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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7일 오늘의 역사
2023년 베드민턴 서승재-강민혁, '세계 1위' 중국 잡고 9년 만의 BWF 파이널 우승.
2022년 김민선, 김준호 월트컵 빙속 500m 남녀 동반 금메달
‘빙속 여제’ 이상화(34)의 후계자로 잘 알려진 김민선(23·의정부시청)이 월드컵 동일 종목 4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또, 김준호(27·강원도청)도 남자 단거리를 제패하면서 남녀 500m 금메달을 모두 한국 선수들이 품었다.
김민선은 17일(한국시간) 캐나다 캘거리 올림픽오벌에서 열린 2022-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4차 월드컵 여자 500m 디비전A에서 36초96의 기록으로 경쟁자들을 모두 제쳤다.
2021년 세계 4대 미인대회로 꼽히는 미스월드 2021년 결선이 참가자 23명과 스태프 15명 등 38명 코로나19감염으로 대회 취소
2021년 일본 오사카 방화로 추정되는 상가 대형화재 발생 27명 사망
2018년 법무부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 강용주 씨의 보안관찰처분 19년 만에 면제 결정
2018년 인천항 사일로 외벽의 벽화(높이 45m 길이 168m 폭 31.5m 22명이 100일간 86만 리터 페인트칠 사업비 5억5천만원)가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벽화로 기네스북 등재
2014년 미국-쿠바 단교 53년 만에 관계정상화 선언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김정일(金正日, 1941년 2월 16일 ~ 2011년 12월 17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이다. 본관은 전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의 위원장이었으며 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의 첫째 아들이다.
김정일은 어린 시절 한국 전쟁 당시 평양을 떠나 간도 지역으로 은신하였으나 중국인민지원군의 참전으로 귀환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61년 7월 22일 조선로동당에 입당한 이후부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비서 등에 임명되었다. 1970년대부터 김일성의 후계자로 주목되었으며 1980년 제6차 당 대회를 통해서 공식적인 후계자가 되었다.
1994년 김일성 국가 주석의 사망 이후에 권력을 세습해 공화국의 실권을 잡아 통치자가 되었고 경제적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던 1993년부터 6년 동안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재정낭비 등으로 무능력한 지도자로 비판받았다. 2011년 12월 17일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면서 김정일의 후계 자리는 그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에게 승계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줄여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로 불렸다. 2012년 4월 11일 조선로동당 당대표자회의에서 조선로동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되었으며 2012년 4월 1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5차 회의에서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2010년 영화 ‘아바타’ 국내개봉(1,362만 명 당시 최다관람 기록)
2009년 3D 영화 '아바타' 전세계 동시 개봉
《아바타》(영어: Avatar)는 2009년에 공개된 미국의 영화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을 맡았다. '판도라'라는 외계 위성을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이다. 아바타의 별칭은 Project 880이다.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 흥행 2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3D 미디어 산업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8년 해군 신형 고속정, 유도탄고속함 '윤영하'함 취역
해군은 2008년 12월 17일 오전 10시 진해기지에서 유도탄고속함(PKG) 1번함 윤영하함(440톤)의 취역식을 가졌다. 함명은 2002년 6월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으로 발생한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 윤영하 소령과 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을 기린 것이다.
1년 7개월간의 시운전과 인수 평가를 거쳐 이날 취역한 윤영하함은 노후화된 기존 참수리급 고속정의 대체전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기고속정사업(PKX)의 결실로,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독자개발한 전투체계를 바탕으로 대함전뿐만 아니라 대공전, 전자전 및 함포지원 능력을 갖췄다.
전장 63m, 전폭 9m, 최대속력 40노트인 윤영하함은 76㎜ 함포 1문과 대함유도탄 등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선체 방화벽과 스텔스 기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휘 및 기관통제 기능을 분산토록 해 생존성이 획기적으로 보강됐다.
특히 함정이나 항공기, 미사일 등 적 표적을 탐지하는 레이더와 위성을 통해서 자동으로 적에 대한 정보와 위협을 수집, 분석하고 이를 무장체계와 연결해 대함(對艦), 대공(對空), 전자전 등을 수행할 수 있다.
또 이번에 국내 최초로 개발된 탐색레이더는 거리와 방위각뿐만 아니라 높이까지 표시되는 최신형 ’3차원 레이더’로, 100여 개의 표적을 동시에 탐지할 수 있으며 미사일을 따돌리기 위한 ’체프’ 발사장치와 연동해 적의 유도탄을 기만할 수도 있다.
76㎜ 및 40㎜ 함포는 물론, 사거리 140㎞ 이상의 한국형 대함 미사일 KSSM 유도탄도 장착돼 장거리 표적에 대한 공격 또한 가능해 적 함정 수 척과 동시에 교전이 가능하다.
초대 함장은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고 NLL을 사수한 ’연평해전 영웅’ 안지영(38.해사 47기) 소령이며, 윤영하함과 같은 급인 유도탄고속함 후속함은 2009년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가 2015년까지 20여 대가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2001년 오태양 씨 비폭력적 삶과 사회발전을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
특정종교단체의 병역거부로만 알려졌던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듦, 오태양 씨는 2004년에 1년 6개월 실형 선고받고 옥살이
양심적 병역거부는 2004년 최초의 무죄판결 2007년 대체복무법안 마련 등 진전되다가 이명박 정부 때 완전백지화
2018년 11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14년 전의 판결 뒤집고 여호와의 증인 신자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사건에 대해 9대 4의 다수 의견으로 종교적인 양심도 입영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무죄 선고
1998년 미국과 영국 이라크 공습
1998년 한국 최초 여성변호사 이태영 여사 별세
법을 몰라 소외되고 고통받는 여성을 위해 평생을 바친 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 이태영씨가 1998년 12월 17일 사망했다.
그녀는 1953년 여성단체가 국회에 건의문을 제출하면서 시작된 ‘가족법 개정운동’을 장장 37년에 걸쳐 진두지휘, 1990년 국회에서 개정안이 제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미 한 가정의 어머니였던 그는 32세때 서울대 법학과 최초의 여학생으로 입학, 1952년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야당 지도자 정일형씨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임용을 거부당한 뒤 1954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가 1956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설립, 법률구조활동에 뛰어들었다. 1963년~71년 이화여대 법대학장을 역임했다
1996년 페루 일본대사관 인질극
1996년 12월 17일 페루의 수도 리마에 있는 일본 대사관에 중거리 무기와 수류탄을 소지한 좌익게릴라 투팍아마르혁명운동(MRTA) 무장괴한이 난입해 대사관저에 있는 6백여명의 사람들을 인질로 삼아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당시 대사관은 곧 다가올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축하 리셉션이 열리고 있어 몹시 붐볐다. 억류된 인질에는 한국의 이원영 대사를 포함, 일본과 브라질 쿠바 볼리비아 대사 등 10여명의 외교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페루정부측과 게릴라간의 지리한 협상으로 다음해 3월경에는 인질 수가 72명으로 줄어들었다.
4월 22일 페루 육해공 3군으로 편성된 특수부대 정예군 140여명이 대사관을 급습, 약 30분간의 총격전으로 범인 14명 전원을 사살했다.
1995 산악인 허영호 남극대륙 최고봉인 매시프(해발 5,140m) 올라 세계최초로 3대극점과 7대륙 최고봉 정상 오름
1994년 이홍구 제28대 국무총리 취임
1994년 미8군 제17항공여단 소속 OH58헬기가 군사분계선 동북방지역에 불시착(30일 송환)
1993년 이회창 제26대 국무총리 취임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 김영삼 후보 당선
1989년 페르난도 콜로르 데 멜로,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
1989년 12월 17일 실시된 브라질 대통령선거에서 우익국가재건당의 페르난도 콜로르 데멜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리오데자네이루 출신인 콜로르는 시장경제를 옹호하며. 인플레를 잡기 위해 정부지출을 줄여야한다고 주장, 중산층과 우익의 지지를 받아왔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당시만 해도 그는 지명도가 거의 없는 인물이었으나 행운과 TV에 맞는 용모, 그리고 기민한 선거전략의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당선됐다. 잘생긴 얼굴을 충분히 활용, 유권자의 인기를 끌면서 현정부의 부정과 부패를 맹공, 정권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에게 신선감을 주었다.
할아버지는 노동장관, 아버지는 상원의원을 지낸 명문가문에서 태어난 콜로르는 13개의 라디오방송국, 1개의 TV방송국, 그리고 ‘가제트’라는 신문을 소유하고 있는 언론재벌이었다. 1949년생으로 가라데 유단자이며 브라질 가라데 선수권대회에서 2위로 입상하기도 했다.
1987년 소설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사망
1981년 NATO소속 미국 도지어 장군, 이태리 붉은여단에 피랍
1977년 구마고속도로 개통
대구광역시 북구 금호동을 기점으로 경상남도 마산시 회원구 내서읍까지 연결된다. 명칭은 대구에서 마산까지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고속국도 제7호선이다.
총길이 84.5㎞, 폭 13.2~23.4m이며. 1976년에 착공하여 1977년에 준공되었다
예전 명칭은 구마고속도로(邱馬高速道路)인데, 명칭처럼 본래 대구 ~ 마산 간 고속도로 (고속국도 제7호선 (2001년 8월까지), 86.4㎞)를 일컫다가 2001년 8월에 내서 분기점 ~ 현풍 나들목 구간이 중부내륙고속도로로 편입되면서 현풍 나들목 ~ 금호 분기점 구간으로 축소되었다가 2008년 명칭 변경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지선으로 격하되었다.
1976년 석유수출기구(OPEC)총회, 2중유가로 인상
1976년 대구 서문시장 불 점포 650개 소실 피해 23억원
1974년 대법원,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에 사형 확정
1971년 인도-파키스탄 휴전
1965년 한-일 민간어업협정 체결
1965년 이효상 국회의장 피선
1964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헤스 사망 - 우주선(宇宙線)의 발견으로 193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1964년 서울가정법원 고백않은 혼전부정은 이혼사유 된다고 판시
1963년 박정희 제5대 대통령 취임, 제3공화국 발족
5.16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씨가 1963년 12월 17일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제3공화국이 출범하는 순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때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만주국 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중위로 활약했다. 일본이 패망하자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국방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를 거쳐 국군 장교가 되었다. 여순반란사건에 이은 숙군(肅軍) 과정에서 남로당 비밀당원이라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1963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제5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박정희는 경제를 발전시켜 절대빈곤을 해결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집권 후기로 갈수록 반민주적인 독재체제를 강화시켜 수많은 반대 세력을 낳았다. 결국 정치적,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집권층 내부의 갈등이 도화선이 되어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에 의해 살해됐다.
1963년 최두선 제8대 국무총리 취임
1963년 6대 국회 개원
1962년 제5차 개헌안(대통령중심제-단원제) 국민투표 실시, 78.78%의 찬성으로 가결. 제3공화국 성립
대통령 중심제와 단원제를 골자로 한 제5차 개헌안이 1962년 12월17일 대한민국 최초의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됐다. 78.78%의 찬성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최고회의 의원과 학자, 전문가 등 21명으로 구성된 헌법심의위원회를 1962년 7월 11일 발족시켜 이 곳에서 결정된 헌법요강을 11월 5일에 공고했다.
개헌안은 12월 6일 최고회의 의결을 거친 후 이날 국민투표에 붙여져 통과됐다. 개헌안은 1)국회를 단원제로 해 국회의 조직과 운영을 간소화-능률화하고 2)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해 행정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기하고 3)국민의 기본권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61년 브라질 니례로이 서커스공연장에 불 323명 사망
1957년 미국, 대륙간탄도탄미사일(ICBM) 발사 성공
1949년 한일통상협정 비준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결성
1949년 한국 만국우편조약 가입
1947년 버마정부, 공산권외 최초로 중국정부 승인
1945년 김일성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에 취임
1924년 우리나라 최초 민간 라디오방송 실험 성공
1924년 12월 17일, 서울 종로 우미관 앞은 아침부터 몰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무선전화방송 실험을 눈으로 직접 보려는 사람들이었다. 총독부 체신국이 이미 실험방송을 한 바가 있어서 '민간최초'였으며 한국인이 주관했다는 점에서는 ‘국내 최초’가 된다.
무선전화방송은 라디오방송의 옛 표현이다. 방송 진행자는 조선일보 최초의 여기자인 최은희 기자였고, 처음 전파를 탄 사람은 독립운동가인 이상재 조선일보 사장이었다. 조선일보사에서 쏘아올린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우미관 안에 전달되자 사람들은 신기한 듯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영했다. 윤극영의 동요 ‘반달’과 홍난파의 바이올린 독주가 이어지면서 청중들의 반응도 절정에 달했다.
12월 18일자 조선일보는 ‘경이(驚異)의 눈! 경이의 귀!’라는 제목으로 당시 상황을 전한다. 둘째 셋째날은 좀더 넓은 경성공회당으로 옮겼지만, 인천 수원 개성 등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거리기는 마찬가지. 전차 왕래가 중단될 정도였다. 그리고 2년3개월 후 1927년 2월 16일, 우리나라 최초의 경성방송국이 탄생한다. 미국에서 정시 라디오방송을 시작한 지 7년 만이었다.
1922년 이집트 투탄카멘왕 묘 발굴
1922년 12월 17일, 3000여년 동안 어둠 속에 묻혀있던 이집트 투탄카멘 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채였다. 3중으로 된 관에는 왕의 미라가 누워있었고, 머리에는 황금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얼굴은 순금으로, 눈은 아라고나이트석과 흑요석으로, 눈썹과 속눈썹은 청색 유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고고학자들을 감동시킨 것은 초상의 이마 위에 놓여진 한 묶음의 화환. 청상과부가 된 왕비가 남편에게 바치는 마지막 작별의 선물이었다.
어린 나이에 등극해 재위 10년 만인 18세에 요절한 투탄카멘, 그에게 숨을 불어넣고 다시 명성을 누리도록 도와준 사람은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였다.
카터가 그를 발견한 곳은 나일강 중류에 위치한 룩소르의 한 골짜기. 기원 전 2000년부터 1000년 사이에 이집트를 다스렸던 파라오들의 무덤이 들어찬 곳이다. 하지만 발굴의 기쁨도 잠시 뿐, 이른바 ‘파라오의 저주’가 시작된다. 재정후원자이자 함께 발굴에 참여했던 카나본경이 발굴 이듬해 4월, 모기에 뺨을 물린 것이 원인이 돼 폐렴으로 갑자기 죽고, 발굴에 참여했던 20여명이 2∼3년 안에 목숨을 잃자 세계언론들은 ‘투탄왕이 저주를 내렸기 때문’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석관 위에는 “왕의 영원한 안식을 방해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1914년 영국, 이집트 보호령 편입 선언
1911년 동대문-서대문간 전차복선화 완공
1911년 경성신문 창간
1903년 라이트형제, 세계 최초 비행 성공
1903년 12월 17일 오전 10시 35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키티호크 해안에서 인류 최초의 비행기가 이륙했다. 자전거포를 운영하던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형제는 엔진달린 수냉식 복엽기 ‘플라이어 1호’ 로 중력을 뿌리치고 12초 동안 36m 하늘로 날아오르는 데 성공했다. 이날 플라이어호는 59초 동안 2백90m를 나는 첫 기록을 세웠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지방신문 편집장에게 알렸다. 그러나 편집장은 “그럴 가능성도 없고, 그런 묘기는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며 종이를 구겨버렸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그로부터 2년뒤, 플레이어 3호가 38분동안 45km 비행에 성공했을 때였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특종이었다. 플레이어 3호는 4기통 13마력의 가솔린엔진을 단 최초의 동력비행기다. 풍동실험을 거쳐 활공하기 좋게 설계한 날개, 날개의 앞 부분을 상하로 움직일 수 있는 승강키, 그리고 비행기가 좌우로 움직일 수 있도록 수직 테일핀을 단 방향키 등을 갖춤으로써 마음대로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기 전까지 ‘비행’ 은 인류에게 오랜 꿈이었다. 태양까지 날아오르다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는 바람에 추락해 죽은 이카루스 신화는 그런 욕망의 표현이다. 고대인들은 새 깃털을 몸에 달고 비상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비상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1785년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가 더운 공기를 채운 기구를 이용해 하늘을 난 것이다.
자신의 근력으로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인간은 19세기 들어 동력비행으로 비상을 시도했다. 자동차 산업으로 불붙기 시작한 엔진개발의 열기가 동력비행을 성공시키는 열쇠가 됐다. 최고의 발명품인 비행기는 라이트형제를 시작으로 끊임없이 개발돼, 1909년에는 프랑스의 루이 블레리오가 3기통 엔진을 부착한 비행기를 타고 도버해협(34km)을 34분 만에 횡단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 후 비행기가 진가를 발휘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고, 전쟁이 끝난 후 1930년대 들어 민간항공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1885년 프랑스, 마다가스카르를 보호령으로 결정
1863년 민족운동가 남궁억 출생
1830년 프랑스 작가 쥘 콩쿠르(콩쿠르형제중 동생) 출생
1770년 독일 작곡가 베토벤 출생
668(고구려 보장왕 27년) 고구려 멸망, 신라 삼국통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