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네
꽃
병
에
꽃
아
다
오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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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다. ‘내 몸을 분’지르고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너의 꽃병에 꽃아달라니! 멕시코의 전설적인 화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사랑을 노래하되 이처럼 강렬하게 노래하는 사랑도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인간 사랑의 허구성, 잔인성을 이런 방식으로 노래하고 있음이다. 나 같은 사람은 평생 사랑의 시를 쓰면서도 한결같이 망설이고 중얼거리고 어딘가 미진한 발언만을 일삼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시인이 저항하는 건 견고함이다. 콘크리트처럼 건물 속에 들어있는 철근처럼 변함없는. 왜 그럴까? 우리들 삶과 사랑의 가변성. 그 모순을 이미 보았고 절망했고 그러고서도 인내해야 하기 때문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