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우는 여인
최재우
청솔문학작가회에서 문학기행으로, 하동에 있는 박경리문학관을 찾았다. 오월인데도 칠팔월의 무더위처럼 햇살이 따갑다. 문학관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박경리동상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넉넉한 투피스 양장을 입고, 목도리를 둘렀다. 알이 넓은 안경을 쓰고, 평사리 너른 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약간 구부정한 모습으로 비스듬히 서서 책을 펴들고 있는데, 동상 위로는 파란 바닷물 같은 하늘이 보이고, 군데군데 하얀 뭉게구름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그시 동상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선생이 살았을 적에,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은 한 장의 흑백사진이었는데, 처음 그 사진을 보았을 때, 내 마음에 잔잔한 울림이 있었다. 수수한 단색 옷을 입고, 등을 보인 채 앉아있다. 반백의 헝클어진 머리다. 방금 전에, 피운 뿌연 담배 연기가 공중에 또아리를 틀고 서리어 있다. 팔꿈치 끝 손가락에는 반쯤 탄 담배 한 개비가 끼워져 있다. 옆으로 반쯤 고개를 돌린 선생의 얼굴에서 노숙한 표정이 읽어진다. 고단한 삶의 산전수전 다 겪고, 어느 싯귀처럼, 봄여름 지나 거울 앞에 앉은 누님 같은 담담함도 느껴졌다. 지리산 같은, 섬진강 같은 소설 ‘토지’의 감명과 여운을 아직도 갖고있는 나에게, 선생의 담배 피우는 모습은, 어떤 도(道)를 수행하는 문인의 아우라(aura)로 느껴졌다. 저 담배를 피우면서 선생이 품었을 어떤 고뇌가, 혹 어떤 마음의 응어리가 고스란히 대하소설 토지로 녹아들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험난한 역사의 파고를 넘는 최서희, 안타까운 사랑에 스러지는 무당의 딸 월선이...는, 문학적 상상의 연기가 피워낸 소설의 또아리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선생은 6.25 사변 난리통에 남편과 일찍 사별한다. 얼마 되지 않아, 아들마저 잃는다. 그때가 스물다섯 살 무렵. 견딜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슬픔의 나락에서 빠져있을 때, 누군가 담배를 피워보라고 권하였다고 한다. 예부터 담배는 근심을 잊게 해준다고 망우초(忘憂草)라고 하고, 또 과부들의 외로움을 달래준다고 과부초 라고도 하였단다. 아들을 잃고, 남편을 잃고, 글자 그대로 시퍼런 청상과부가 되어 어린 딸 하나 의지한 채 살아가는 선생에게 담배는 한(恨)을 삭이고, 외로움을 달래는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담배는 선생의 평생 벗이 되었으리라. 두 번에 걸친 암 투병 중에도, 선생은 벗을 버리지 못하였다.
선생은, 수십 년 세월 동안 토지라는 소설에 매여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스스로 글 감옥에 갇혔다. 대하소설(大河小說)을 끊임없이 흘러가게 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뇌와 상상의 날개가, 그리고 생각의 연습이 있었겠는가. 푸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것은 꼭 하얀 담배 연기뿐만은 아니었으리라.
비밀의 자식 환이를 낳자마자 에미로 젖 한번 물리지 못하고 절을 빠져나오는 윤씨부인 이야기를 쓸 때에는, 당신이 교통사고로 잃었던 아들 생각에 깊은 시름의 담배를 피워 물었으리라. 원치 않았으나, 한때 불덩이 같은 사랑을 나누었던 동학 대장 김개주가 전주 감영에서 효수(梟首)되었다는 스토리를 쓸 때에는, 그도 서대문형무소에서 젊은 생을 마감한 남편 생각에 설운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으리라.
나의 할머니도 담배를 많이 피우셨다. 갓난쟁이 때부터 나를 등판에서 길렀다는 할머니는 한(恨)이 많으신 분이셨다. 대학생 시절 방학이 되면, 자주 큰집엘 갔다. 여러 날 할머니와 한방을 썼다. 할머니와 맞담배를 하고 있노라면, 하도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은, 또 그 얘기들이 할머니의 한숨 서린 담배 연기와 함께 방안에 퍼진다.
육이오 난리 때, 니 삼춘은 니아부지 대신에 의용군으로 끌려가 대구 팔공산에서 죽었더란다. 니가 이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이지. 막내 아재는 까막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빨간돌에 다리를 찌어, 골방에서 앓다가 죽었어. 똥오줌 다 받아냈니라. 니 막내 고모는 부산 가서 살다가 바다고기 잘못 먹고 앓다가 어린 것 둘만 남겨놓고 죽었더란다. 할아부지하구 기차루 부산에 내려가 장사를 치루고 올라왔지... 늘 듣는 할머니의 눈물 마른 한숨과 사설이 싫었다.
스물세 살 때, 교사로 발령을 받고 첫 월급을 타서 할머니께 최고급 담배 ‘거북선’을 서너 보루 사다 드렸다. 거북선 한 개비에 불을 붙여드렸더니, 한 모금 빨으시더니 싱겁다고 하시면서도, 그래 니가 선생님이 되었냐고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한참을 문학관에서 머물렀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 내려오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까보다 더 많은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하늘을 반쯤 가렸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이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무상한 것이라고 한 어느 고승의 시가 생각났다. 삶의 희노애락도,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가, 세월의 바람에 밀려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리.
내 언젠가, 파란 바다가 보이는 통영의 박경리 선생 묘소엘 가보아야겠다. 묘지석에 담배 한 개비 불 붙여 놓고, 선생이 남편과 아들을 잃고 썼다던 ‘사마천’ 시를 읊으면서 선생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다. 올 추석에도 할머니 산소에는 가야 하리. 상석에다 담배 한 개비 피워 분향(焚香)하리라. ‘이눔아 담에는 독한 담배 사오너라’ 하시던 먼 옛날의 잔소리를 또 듣게 되리라.
첫댓글 한참을 문학관에서 머물렀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 내려오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까보다 더 많은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하늘을 반쯤 가렸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이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무상한 것이라고 한 어느 고승의 시가 생각났다. 삶의 희노애락도,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가, 세월의 바람에 밀려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