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봉 김교국형이 입방하여 경사가 났구려.
진심으로 환영하외다.
본도사의 위력이 서서히 나타나는군요.
무슨 머리가 한번 입력한 것은 잊어버릴줄 모르는거요?
내 입학수험번호도 모르는데 남의 수험번호까지 기억하여 출력해 내다니!
지난 토요일 정선국시집에서 김시학 김영수 신한익 장지국 조병준과 오찬을 나누고 고스톱으로 조병준이 도리하여 국시값까지 내고는, 물론 소제의 주머니가 거들났지만, 어쨌던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김성현 형이 방장이라고 얼~~쑤 사무총장의 소집령을 받고는 동기회 사무실에 들려 삼삼오오 나누어 고도하고 바둑도 뚜고 있는데 조병준형이 나를 불러 귓속말로 조금전에 장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먼저 빈소가 마련된 보광병원으로 갔다오.
일요일 용지회 시산제를 마치고 장지국 권국현 형과 집사람이 문상을 갔다오.
장지국은 조병준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 인연이고, 권국현 형은 김영옥(조병준의 안사람)씨가 42골프회 회원이었으니 회장으로서 마땅히 문상을 가야하고, 나는 집사람이 영옥씨와 가까이 지나는 사이며, 조병준이 나를 위해 퇴직때 많은 친구와 친지들을 초청하여 큰잔치를 베풀어 주었으니 장모상에도 문상을 해야겠다는 명분이 뚜렸하여 조문을 하고 조서방 윗동서와 한잔 가득 술잔을 나누고 돌아왔다오.
내가 왜 이렇게 조문한 이유를 밝히는고 하면 대구지방에서는 친구의 장모상에는 조문을 하지않는 것이 범절이기 때문이외다. 서울은 친상이나 장모상이나 똑같이 예우를 한다니 대구도 앞으로 그렇게 되리라 봅니다.
염덕준 용지회 회장과 이재우 회원이 앞서 조문을 하고 갔더군요.
조병준 장모의 발인은 오늘이외다 고향인 고령 쌍림으로 모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