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식탁> 음식과 소련 지도자
몰염치한 거짓말·협박…국제사회의 빈축을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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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안 주면빼앗을 것”
러시아 혁명 지도자 레온 트로츠키
최악의 기아 사태 해결 위해 “전쟁 불사” 협박
“빵을 주지 않으면 빼앗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 지도자였던 레온 트로츠키가 했다는 말이다. 1921년 7월 27일 자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에 기사가 실려 있다.
“만약 유럽과 미국이 식료품 판매를 거부한다면 러시아는 기아와 전염병으로부터 ‘인민’을 구하기 위해 싸울 것이다. 러시아가 선택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은 이웃 자본주의 국가를 공격하는 것으로 그 시작은 원수 폴란드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1921년과 1922년 최악의 기아 사태에 시달렸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사유재산 몰수를 비롯한 경제적 혼란과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약 6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트로츠키의 발언은 이때 나온 것으로 ‘유럽은 러시아가 굶어 죽더라도 돕지 않을 것이며 유럽은 러시아를 미워해서 농민에게 빵을 주느니 굶어 죽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 할 것’이라며 얻지 못한다면 힘으로 뺏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첫 번째 대상은 폴란드가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1921년 소련의 기아 상태 기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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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와 협박으로 점철된 발언을 한 트로츠키는 스탈린과 대립해 세계 공산혁명을 주장했던 인물로 스탈린 집권 후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국외로 망명했다가 1940년 멕시코에서 암살당했다.
빵을 주지 않으면 빼앗아야 한다는 발언은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에만 실린 기사여서 진위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북한을 비롯한 공산 국가에서 흔히 자행하는 공갈 협박의 원형을 이런 발언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몰로토프 빵 바구니로 불렸던 소련의 집속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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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군, ‘화염병=몰로토프 칵테일’이라 조롱
“폭탄 아니라빵 투하했다”
소련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몰로토프 칵테일은 화염병의 영어 이름이다. 2차 대전 때 소련 외무장관을 지냈던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의 이름에서 따왔다. 2차 대전 초기, 소련군이 국경을 넘어 핀란드로 쳐들어갔다. 대군이 탱크를 앞세워 핀란드 국경을 넘었고 폭격기들이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를 집중적으로 폭격했다. 350발의 폭탄을 투하했는데 문제는 이것이 평범한 폭탄이 아니라 집속탄(Cluster Bomb)이었다는 데 있었다. 집속탄은 시한장치로 어미 폭탄을 공중에서 폭발시키면 그 속에 들어 있던 새끼 폭탄들이 쏟아져 나와 목표를 공격하게 되어 있는데, 불발탄이 남아 나중에 민간인에게 다량의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비도덕적 무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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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소련군이 핀란드에서 이런 집속탄으로 공중폭격을 감행하자 국제적으로 반발 여론이 거세졌다. 반발이 심해지자 몰로토프 장관이 라디오를 통해 해명한 발언이 세상으로부터 빈축을 샀다.
“소비에트 공군기들은 핀란드 도시에 폭탄을 떨어트리지 않았다. 다만 굶주린 이웃 국가, 핀란드 국민에게 인도적인 차원에서 빵을 투하하는 작전을 펼쳤을 뿐이다.”
당시 핀란드는 군사력은 약했어도 물자는 풍부했다. 어이없는 몰로토프의 발언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사람들은 소련이 떨어트린 폭탄을 몰로토프의 빵 바구니라고 불렀고, 무기가 부족했던 핀란드군이 소련 탱크를 막는 데 쓴 화염병은 몰로토프 빵 바구니에 대응해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이름이 불명예스럽게 남은 것은 자업자득이지만 어쨌거나 소련의 지도자들은 역사적으로 뻔한 거짓말을 참 잘했다.
“콜라를 무색으로…자본주의 색 빼라”
소련군 원수 게르오기 주코프
미국, 소련군 연합 위해 무색 콜라 개발
콜라의 색깔은 갈색이다. 어떤 브랜드의 콜라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데 색깔 없는 무색의 콜라를 본 적이 있는지? 웬만한 콜라 전문가가 아니면 듣도 보도 못했을 것 같은데 실제 이런 콜라가 있었다. 소련군 때문에 만들어진 콜라다.
2차 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소련군을 이끌었던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가 미군에 특별히 요청했다. 콜라를 마셔본 주코프 원수는 처음에는 자본주의 음료를 마시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였고 콜라 마시는 모습을 사진 찍는 것도 거부했다. 그런데 이 콜라가 미군뿐만 아니라 소련군의 사기를 올리는 데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미군 측에 소련군에도 콜라를 공급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전제 조건이 있었다. 보통의 콜라는 미국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상징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콜라병 자체도 미국 냄새가 일절 나지 않도록 바꾸고, 콜라 내용물도 미 제국주의 물을 빼고 러시아의 보드카가 연상되도록 무색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아니면 마시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2차 대전의 승리를 위해 소련군과 연합이 필요했던 미국은 결국 주코프의 요청을 수락했고 코카콜라에서 갈색이 아닌 무색 콜라를 개발했다. 그리고 콜라병 역시 자본주의의 색채를 없애고 하얀 캡에 소련을 상징하는 붉은 별을 그려 넣는 것으로 대체했다.
원조를 얻어내면서도 요구를 관철한 협상력의 개가인지 아니면 얻어 가면서도 싫으면 말고를 외친 몰염치의 극치인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사실 요구사항이 관철 안 되면 소련 병사에게 콜라를 안 주면 그만이니 굳이 양보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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