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화나 탈동일시 라기보다 자기와 타자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불일불이와 맥락이 비슷합니다. 비유비무의 직관이든 자기와 타자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것이든 기존의 관념을 깨는 작업이니까 어떤 측면에선 억압이라고 볼 수 있죠. 물론 해당 수행법을 가르치는 곳에선 억압이란 말로 표현하진 않습니다.
중관에 입각한 없다(비유비무)의 직관은 티벳불교 대승 현종에서 널리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근거 수준으로 따지면야 화엄 카페 글이랑 비교도 안 됩니다. 누가 맞고 틀린진 위에서 말한 거처럼 인터넷 변두리가 아니라 위대한 수행자들의 말과 글로 판단하세요.
'나'라는 것을 분해하면 다섯가지 작용으로 나눌 수 있어요, 그 다섯가지를 오온이라고 그래. 즉 '나'라고 할 주체를 다섯조각으로 나눠보니까, '나'는 그 어디에도 없더라고... 그래서 오온무아라고 그래요.
마음은 식과 수상행의 덩어리인데... 식은 수상행과 함께 성립해요. 그래서 왕이 신하를 거느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를 해요. 그래서 식을 비유적으로 심왕이라고도 이름합니다. 이거는 유심론 개론 같은데 보면 바로 접할 수 있었던 거 같은데... 구사론은 좀 어려우니까... 식은 하나인데, 수상행은 세개잖아... 여하간 구사론에서 소개하기를 그 관계 설정을 부파마다 좀 다르게 해요. 그거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실참이나 현실과 관련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중요하지 않다는 거라...
마음이 식과 수상행의 덩어리다... 이거는 무슨 말이냐 하면, '나'라 이름하는 것을 마음과 몸뚱이(색)로 이대별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몸뚱이를 포함한 형상등 색온을 대상으로 이름하고, 마음을 인식주체라고 이름할 수 있어요. 마음이 주체 즉 나라는 것은 아니고...언어관행상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이상에서 알 수 있듯, 오온으로 이야기하자면, 인식기능은 있지만 인식 주체는 없어요. 인식기능을 주체라 이름해 줄 수는 있어...
중론에서 나오는 보는 자, 보는 작용, 보이는 대상... 그런 표현은 언어 관행상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론하며 부정하기 위해 나온 것이지... 오온에서 보는 자와 보는 작용이 있다는 뜻은 아니예요.
우리는 '나'라는 인식 주체가 있다고 생각해... 그게 오온으로 논파 되요. 그러니까 오온으로 이야기할 때, 보는 자와 보는 작용을 모두 이야기하면, 오온에서 보는 작용은 긍정되지만 보는 자는 없다고 해야 되요. 그게 오온의 뜻이야...
말의 뜻을 잘 파악해야지, 글자가 같다고 뜻이 같다고 하면 안되요.
유심 계열에서 나오는 체상용의 체는 연기라는 이치야. A가 연기에 따라 성립하는데, 그래서 모습이 A이지만...연기의 모습은 뭐냐고... B도 연기에 따라 성립하는데, 그래서 모습이 B잖아... 그러니까 연기의 모습이 뭐냐고... 연기의 모습은 없잖아... A를 담으니 A이고, B를 담으니 B잖아... 그러한 이치의 품성...그거를 '체'라고 이름한 거야... 그러한 이치의 품성이 식의 품성과 같다고 말한다고.
3번 ㅡ 자기도 모르는 억압..
주시, 탈동일시, 없다(비유비무)는 직관은,
99% 확률로 3번의 과보로 향해요..
(법무아님이 하고 계신 거..)
예전에 적었듯이, 이런 포지셔닝은 그 기법 자체가 '밀어내기(=간과, 외면, 억압)을 포함하거든여
근데 이게 능숙해질 수록..
자신이 억압한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아요
이렇게 하니깐 화가 안 난다.. 와 같은 표층의 체험을 넘어서,
내 마음의 작동방식과 반응구조를 잘 들여다보고
이해하야 억압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어여
누가 이런 얘길 해준 사람이 없어가지고..
저는 몸빵으로 배웠는데..
진정 분노 등을 뿌리부터 줄여가고 싶다면,
이거를 한 번 숙고해보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도움이 될거에요. (지금은 멍멍이소리로 들리겠지만..)
타자화나 탈동일시 라기보다 자기와 타자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불일불이와 맥락이 비슷합니다. 비유비무의 직관이든 자기와 타자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것이든 기존의 관념을 깨는 작업이니까 어떤 측면에선 억압이라고 볼 수 있죠. 물론 해당 수행법을 가르치는 곳에선 억압이란 말로 표현하진 않습니다.
중관에 입각한 없다(비유비무)의 직관은 티벳불교 대승 현종에서 널리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근거 수준으로 따지면야 화엄 카페 글이랑 비교도 안 됩니다. 누가 맞고 틀린진 위에서 말한 거처럼 인터넷 변두리가 아니라 위대한 수행자들의 말과 글로 판단하세요.
보세요... 다시 설명할께요. 이거 개론서만 읽어도 다 나와요.
'나'라는 것을 분해하면 다섯가지 작용으로 나눌 수 있어요, 그 다섯가지를 오온이라고 그래. 즉 '나'라고 할 주체를 다섯조각으로 나눠보니까, '나'는 그 어디에도 없더라고... 그래서 오온무아라고 그래요.
마음은 식과 수상행의 덩어리인데... 식은 수상행과 함께 성립해요. 그래서 왕이 신하를 거느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를 해요. 그래서 식을 비유적으로 심왕이라고도 이름합니다. 이거는 유심론 개론 같은데 보면 바로 접할 수 있었던 거 같은데... 구사론은 좀 어려우니까... 식은 하나인데, 수상행은 세개잖아... 여하간 구사론에서 소개하기를 그 관계 설정을 부파마다 좀 다르게 해요. 그거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실참이나 현실과 관련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중요하지 않다는 거라...
마음이 식과 수상행의 덩어리다... 이거는 무슨 말이냐 하면, '나'라 이름하는 것을 마음과 몸뚱이(색)로 이대별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몸뚱이를 포함한 형상등 색온을 대상으로 이름하고, 마음을 인식주체라고 이름할 수 있어요. 마음이 주체 즉 나라는 것은 아니고...언어관행상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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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알 수 있듯, 오온으로 이야기하자면, 인식기능은 있지만 인식 주체는 없어요. 인식기능을 주체라 이름해 줄 수는 있어...
중론에서 나오는 보는 자, 보는 작용, 보이는 대상... 그런 표현은 언어 관행상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론하며 부정하기 위해 나온 것이지... 오온에서 보는 자와 보는 작용이 있다는 뜻은 아니예요.
우리는 '나'라는 인식 주체가 있다고 생각해... 그게 오온으로 논파 되요. 그러니까 오온으로 이야기할 때, 보는 자와 보는 작용을 모두 이야기하면, 오온에서 보는 작용은 긍정되지만 보는 자는 없다고 해야 되요. 그게 오온의 뜻이야...
말의 뜻을 잘 파악해야지, 글자가 같다고 뜻이 같다고 하면 안되요.
유심 계열에서 나오는 체상용의 체는 연기라는 이치야. A가 연기에 따라 성립하는데, 그래서 모습이 A이지만...연기의 모습은 뭐냐고... B도 연기에 따라 성립하는데, 그래서 모습이 B잖아... 그러니까 연기의 모습이 뭐냐고... 연기의 모습은 없잖아... A를 담으니 A이고, B를 담으니 B잖아... 그러한 이치의 품성...그거를 '체'라고 이름한 거야... 그러한 이치의 품성이 식의 품성과 같다고 말한다고.
그래서 유심이라고 그래. 애초에 '체'가 어떤 주체이거나 무슨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말의 뜻이 그게 아니라구요.
공부 조금만 하면 다 나오는 거고... 사실 유심론이 그렇게 필요하지도 않아요. 화엄식 표현으로요. 아함이든 대승부 경전이든, 하나의 경이 일체의 경을 함유한다고... 보는 자에게는 그렇다고...
어떻게 보면 쉽고 어떻게 보면 어려운가?
이제는 세월이 너무 흘러서 잘 모르겠네...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거 같은데... 제대로 이해하고 보는게 어렵지, 거칠게 이해하고 보는 거는 어렵지만은 않은데...
올쏘독스한거... 가장 기초적인 체계... 그거를 토대로 삼으세요. 그러고는 원하는 모습으로 살을 붙여나가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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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딱딱하게 이야기했으니 몇마디 적읍시다.
유식학파... 바수반두 브라더스... 아상가가 형이고, 바수반두가 동생인데요. 아상가는 무착, 바수반두는 세친...
왜 동생으로 밴드 명을 만들었냐 하면요. 바수반두가 구사론을 집필했어요. 그게 (북방) 부파불교 백과사전이거든... 그런데 형님이 꼬셔가지고, 유식학파로 스쿨 변경을 하신다고... 그래서 유심론을 보면, 구사론 냄새가 좀 상당히 있어요.
마음을 수상행식의 집합으로 보고 대상을 색으로 볼거면 마음을 인식주체라고 해선 안 됩니다. 그 지점부터 어긋나는 거에요.
오온을 대상과 인식주체로 나누려면, 대상은 색수상행 각각 혹은 집합이 될 수 있고 인식주체는 식이라고 해야합니다. 주체와 작용은 상호연기적이기 때문에 작용은 있고 주체는 없고 이런 논리는 틀린 거에요.
머릿속에 주체를 상정한 순간 작용도 이미 상정한 것이고, 작용을 상정한 순간 이미 주체도 상정한 겁니다.
그러니까 개론서 읽으시라고... 어려운 내용 아니구요. 그거 내 말이 아니니까... 너무 기초적인 거라서, 여러 개론서에서 다른 말이 나올게 없어요. 그러니까 소개한 얇은 책이라도 읽으시라고...
너무나 기초적인 말도 이해몬하고 부정하는데, 중론 그런 거... 이해 몬해요. 당연한 거예요. 다 하는 말이라서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경]에도 나오는 거라...
논리적인 반박도 없고 뭐..
똑같이 대응할까요? 중론 얘기하고 싶으시면 중론이라도 읽고 말하세요. 그러니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중언부언, 지리멸렬하게 곁다리 얘기 잔뜩 끼워넣어서 글좀 그만쓰시구요.
아니... 개념의 뜻이라니까... 무슨 반박을 해요. 아함이나 니까야 경전 아무 거나 펼쳐 보시라고... 오온을 설명하는 거... 참...
아니.. 부처님께서 오온이라는 개념을 만드셨고... 그 개념을 [경]에서 설명하셨고... 부처님께서 만든 표현이데, 부처님 말이 틀리다고 그러면서 반박하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도대체 뭐를 반박하라는 거예요? 제 주장이 아니라니까... 하하하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수상행식을 통째로 주체라고 말하는 니까야나 아함경 구절 말해보세요. 전 이 때까지 중론 게송들 표시해왔고 식을 주체라고 말하는 글들 레퍼런스로 계속 댓글 달았습니다.
그냥 넷에서 일부 퍼오께... 아주 많아요.
무아상경(無我相經 , S22:59)
물질(色)은 '나'가 아니다. 만약 이 물질(色)이 나라면... ...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고, 이것이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올바른 지혜로서 관찰해야 한다.
감수(受)는 '나'가 아니다. 만약 이 감수(受)가 나라면... ...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고, 이것이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올바른 지혜로서 관찰해야 한다.
지각(想)은 '나'가 아니다. 만약 이 지각(想)이 나라면... ...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고, 이것이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올바른 지혜로서 관찰해야 한다.
형성(行)은 '나'가 아니다. 만약 이 형성(行)이 나라면... ...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고, 이것이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올바른 지혜로서 관찰해야 한다.
의식(識)은 '나'가 아니다. 만약 이 의식(識)이 나라면... ...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고, 이것이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올바른 지혜로서 관찰해야 한다.
... ...
[경]이라도 읽고...[경]이 이해가 안되거나, 너무 많아서 전체적 조망을 하기 어려우면 개론서라도 좀 읽고...
그 다음에, 뭐 고승에게 문의하든가... 뭐를 하든가 하셔야죠. 상대가 사용하는 말의 뜻도 모르는데, 그게 뭐예요? 그런데 상대방이 하는 말의 이해가 가능해요? 불가능한 거예요...
오온이 무아잖아? 수상행식을 마음이라고 통칭하는 거? 님은 그러지 마세요. 그거 논점에서 중요한 거 아니니까... 오온에서는 주체 즉 '나'가 없다고... 그렇죠?
법무아님은 저보고 넘겨 짚는다고 했지만...정말 님은 아함이나 니까야 경전도 읽은 바 없고, 개론서조차 읽지 않았습니다.
님이 스스로 증명하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글을 보면, 알 수 있는 거 무자게 많습니다.
첫째 둘째 셋째... 그거라도 기억하세요. 그러면 좀 더 행복하고 평안해질 수 있습니다.
수행이 무슨 용 빼는 거 아닙니다. 평범한 거,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도 하면 부족하지만은 않습니다.
자꾸 수행이랍시고, 저 하늘의 별을 따려고 하면요. 꿈속에서 살게 됩니다. 종교의 폐해입니다.
중생은 오십보 백보구요. 평범한 거,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 그것조차 하는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누구라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산다는게, 나이를 먹으면... 글쎄요...
변죽 그만 울리시고 이제 니까야나 아함경에서 수상행식을 통째로 주체라고 말하는 구절을 말해보세요. 무아상경의 해당 구절을 근거라고 찾은 건 아닐테구요.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하자는 거예요. 그래... 저는 [몸뚱이를 포함한 형상등 색온을 대상으로 이름하고, 마음을 인식주체라고 이름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어요. 그게 불만이면, 위에 적었듯, 법무아님은 그거 주체라고 이름할 수 없다고 하세요.
말 꼬투리 좀 그만 잡고... 오온 무아는 맞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위에서 님이 최초의 논점이라고 문제 삼은 거는 해결됐잖아, 안그래요?
방문개님은 그게 개념이고 경전에 나온다면서요. 경전에 나오는 구절을 말하시면 됩니다.
제가 언제 오온 무아를 논점으로 삼았습니까. 여러 번 반복해서 주체, 작용, 대상 세가지 얘기가 주제라고 말했는데
이 정도로 했는데, 부끄러움을 모르는 거는 곤란한데... 이 정도로 했는데, 여전히 분노만 일으키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그러려고 한다... 그거는 좀 그래요...
잘못된 부분 지적만 하면 말꼬투리 잡기라고 퉁쳐버리니 원
수상행식 통째로가 주체라는 게 개념이고 경전에 나온다면서요. 전 오온무아를 주제로 얘기하자고 한 적이 없어요;;
정말 양심을 걸고 그래요? 그렇게 생각합니까? 정말로?
뭐... 석가모니 부처님 불국토니까... 그럴 수는 있는데요.
석가모니 부처님 불국토가 수용최적화 불국토다 보니까...
자꾸 답 회피하지 마시구요. 경전에 안 나오는 거면 안 나오는 거라고 인정을 하고, 자의적 해석이었다고 인정하시면 됩니다.
그래요... 그럽시다, 다음에 봅시다.
그런데 님아, 정말 님에게 해롭습니다.
스스로의 행위가 스스로를 결정합니다.
연기를 생각할 땐 이미 불을 생각한 것이고, 불을 생각할 땐 이미 연기를 생각한 겁니다. 주체와 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호연기의 한 측면입니다.
삼보 귀의 , 고승의 견해가 어떠구 저떠구 하시두만... 이제 경전을 부정하시네... 하핫... 참... 그러면 안되는데...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그러면 참 정말 안되는 건데요...
허긴 뭐...제가 도덕 선생님도 아니구요. 자기 그거 대로 살다가 가는 거죠.
경전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경전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방문객님의 견해를 부정하는 겁니다.
그래요? 회원 탈퇴는 하지 마시고... 잘자요.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