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그늘 / 최태준
오늘 그를 만나고 싶다. 그를 만나면 편하다. 편하다기보다는 든든하다. 살아가면서 든든한 친구를 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오랜세월 그와 우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그 가운데 내겐 해묵은 상흔이 하나 남아있다. 상처는 아물어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았지만 늦가을이면 가끔 그 일이 떠오른다.
내가 대학입시에 실패해 재수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사관학교를 떠나 일반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그가 마무리 공부를 하자며 전화를 해왔다. 나는 서슴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공부도 공부지만 그와 함께 어울리고 싶었던 것이다. 누가 우정을 말하면 나는 언제나 그를 먼저 떠올렸다.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감동적인 영화 장면에서도 그가 생각났다. 언젠가 취중에 그에게 우정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고 우긴 적이 있었다.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 그와 나는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함께 자주 어울렸다. 우리 집에서 오 리 떨어진 그의 집에 놀러가서 늦으면 자고 오기도 했다. 큰 양푼에 온갖 나물을 넣고 밥을 비벼 나누어 먹기도 했다. 양푼의 나물처럼 우리는 서로 허물없이 어울리며 함께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다.
산사山寺의 가을은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공부와 산책이 하루생활의 전부였다. 한 달을 그렇게 지내자니 갑갑증도 났다. 어느 날 책상 위에 놓인 그의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답고 고즈넉한 늦가을 정취가 그의 마음속에 어떠한 감흥으로 들어와 앉았는지, 우리 두 사람의 산방山房 동거에 대해 그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마지막 쪽을 펼치자 고뇌의 한마디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읽어 내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하고, 온몸의 피가 역류함을 느꼈다. 기대했던 아름다운 풍광과 우리의 우정에 대한 언급은 거기 없었다. 대신 가슴을 후벼파는 아픈 무엇이 있었다. 나는 일기장을 내려놓고 좌초한 배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내 현기증이 나서 주저앉았다.
일기 속에 그는 나와 함께 기거하는 일에 대해 우려하는 마음을 적었다. 문제는 내 형님의 병력이었다. 형님이 고향 초등학교로 전보되어 왔을 때 그 병력도 함께 따라왔나 보다. 폐질환은 전염성이 강해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꺼리는 병이었다. 학부모 사이에 그 소문이 있었던 모양이다. 누구라도 형제간에 전염이 가능하다는 유추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형님은 잦은 전근으로 인해 늘 타향을 떠돌았고, 고향집으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건강을 회복한 뒤였다. 그러나 나는 친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비참한 심정을 견디기 어려웠다. 숲에서 돌아오던 그가 황망한 내 모습에 놀라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응답도 하지 않고 뒷산으로 달렸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건만 단숨에 산의 정상에 올랐다. 산정을 덮은 하얀 갈대가 기우는 오후의 햇살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계곡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답답한 가슴을 털어냈다. 갈대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었다. 산을 내려와 곧 짐을 쌌다. 왜 그러느냐고 그가 거듭 물었지만 아무 말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귀향길에 올랐다. 한참 내려와 산모퉁이를 돌면서 절을 흠칫 올려다보았더니 그때까지도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 뒤를 따라 내려왔는지 그가 이튿날 고향집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들려주지 못했다. 그와 마루에 나란히 앉자 서늘한 늦가을 바람이 소리 내며 그와 나를 휘감고 돌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에 대한 원망이 잦아들고 차츰 미안한 생각이 가슴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일기장을 본 것이 후회가 되었다. 아무리 미덥고 친한 사이라도 일기장은 보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하산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나와 끝까지 함께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그의 어머니는 보약을 들고 학교에 찾아와 그에게 먹이곤 했다. 그는 여러 형제 중 장남으로 집안에서 대들보 같은 존재였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축구선수이면서도 장학금을 받은 수재였다. 헬스로 다진 그의 조각상 체형을 바라보노라면 나는 언제나 주눅이 들었다. 건강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심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대학 때 나는 무척 약골이었다. 혹이라도 그가 나의 건강을 의심할까봐 틈틈이 운동에 매달렸다. 덕분에 건강은 갈수록 좋아졌다. 직장 정기 신체검사 결과는 언제나 완전무결했다. 그를 만나면 강박관념처럼 내가 건강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곤 했다.
아직 그에게 일기장 훔쳐본 일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얘기를 꺼내기가 쑥스러운 것이다. 그가 미안해할까 봐서이기도 하다. 지난날 마음의 상처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남달리 애쓴 탓에 이제 건강에는 웬만큼 자신이 있다. 집착하지 않아야 하는 우정의 미덕도 터득했다. 그 상처는 치유되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당시 내가 미친 듯이 산정을 향해 내달렸고 말없이 곧장 하산했으니, 그도 진즉 사태의 향방을 알아챘음에 틀림없다. 그가 하산해 나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침묵 속에서도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 아마도 그것은 섭섭함과 미안함, 관용과 이해의 마음이 혼재된 어떤 것이었다고 믿는다.
내가 오랜 세월 상처를 달랬듯 친구 또한 혼자 고심했을 게 분명하다. 그 생각을 하면 옹졸했던 내가 부끄럽고, 그에게 연민의 감정이 샘솟는다. 이제 우리의 우정에 결코 그늘은 없다. 햇살 좋은 오늘, 그가 몹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