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선교활동 (宣敎活動) 하는 잘 아는 목사님이 잠시 귀국하여 양쪽부부 함께 강화도를
향했다.몽골로 돌아가기 전에 한적한 강화도에서 식사라도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있었으나 입춘 (立春) 의 따스한 햇볕이 추위를 누그려 뜨리다.
움추린 나뭇가지에 매달린 통통한 부름켜에서 머지않아 봄은 올 것만 같다.
염하가,
흐르는 강화해협 저 곳에는 피와 눈물의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호국 유적지 강
화도 고려 시대에 전란으로 인하여 임시 왕도로 되기도 하였고 특히 조선 시대 말기에
는 외세에 대항하기 위한 국토방위 시설이 여러 곳에 설치되어 병인양요, 신미양요, 병
자수호조약을 겪었다.
광성보 안해루,
고려가 몽고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천도하였을 때 쌓았던 곳으로 신미양요 때에는
미국과 사투를 벌인 격전지였다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는 예비수도로서의 중요성이 더
욱 부각되었고 이에 따라 방어 시설을 확충하면서 강화도의 모든 해안을 방어하는 강화
에는 5개의 진(鎭)과 7개의 보(堡) 그리고 53돈대(墩臺)가 설치되었다.
광성돈대,
돈대(墩臺)는 군사 요충지에 설치했던 망루 역할을 했던 작은 진지를 말한다.광성돈대
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서 숙종 5년(1679) 함경도, 황해도,강원도의 승
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 만에 완공하였다.진이나 보에는 300명의 병사가
주둔하고 돈대는 100명 정도가 주둔한다.
대포는,
홍이포라고 하며 사정거리 700m로서 포알은 화약이 폭발하는 힘으로 날아가나 포알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은 약했다, 병자호란에도 홍이포를 사용하였다고 전한다.
한번 쏜 후엔 다시 장전하여 쏘기 위해서는10분정도 시간이 소요 되었다
좌측 비에는,
신미양요무명용사비 라고 각인되어있다.우측은 쌍충비각 신미양요 때 광성보 전투에
서 순절한 어재연장군 외 59명의 순절비다.어재연 장군과 아우 어재순은 싸움에 나가
기 전 어재연 장군의 부인은 장군의 평소에 사용하던 검정두건 대신 보라색 두건을 어
재순부인은 버선을 뒤집어 신고 나가게 하여 시신을 구별해 찾아낼 수 있었다고 전해
진다.현명하고 지혜로운 부인들에게 감탄의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광성보 내에 있는 신미순의총은 조선 고종 8년 (1871년) 신미양요 때 광성보 일대에서
미 해군과 격전하다가 전사한 용사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당시 어재연 장군과 아우 재
순을 비롯한 군관 사졸 53인의 전사자중 어재연 형제는 고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
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분별할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
조선군은,
광성보 전투에서 최후의 한명까지도 포로 되기를 거부하고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았으
니,외침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려는 살신호국(殺神 護國) 정신을 보여준 곳이다.호국
했던 역사적인 장소에 한번 쯤 들려서 영광된 조국이 있기까지 선조의 절개를 한반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희끗하게 눈 덮인 봉분을 보면서 갑자기 베트남 전투에서 유명
을 달리한 전우가 생각난다.
단 결~!!
첫댓글
선후배 제위님들 강화도 가시면 달랑 회
한 접시만 먹고 갈 것이 아니라 호국(護國)의
흔적을 찾아서 산책하는 것도 묘미를
더해줄 것입니다지 알았지요~푸하하하
단 결~!!
내용은 공부하기 싫어서 패스 하나~~~
몽골에서 선교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에게
식사 대접 하셨다니 고맙습니다.
저는 몽골 여행에서 말을 오래 탄것이 좋았습니다.
아무래도사명님은 엄살이 너무 심하신 것 같아요 ㅎ
너무 오래 승마하시면 몽골인 됩니다요 ㅎㅎ
사진과 함께한 깔쌈한 댓글
고맙습니다
강화도 소개 고맙구요
전 번 글 읽다가 이 번 글과 함께 생각이 나서.....
'전투감각' 이란 책을 쓰신 장군출신 작가이자 교수였던 분
소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셨던 서경석 님
네이버에 블로그도 있는 분인데
얼마 전에 처칠에 대한 글도 몇 편 올리셨더라구요
베트남 전 중대장 시절에 실전 전투경험을 기록한
전투감각' (battle sense)책을 펴내었지요 그 당시
최고의 베트남전 용사였으며 그의 용기와 투지는
비교할 누구도 없었지요
군 학계 외교분야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신분 입니다.
군에선 삼성장군으로 교육계에선 고려대 교수로
외교분야에선 주 동티모르 대사를 역임 하셨지요
베트남전에선 근접전투에 탁월한 전투감각 으로
많은 전공을 세우셨고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참전용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지만 그분들이 남긴 전승기록은 우리의
역사에 각인되어야 할것입니다 죽는날까지 열정적인
삶을 추구하시는 장군님을 존경합니다
작주선배님 부티나는 댓글 고맙습니다
늘 건필하시고요
단 결~!!
강화도 이야기 인데 시험 범위가 많아
역사 요점 정리 읽기를 아둔한 제 머리로 너무어려워 포기 하였습니다ㅋㅎ
제 나이 고희넘어 그냥 대포 무덤 바다 이렇게 간단하게만 알고 역사 공부는 패스 할렵니다ㅋ
모든면에 박학다식하신 마초님의 글을읽으며 그 당시의
우리선조들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마초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웁니다
박학다식은 무슨 미천한 소생이
걍 배운데로 주절거려 보았는 것을
박학다식 용어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통촉하여 주십시오 ㅎ
감사드리며 오늘도 굿 럭으로요
반면교사라 하지만 저는 조선시대의 역사는
사실 매우 싫어 합니다.
위화도 회군부터 형제간의 상잔 하는 것
그리고 위정자들의 당리당략과 이기심으로
고통을 당하였던 민초들, 군민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렸는데 그들은 무엇을 하였는지
작금의 현실도 그와 같은 꼴인 것 같아 슬퍼집니다.
자신들의 당을 위하여 몇몇 힘 있는 위정자들의 이기심에 인하여
이 무슨 형태란 말입니까
월남전에 돌아가신 호국 영령 님들이 슬퍼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의 글을 읽으며 호국영령님들을 위하여 묵념을 드립니다.죄송하다고............
그래요 역사(歷史)가 없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선의 역사(歷史)는 임진왜란(壬辰倭亂)뿐 아니라
자그마치 999번의 왜제 침약을 당하고도
조선은 건재하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조선은 영원합니다.
세계가 조선을 주목하니까요
글선물 감사혀요
사실 군인이 제일의 애국자요 충신이지요.
그걸 생각지 않는 사람들은 노예나 다름없고요.
군 지휘관들을 오라 가라 장난감 주무르듯 하는 사람들은 무어라 할까요~~~?
말이 안 나오네요.
그렇습니다 현역 군인을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모욕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국가적 自害행위이다.
평소 군대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진 세력이 그렇게
하면 군인들은 정치인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고려 시대의 武臣亂은 장군들을 공개적으로 모욕한
文臣들에 대한 증오심이 폭발하여 일어난 일대
살육에서 시작되었지요.
국회가 국군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국민들도 이런
국회를 따라가면서 군대를 경멸한다면 전쟁이
났을 때 그런 군대가 목숨을 걸고 그런 국회와
국민들을 과연 지키려는 마음이 생길까? 정말로 우습지요
어르신의 애국 충정의 뜻깊은 말씀 감사합니다
~단결~!!
강화도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외침의 격전지조
카페에서 강화도를 갈기회가 되어 가게되었으며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로써는
강화도는 우리나라의 역사의 현장이지요 오랫만입니다 강건하시기 바람니다
강화도는 북으로 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진
물길이 흐르고 동으로는 염하 물길이 흐르는
천연의 요새로서 역사적으로 숱한 우여곡절을
격은 곳이지요 방에 불을 지펴 타 죽은
영창대군부인과 아들을 이 섬에서 죽게 한
광해군 유배되어 넉 달 동안 아내만 찾다 죽은 \
연산군도 이곳에서 장례를 치렀다지요
한 맺힌 강화도
선배님 여여 하시죠?
귀티나는 댓글 감사합니다
단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