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 3. 24. 큐티
예레미야 애가 2:20 ~ 3:16
여호와의 분노의 매를 맞는 고난
관찰 :
1) 예루살렘에서 자행된 처참한 비극
- 20절.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오리이까”
a. 예레미야는 정말 처참한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에 포위된 상황에서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자기 아이를 삶아 먹는 부모, 오늘은 내 아이, 내일은 네 아이를 먹고자 하는 이런 지옥도를 경험했습니다.
b. 그리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죽임을 당하여 피를 쏟는 일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차원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서 아파하면서 그 고통을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 21절. “늙은이와 젊은이가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내 청년들이 칼에 쓰러졌나이다 주께서 주의 진노의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도륙하셨나이다”
a. 예레미야는 그 날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들을 도저히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늙은이와 젊은이가 다 죽고, 청춘 남녀가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b. 이들 중에 예레미야의 제자들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믿음이 전수되어야 하는데 그 일이 막막하게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c. 예레미야는 낙망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지만 주께서는 도륙하심으로 그 진노를 드러내셨습니다. 신이 두려운 존재가 되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헤세드의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도륙하시는 진노를 드러내심은 참 낯선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깊은 동행을 하는 선지자로서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너무나 두려웠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 스스로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다른 것에 책임을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22절. “주께서 내 두려운 일들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 때 무리를 부름 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는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나이다 내가 낳아 기르는 아이들을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a. 하나님의 도성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들어 제사드리러 오는 것과 같이 이방의 원수들이 몰려들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린한 정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b.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날 자신의 자녀들도 원수에게 죽임을 당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영적 자녀라 할 예레미야의 제자들도 포함이 됩니다.
2)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인한 고난
- 1절.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a. 예레미야는 자신이 선지자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증거했기에 자신은 그 심판의 자리에 서지 않고, 보호받았다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b. 오히려 하나님의 분노의 매를 맞아 자식도 죽임을 당하고, 영적 자녀도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슬픔을 표현함에 있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아서 히브리 알파벳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그 속의 격정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3) 어두움 속의 고통
- 2절.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a. 예레미야는 자기 개인의 고난을 표현하는 것을 가지고 이스라엘 전체의 고난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끌어”(נָהַג, 나하그)는 짐승을 몰 때 쓰는 표현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인도하시는 것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신 인도가 아니라 죽으러 가는 것과 같은 상황을 그렇게 처연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b. 예레미야는 자신은 빼놓고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 3절.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a. 하나님이 멈추지 않고 징계하시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b. “자주자주”라는 말은 그 고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고난들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4) 육체의 고통
- 4절.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a. 예루살렘이 포위를 당해 그 안에 있던 이들이 먹을 양식이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도 그로 인해서 굶주리게 되어 살이 빠지고 가죽만 남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b. “뼈들을 꺾으셨고”는 예레미야의 뼈가 부러졌다는 말이 아니라 극심한 고난을 표현하는 관용적 표현이었습니다.
- 5절.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a. “고통”(רֹאשׁ, 로쉬)은 ‘쓸개, 독초, 모든 종류의 독’이란 뜻을 지닙니다. 여기서는 쓰디쓴 고통을 의미합니다.
b. “수고”(תְלָאָֽה, 텔라아)는 ‘고역, 곤고함’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인생을 곤란케 하고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을 가리킵니다. 유다 백성의 헤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 6절.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a.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고통이 너무나 극심해서 마치 오래 전부터 이런 고통속에 파묻혀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겨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b. 또한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죽은지 오래되어 사람의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부패한 모습처럼 처참해진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5) 묶임의 고통
- 7절.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a. 예레미야 38:6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의 상황을 연상하게 합니다.
b. 죄수들을 사슬에 묶어 밀폐된 곳에 가두어 죽게 하는 형벌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것은 앗수르에서 자주 행해지던 고문의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유다의 답답하고 암담한 현실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 8절.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a. 사슬에 묶여 밀폐된 곳에 있는 것과 같은 답답함의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함에도 응답하지 않으심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 9절.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들을 막으사 내 길들을 굽게 하셨도다”
a. “다듬은 돌을 쌓아”라는 말은 도무지 뚫을 수 없고 허물 수 없는 견고한 담으로 막혀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b. 가고자 하는 길, 도망하고자 하는 길을 모두 막으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갇혀있고, 묶여있는 고통을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 10절. “그는 내게 대하여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에 있는 사자 같으사”
a. 곰이 눈 앞에 있고, 사자가 웅크리고 있으면 옴짝달짝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그렇게 꼼짝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 11절.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
a. ”적막하게“(שָׁמֵם, 솨멤)는 ‘넋을 잃게하다’, ‘황폐하게 하다’라는 의미로서 심각한 환난으로 도움을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자신과 유다의 처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6) 과녁이 되는 고통
- 12절.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심이여”
a. 화살이 자신의 심장을 꿰뚫게 되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그 고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예레미야에겐 너무나 아픈 현실이었습니다.
- 13절. “화살통의 화살들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a. 하나의 화살이 아니라 화살통의 화살들이 모두 발사되어 치명상을 입혔다는 것입니다.
b. “허리”는 문자적으로는 ‘콩팥’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감정과 의지의 중심으로 마음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7) 조롱거리가 되는 고통
- 14절.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a.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로부터 조롱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다가 온 열방으로부터 받게 되는 바로 그 조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의 예레미야 개인의 체험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유다 전체의 체험을 개인의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15절.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a. 쓴 것을 먹기를 즐기는 이는 없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쓴 것으로 배불리고, 그 중에 또 가장 쓴 것으로 취급할 수 있는 쑥으로 취하게 까지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인생의 쓰디 쓴 체험을 하게 된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자신의 쓰디 쓴 체험이 이스라엘 전체가 체험하는 것이 되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 16절.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a. 이 상황은 예레미야가 대적들에 의해서 얼굴이 짖밟혀서 땅에 쓸려 땅에 있는 돌에 이가 부딪힌 상황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b. 예레미야는 실제로 이러한 상황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재로 덮어서 슬픔 중의 슬픔에 처하게 되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예루살렘에는 있을 수 없는 처참한 환난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너무나 극심한 재앙으로 자식을 삶아먹고 구워먹는 일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자식도 그 때 죽임을 당했습니다. 제자들도 죽임을 당했고, 성전에서 제사장이 죽임을 당해 피흘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미래의 소망인 청년들이 죽어 쓰러진 광경들을 보게 되어 소망을 상실하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극심한 고난을 자세히 묘사함은 망하는 이야기, 망하는 상황을 통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예레미야의 염원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을 대하는 지도자의 자세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치시는 심판을 남의 것으로, 남의 잘못을 탓하는 것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처럼 받아들이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선지자들의 동일한 태도요 자세였습니다.
3) 예레미야는 자신이 당한 처지가 곧 이스라엘 전체가 당하는 것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슬픔의 노래는 이렇게 처절하게 불리워졌습니다. 이렇게 노래하는 이유는 망하는 슬픔을 통해서 다음 세대에서는 하나님 여호와께 이렇게 비참한 진노를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가 썼을 것으로 예상하는 열왕기상하의 전반적인 흐름도 결국은 망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다음 세대들은 제발, 제발, 제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섭고 큰지를 알아서 그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말라고, 자신의 처지를 구구절절하게 표현하는 것을 통해서 말한 것입니다.
적용 :
1) 예레미야는 자기 자신을 다음 세대의 사람들을 위한 보조교재로 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피할 길을 달라고 간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형편을 아뢰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지독하게 자세하고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고, 두려워하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자 결단코 애쓰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범죄한 자가 아니었지만, 자신이 그 죄를 받고 있는 것을 당연시 여기면서 그 일들을, 그 슬픔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실수와 실패가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 또한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만 드러내는 것, 내가 승리한 것, 멋진 것만 드러내는 것은 때로는 능사가 아닌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기에 그러한 자신의 처참한 상황을 아뢰고, 또한 유다의 처참한 상황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의 실수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인생에 있어서 다시 겪지 말아야 할 고통에 대해서 다시 그 일을 겪지 않는다면 그것도 은혜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비끗해서 일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실수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인생을 하감하시고 붙잡아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