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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크 - 첫 2초의 힘
말콤 글래드웰 지음
21세기북스 / 2005년 11월 / 349쪽 / 13,000원
1장 - 한 조각 지식으로 천리 내다보기
2장 - 순간적인 판단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3장 - 우리는 왜 키 크고 잘생긴 남자에게 반하는가
4장 - 생각하기 위해 멈춰 서지 말라
5장 - 케나의 딜레마: 원하는 것을 묻는 올바른 방법
6장 - 브롱크스의 7초: 여백을 두고 마음을 읽어라
7장 - 편견의 눈을 감으면 세상이 바뀐다
Prologue - 세상을 움직이는 2초의 힘
1983년 9월, 장-프랑코 베치나(Gian-franco Becchina)라는 미술상이 캘리포니아의 폴케티박물관을 찾아왔다. 기원전 6세기의 대리석상을 하나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쿠로스 상(像)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뻗고 두 팔은 허벅지 양 옆에 내려붙인 청년 나체 입상- 이라고 알려진 석상이었다. 지금까지 세상 빛을 본 쿠로스 상은 고작 200개 정도인데, 그나마도 무덤이나 고고학 발굴지에서 심하게 훼손된 채 발굴된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입상은 보존 상태가 거의 완벽했다. 2미터 가까운 높이에, 다른 작품들과 달리 밝은 색조의 광택을 띤, 사뭇 범상치 않아 보이는 유물이었다. 미술상 베치나는 1,000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액수를 요구했다. 폴게티박물관은 신중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일단 쿠로스 상을 임대해 철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폴게티박물관 측은 결과에 만족했다. 그리고 조사를 시작한 지 14개월 만에 마침내 쿠로스 상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1986년 가을 조각상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뉴욕타임즈》는 이 사건을 1면 기사로 다루었다.
하지만 이 쿠로스 상에는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이를 처음 지적한 사람은 폴게티박물관의 운영위원이던 이탈리아 미술사학자 페데리코 제리였다. 1983년 12월 박물관의 복원실로 안내되어 조각상을 보는 순간, 제리는 자신도 모르게 석상의 손톱에 눈길이 머물렀다.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손톱이 이상했다. 다음으로 문제를 발견한 사람은 그리스 조각의 세계적인 권위자 에블린 해리슨이었다. 큐레이터 휴턴이 석상의 덮개를 벗긴 바로 그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을 뿐이다. 그들은 처음 보는 2초 동안에 -단 한차례의 눈길로- 폴게티박물관의 조사팀이 14개월에 걸쳐 파헤친 것보다 조각상의 본질에 대해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블링크 Blink』는 바로, 그 첫 2초에 관한 책이다. 쿠로스 상의 진위여부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 폴게티박물관의 카탈로그에는 조사팀의 14개월간의 추적조사결과를 반영하여 ‘기원전 530년경 혹은 근래의 위조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쿠로스 상의 사진이 실려 있다.
당신에게 아주 단순한 도박을 제안했다고 치자. 지금 당신 앞에 빨간 카드 둘, 파란 카드 둘, 총 네 벌의 카드가 놓여 있다. 당신은 카드를 한 장 한 장 뒤집을 때마다 일정한 돈을 딸 수도, 잃을 수도 있다. 실제로 당신은 파란 카드를 뒤집어야만 이길 수 있는데, 여기서 파란 카드 더미는 빨간 카드와 달리 괜찮은 수입과 적당한 벌점이라는 제법 균형 잡힌 수익률을 보장한다. 문제는 얼마 만에 이 사실을 알아채느냐다. 몇 년 전 아이오와대학의 과학자들이 이 같은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 대부분 약 50장의 카드를 뒤집은 후에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우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약 80장의 카드를 뒤집으면 대부분 게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반면에 아이오와의 과학자들은 노름꾼들이 10장째 카드에서 빨간 더미 쪽에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아이오와 실험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순간에 우리 뇌가 두 가지 상이한 전략을 구사해 상황을 파악한다는 점이다.
첫째 방식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의식적인 전략이다. 지금까지 배워온 것들을 반추하다가 마침내 답에 도달한다. 이 전략은 논리적이고 명확한 반면, 답에 이르려면 무려 80장의 카드를 뒤집어야 한다. 다시 말해 속도가 느리고 많은 양의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둘째 전략은 훨씬 더 빠르다. 적어도 열 번째 카드 정도부터 작동을 시작해 그 예리함을 발휘한다. 빨간 카드 더미가 가진 문제점을 순간에 포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처음에는- 전적으로 의식의 표면 아래에서 작동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테면 깨달음의 메시지를 손바닥 땀샘 같은 묘한 간접 채널을 통해 전송했다. 뇌는 이미 결론에 도달했지만 그 사실을 즉시 알리지 않는 시스템이다.
사실 대다수는 2초 운운하는 이 신속한 인식에 본능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것은 어떤 결론의 옳고 그름이 공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리라 여기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진단이 난감할 때마다 다른 검사를 요구하고, 사람들은 귀로 들은 이야기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으면 또 다른 의견을 구한다.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가르치는가? 서두르면 망친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아는 길도 물어 가라. 이처럼 우리는 되도록 많은 정보를 모아 가능한 한 심사숙고하는 편이 더 낫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의식적인 의사결정만 신뢰한다. 하지만 서두른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는 비상시에는 순간의 판단이나 첫인상이 세계를 파악하는 훨씬 더 나은 도구 역할을 할 때가 있다. 『블링크』의 임무는 당신이 이 단순명료한 사실에 확신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신속한 결정이 일면에서는 신중한 결정만큼이나 좋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실제로 ‘처음 2초의 기적’은 운 좋은 소수에게 마술처럼 주어지는 재능이 아니다. 이는 모두 스스로 갈고 닦을 수 있는 능력이다.
한 조각 지식으로 천리 내다보기
몇 년 전 어느 젊은 커플이 워싱턴대학의 심리학자 존 고트먼(John Gottman)의 연구소를 찾아왔다. 맵시 있게 헝클어진 금발에 멋진 안경을 쓴 파란 눈동자의 20대 남녀였다. 남편은 -앞으로 빌이라고 부르겠다- 사랑스럽고 명랑한 사람이었고, 아내 수전은 표정 없는 얼굴로 예리한 재치를 구사하는 여성이었다. 잠시 후 그들은 어떤 주제라도 좋으니 결혼 후 다툼거리가 되었던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라는 지시를 받고 15분 동안 카메라 앞에 남겨졌다. 당신이 이 15분짜리 비디오를 보고 수전과 빌의 결혼생활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그들의 관계가 건강한지 그렇지 않은지 판별할 수 있을까? 고트먼은 놀라운 사실을 증명했다. 한 시간 동안 남편과 아내가 나눈 대화만 분석해도 그 부부가 15년 뒤에 여전히 부부로 살지 여부를 95퍼센트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었다(15분간 관찰할 경우 성공 확률은 약 90퍼센트였다). 결혼의 진실성을 일찍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트먼은 우리에게 ‘얇게 조각내기(thin-slicing)’로 알려진 신속한 인식의 매우 중요한 부분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얇게 조각내기’란, 매우 얇은 경험의 조각들을 토대로 상황과 행동의 패턴을 찾아내는 우리 무의식의 능력을 말한다.
고트먼이 말한 성공 확률의 비밀 속으로 좀더 깊숙이 파고들어 보자. 고트먼은 결혼생활에 독특한 징후가 있음을 발견했고, 커플의 상호작용에서 매우 상세한 감정 정보를 수집해 그 징후를 찾아냈다. 그러나 고트먼의 시스템에는 흥미로운 무엇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4명의 기수(Four Horsemen)'라고 칭한 것들, 즉 방어 자세, 의도적 회피, 냉소, 경멸에만 초점을 맞춰도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경멸이었다. 고트먼은 부부 중 어느 한쪽 또는 둘 다 상대에게 경멸의 감정을 보일 경우, 결혼생활에 가장 중요한 적신호로 받아들였다. 고트먼은 실제로 결혼생활에서 경멸을 측정하면 부부가 얼마나 자주 감기에 걸리는지 같은 사소한 것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경멸을 당하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면역체계까지 영향이 미친다는 것이다.
‘얇게 조각내기’의 개념을 한 단계 더 전진시켜 보자. 지금 당신은 의사에게 의료사고 보험을 파는 보험회사에서 일한다. 상사가 당신에게 회계상 이유를 들어 자회사 보험을 든 모든 의사들 중에 고소당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 누군지 조사해 오라고 한다. 다시 한번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사항이 주어진다. 첫째는 의사의 훈련과정과 자격을 조사한 다음에 지난 몇 년 간 얼마나 많은 과실을 범했는지 기록을 분석하는 것이다. 둘째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아주 짧은 대화 한 토막씩을 듣는 것이다. 지금쯤은 당신도 내가 후자를 권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외과의사의 목소리에서 우월감이 느껴진다고 판단될 경우, 그 의사는 고소당하는 그룹에 속할 가능성이 컸다. 반면 목소리에 우월감이 적고 환자를 더 배려할 경우에는 고소당하지 않는 그룹에 속할 가능성이 컸다. 그 보다 더 얇은 조각이 있을 수 있을까?
‘얇게 조각내기’는 특별한 재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중요한 능력 중 한 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뭔가를 재빨리 파악해야 하거나, 새로운 상황에 마주칠 때마다 우리도 모르게 ‘얇게 조각내어 관찰하기’를 하게 된다. 숨겨진 ‘필적’이 많기 때문에, 단 1초나 2초라도 세세한 면에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능력에 의지한다. 경험의 좁디좁은 한 폭까지도 깊숙이 읽어내는 특별한 재능, 놀랍게도 이 세상에는 이 재능을 뜻하는 어휘를 사용하는 직업이나 분야가 무한정 많다. 농구에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죄다 흡수해 파악하는 선수를 두고 ‘코트 감각’이 있다고 말한다. 군대에서는 빼어난 장수들에게 ‘혜안(coup d'oeil)’이 있다고 말하는데, ‘coup d'oeil’은 프랑스어로 ‘한눈에 알아차리는 힘(power of the glance)’을 뜻한다. 전황을 순식간에 파악한다는 의미다.
순간적인 판단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세계 정상급 테니스 코치 빅 브레이든은 얼마 전부터 경기를 볼 때마다 이상한 경험을 했다. 테니스에서는 두 번의 서브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 중 한 번은 꼭 성공시켜야 한다. 두 번째 서브마저 놓치면 ‘더블폴트’다. 브레이든은 선수가 더블폴트를 범할 경우 어김없이 자기가 그것을 눈치 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브레이든은 지금 70대다. 젊었을 때는 세계 정상급 테니스 선수였고, 지난 50년간 테니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들을 가르치고 상담하며 지냈다. 그러니 브레이든에게 서브를 한눈에 읽는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서비스 동작의 어떤 부분을 얇게 조각을 내서 관찰해 -눈 깜짝할 사이에!- 그걸 알아채는 것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브레이든이 낭패감을 느끼는 것은 자신도 그걸 어떻게 아는지 전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우리가 잠긴 문이라는 실재를 다루는 데 미숙하다고 생각한다. 순간적인 판단, 얇게 자른 조각의 엄청난 힘을 ‘인정하는 것’과 그토록 불가사의해 보이는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의사 결정을 할 때 근거를 밝히고 조목조목 설명하라고 요구한다. 어떻게 느끼는지 말하려면 왜 그런지 설명할 줄도 알아야 한다. 폴게티박물관이 처음에 해리슨과 제리 같은 사람들의 견해를 수용하기 힘들어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반면 그들이 과학자와 변호사의 의견에 솔깃했던 것은 그 무리가 결론을 뒷받침하는 수천 장의 문서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제 의사결정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순간 판단의 불가사의한 본질을 인정해야 한다. 어떻게 알았는지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아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존중하고, 또 그럴 때 -때로는-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받아들이자.
얼마 전 어느 상쾌한 봄날 저녁, 맨해튼의 한 술집에서 남녀 24명이 스피드데이트(speed-dating)라는 독특한 모임을 가졌다. 모두 20대의 전문직 종사자로 어설픈 월 스트리트 타입이었다. 처음에는 모두 어색한 듯 술잔만 비웠는데, 이윽고 큰 키에 인상적인 외모의 진행자 케일린이 행사의 시작을 알리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녀는 모든 남자와 여자가 돌아가며 6분씩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스피드데이트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피드데이트는 데이트라는 구태의연한 과정을 순간적인 판단으로 증류한 만남이다. 참가자들은 모두 지극히 단순한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이를테면 ‘내가 이 사람을 다시 보고 싶을까?’ 같은. 그에 답하는 데 저녁 시간이 전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정말 몇 분이면 가능하다.
그러나 누군가 끼어들어 스피드데이트의 규칙을 아주 조금 고친다고 가정해 보자. 누군가 잠긴 문 저편을 들여다보기 위해 참가자들에게 선택의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무의식적 사고의 메커니즘은 영원히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모하게 첫인상과 순간적인 판단을 어떻게든 설명해 보라고 강요한다면? 이것이 바로 컬럼비아대학의 두 교수 시에나 이옌가르와 레이먼드 피스만이 지금껏 해온 일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설명하라고 요구하면 매우 이상하고 곤혹스런 일이 벌어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전에는 얇게 조각내는 훈련의 가장 투명하고 순수한 형태처럼 보이던 일이 매우 혼란스럽게 변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데 따르는 문제가 많다. 정말 설명하지 못하는 일들을 설명하기에 우리의 판단은 너무 빠른 편이다.
우리는 왜 키 크고 잘생긴 남자에게 반하는가
1899년 어느 이른 아침 오하이오 주 리치우드의 글로브호텔 후원에서 번쩍거리는 구두를 신은 두 남자가 만났다. 한 사람은 주도인 콜럼버스에서 온 변호사이자 로비스트인 해리 도허티(Harry Daugherty)였다. 땅딸만한 체구에 곧은 흑발을 가진 그 홍안의 재사는 오하이오 정계의 마키아벨리로 불리는 전형적인 막후 실력자로, 어떤 인물 또는 최소한 그가 가진 정치적 기회에 대해 누구보다도 예리한 통찰력을 지녔다는 평을 받았다. 또 다른 사람은 오하이오의 소도시 매리언의 한 신문 편집장으로, 당시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 당선을 일주일 남겨두고 있었던 워렌 하딩(Warren Harding)이었다. 도허티는 하딩을 보고 그 인상에 압도당했다. 하딩은 어딜 보나 눈길을 끄는 인물로, 머리, 얼굴, 어깨, 체격 모두 시선을 사로잡기에 딱 좋았다. 그 순간 도허티는 하딩을 가늠해 보면서 어디 미국 역사를 한번 바꾸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사람이 위대한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사실 워렌 하딩은 그다지 지적인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포커 게임과 골프, 술, 특히 여자 사냥을 즐겼다. 정치적인 지위가 높아졌을 때도 결코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으며 정책 사안에 대해서도 모호하고 양면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의 연설은 한때 “아이디어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한 떼의 화려한 단어들”이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1920년에 도허티는 하딩의 올바른 판단(자신이 대통령 후보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에도 불구하고 백악관 행을 설득했다. 도허티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진지했다. 그리하여 상원의원 하딩은 대통령 후보 하딩이 되었고, 그해 가을 오하이오 주 메리언에 있는 자기 집 현관에서 선거유세를 한 뒤 대통령 하딩이 되었다. 그리고 2년 동안 대통령으로 일하다가 돌연사 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하나였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중론이다.
지금까지 얇게 조각내어 관찰하기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이야기했다. 사실 얇게 조각내어 관찰하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물 밑 정황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우리의 능력이다. 그런데 신속한 사고 회로가 무언가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면 어떨까? 물 밑 사정을 전혀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간적인 판단에 도달한다면 어떻게 될까? 워렌 하딩의 오류는 신속한 인식이 가진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수많은 편견과 차별의 뿌리에는 오류가 있다. 구인광고를 한 뒤에도 적임자를 뽑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며,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매우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이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많은 것도 그런 까닭이다. 우리가 얇게 조각내어 관찰하기와 첫인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알아낸 것이 가끔은 몇 달 동안 연구한 결과보다 나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시에 신속한 인식이 우리를 빗나가게 하는 상황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이 면접한 사람이 키가 크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의식적인 차원에서는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똑같이 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키, 그 중에서도 남자의 키가 특정한 경향의 매우 긍정적인 무의식 연상을 일으킨다는 점을 시사하는 증거들이 많다. 내 표본을 보면 남자 CEO들의 평균 키가 무려 182센티미터다. 미국 남자 평균 키가 약 175센티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CEO 집단의 키가 평균보다 7센티미터나 더 큰 셈이다. 최고 경영진 중에 여자나 소수 인종이 별로 없다는 건 최소한 그럴듯한 설명이라도 있다. 차별이나 문화 패턴과 연관된 수많은 이유들로 인해 오랫동안 여자나 소수 인종이 미국 기업의 경영진 대열에 진입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최고 경영자 후보 중에 여자나 소수 인종이 적다는 주장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말은 키 작은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큰 회사의 임직원을 전부 백인만으로 채울 수는 있어도 키 작은 사람을 빼는 것은 불가능하다. 키 큰 사람들이 지천에 널려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도된 선입견일까? 물론 아니다. 누구도 키가 작다는 이유로 역량 있는 CEO후보를 탈락시키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무의식적 편견인 게 분명하다.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도력’을 ‘당당한 체격’과 연계한다. 리더는 이런 모습일 거라는 감이나 정형화된 상이 매우 강해 누군가가 그 상에 부합할 경우 함께 고려해야 할 다른 측면들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다.
뉴저지 주의 중심도시 플레밍턴에 있는 플레밍턴 닛산 대리점의 판매 책임자 보브 골롬은 키 작은 50대 남자로, 숱 적은 검은 머리에 철테 안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10여 년 전 자동차 비즈니스를 시작한 이래 한 달 평균 20대의 차를 파는 놀라운 저력의 사나이다. 이는 자동차 세일즈맨 평균 판매량의 두 배가 넘는 실적이다. 골롬처럼 성공한 세일즈맨이 되려면 얇게 조각내어 관찰하는 능력이 비상하게 요구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가 어쩌면 일생을 통틀어 가장 비싼 쇼핑이 될지 모를 일을 결심하면서 대리점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는 생각이 깊고 주도면밀하다. 그는 훌륭한 경청자다. 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안내하는 세 가지 단순한 규칙이 있다고 말한다. “고객을 소중히 대하라. 고객을 소중히 대하라. 고객을 소중히 대하라.”
“예단은 죽음의 입맞춤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최선의 시도를 해야 합니다. 풋내기 세일즈맨은 고객을 보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차를 살 것처럼 보이지 않아.’ 이것은 최악의 자세입니다. 때로는 전혀 살 것 같지 않던 사람이 대박인 경우도 있거든요. 제 주요 고객 중에 농사를 짓는 분이 계시는데 여러 해 동안 그에게 모든 종류의 차를 다 팔았습니다. 당신이 지금 이 자리에서 쇠똥 묻은 작업복을 걸친 그를 본다면 아마 귀한 고객이라고 생각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 업계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사람은 현찰 덩어리죠. 또 사람들은 10대 아이들을 내쫓아버리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날 밤 그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대동하고 와서 차를 고릅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사람은 물론 다른 세일즈맨이죠.”
골롬의 이야기는 대다수의 세일즈맨이 전형적인 워렌 하딩의 오류에 쉽게 빠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누군가를 볼 때, 어찌 된 일인지 외모에서 받은 첫인상에 휘둘려 이럭저럭 긁어모은 다른 모든 정보 조각들을 떠내려 보내고 만다. 그에 반해 골롬은 정보들을 엄선하고자 노력한다. 안테나를 세우고, 저 사람이 확신에 차 있는가 아니면 불안정한가, 아는 게 많은가 아니면 순박한가, 믿는 기질인가 아니면 의심하는 기질인가 따위의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얇게 조각내어 관찰해서 얻어낸 홍수 같은 정보 중에 오로지 외모에서 받은 인상만큼은 걸러내려고 애쓴다. 골롬의 성공 비결은 워렌 하딩의 오류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워렌 하딩의 오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사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종류의 편견들은 그렇게 명명백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흑인은 백인과 같은 샘에서 물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법전이 있다면 그 법을 바꾸는 것이 훌륭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차별은 조금 까다롭다. 답은 우리가 첫인상 앞에서 무조건 속수무책인 건 아니라는 데 있다.
첫인상은 경험과 환경에서 생성된다. 그 인상을 형성하는 경험들을 변화시킴으로써 첫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얇게 조각내어 관찰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모든 면에서 흑인을 동등하게 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백인에 대해 갖고 있는 것만큼 흑인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연상들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평등에 대한 단순한 언급 이상이 필요하다. 소수 인종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며 그들의 좋은 문화에 친숙해지도록, 그들과 만나고 약속하고 이야기할 때나 그들을 채용하고자 할 때 망설임이나 불안감이 드러나지 않도록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신속한 인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좋든 나쁘든 첫인상이 우리의 삶에 행사하는 믿기지 않는 힘을 인정하고자 한다면, 능동적인 걸음을 내디뎌 첫인상을 관리하고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하기 위해 멈춰 서지 말라
어느 토요일 저녁, 즉흥 코미디 그룹 ‘마더’가 맨해튼 웨스트사이드의 한 슈퍼마켓 지하 소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추수감사절 직후 눈 내리는 저녁시간이었지만 극장은 가득 찼다. ‘마더’의 단원은 총 8명인데, 여자 셋에 남자가 다섯이고 모두 20대나 30대였다. 무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이 흰색 접이의자 6개만 달랑 놓여 있었다. ‘마더’의 공연은 즉흥극계에 ‘헤롤드’로 알려진 형식의 극이었다. 배우들은 자신이 어떤 인물을 연기할 것인지, 어떤 플롯을 펼쳐 나갈 것인지 등에 대한 생각을 비운 채 무대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객석에서 아무 제안이나 불쑥 받아 한 순간의 협의조차 없이 백지 상태에서 30분짜리 극을 만들어간다.
즉흥 코미디는 ‘순간 포착’이 어떤 식의 사고인지를 잘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거기에는 어떤 종류의 대본이나 플롯의 도움 없이 순간적인 감각만으로 매우 복잡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즉흥극이 배우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솔직히 말하자면- 무시무시하게 만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전통적인 연극에는 적어도 체계가 있다. 모든 말과 동작이 대본에 낱낱이 쓰여 있다. 따라서 배우들은 누구나 예행연습을 해야 하고, 그 옆에는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어떻게 연기하라고 이야기하는 책임 감독이 있다. 즉흥극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것은 임의적이고 무질서해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무대 위에 올라가 즉석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내야만 할 듯하다.
그러나 진실은 다르다. 즉흥극은 절대로 임의적이고 무질서하지 않다. 예컨대 당신이 ‘마더’의 출연진과 한 자리에 앉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그들이 어릿광대 같고 충동적이고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 당신이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상상했던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진지하고, 심지어 어리숙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매주 모여서 긴 시간 동안 연습을 하며, 공연이 끝날 때마다 무대 뒤에 모여 서로의 연기를 냉정하게 비판한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연습을 할까? 즉흥극은 일련의 규칙이 적용되는 예술형식이며, 배우들은 자신이 무대에 섰을 때 무대 위의 모든 이들이 반드시 규칙을 따라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일이 농구 경기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마더’의 배우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는데 더없이 적절한 비유다. 농구는 몇 분의 1초를 다투는, 자연발생적인 판단으로 가득한 복잡 미묘하고 속도감 있는 게임이다. 그러나 자연발생적인 판단은 모든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슛하고 드리블하고 패스하고 달리는 플레이를 거듭 반복하며 완성해 가는 훈련- 에 참여하고 코트 위에서 세심하게 규정된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는 즉흥극의 귀중한 교훈이기도 하다. 자연발생성이란 결코 제멋대로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논리적인 문제에서는 생각을 설명하는 일이 해답을 찾는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섬광 같은 통찰력을 요하는 문제는 다르다. 심리학자 조나단 스쿨러는 말한다. “스포츠에서 과정을 분석하면 오히려 무력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과정을 반추하기 시작하면 당신의 능력은 흐름을 잃고 잠식당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절차에 취약한, 유동적이고 직관적이며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유형의 특정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통찰과 본능을 비상하게 도약시킬 능력이 있다. 얼굴을 기억에 담을 수 있고 순식간에 퍼즐을 풀 수도 있다. 그러나 스쿨러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 모든 능력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취약하다는 점이다. 통찰은 머릿속을 환히 밝히는 백열전구가 아니다. 그것은 쉽게 꺼져버릴 수도 있는 깜박이는 촛불이다.
첫째, 정말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의사결정은 신중한 사고와 본능적인 사고의 균형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보브 골롬이 위대한 자동차 세일즈맨일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의 의사와 필요와 감정을 한눈에 직관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과정에 제동을 걸어야할 때, 즉 특정한 유형의 순간적 판단을 의식적으로 물리쳐야 할 때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둘째, 좋은 의사결정에는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존 고트먼은 복잡한 문제를 매우 단순한 요소들로 분해했다. 극히 복잡하게 뒤얽힌 관계나 문제도 밑바닥에는 식별 가능한 패턴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의사결정자들에게 정보를 너무 많이 주면 핵심을 가려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다시 말해 좋은 결과를 내는 의사결정자가 되려면 좋은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
스피드데이트를 연구한 시에나 이옌가르를 기억하는가? 한번은 그녀가 또 다른 실험을 진행했다. 일단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의 고급 식품점 드래거즈에 시식대를 차리고 그 위에 다양한 잼들을 올려놓았다. 전통적인 경제 상식은 선택 가능성이 높을수록 물건을 살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한다. 소비자가 욕구에 딱 들어맞는 물건을 찾기가 더 쉽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이옌가르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잼이 6종인 부스에 멈춰 선 사람들은 30퍼센트가 잼을 사간 반면, 24종인 부스에 멈춰 선 사람들은 겨우 3퍼센트만 잼을 사갔다. 이유가 무엇일까? 잼을 사는 것은 순간적인 결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난 저걸 사고 싶어.’하고 자신에게 속삭인다. 그런데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즉 무의식이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면 모든 것이 마비되어 버린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순간적인 판단은 취약하다. 순간적인 판단을 보호하려면 그 취약성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케나의 딜레마: 원하는 것을 묻는 올바른 방법
정말 음악을 아는 사람들, 이를테면 레코드 라벨을 찾아다니고 클럽에 가고 음악 비즈니스를 잘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록 음악가 케나를 사랑한다. 그들은 그의 노래를 한 곡 듣는 순간 야아! 하고 외치게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케나의 노래를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이 사람은 사람들 -음악을 구입하는 청중들- 이 좋아할 부류의 아티스트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케나가 문제에 부딪히는 지점이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할 것 같은 본능, 그것을 입증하는 순간 어떤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케나의 앨범은 뉴욕 음반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간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업계의 일반적인 관행에 따라 세 차례에 걸쳐 외부 시장조사 회사에 넘겨졌다. 결과는 비참했다. 소비자 조사 결과들이 종합되는 순간, 한때 유망하던 케나의 경력은 느닷없이 진창에 빠져버렸다. 라디오 방송망을 타려면 대중이 그를 좋아할 거라는 확고한 증거가 있어야 했는데 그 증거가 없었다.
사람들은 타인이 그들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보이는 신비롭고 강렬한 반응을 포착하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영화나 자동차나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한결같이 타인이 자기 제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가. 케나를 사랑하는 음악계 인사들이 본능적인 감정대로 행동할 수만은 없었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다.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본능적인 감정은 너무나도 신비롭고 너무나도 불확실하다. 케나의 음악이 시장 조사자들의 평가를 받은 것도 직접 물어보는 것만이 소비자들의 느낌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게 과연 진실일까? 대중이 록 음악 하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내는 일 정도는 무척 쉬워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또 포커스 그룹이나 여론조사 직원들이 늘 이런 사실에 민감한 것도 아니다. 케나의 음악이 얼마나 좋은 음악인가 하는 문제의 진상에 접근하려면 순간적인 판단의 복잡 미묘한 내부를 깊숙이 파고들어가야 한다.
20세기 마케팅계의 걸출한 인사인 루이스 체스킨이 만들어낸, 이른바 감각 전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는 사람들이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를 때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제품의 포장에서 받은 느낌이나 인상을 제품 자체로 전이시킨다고 확신했다. 달리 표현하면 대부분 -무의식 차원에서는- 포장과 제품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체스킨이 보기에 물건은 포장과 제품의 결합체였다. 포장이 맛을 상쇄할 수는 없다. 제품 자체의 맛은 굉장히 중요하다. 요지는 무언가를 입에 넣고 순간적으로 맛을 판정할 때, 우리는 맛봉오리와 침샘의 반응뿐 아니라 눈과 기억과 상상에도 반응한다는 것이며, 한 차원만 보고 다른 차원은 무시하는 일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카콜라의 ‘뉴 코크’ 오류는 가장 악명 높은 사례다. 우리는 브랜드 이미지, 캔, 심지어 로고의 고유한 빨간색까지 코카콜라에 대해 가진 무의식적 연상 일체를 코카콜라에 대한 감각에 전이시킨다. 시장 검증자들은 노래 한 곡 혹은 일부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그 반응만 살피면 음반 구입자들의 느낌을 알 수 있다고 가정했다. 다시 말해 음악 애호가라면 몇 초 만에 신곡을 ‘얇게 조각내어’ 살필 수 있으리라 생각한 셈인데, 물론 원리상으로는 맞다. 그러나 얇게 조각내어 살피는 일은 정황을 감안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어떤 커플의 결혼생활을 빨리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탁구를 치는 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다. 그들이 자신들의 관계와 연관된 어떤 일을 논의할 때 관찰해야 한다.
케나를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들은 한결같이 정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록시와 ‘노다웃’ 콘서트에 온 사람들은 눈으로 그를 생생하게 보았다. 크레이그 캘먼은 자기 사무실, 바로 눈앞에서 케나의 노래를 들었다. 프레드 더스트는 자신이 신뢰하는 동료가 길길이 흥분하는 모습에서 케나를 보았다. 케나를 계속 불러냈던 MTV 시청자들은 이미 그의 비디오에 매료되어 있었다. 결국 아무런 부가 정보 없이 케나를 판정하는 것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펩시와 코카콜라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모금 블라인드 테스트 사례에서 첫인상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콜라란 눈을 감고 한모금 마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모금 블라인드 테스트는 콜라를 얇게 조각내어 살피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처음 볼 때 싫은 영화들이 있는데 그 영화들은 2~3년 뒤에도 미움을 받는다. 나쁜 영화는 언제나 나쁜 영화다. 문제는 싫다고 느껴지는 것들 중에 단지 별나게 생겼다는 이유로 그 범주에 들어가는 제품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신경을 돋운다. 실제로 좋은지 알려면 시간이 조금 걸린다.
도웰은 말한다. “제품 개발에 종사하는 사람은 자기 물건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그 제품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짧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가 어렵습니다. 소비자들은 그때 그 자리에서 그 물건을 경험합니다. 역사도 전혀 모르고, 그 미래를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뭔가 지금까지의 것과 매우 달라 보이는 물건은 더욱 그렇지요. ‘못 생겼다’는 말은 어쩌면 ‘다르다’는 뜻의 대용이었던 거지요.” 이게 바로 시장조사의 문제점이다. 나쁜 것과 그저 다른 것의 차이를 짚어내기에 너무 무딘 방법일 수도 있다.
여백을 두고 마음을 읽어라
다른 사람에 대해 내리는 판단과 다른 사람한테서 받는 인상은 신속한 인식의 가장 흔한 형태다. 우리는 깨어 있는 모든 순간, 눈앞에 있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느낌을 받았는지 끊임없이 예견하고 추측한다. 사실 당신은 이런 결론들에 도달하기 위해 내가 하는 어떤 말도 들을 필요가 없다. 그것들은 순간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렇듯 상대의 동기와 의도를 추론하는 행위는 얇게 조각내어 관찰하기의 전형이다. 미묘하고도 순간적인 단서들을 포착해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인데, 이만큼 기본적이고 자연발생적인 충동도 거의 없거니와 대개 이를 특별히 힘들이지 않고도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 마음 읽기의 착오는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무수한 언쟁과 불화, 오해, 반감의 뿌리 저변에 바로 그것이 있다. 이런 착오들은 매우 순간적이고 불가사의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길이 없다.
우리가 마음 읽기를 이해하게 된 것은 많은 부분 비범한 두 과학자 실번 톰킨스와 폴 에크만 덕분이다. 두 사람은 사제지간으로 톰킨스가 스승이다. 무엇보다도 톰킨스는 얼굴이야말로 -심지어 말의 얼굴까지도- 내면의 감정과 동기에 대한 귀중한 단서라고 믿었다.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그는 우체국에 걸어 들어가 지명 수배자 벽보를 훑어보고 얼굴 사진만으로도 그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에크만이 톰킨스와 처음 만난 것은 1960년대 초였다. 에크만은 당시 대학원을 갓 나온 젊은 심리학자로서 얼굴 연구에 흥미가 있었다. 그는 궁금했다. 과연 인간의 얼굴 표정을 관할하는 일반적인 법칙이 존재할까?
톰킨스는 그렇다고 믿었지만 심리학자들은 대부분 반대였다. 표정은 문화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당시의 통념이었다. 다시 말해 학습한 사회적 관습체계에 따라 얼굴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에크만은 어느 견해가 옳은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해 일본, 브라질, 아르헨티나, 심지어 극동 정극에 사는 오지 종족까지 찾아다니며 갖가지 독특한 얼굴을 가진 남녀 사진을 찍어 날랐다. 그리고 놀랍게도 찾아간 곳이면 어디에서나 온갖 표정들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톰킨스가 옳았던 것이다.
에크만과 그의 조수 프리즌은 얼굴 표정 분류법을 창안하기로 결심했다. 에크만과 프리즌은 마지막으로 모든 조합들과 이를 읽고 해석하는 규칙들을 한데 모아 FACS, 즉 얼굴작동 부호화시스템을 만든 다음 500쪽짜리 문서로 집대성했다. 이 FACS를 완전하게 숙달하려면 여러 주가 걸리는데 전 세계에서 이를 연구 목적으로 이용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500명뿐이다. 그러나 일단 시스템에 숙달되면 사람들이 서로 눈을 들여다보며 주고받는 메시지에 대해 범상치 않은 통찰을 얻게 된다. 에크만이 한 이야기의 요지는 감정 면에서 얼굴만큼 풍부한 정보원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훨씬 더 대담한 주장 -표정이야 말로 마음 읽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중심 고리의 하나라는 주장- 을 펼쳤다. 우리 얼굴에 나타나는 정보가 마음속에서 진행되는 어떤 일의 신호를 넘어 어떤 의미에서는 그 일 자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결과들은 믿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당연히 마음으로 감정을 느낀 후에야 그 감정을 얼굴에 표현하거나 혹은 표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얼굴을 감정의 부산물로 여긴다. 그렇지만 이 연구는 그 과정이 반대일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얼굴에서 감정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얼굴은 내적 감정의 이차적 게시판이 아니다. 얼굴은 감정의 대등한 파트너다. 에크만이 사실적인 감각으로 기술한 모든 것들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얇게 조각내어 관찰하는지에 대해 생리적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나 사회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단서들이 바로 눈앞의 얼굴이나 형세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생명을 위협받을 경우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범위와 양을 극적일 만큼 제한한다. 소리와 기억과 보다 넓은 사회적 이해 따위는 눈앞의 직접적인 위협에 대한 자각을 고조시키기 위해 망각의 제물로 바쳐진다. 우리는 대부분 압박을 받으면 지나치게 각성하고, 일정 수위를 넘으면 몸이 너무 많은 정보원을 차단하면서 스스로 속수무책 상태에 빠뜨리고 만다. “시간이 없으면 가장 낮은 질의 직관적 대응을 하기 쉽습니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결정을 내리는 상황이 되면 대부분 고정관념과 편견, 심지어 지지하거나 믿지 않는 관념의 인도를 받기 쉽습니다.” 얇게 조각을 내어 관찰하는 우리의 능력, 순간적인 판단 능력은 아주 비상하다. 그러나 의식 속의 거대한 컴퓨터조차도 제대로 작동하려면 순간이나마 시간이 필요하다. 폴게티박물관의 쿠로스 상을 판별한 미술 전문가들도 시속 9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 안에서 조각상을 흘끗 스쳐봤다면 진위를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말로 긴박한 상황에서는 극단적인 각성을 피할 수 없을까? 마음의 눈이 멀 수밖에 없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특정한 종류의 훈련을 거듭 반복하고 여기에 실제 세계의 경험이 결합되면 경찰이 격한 충돌에 대응하는 방식도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마음 읽기 역시 훈련으로 증진할 수 있는 능력이다.
편견의 눈을 감으면 세상이 바뀐다
클래식 음악의 세계, 특히 유럽 본고장은 극히 최근까지도 백인 남자들의 영역이었다. 여자는 남자만큼 연주할 수 없다는 믿음이 지배했다. 힘도 약하고, 자세도 안 돼 있고, 특정 악기를 다룰 수 있는 탄력도 부족하다는 거였다. 입술도 다르고, 폐도 튼튼하지 못하며, 손도 더 작았다. 그것은 편견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실인 듯했다. 그러나 지난 몇십 년 사이, 클래식 음악계는 혁명을 겪었다. 맨 처음 미국에서 오케스트라 음악가들이 자신을 정치적으로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오디션 절차의 공식화였다. 위원회와 지원자들 사이에 막이 드리워졌고, 오디션을 받는 사람이 목을 가다듬거나 식별 가능한 어떤 소리를 낼 경우 -예를 들어 구두를 신고 카펫이 깔리지 않은 마룻바닥을 밟을 경우- 퇴장시킨 후 새로운 번호를 부여했다. 이런 새로운 규칙들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오케스트라가 여자를 채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1960년대 중엽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서 블라인드 오디션(blind audition) 도입 싸움을 이끌어온 메트 오페라의 튜바 연주자 허브 웩슬블랫은 회상한다. “새로운 규칙이 적용된 첫 오디션 때였죠. 우리는 4명의 바이올리니스트를 구했는데 선발된 사람이 모두 여자였어요. 전에는 꿈도 못 꿨던 일이지요.” 결국 클래식 음악계는 스스로 순수하고 강렬한 첫인상이라고 생각했던 것 -누군가의 연주를 보이는 대로 듣는 것- 이 사실은 가망 없을 정도로 오염된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경험한 한 베테랑 음악가는 말한다. “나는 장막이 없는 오디션을 여러 차례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선입견을 갖게 되더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눈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리 없지요.”
클래식 음악의 혁명에는 커다란 교훈이 하나 있다. 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지휘자들은 자신들의 순간 판단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대부분 자신의 신속한 인식 능력을 조심성 없이 다루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첫인상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거나, 아니면 정확한 의미를 모른다. 그래서 그것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신속한 인식 능력을 신중하게 다루는 것은 우리 무의식의 산물을 변화시키거나 훼손하는 미묘한 영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의미다. 우리는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너무 자주 묵인한다. 우리는 무의식에서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무언가를 우리 스스로 조절할 만한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충분하고 신속한 인식이 일어나는 환경만 조절하면 신속한 인식도 조절할 수 있다.
Epilogue
순간 판단을 잘 하기 위해선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판단에 필요한 경험을 쌓는 것이다.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판단의 경험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정보를 축적시키고, 축적시킨 정보와 경험을 빠른 속도로 사용해 보는 것이다. 경험 없이 순간 판단에 기대는 건 매우 조심해야 할 사항이다. 순간적인 판단은 어떤 분야에 있어서 특별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정말 특별한 것이다. 또한 본능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나쁘거나 잘못된 것들을 하지 않도록 막아준다. 오케스트라 채용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장막을 침으로써 판단을 방해하는 장막을 걷어낼 수 있고, 이것은 순간 판단의 효율성을 높여 준다. 판단을 잘하고 싶다면,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에 개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