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벗지 않은 뱀은 죽는다.
(아름다운)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도 추하게 죽어 간다.
나이가 들면서 '남산무표(南山霧豹)'처럼
변모(變貌)하는 사람을 보기가 참 어렵다.
단, 한사람이라도 좋으니
그런 사람을 만나기를 매일 소원한다.
공자(孔子)는 "君子는 상달(上達)하고
소인(小人)은 하달(下達)한다"고 했다.
이 말은 '군자는 덕(德)을 추구하고
소인은 이익(利益)을 탐한다는 뜻이다.
또, 군자는 정도를 따르므로
날로 향상되어 고명한 경지에 이르게 되고
소인은 사소한 이욕(利慾)에 사로잡혀 날로
저열(低劣)한 지경에 빠진다'는 뜻을 함의한다.
나는 上達의 경지를
깨끗한 말에서 비롯되는 '언어의 品格'에서 찾는다.
반면에 언어를 비틀어 희롱하고 비속어를 남발하며
말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행위를 下達이라고 본다.
세네카(L. A. Senaca, BC4 ~ AD 65)의 말대로
'인간은 그 본성이 청결하고 섬미한 동물이다.
'그래서 내 집 앞의 눈을 치우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은
애국심 이전에 인지상정의 발로인 것이다.
청결(淸潔)은 성(聖)스러움에 가깝다.
공원이나 산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성인(聖人)'이다.
아침 일찍 들른 강화도 어느 사찰에
노스님이 마당을 쓸고 계셨다.
"스님!
마당이 워낙 깨끗해 빗질할 것도 없네요"란
인사를 건네자
"마당을 쓰는 게 아니라 간밤에 쌓인 내 몸 속의 .
쓰레기를 치우고 있어요"란 말이 들려왔다.
그 때 '이렇게 아름다운 말도 있구나!'
생각하니 "아름다움(美)이 영원한 환희다"라는
어느 현자(賢者)의 말이 떠올랐다.
그 스님은 이미 성불(成佛)하셨을 게 분명하다.
그 날 이후 틈만 나면 그 사찰을 찾는다.
사실 '아름다움은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과도 같다.
<채근담(採根譚)>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가난한 집도 깨끗이. 청소하고
가난한 집 여자라도 머리를 빗으면
비록 경색(景色 : 정경이나 모습)이
염려(艶麗 : 곱고 아름다움)하지 못할지라도
기품이 절로 풍아(風雅 : 풍치가 있고 우아함)하리로다.
선비가 한 때 궁수(窮愁 : 곤궁하여 생긴 근심)와
요락(료落 : 쓸쓸함)을 당한들
어찌 문득 스스로를 버릴 수 있겠는가?"
모든 '깨끗한 아름다움' 가운데 가장 으뜸은
앞서 소개한 스님의 말(言)과 같은 것이다.
말은 '마음의 소리(言爲心聲)'이자
오래된 '인간 역사를 관통해 온
단, 하나의 무기(武器)'다.
사실 우리 인생을 끌고 나가는 것은 '말'이다.
하루하루의 삶을 선택(選擇)하는 것도
'말'에서 시작한다.
아름다움과 추함(美醜)은 여기에서 분리된다.
말로써 삶이 이루어지고
말에 의미를 부여(附與)함으로써 세상은 굴러간다.
노년의 아름다움은 입을 다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도 아니면 '상황에 꼭 들어맞는 유일한 말
(le mot juste, the right word)'을 선택
짧게 하면 된다.
이게 제일 어렵다.
품위(品位)는 재산(財産)이고
말은 그 사람의 정신(精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