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어렸을 적 추억담
어제 집사람 정기검진차 신촌세브란스 병원엘 다녀왔다
마지막 코스로 세연약국에 가서 약을 탔다
약국 안에 사람들이 너무 붐벼서
나는 바깥에 세운 차 안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차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바로 길 건너 이대가 보였다
아기자기하게 다닥다닥 붙여서 지은 건물들
세브란스병원 건물에 비하면 작은 건물들이었다
그러면서 불현듯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다
내가 중학교 갈 때까지 북아현동에서 살았다
처음에는 능안이라는 곳에서 살다가
나중에는 굴레방다리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께서 경기도청에 근무하셨던 관계로
능안 깊숙한 산 아래 동네 일본식 관사촌에서 살았다
경기도청에 근무하는 아버지들이 아주 많았다
엄마들이 이주사댁, 김주사댁하고 불렀다
우리집은 이주사댁이었다
바로 뒤에 안산자락 끝에 있는 약수터가 있었다
"복준물"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커서 가보니
"복수천"이라는 명칭이 한자로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수시로 주전자를 들고 가서 약수를 떠 왔었다
주전자들이 쭉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 복수천 위로 올라가서 고개를 넘으면
바로 "새절"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봉원사였다
우리는 그냥 새절이라고 불렀다
복준물과 새절은 나의 어린 시절 놀이터였다
동네 또래 친구들과 또 누나들과 함께 다녔다
우리 집에 살았던 일하는 영자누나하고도 갔었다
그 때 복준물 위 새절로 넘어가는 능선에 숲이 있었다
오리나무숲이라고 들었는데 제법 울창했었다
거기서 연애하는 커플들을 아주 많이 보았다
어른들은 연대생과 이대생 커플들이 많다고 했다
어제 세연약국에서 바로 길 건너 이대 건물들을 보며
과연 그랬었겠구나 싶었다
중간의 도로만 없다면 한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도로가 난 그 길을 따라 개천이 흘렀다
금화터널을 지나 연대앞을 지나 성산동쪽으로 난 길
동네 형들과 작은 뜰채 그물을 만들어 가지고
그 개천에 가서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봉원사쪽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천이었다
물이 아주 맑고 깨끗했었다고 기억한다
송사리도 잡고 미꾸라지같은 것도 있었던 거 같다
잡아온 물고기들을 뚝배기에 담고 뚜껑을 덮어 놓았는데
다음 날 뚜껑이 엎어지고 미꾸라지가 도망친 걸 알았다
복준물 위 안산자락에 올라서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
연대, 이대, 봉원사 등의 건물들이 작게 내려다 보였다
햇빛이 쏟아지던 날 내려다 보이던 그 아스라한 풍경이
지금에 뇌리에 생생하다
어제 차 안에 잠시 앉아서 기다리며 떠올린 추억
복준물과 새절. 그리고 새절 아래 개천에서 놀던 추억
오리나무숲에 앉아서 연애하던 대학생들의 뒷모습
여학생이 남학생 어깨에 머리를 기댄 모습이 참 예뻤다
특히 해 질 무렵에 보이던 그 장면이 눈에 삼삼하다
그 사람들은 나중에 부부가 되었을까?
정말 오랜만에 갔었던 세브란스 병원에서
이대쪽을 바라보며 떠올린 유년시절의 추억
너무나도 선명하고 뚜렷한 기억들
나이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북아현동에서 자랐던 내 유년시절이 그립다
초등학교에 진학하며 멀어진 복준물과 새절
그 뒤로는 굴레방다리 쪽 한옥촌에서의 생활이었다
지금은 재개발로 모두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하였다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아련한 나의 유년시절 추억의 고향이다
복준물과 새절!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가 산아래인 듯하다
우리 동네 바로 뒤가 복준물이 있는 안산자락이었으니까
우리 어렸을 적엔 능안이라고 불렀다
새절 가는 길에 있는 능안정에 흔적이 남았다
능안정 아래로 금화터널이 뚫렸다
중앙여고 자리에 애기능터가 있었다고 들었다
나중에 한성고등학교 인근 한옥촌으로 이사를 했다
그 동네는 굴레방다리라고 불렀다
꽤 큰 시장이 있었고 번화했다
병원, 약국, 금은방, 가구점, 책방, 식당 등이 즐비했다
굴레방다리란 동네 이름은 다리때문이었다
안산자락에서 흘러내린 꽤 큰 개천이 있었다
그게 동네 가운데를 흘러 아현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마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개천 위로 곳곳에 다리들이 놓여져 있었다
버스정류장 이름도 굴레방다리였다
신촌~홍릉, 연대앞~상도동, 문래동~약수동 등의
여러 버스 노선이 지나가는 번화한 곳이었다
바로 옆의 아현동으로는 마포에서 을지로6가까지
전차도 다녔다. 교통이 매우 편리한 동네였다.
지금은 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이 지난다
나와 누님은 북성초등학교를 나왔고
누님은 중앙여중과 중앙여고를 다니셨다
아래아래 남동생은 추계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때 처음 추계초등학교가 생겼다
추계는 중앙여고 설립자 황신덕의 호다
위 글에서 얘기한 세연약국은 연대동문회관 안에 있다
북아현동 일대는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의 고향이다
첫댓글 저는 아직 그 근처에 살고 있어요.
어릴때 민둥산이던 안산은
나무가 우거진 숲이 되었지요.
이대 뒤쪽은 봉원사때문에 개발이 안돼고
서대문쪽은 대단히 아름답게 꾸며 놓아서
봄이면 꽃이 만발하여 아름답습니다.
카페에서 걷기 코스로 간적도있습니다.
사모님 발 나으시면 봄에 꽃구경 다녀오셔요.
우리 장모님도 아직 그 곳에 거주하십니다
이대역과 아현역 중간쯤 될 것입니다
안산자락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복준물 뒤 오리나무숲이 생각납니다
저도 몇 번 독립문역부터 시작해서
안산 산행을 한 적 있습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청솔 선배님 사명이 님 다들 서울내기 다마내기 ㅋ 시네유 (웃자고 ㅋ)
지는 서울 에 한 10년 가까이 살다 내려 왔지유
근데 서울 출신 들 중에 도 4대문안 출신 이라고 더 뻐기는 (농담 ) 친구 있던디유
네, 맞아요. 복매님
저는 사대문 출신이 아니라
기죽었었어요.ㅎㅎ
네 서울내기 다마내기입니다 ㅎㅎ
10년이나 사셨군요
맞습니다
그 때도 문안에 산다고 으시댔지요
돈많은 집 애들은 위장전입을 해서
좋은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덕수, 수송, 미동, 혜화 등등
저는 당시변두리인 굴레방다리에 살았습니다
그 때는 도로포장도 신촌로타리까지만 돼 있었고
거기서부터 동교동, 서교동쪽은 배추밭이었지요
홍대앞도 허허벌판이었고
당인리발전소가 있었지요
제2한강교가 생기면서 문래동까지 연결
약수동~문래동 버스노선이 생겼습니다
버스노선도 열 개가 안 됐던 시절입니다
1번: 신촌~홍릉
2번: 연대앞~상도동
3번: 마포~정릉
4번: 세검정~마장동
33번: 세검정~원효로
?번: 문래동~약수동
선배님의 글을 따라 저역시 어린시절의 길을
추억합니다.
영도! 절영도라 불리었던 곳
태종무열왕의 비가 세워져 있는 태종대
어린시절 제가 살았던 곳은 아파트가 들어 서있고
많은 곳이 바뀌었습니다.
봉래산 정상에서 운동을 하던 모습이 떠오르고
산 정상에서 보이던 영도다리와 광복동과 남포동 거리가 생각납니다.
선배님의 발자취에 저의 어린 발자취를 디디며 추억에 젖어봅니다^^
부산도 좋은 곳입니다
한때 수입물품 통관하러 부산엘 다녔습니다
또 제 첫 직장에서 영업사원 할 때
담당지역이 경남/제주라서 자주 갔었지요
부산, 김해, 진영, 반성, 마산, 함양, 산청, 거창
부화장과 종계장이 있는 곳엘 다녔습니다
대저읍에 있던 술집들이 생각납니다 ^^*
저녁때 고객들 술접대하고
아침에 일식집에 가서 시원한 해물탕으로
해장하던 생각이 납니다
낙지비빔밥도 생각나구요
서면쪽에도 여러번 갔었습니다
추억은 그리운 것입니다
비록 고생스러웠드라도 아름답게 남아있는 것
그게 바로 추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끔씩 꺼내어 음미해 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청솔님은 시쳇말로
금수저입니다.
부러워요.ㅎ
아이고 금수저 절대로 아닙니다
그저 어린 시절은 조금 넉넉했지요
나중에 아버님이 병드셔서
고생을 호되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우리가 어릴때는 경기를 다니면 뭔가 우리와 종자가 다른줄로 알고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그렇게 가르치니 그런줄로만 보고 듣고 자랐지
학교 선생들이란 인간들 공부못하고 가난한집 애들은 사람 취급을 하지도 않고
괸히 기죽고 살았지....
군대에서 사회에서 직접 겪어보니
전혀 그런것이 아닌 영딴판이였다.
그놈들은 일제와 식민지 과정을 거치면서
시키면 시ㅣ키는대로 하는 식민지근성을 심어주기 위한 인간에 뇌속에 지극히 일부부문만 발달된
인간을 뽑아서 에리트
그때 동갑중 덕수초등 경기중고 나와서 한때는 잘나가 미국서 대학교수
하다가 주식해서 쪽박신세가 되더니
지금은 태극기부대 미국 이스라엘 침략기들고 광화문에서 군가 찬송가 부르는.....
서울법대 육사나온 인간들 한심한 짓거리 하다가 감옥에 간 친구를 보면서,,,,
이나라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우상을 받드는 머저리 바보같은 인간들
연대 세브란스 입구쪽엔 백양로라고
아름드리 백양나무가 즐비했던 낭만의길을~
전부 학교 병원 건물을 지어서
낭만은 없어졌데요.ㅎ
그래도 최첨단 건물로 건강을 책임지니 다행 이랄까~
추억의 장소 소환
감사합니다.
저도 들어 봤습니다. 백양로!
그 백양로가 없어졌군요
암병동을 짓느라고 그랬나 봅니다
네 세브란스 건물들이 잘 지어 졌습니다
가서 볼 때마다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서울 토박이 시군요.남대문 문턱이 있나? 없나? 로 서울사람과 지방사람이 싸우다가 지방사람이 이겼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죠
네 낳기는 피난 길에 수원에서였지만
바로 환도하며 서울로 올라 왔다고 합니다
수원으로 피난했던 경기도청이
다시 서울로 올라 오면서...
남대문에 문턱이 있나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