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나 수행.. 이런 것들과 별개로(꼭 별개인 것만은 아니지만..)
사람 사는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저는 젊을 적, 책에서 본 이런저런 모습의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이상적인 도인의 모습이죠)
부동의 마음으로
탐욕과 성냄이 없고
세상을 꿈처럼 관조하는.. 그런 사람이요.
인간에게 의미있는 유일한 길은
위와 같은 혹은 유사한 모델을 실현하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당시에도 이런 얘기들이 종종 들려왔습니다.
ㅡ번뇌 즉 보리
ㅡ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
ㅡ드러난 법에서 끝장낸다
ㅡ끊어내려는 그 마음이 문제다.
ㅡ 기와를 갈아 거울을 만드려는가.
ㅡ보살은 탐진을 떠남이 없다. 등등..
"아니..번뇌, 탐진 등은 없애야 할 장애인데
몬소리야.
중생이 곧 속박이니깐 중생을 벗어나야지,
갈고 닦아서 깨끗해져야지,
무슨 이도저도 아닌 소리야..."
라고 생각했죠
이런 얘기도 들려왔습니다
ㅡ 이상적 모델에 자신을 끼워맞추는 박제된 삶을 살지 마라.
ㅡ 자신의 길을 실현하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위대한 성현들이 제시한 <정해진 길과ㅡ정해진 모델>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중생으로 계속 비비라고?"
"말이 좋아 '자신의 길'이지, 그냥 탐진치 무더기를 받아들이란 말 아냐?"
아무튼 그렇게 다 무시하고
그 길로 쭉 가서..
대강 흉내를 낼 정도는 이뤘고
나름 만족스럽기도 했습니다.
(불교, 외도 이런것과 상관없이요)
그렇게 수 년을 살다가..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지금 코스프레를 하고 있구나..
이게 박제된 삶이구나..
뱁새가 황새 흉내를 내고 있구나.."
방문객님의 '자기를 세워라'와 다른 맥락일 수 있지만,
말을 좀 빌려쓰자면..
그 때 '자기를 세운다'는 말이
제 나름의 맥락으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뱁새로서, 중생으로서..
나라는 몸ㅡ마음 복합체의 조건지어짐..
개성, 기질, 지향, 바람을 다시 들여다보고
거기에 발맞춰 방향성을 재편성했습니다.
(긴 시간에 걸쳐서요)
예전에 그렇게 없다 없다 했던..
나라는 조건지어짐의 총체를,
이제는 그 전부가 <나>라고 여깁니다.
뱁새 수준에서의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것인지,
퇴보해서 중생의 바다에 다시 처박혔는지,
제가 알 도리는 없지만요
지금이
예전 황새 코스프레하던 시절보다
비할 수 없이 가볍고 자유롭습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밀어내고 당김
여지없이 날라오는 첫번째 화살
항상 바뀌지만 언제나 함께하는 대상ㅡ법ㅡ번뇌들
속에서.. 저는 좋은 것 같습니다.
나라는 조건지어짐과 함께 할 때 드러나는 행복이 있습니다. (비불교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ㅡㅡㅡ
법무아님이 이상적 모델로 향하는 지향을 종종 언급하셔서, 제 얘길 좀 적어봤습니다.
이 길이 수승하다거나 정답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구요(그걸 누가 알겠슴미까..)
이런 길도 있다..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오후 반차 쓰고 빈둥거리는 김에
넋두리같은 글을 적었네요. -()-
첫댓글 저나 황벽님이나 아직 위대한 수행자가 되진 못했으니 누구 말이 옳을진 불교의 역사적인 혹은 현대의 위대한 수행자들이 남긴 글과 말을 기준으로 삼으면 됩니다. 참고는 할지언정 적어도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경전을 자의적 해석으로 풀이한 글들을 레퍼런스로 삼진 마세요.
그렇죠,중생들 끼리 오가는 논담에서 뭔 정답이 있을수 있겠어요
현재 시점에 스스로에게 끌리는(현재의 심정적 조건에 부합하는) 컨닝할 모델을 하나 정해 놓고 찔러나 보는거죠
컨닝이라고 하니 상표도용,짝퉁 떠올리며 불법(佛X,不O) 이라고 오해는 하지 말자구요
컨닝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죠...컨닝 페이퍼를 미리 준비 하거나...남의 걸 보고 따라 하거나 간에...
수행에 있어서도 시험 치르는 것과 다를게 없을 겁니다
고타마 싯다르타 조차 컨닝 안 하고 완벽하게 혼자 힘으로 시험을 치른건 아니죠
거 뭐시기냐 이름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수정주의자 들인 울랄라(?)와 웃다까를 따라 무소유처와 비상처를 배우지요
그리고 성에 차지 않아 고행주의자인 발기빠(?)를 따라 고행에 들어갑니다
그 후 뼈와 살이 붙을 정도로 앙상하게 남은 몸으로 네란자라 강에서 고행과 아듀하며 몸을 씻고 겨우 강가로 걸어 나오죠
강가에 앉자 있던 싯달타는 지나가던 수자타란 여인이 바친 죽을 받아 먹고 몸과 마음을 회복한 후 드디어 치른 시험에서 아라한과 고시 패스를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컨닝도 하고 협찬도 받고 해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일대사가 완성 됐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우리네 중생들이야 뭐.....
발심을 해서 수행이건,고구마건 뭔가를 하려면,기존의 발상 중에 하나를 골라 잡아 시작 하는수 밖에 달리 방도가 없겠죠
컨닝할 페이퍼를 만들건,훔쳐 볼 모델을 선정하건 간에...그것도 일종의 실력이고,운도 따라 줘야 하겠구요
암튼 각자의 이상형에 맞는 캐릭터를 잘 선정해서,고시 패스 까지는 아니라도 7급...아니 9급 정도 까지는 득급 하시길...^^
아니 다들 글을 정말 빨리들 올리셔가지고..
저는 뭐 하나 이야기하려고 하면 부연설명이 길어져가지고..
구경만 하다가 다 지나갔네요.
없음의 체험과 없음의 산냐..
꿈없는잠에서도 아는 식..
족첸과 입단, 티벳 밀교의 정수(?)
비유비무에 의지하여 사는 것의 과보..
탐진치..
화엄이 흥해서 좋네요.
불자라고 자처하고, 비로소 불상에 절할 수 있게 된 것이...발을 담그고 10년이 좀 넘어서니까요.
이제 와서 돌아보면, 인생을 결정하는 일에... 뭐... 10여년은 별로 긴 시간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싸움질이라 여러모로 마음 쓰여서요, 평소 안적던 부분들도 좀 적었는데... 뭐... 착안점이 있었다면 좋겠네요.
황벽님이 가끔 씩 마하라지 영감님 말씀을 하셔서 생각나는 김에 조금 언급을 해봅니다
그도 일종의 모델로서 지금 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해 컨닝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요
그가 강조한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쟌을 통한 신심의 고취와 함께 명호,만트라 염송을 통한 길 입니다
두번째는 "내가 있다는 앎"을 통해 나아가는 길 입니다
첫번째 길은 마음이 비교적 단순하고,믿음을 고양하기 쉬운 스타일의 사람들에게 권장되고...
두번째 길은 그외 모든 유형의 사람들에게 제시 됩니다
첫번째 명호 염송에서는 입으로 시작하여 내면으로,내면 염송에서 내관(內觀) 으로 나아 갑니다
의식적으로 애써 염송하지 않아도,명호만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단계가 명호(만트라) 입문의 시작입니다
두번째 길에서는 내가 있다는 느낌(감각)에 주의 하라고 가르칩니다
아 물론 그 말은 "내가 있다는 느낌" + "앎".....을 말 합니다
여기서의 "있다"도 고정되어 있는게 아니라,내면으로 침잠 할수록 달라진다고 하지요
"내가 있다" "있다" "미세하지만 뭔가가 있다"...등등에서..."있다"가 사라지는 단계까지 나아 갑니다
여기서 그가 한 말 중에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내가 있다는 느낌"이 없으면 앎도 없고,아는자도 있을수 없다고 하지요
그리고 불필요한 말을 줄여서 "있다는 앎"으로 더욱 간소하게 표현 합니다
굳이 "내가"라는 말을 붙힐 필요도 없다고 하죠
아뭇튼 마하라지의 가르침은 마하리쉬나 기타 힌두 성자들과 결이 다른 부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불교를 추종 한다고 해서 저는 그 누구에게도 불교를 믿으라고 얘기 한 적이 없는데요
믿고 따라 행 하는건 자유니...
단지 각 종교마다 고유한 개성이 있고,차이(다른 맛)가 있을수 밖에 없기에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짬뽕에 섞어찌게를 만들거나...
타 종파 사람들을 내려다 보듯 격하 하는 행동을 할 때는 같은 불교도인 경우에도 따끔하게 한 마디 씩 하죠
예를 들면 외도는 상수멸에 못 들어가고,색계선정은 불교만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얘기 등등요
이런 허튼 얘기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에 참 깝깝했던 적이 있었죠
태어날때 불교도와 외도의 몸이나,의식구조가 완전 딴판으로 태어나기 전에는 가능하지 않은 헛소리죠
제가 마하라지 책을 처음 접한게 90년대 초중반 쯤이니 벌써 30년이 흘렀네요
제목이 담배 가게 영감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