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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삶의 이야기 방 아련한 어렸을 적 추억담
청솔 추천 0 조회 358 25.02.04 09:25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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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2.04 10:20

    첫댓글 저는 아직 그 근처에 살고 있어요.
    어릴때 민둥산이던 안산은
    나무가 우거진 숲이 되었지요.

    이대 뒤쪽은 봉원사때문에 개발이 안돼고
    서대문쪽은 대단히 아름답게 꾸며 놓아서
    봄이면 꽃이 만발하여 아름답습니다.

    카페에서 걷기 코스로 간적도있습니다.
    사모님 발 나으시면 봄에 꽃구경 다녀오셔요.

  • 작성자 25.02.04 10:32

    우리 장모님도 아직 그 곳에 거주하십니다
    이대역과 아현역 중간쯤 될 것입니다

    안산자락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복준물 뒤 오리나무숲이 생각납니다
    저도 몇 번 독립문역부터 시작해서
    안산 산행을 한 적 있습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25.02.04 11:21

    청솔 선배님 사명이 님 다들 서울내기 다마내기 ㅋ 시네유 (웃자고 ㅋ)
    지는 서울 에 한 10년 가까이 살다 내려 왔지유
    근데 서울 출신 들 중에 도 4대문안 출신 이라고 더 뻐기는 (농담 ) 친구 있던디유

  • 25.02.04 11:25

    네, 맞아요. 복매님
    저는 사대문 출신이 아니라
    기죽었었어요.ㅎㅎ

  • 작성자 25.02.04 11:33

    네 서울내기 다마내기입니다 ㅎㅎ
    10년이나 사셨군요

    맞습니다
    그 때도 문안에 산다고 으시댔지요
    돈많은 집 애들은 위장전입을 해서
    좋은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덕수, 수송, 미동, 혜화 등등

    저는 당시변두리인 굴레방다리에 살았습니다
    그 때는 도로포장도 신촌로타리까지만 돼 있었고
    거기서부터 동교동, 서교동쪽은 배추밭이었지요

    홍대앞도 허허벌판이었고
    당인리발전소가 있었지요

    제2한강교가 생기면서 문래동까지 연결
    약수동~문래동 버스노선이 생겼습니다

    버스노선도 열 개가 안 됐던 시절입니다
    1번: 신촌~홍릉
    2번: 연대앞~상도동
    3번: 마포~정릉
    4번: 세검정~마장동
    33번: 세검정~원효로
    ?번: 문래동~약수동

  • 25.02.04 11:30

    선배님의 글을 따라 저역시 어린시절의 길을
    추억합니다.
    영도! 절영도라 불리었던 곳
    태종무열왕의 비가 세워져 있는 태종대
    어린시절 제가 살았던 곳은 아파트가 들어 서있고
    많은 곳이 바뀌었습니다.
    봉래산 정상에서 운동을 하던 모습이 떠오르고
    산 정상에서 보이던 영도다리와 광복동과 남포동 거리가 생각납니다.
    선배님의 발자취에 저의 어린 발자취를 디디며 추억에 젖어봅니다^^

  • 작성자 25.02.04 11:39

    부산도 좋은 곳입니다
    한때 수입물품 통관하러 부산엘 다녔습니다
    또 제 첫 직장에서 영업사원 할 때
    담당지역이 경남/제주라서 자주 갔었지요

    부산, 김해, 진영, 반성, 마산, 함양, 산청, 거창
    부화장과 종계장이 있는 곳엘 다녔습니다
    대저읍에 있던 술집들이 생각납니다 ^^*

    저녁때 고객들 술접대하고
    아침에 일식집에 가서 시원한 해물탕으로
    해장하던 생각이 납니다

    낙지비빔밥도 생각나구요
    서면쪽에도 여러번 갔었습니다

    추억은 그리운 것입니다
    비록 고생스러웠드라도 아름답게 남아있는 것
    그게 바로 추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끔씩 꺼내어 음미해 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 25.02.04 12:39

    청솔님은 시쳇말로
    금수저입니다.
    부러워요.ㅎ

  • 작성자 25.02.04 12:44

    아이고 금수저 절대로 아닙니다
    그저 어린 시절은 조금 넉넉했지요
    나중에 아버님이 병드셔서
    고생을 호되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 25.02.04 13:12

    우리가 어릴때는 경기를 다니면 뭔가 우리와 종자가 다른줄로 알고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그렇게 가르치니 그런줄로만 보고 듣고 자랐지
    학교 선생들이란 인간들 공부못하고 가난한집 애들은 사람 취급을 하지도 않고
    괸히 기죽고 살았지....

    군대에서 사회에서 직접 겪어보니
    전혀 그런것이 아닌 영딴판이였다.
    그놈들은 일제와 식민지 과정을 거치면서
    시키면 시ㅣ키는대로 하는 식민지근성을 심어주기 위한 인간에 뇌속에 지극히 일부부문만 발달된
    인간을 뽑아서 에리트
    그때 동갑중 덕수초등 경기중고 나와서 한때는 잘나가 미국서 대학교수
    하다가 주식해서 쪽박신세가 되더니
    지금은 태극기부대 미국 이스라엘 침략기들고 광화문에서 군가 찬송가 부르는.....

    서울법대 육사나온 인간들 한심한 짓거리 하다가 감옥에 간 친구를 보면서,,,,
    이나라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우상을 받드는 머저리 바보같은 인간들

  • 25.02.04 17:21

    연대 세브란스 입구쪽엔 백양로라고
    아름드리 백양나무가 즐비했던 낭만의길을~
    전부 학교 병원 건물을 지어서
    낭만은 없어졌데요.ㅎ
    그래도 최첨단 건물로 건강을 책임지니 다행 이랄까~
    추억의 장소 소환
    감사합니다.

  • 작성자 25.02.04 17:36

    저도 들어 봤습니다. 백양로!
    그 백양로가 없어졌군요
    암병동을 짓느라고 그랬나 봅니다

    네 세브란스 건물들이 잘 지어 졌습니다
    가서 볼 때마다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25.02.04 17:21

    서울 토박이 시군요.남대문 문턱이 있나? 없나? 로 서울사람과 지방사람이 싸우다가 지방사람이 이겼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죠

  • 작성자 25.02.04 17:38

    네 낳기는 피난 길에 수원에서였지만
    바로 환도하며 서울로 올라 왔다고 합니다
    수원으로 피난했던 경기도청이
    다시 서울로 올라 오면서...

    남대문에 문턱이 있나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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