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살려 달라며 어미가 무릎 꿇고 부탁 했지만 박근혜는 남의 일인 것처럼 무표정하게 처다 보기만 했고 오바마가 오자 박근혜는 밝은 옷을 입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지만 오바마는 슬퍼하며 단원고에 목련을 선물했다 pic.twitter.com/tHi6AHAQIL
<일요신문>은 청해진해운의 전직 직원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렇다면 이번 세월호 대참사가 ‘구원파’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면 될까. “해경도 잘못했죠. 진짜 자기네가 승객들을 구하려고 했으면 승객이 있는 곳으로 가서 구조를 했어야지. 그런데 어떻게 했나요. 전문가라면 누가 봐도 선원들만 나올 수밖에 없는 자리에 배를 댔잖아요. 게다가 가장 먼저 구조된 선장이나 직원들 모두 청해진해운 옷을 입고 있었어요. 참 그거 보고 답답하더라고요. 생존자를 살릴 수 있는 방법도 있었는데 살리지도 않고.” ―생존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침몰 당시엔 사실상 없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꼭 그렇지도 않아요. 박근혜정부가 왜 그랬는지 해운업계 사람으로서 정말 답답해요. 사고 난 후 이틀이 지날 때까지도 ‘선수’(뱃머리)가 떠 있었잖아요. 그 때 해상 크레인도 와 있었고. 당시 배가 더 이상 가라앉지 않게 '앵카'(선박을 연결해주는 체인)를 걸어서 떠 있게만 했어도 생존자가 있었죠. 정부가 에어포켓이 사라지게…. 지금처럼 침몰되게 사실상 방치한 겁니다.” ―크레인이 세월호를 들어올리기엔 비중이 가볍다고 하던데. “들어 올리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침몰하지 않도록 유지는 할 수 있었죠. 크레인 걸어서 유지만 하고 있었다면 잠수부가 들어가기도 편하고, 크레인을 곧장 올리면 배가 90도로 트니까 생존자도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정부는 무엇을 했나요. 답답한 노릇이죠.” ―크레인으로 보조하는 작업이 위험하진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앵카만 걸고서 하는 건데. 이미 가라앉기 전에 어느 정도 ‘에어포켓’이 있었기 때문에 크레인이 (배가) 더 이상 가라앉히지만 않게 보조역할만 하고 있었으면 될 일이었어요. 추후에 더 큰 크레인이 와서 배를 그대로 세웠더라면 많은 인명을 구했을 거예요.” ―박근혜정부는 왜 이런 구조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현장 경험도 없는 장관급 지휘관이 뭘 알겠어요. 전문인을 총괄로 뒀어야 했어요. ‘선미’(뱃꼬리)가 물구나무 서 있을 때 바지선이 와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틀이란 시간을 허비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지켜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해운업계의 많은 전문가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많은 항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시작은 구원파 청해진해운이, 끝은 박근혜정부가 맺은 사건인 것 같다. “그렇게 봐도 되겠네요. 그거 아세요? 하다 못해 여수에서도 낚싯배들이 구조하려고 다 왔어요. 해경이 못 오게 막았죠.”
세월호 침몰 직후 2일간 '구조작업 없었다'는 주장 사실이다 | |||
언딘소속 잠수부, 16~17일의 구조활동은 ‘구조’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
세월호 침몰한 16일과 17일 생존자 구조 적기 양 이틀간 구조가 없었다는 실종자 가족 주장이 사실이라고 민중의 소리가 단독 보도했다.
|
"해경이 현장에서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잠수사 600명을 투입하고 조명탄 1000발을 쏘네 어쩌네 하지만 현장에 나가보면 조용하다. 정부 발표나 언론 보도와는 완전 딴판이다."
민중의 소리에 따르면 민간잠수부 ㄱ씨는 사고 직후 2일간의 구조활동은 ‘구조’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증언했다. 16일과 17일은 침몰한 세월호 내에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던 때다. 민간구조업체 언딘과 계약을 맺고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ㄱ씨의 증언과 민중의 소리 취재를 종합할 때 실종자 가족들의 절규는 사실이었다.
구조를 위해 가장 중요했던 16~17일 해경은 ‘없었다'
실종자는 바닷속에 갇혔는데 선박, 항공기가 무슨 소용인가 정작 중요한 수중 수색은 안하고 실효성 없는 보여주기였을 뿐이다.
|
정부의 발표만 보면 이 시간 현장에서는 대대적인 구조 작업이 벌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처 탈출하지 못한 승객들이 바닷속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항공기와 선박은 ‘지원’에 그칠 뿐 실제 구조활동은 아니다.
SSU(해군 해난구조대)출신으로 현재 산업 잠수사로 일하고 있는 ㄱ씨가 동료 6명과 함께 사고 현장을 찾은 것은 17일이었다. ㄱ씨는 2010년 천안함 인양 작업에도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수상에서 수중으로 공기를 공급하는 후까(표면 공기공급방식 장비) 등 잠수 장비도 챙겨갔다.
"해군에서 해난 구조를 했고 제대하고 수중공사업체에서 일을 했다. 천안함 때 내가 일하던 업체로 해군이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2개 업체가 컨소시엄을 맺고 천안함 인양 작업을 했다. 정부와 바지선, 크레인 사용 계약을 맺고 한 작업인 만큼 정부에서 대가도 받았다."
ㄱ씨는 출발 전에 청와대 민원실에도 전화를 넣었다. "빨리 바지선을 확보해서 작업을 해야 한다고 얘기 했어요.”
ㄱ씨가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역시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피정(경비정)을 타고 사고 해역에 나갔는데 피정에서 후까 다이빙을 하면 위험해요. 그래서 해경에 바지선을 요청했어요." 등에 산소통을 매고 바다에 들어가는 스쿠버 방식은 바닷속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 보다 오래 잠수를 하려면 수상에서 수중으로 공기를 공급하는 후까가 유리했다. 그러나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ㄱ씨는 이 대목에서 충격적인 말을 했다.
"당시 산소통을 메고는 바다 속으로 못 들어갈 상황이었어요. 정부가 수중수색을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그건 다 거짓말이었어요."
잠깐씩 물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배 안에 갇힌 실종자들을 구할 수가 없는 것은 물론 의미있는 수색이나 선체 진입을 위한 준비도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실제 해경은 16~17일간 선체에는 전혀 진입하지 못했다. 당연히 구조한 생존자도 없었다.
이런 사정은 GH가 해경정을 타고 사고현장으로 이동해 수색구조상황을 점검한 17일 오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구조 활동은 없었던 현장을 대통령이 ‘점검'하고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셈이다.
GH는 오후 4시경 실종자 가족들이 대기하고 있던 진도체육관에 도착해 가족들에게 "(해경 등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지시했다. 여러분들이 말씀하신 것은 전부 시행이 되도록 지시하겠다. 오늘 이 자리에서 지키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언딘에게 책임 넘긴 해경과 정부? 언딘, 인양 목적으로 현장 투입
해경은 실종자들의 생환을 위한 골든 타임인 16~17일을 무기력하게 보냈다. 대신 해경은 급하게 민간구난업체를 찾았다. 해경은 세월호의 운영사인 청해진해운에게 책임을 물어 민간 구난업체를 들여보낼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이것도 순조롭지 않았다.
16일 해경의 종용을 받은 청해진해운이 접촉한 업체는 부산에 소재한 A사였다. 그러나 A사는 세월호 ‘인양’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참여를 거절했다. A사를 대신해 현장에 참여한 업체는 ‘언딘’이다. 언딘과 청해진해운이 계약을 한 시점은 17일 오전이다. 언딘은 계약 직후인 18일부터는 현장에 도착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7일 오후 정부가 발표한 잠수요원 명단 520명에 처음으로 민간잠수사 8명이 포함됐다. 민간잠수사들이 세월호 선체에 첫번째 라이프 가드(인도줄)을 연결했다. 수중 수색이 겨우 한 발 나아간 것이다. 17일 자정 기준으로 투입된 민간잠수사는 20명으로 늘어났다. 21일까지 순차적으로 세월호에 설치된 라이프가드 6개 중 5개는 민간잠수사들이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으로 선내에 진입해 시신을 수습해 온 것도 민간잠수사들이었다.
민간잠수사들이 성과를 내자 해경은 "인명구조에서는 민간잠수사들이 해경보다 더 뛰어나다"고 공개적으로 칭찬을 했다. 언딘 투입 후 수색 작업이 한 발 앞으로 나간 건 분명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해경과 언딘이 여전히 제한적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21일 다이빙벨을 싣고 현장을 찾았던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구조활동을 보고 "바람이 안 불고 파도가 안 세고 자연조건이 가능할 때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리스크 없는 구조활동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현장을 찾은 민간잠수사들은 "바지선을 한 척 더 갖다 놓으면 더 많은 잠수사들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다면서 왜 그걸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언딘은 왜 소극적으로 구조에 나섰을까?
그 해답은 해양수산부가 작성한 상황보고 문건에서 찾을 수 있다.
16일 20:30분 기준으로 작성된 해양수산부의 상황보고 문건인 '세월호 침수·전복사고 조치사항 및 계획'을 보면, 향후 조치 계획으로 '인양 작업 관련, 구난업체 A사와 계약'이라고 적힌 부분이 있다. 또 17일 01:10 기준으로 작성된 해당 문건을 보면 '인양작업 관련, 구난업체 언딘사 계약'이라고 쓰여 있다. 처음부터 언딘의 임무는 인양이었던 셈이다.
언딘이 인양을 목적으로 청해진해운과 계약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리스크 회피적 구조활동도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 언딘의 기업 성격도 살펴봐야 한다. 언딘의 기업소개 브로셔를 보면, 언딘은 수중구조보다는 그린에너지, 수중공사, 토목공사 등 해양엔지니어링에 초점을 둔 기업이다.
"언딘 소속 아니면 민간 구조 활동 불가능하다"
언딘 투입되면서 민간 빠지고, 일부는 언딘과 계약 맺고 계속 참여
언딘이 현장에 투입된 17일부터 수색 현장에서 제기된 '언딘 소속 잠수부가 아니면 구조활동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불만도 사실로 확인됐다.
'민중의소리’가 접촉한 ㄱ씨도 처음에는 자원하여 동료들과 현장에 왔다가 언딘에 픽업된 경우다. 언딘은 현지에서 민간잠수부들과 개별 계약을 통해 인력을 충원했다. ㄱ씨는 언딘에 참여한 잠수부가 몇 명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두 20명이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현장에서 언딘에 픽업된 인원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수중구난 업체들은 대부분 규모가 크지 않아 선사와 계약을 맺고 현장에 투입되면 프리랜서 잠수부들을 추가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언딘 관계자 역시 언딘에서 평상시 유지하는 수중구난 전문인력 규모에 대해 "확인이 안 된다.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함부로 말해줄 수 없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민간잠수부들이 구조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은 비용 문제와도 연관된다. 급박한 해난 구조에서 해경을 도와 참여한 민간인들에 대해 정부는 실비 차원의 보상을 해왔다. 한국해양구조협회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어선 기관 고장 등으로 해경의 요청을 받고 출동할 경우 실비 보상을 해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해난구조 업체가 선사와의 계약을 통해 현장에 참여할 경우 이 비용은 해난구조 업체가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해경이 자원하여 참여한 민간잠수부 대신 언딘을 통한 구조 작업을 선호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민간업체가 주도하는 구조 작업이 가능하게 된 것은 수난구호법이 2012년에 개정되면서다. 이때 수난구호협력기관 및 수난구호민간단체가 해경과 협조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뒤집어 말하면 해경이 자신의 임무 중 상당부분을 민간업체에 떠넘길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언딘이 현장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24일 해명자료를 통해 "해양사고 발생시 선박소유자는 해사안전법 등 관련법규에 따라 군·경의 구조작업과 함께 효과적인 구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사설] 간첩사건 무죄, 남재준은 어디 갔나
[사설] 오바마 방한을 반대하는 이유
첫댓글 "(해경 등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지시했다. 여러분들이 말씀하신 것은 전부 시행이 되도록 지시하겠다.
오늘 이 자리에서 지키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이 한 말대로 박근혜 정부 다 옷벗고 물러나야 합니다.
24일에도 이상호 기자가 고발뉴스와 팩트TV로 팽목항 현장을 생중계하던 중
<연합뉴스>의 '물살 거세지기 전에…사상 최대 규모 수색 총력'이라는 기사를 읽고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그는 "연합뉴스 기자 개XX야. 너 내 후배였으면 죽었어. 이건 기사가 아닙니다. 저는 쫓겨난 해직기자지만 이 기자는 기자 아닙니다"라고 한바탕 쏟아낸 뒤
"당국은 배 수십척을 동원하고 신호탄 수백 발을 쏘아 올리는 등 밤샘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 배 한척도 보이지 않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대다수의 누리꾼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다. 물론 생중계 중에 욕설은 비판.
청해진해운 전직 직원
―시작은 구원파 청해진해운이, 끝은 박근혜정부가 맺은 사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