없이는 당신의 인터넷 항해 기록을 절대 조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가? 좀더 근본적인 문제로 다가가서 당신은 그 업체들이 당신의 정보를 원하는 이들, 예를 들어 정부에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당신의 대답이 “그렇다”라면, 당신은 적어도 9.11 사태의 결과로 발효된 연방법 미국애국법안부터 찾아서 읽어봐야 할 것이다.
미국애국법안 하에서 정부는 이제 국민의 개인적인 데이터 통신을 도청할 수 있는 보다 폭넓은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정부가 당신의 정보에 접근하기를 원할 때 더 이상 당신에게 수색영장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정부는 대신 구글, 야후, 마이크로소프트, AOL 및 당신이 이용하는 모든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에게 정보를 요청하기만 하면 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생각하면 정부의 권한이 이처럼 폭넓다는 것은 정말 오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검색 이전 세계에서는 흩날리는 먼지 속으로 사라졌던 모든 디지털적인 자취가 태그되고, 기록되고, 영구적인 인덱스에 남을 수 있게 되어버렸다. 미국 정부가 세금을 내고, 지도자를 뽑는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것처럼 공적인 기업, 특히 좋은 의도를 가진 구글과 같은 기업들은 회사의 리더들과 주주들이라는 두 가지 세력에 대해 책임을 진다. 그리고 정책이 불변하는 기업은 결코 없다.
미래의 구글은 어떤 모습일까
구글이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주주와 직원들, 사용자들에 대한 책임은 점차 커질 것이다. 구글은 어쩌면 앞으로 몇 년 안에 가장 커다란 시험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구글은 위험한 경쟁 속에서도 혁신을 계속할 수 있을까? 구글은 개인적인 부를 가진 가장 영리한 직원들을 붙잡아둘 수 있을까? 구글은 사업에 대한 구글의 느슨한 접근법이 혼란스럽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외부 기업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릭 슈미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의 3인 체제가 공동으로 아무 문제없이 구글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바로 이 세 리더가 구글의 규모를 직원 3,000여 명에서 3만 명으로 키울 수 있는 팀일까?
에릭 슈미트는 구글에 닥쳐오는 도전들을 언급하며 “사실상 구글이 가진 모든 문제는 예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성장 단계를 겪은 사람들과 만나 그들이 저지른 실수는 무엇이었는지 물어보라. 우리도 지금 똑같은 실수들을 저지르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실수를 더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이다. 우리는 전략, 인수, 동기부여 등 소규모의 핵심 그룹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모든 문제를 안고 있다. 어떻게 하면 부의 창조와 소득 수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낮은 주가 대신 높은 주가로 사람들에게 보답할까? 말하자면 끝이 없다. 이런 문제들에 계속 집중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야후가 아주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와 경쟁하기 위해 시장에 진출했다”라고 말했다.
구글과 야후 같은 기업들이 책과 비디오 같은 컨텐츠의 중개인이 될 때, 아마존 같은 회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문제를 잠시 생각해보면, 아마존이 자사의 검색엔진인 에이나인닷컴을 완성하기에 바쁜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검색은 거래를 주도하고, 거래는 검색을 주도한다. 이 두 극단은 피할 수 없이 중간에서 만나고, 이베이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요 인터넷업체들이 여기에 참여하길 원한다. 구글은 현재 검색 부분에서 1위 업체일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가면서 검색 분야에서 1위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될 것이다. 구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될 무렵 구글은 퓨전이라는 새로운 포털 전략을 발표했다. 알타비스타, 익사이트, 야후, AOL, MSN과 같이 구글 사용자들은 홈페이지를 주문 제작하고, 구글의 모든 서비스를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통합할 수 있다.
구글이 지구상에서 가장 광범위한 컴퓨팅 플랫폼으로 널리 여겨지고 있는 것과 매우 재능있는 직원들을 가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구글은 분명 그 위에 무언가를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구글은 그 플랫폼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구글이 생각하는 것처럼 전 세계의 모든 소기업들까지 다 합한다면 상업적 세계에서의 구글의 야망을 ‘구글은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 경제의 공급과 수요를 중개하는 플랫폼을 제공하기를 원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에릭 슈미트는 “전 세계 크고 작은 기업들을 모두 포함해 구글이 바라볼 수 있는 시장의 총계는 전 세계의 국민총생산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가 가야 할 시장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따라서 구글은 전 세계 상거래 전체를 위한 사실상의 시장이 되어 그 과정에서 이베이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대단한 것이다.
구글이 생겨나 주도권을 쥐게 되기까지의 처음 몇 년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구글의 인덱스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가 인덱스 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조직하고 접근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구글의 사명은 컴퓨팅 플랫폼 위에서 구매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업으로서 7년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 구글은 점차 디지털화되는 미래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가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캔버스가 되었다. 전화회사로서의 구글? 케이블 제공업체로서의 구글? 대학으로서의 구글? 이베이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피디아, 야후가 모두 한꺼번에 합쳐진 것으로서의 구글? 이것은 상상할 수 있으면서 결국 우리 모두에게 구글과 검색, 그것을 낳은 애플리케이션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무한한 잠재력의 약속만큼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은 없다. 현재로서는 어쨌든 구글이 그 약속을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