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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9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중국 간쑤성 규모 6.2 강진으로 131명 사망 건물 15만채 파손
2023년 북한 ICBM 화성-18 미사일 발사
2022년 제트스키 국가대표 김성원 태국 월드컵대회 경기 중 추락 사망
2021년 청량리 시장 화재 점포 5곳 전소, 8곳은 일부 피해.
2021년 칠레 35세 가브리엘 보리치 세계 최연소 대통령 당선
2018년 미국 시리아 철군 선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0월 트위터에 "끝없고 우스운 전쟁에서 빠져나올 때가 됐다. 이익이 있는 곳에서만 싸울 것"이라며 시리아 주둔 미군 1000여 명의 철군을 발표했다. 미군이 빠져나간 시리아 북부는 미국과 함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토벌 작전을 펼친 세계 최대 유랑 민족 쿠르드족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곳이다. 트럼프의 발표 직후 미군 주둔 지역에는 터키군이 진주했다. 미군을 도와 독립국가를 건설하려던 쿠르드족은 하루아침에 터키의 공격을 받는 신세가 됐다
2016년 독일 베를린에서 대형트럭 크리스마스시장으로 돌진 테러 12명 숨짐.
2016년 터키 앙카라에서 터키 경찰관 출신 알튼타시가 안드레이 카를로프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 암살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헌법재판소는 12월19일 통합진보당에 대해 위헌 정당이라는 이유로 해산결정을 내렸다
통진당은 창당 4년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재판관 9명 중 8명이 통진당 해산에 찬성했다. 현재는 통진당 해산과 함께 소속의원 5명에 대해서도 의원직을 박탈하는 결정을 내렸다. 해산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헌재는 통진당의 핵심간부와 의원들이 과거 반 국가단체인 민혁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이들의 최종목표가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박근혜 새누리당후보 당선.
투표율 75.8%(16대 대선 이후 최고)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으로 과반(51.55%) 득표, 사상최다득표(1,577만3,128표)
2011년 서울시의회 서울학생인권조례 통과
2010년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 류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 4선 당선, 퇴진요구 시위 확산
2009년 뉴스위크 인터넷판 ‘올해 세상을 떠났지만 잊히지 않을 36명의 저명인사'에 김대중 대통령 선정
2008년 위장 귀순 이중간첩 이수근씨 무죄판결
위장 귀순한 이중간첩으로 몰려 지난 1969년 사형집행된 고(故) 이수근(당시 46세)씨에 대해 법원이 39년 만인 2008년 12월 19일 “이씨가 위장간첩이 아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씨는 1967년 3월 2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뒤, 1969년 1월 31일 위조 여권을 이용해 홍콩을 거쳐 캄보디아로 향하던 중 비행기 안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체포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죄 등으로 같은 해 7월 사형이 집행됐다.
이와 관련해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박형남)는 2008년 12월 19일 이씨의 암호문을 북한으로 보내는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21년을 복역했던 이씨의 처조카 배경옥(70)씨에 대한 재심(再審)에서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의 남한 탈출을 방조하고 돈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이 선고된 이씨의 외조카 김세준(61)씨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이씨의 사형 집행 목격자에 따르면 그가 ‘나는 북도 남도 싫어 중립국에서 살려고 했고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는 취지로 말한 점 등을 종합할 때 그를 위장 간첩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먼저 밝힌 후, 이에 근거해 배씨와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형식적으로는 배씨와 김씨 사건에 대한 재심이었지만, 내용면에서는 이씨가 위장 간첩이 아니었다는 점을 사법부가 인정한 판결인 것이다.
이씨는 1967년 귀순한 후 정착금을 받았고 각지에서 성금도 답지했다. 서울 미아동에 단독주택도 마련했고 당시에는 흔치 않던 코로나 승용차도 타고 다녔다. 1968년에는 서울 반도호텔에서 우석대 의대 교수였던 이모(당시 35세)씨와 결혼식도 올렸다. 부인 이씨는 1972년 미국으로 이민간 뒤 소식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이명박 한나라당후보 당선 10년 만의 정권교체
11,492,389표(48.7%) 얻어 사상 최대표차 당선, 투표율 63.0%로 사상 최저
2006년 김연아 국제빙상경기연맹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2003년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대량살상무기 포기와 조건 없는 국제사찰 발표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노무현 후보 당선
2002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노 당선자는 1201만2945표(48.9%)를 얻어, 1144만1116표(46.6%)를 얻는 데 그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57만여표차로 앞서 승리를 결정지었다.
오후 6시30분쯤부터 시작된 개표는 초반 한때 이회창 후보가 앞서나갔으나 35% 개표가 끝난 밤 8시40분부터 역전되기 시작, 이후 노 후보가 계속 앞서나가 승리했다. 노 당선자는 16개 시·도 중 영남권과 강원도를 제외한 10개 시도에서 한나라당 이 후보를 앞섰다. 개표 결과, 1997년 15대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표의 동서 현상이 뚜렷했다. 이날 투표율은 역대 대선 중 최저치인 70.8%로 집계됐다.
노 당선자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정계에 입문한 이래 14년 만에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 ‘노풍’을 일으키며 민주당 후보를 따냈으며,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와의 후보단일화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로써 민주당은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다.
2001년 아르헨티나 비상사태 선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등 주요 도시에서 극심한 경제난과 생활고에 시달려온 주민들이 상점을 약탈하고 관공서를 점거하는 등 폭동을 일으켜 2001년 12월 19일 저녁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페르난도 데 라 루아(Fernando de la Rua) 대통령은 앞서 18일 밤부터 본격화된 소요사태가 19일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임에 따라 20일 0시부터 30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폭동이 발생한 지역의 근로자와 빈민들에게 우선 700만페소(약 90억원) 상당의 생필품을 지급하는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42개월째 경기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을 받기 위해 초긴축 재정정책을 추진, 진통을 겪어왔다. 결국 경제위기와 이로 인한 소요사태의 여파로 페르난도 데 라 루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12월 20일 임기 2년을 남겨놓고 중도 사퇴했으며, 소요사태로 인해 선포한 비상사태를 해제했다.
이후 헌법 규정상 48시간 이내 임시 대통령 선출 때까지 대통령직을 자동 승계한 상·하원 의장 등을 포함, 4명의 임시 대통령이 줄줄이 물러났다. 2002년 2월 1일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으로 페론당의 고참 정치인인 에두아르도 두알데 상원의원이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어 다섯번 째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2000년 손산 캄보디아 전 총리 사망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민주 지도자로 불리는 손산 전 총리가 2000년 12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89세였다. 청렴한 민주주의자로 캄보디아 국민의 존경을 받아온 손산은 크메르 루주와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에 대항해 10년간 무장투쟁을 주도했다.
1911년 프놈펜에서 출생한 손산은 1935년 북서부 바탐방주 지사를 지낸 뒤 1947년 민주당을 창당했다. 1967년~68년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 아래서 총리를 지냈으나 1970년 쿠데타가 일어나자 해외 망명길에 올랐다. 1975년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가 정권을 장악하자 파리로 거처를 옮겨 반공 게릴라단체인 크메르 인민민족해방전선 결성을 지원했다. 이때부터 태국·캄보디아 국경지대에서 크메르 루주 및 캄보디아를 점령한 베트남군 등을 상대로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1991년 캄보디아 내전을 종식시키는 파리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17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 1993년까지 유엔 감시 하의 국가최고위원회에서 일했다.
1998년 클린턴 美대통령 성추문관련 탄핵 결의안, 하원 본회의 통과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 대한 성추문 관련 탄핵 결의안이 1998년 12월 19일 하원 본회의를 통과, 상원 재판절차로 넘어갔다. 하원 본회의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표결을 실시하기는 지난 1868년 앤드류 존슨 대통령 이후 1백30년만이었다.
하원 본회의는 이날 탄핵사유 4개항 가운데 위증 관련 탄핵 결의안을 찬성 2백28대 반대 2백6표로, 사법방해 결의안을 찬성 2백21대 반대 2백12표로 각각 가결했고, 폴라 존스 재판 위증과 권력남용 부분은 부결했다. 최종토론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탄핵의 부당성을 강조했고 일부 의원들은 "공화당의 탄핵추진은 대통령선거를 뒤집으려는 쿠데타" 라고 강력 비난했다.
이에 반해 공화당 의원들은 "클린턴 대통령은 신성한 연방 대배심 증언에서 위증을 함으로써 미국의 법질서를 파괴했다"면서 성추문 사건에서 보여준 클린턴의 행위는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5년 국회, 12.12 및 5.18관련자 처벌을 위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 법안`의결
1994년 4개지역 민영 TV 방송국 가허가
1992년 김대중, 정치일선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
김대중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4대 대선 직후 의원직 사퇴와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 충격을 던졌다. 1971년, 1987년에 이어 3번째 대통령직에 도전한 그는 30년 정치 라이벌인 김영삼 후보에게 뒤진 것이 확정된 19일 아침 고별 회견을 갖고 40년 정치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유신과 동경납치, 광주민주화운동과 사형 선고, 미국 망명, 평민당 창당 등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은 말 그대로 현대 한국정치사였다.
그는 선언 당일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정치인은 마지막 물러가는 자리가 분명해야 추하지 않다’며 측근들의 철회 요청을 뿌리쳤다.
1990년 청룡영화상 17년 만에 부활
1987년 세종과학기지 기공식(남극 킹조지섬)
1986년 소련 사하로프 박사 유배지로부터 해금
1986년 독도 동남쪽 해상서 26명 탄 해풍호 실종. 표류어부 9명 구조 17명 실종
1984년 영국·중국, 홍콩반환협정 조인
영국 대처 수상과 중국 조자양 수상이 1984년 12월 19일 북경인민대회당에서 `홍콩문제에 관한 중국-영국 합의문서`에 정식 조인했다. 이로써 홍콩의 주권은 1997년 7월 1일을 기해 중국에 반환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아편전쟁의 결과 1842년 남경조약에 의해 홍콩이 영국에 할양되었고 1860년 북경조약에 의해서는 구룡반도 남단부가, 1898년에는 신계지구가 영국령으로 귀속되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반환교섭은 1982년 9월 대처의 중국 방문시 홍콩의 장래에 대한 논의가 시발점이었다. 그후 양국 주장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어 교섭이 난항을 거듭하다 이날 조인하게 됐다.
반환후의 홍콩은 특별행정구로 외교, 국방 이외에는 자주성이 부여돼 50년간은 사회, 경제 제도도 종래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며 `1국가 2체제`를 채택하기로 했다.
1984년 삼성전자 세계 최대 전자레인지 공장 준공
1982년 지리산 등산객 50명 조난
1981년 한국 수출실적 200억 달러 돌파
1980년 국방부, 일반예비군훈련 33세로 인하
1980년 국무회의,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개칭하는 중앙정보부법 의결
1980년 입법회의 방송광고공사법 의결
1978년 한국-모리타니 국교 수립
1975년 최규하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
1972년 간첩 최삼만 사건
1972년 유조선 Sea Star호 페르시아만서 충돌 전소
1968년 우정연구소 신설
1968년 대학입시 예비고사 처음 실시
대학입시 예비고사가 이날 전국 15개 지구 84개 고사장에서 처음 실시됐다. 이날 시험에서는 총 응시자 11만2천4백36명 가운데 대학정원의 150% 가량인 6만1천2백15명이 합격했다.
예비고사제는 1954년 잠시 실시됐던 국가연합고사, 5.16후 군사정부가 교육쇄신방안의 하나로 실시한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제 이후 다시 국가가 대학입시에 관여한 입시제도였다.
외국의 국가고시제도를 본 떠 마련된 이 제도는 대학의 질적 저하를 방지하고 고교교육을 정상화하며 대학교육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목적으로 실시되었으나 실행 이후 예비고사와 본고사의 병행 실시에 따른 수험생 부담 가중, 과열과외로 인한 가정경제 압박, 재수생 누적 등 여러가지 부작용이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예비고사제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폐지돼 졸업정원제를 배경으로 하는 대입학력고사로 변경됐다
1967년 공화당의 날치기예산안통과, 야당의원들 원내농성 시작
1966년 아시아개발은행 개점
1965년 프랑스 대통령선거. 드골 당선
1962년 한국-스위스 국교 수립
1962년 NATO 정상회담
1962년 한국-월남 무역협정 조인
1961년 전남 완도서 여객선 일진호 돌풍으로 전복 34명 익사
1960년 제3대 지방의회 의원 선거(시-읍-면의회 의원 선거) 실시
제3대 지방의회는 4.19 이후 제2공화국이 발족된 뒤에 구성됐다. 제2차 지방자치법 개정 때에 3년으로 단축된 의원의 임기가 다시 4년으로 환원되어 제2대 지방의회 의원의 임기가 1960년 8월까지 연장됐던 것인데, 1960년 4.19가 일어나 헌법이 개정되고 국정 전반에 걸친 대개혁이 단행됨에 따라 지방자치법도 1960년 11월 1일 대폭 개정되어, 제3대 지방의회 선거는 개정된 법률에 따라 시-도는 동년 12월 12일에, 시-읍-면은 12월 19일에 실시됐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종래의 관치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민주적인 요소가 대폭 강화되면서 시-도지사와 시-읍-면장은 물론 동-리장에 이르기까지 주민에 의한 직선제로 바뀌게 됐다. 지방자치 사상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직선된 자치단체장과 의회와의 불화, 의회의 파생적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민주적 지방자치의 이상을 살리지 못했다.
1961년 5.16으로 인해 제3대 지방의회는 불과 5개월의 단명으로 문을 닫았으며, 이후 우리나라 지방의회제도는 30여년이라는 긴 휴면기에 접에들게 됐다.
1959년 파리서 서방4개국 수뇌회의, 흐루시초프 소련수상에 동서수뇌회담 초청장 발송
1955년 수단, 독립 선언
1950년 NATO 이사회, 아이젠하워장군을 유럽통일군 사령관에 임명
1949년 대한청년단 결성
1948년 네덜란드, 인도네시아서 제2차 경찰행동
1946년 월남서 반(反)프랑스 해방투쟁 발발(인도차이나전 발발)
1945년 임시정부 환영 전국대회 개최
1944년 동아프리카에서 많은 화석을 발견한 케냐의 고생물학자 리차드 리키 출생
1932년 윤봉길 의사 순국
1932년 12월 19일 아침 7시27분,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형무소. 2명의 일본군이 10m 거리에서 목표물을 향해 조준사격자세를 취하자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사형수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검안의가 절명을 확인한 시각은 13분 뒤인 7시40분. 스물다섯의 청년 윤봉길은, 장제스 중국 총통의 말마따나 ‘중국군 100만 대군도 못한 일’ 을 해내고 이렇게 숨져갔다. 분이 안 풀렸는지 일제는 시신을 인근 쓰레기 하치장에 암매장한다.
8개월 전인 4월 29일 일본군은 상하이사변의 승전과 히로히토 일왕의 생일잔치인 천장절(天長節)을 기념해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윤봉길도 폭탄이 든 도시락과 물통을 들고 인파속에 숨었다. “장부가 집을 나가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 는 편지를 남긴 채 고향 예산을 떠난지 벌써 2년. 폭발음과 함께 상해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 대장과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2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일본 제3함대 사령관과 9사단장 등 군수뇌부 10여명이 크게 다쳤다. 자결에 실패한 윤봉길은 현장에서 체포돼 일본으로 압송됐다.
당초 일본군은 윤봉길을 훙커우 공원에서 공개처형하려 했으나 자칫하면 국제적인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고 그로 인해 국제여론이 비등해질 것을 우려, 일본 내 처형을 결정했다. 시신은 광복 후인 1946년 5월 순국 14년 만에 봉환돼 효창공원 묘소에 안장됐다.
1931년 조선혁명군간부 30여명 신빈(新賓)에서 일본군에 체포됨
1927년 장작림, 재(在)만주교포의 축출을 명령
1925년 이탈리아, 독신자들에게 세금부과
1924년 스페인 문학가 시피텔러 사망
1921년 상표등록규칙 공포(1922.1.11 시행)
1915년 프랑스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 출생
1911년 이상설 이철호 등,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서 권업회 조직
1906년 소련의 정치가겸 공산당 관료 브레즈네프 출생
1902년 영국의 연극.영화배우 랄프 리처드슨 출생
1900년 독일인 에케르트 초청해 군악대 편성
1894년 근대적 스키야 양식의 선구자 일본의 건축가 요시다 이소야 출생
1888(조선 고종25) 상해임정 국무위원·혁신당위원장·독립운동가 소해 장건상 태어남
1882년 거문고의 명인 이수경 출생
1878년 미국의 작가 바야드 테일러 사망
1877년 에디슨, 납관식 축음기 고안
1848년 영국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 사망
산업혁명이 초래한 비참한 사회상을 고발하면서도 늘 따뜻한 시각을 유지했던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1843년 12월 19일, 66페이지짜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했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5편의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가진자의 타락상을 고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마음을 열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10월에 하고, 6주만인 11월 중순경에 완성해 이날 출간될 만큼 속전속결로 씌어졌지만 이듬해 런던에서 5번이상이나 무대에 올려질 만큼 반응이 좋았다.
스크루지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독자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자린고비, 수전노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크루지가 마음을 고쳐먹고 새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결국 없는자에게는 희망을, 가진자에게는 반성의 메시지를 제시했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의 영국은 초기 자본주의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시기였다. 그 자신도 12살때부터 공장노동자와 사환을 전전하며 온몸으로 사회악과 불의를 체험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낙관주의와 진보에 대한 신념의 소유자였다. 그는 영국 BBC방송이, 100만명 이상이 참여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국인’을 조사 발표했을 때 41위에 올라, 비록 셰익스피어의 5위에는 못미쳤지만 그에 대한 영국인의 사랑이 여전함을 보여줬다.
1843년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발간
산업혁명이 초래한 비참한 사회상을 고발하면서도 늘 따뜻한 시각을 유지했던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1843년 12월 19일, 66페이지짜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했다.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5편의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가진자의 타락상을 고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마음을 열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10월에 하고, 6주만인 11월 중순경에 완성해 이날 출간될 만큼 속전속결로 씌어졌지만 이듬해 런던에서 5번이상이나 무대에 올려질 만큼 반응이 좋았다.
스크루지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독자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자린고비, 수전노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크루지가 마음을 고쳐먹고 새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결국 없는자에게는 희망을, 가진자에게는 반성의 메시지를 제시했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의 영국은 초기 자본주의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시기였다. 그 자신도 12살때부터 공장노동자와 사환을 전전하며 온몸으로 사회악과 불의를 체험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낙관주의와 진보에 대한 신념의 소유자였다. 그는 영국 BBC방송이, 100만명 이상이 참여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국인’을 조사 발표했을 때 41위에 올라, 비록 셰익스피어의 5위에는 못미쳤지만 그에 대한 영국인의 사랑이 여전함을 보여줬다.
1813년 영국의 물리학자 토마스 앤드루스 출생
1714년 러시아 탐험가 비투스 요나센 베링 사망
1136(고려 인종 14) 묘청의 난 끝남
1036년 중국 시인 소동파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