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7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한국에서 조카가 와서 다낭으로 여행을 왔습니다.
이 아침에 모든 만물을 만나기 전, 주님을 뵈옵고자 먼저 말씀 앞에 섭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이 하루가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밤새 오염된 나의 영혼을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삼아주소서.
주님만을 바라보오니 나의 영안이 오직 하늘로 향하여 하늘에 소망을 두기 원합니다.
나의 모든 것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습 1:14-2:3
제목 :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15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16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17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18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2:1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2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 나의 묵상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심지어 군사들조차 어찌할 수 없어서 목 놓아 슬피 운다.
그 심판의 날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이 극심한 날이며 황폐와 멸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흑암의 날로써 아무런 소망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에 사람들을 소경과 같이 만들어 앞을 보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행하게 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범죄함 때문이다.
그들의 피가 쏟아져 티끌같이 흩어질 것이며, 그들이 죽어 살이 찢기고 썩어 분토, 즉 똥과 같이 냄새나고 역겨운 상태가 될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고 신처럼 섬기던 돈과 재물, 즉 금이나 은조차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고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스바냐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수치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백성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을 향하여 한 곳으로 모이라고 촉구한다.
그들을 모이라고 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는 기회가 지나가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심판의 명령이 떨어져 회개의 기회가 겨와 같이 날아가기 전에 할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쏟아지기 전에,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리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경건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더욱 겸손히 주를 찾고 공의와 겸손을 구하여 주의 구원에 참여해야 한다.
유다 백성들은 히스기야 왕 때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는 것을 보았다.
그 때 히스기야 왕은 유다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유월절 예배를 회복하고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함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던지 일주일만 하면 되는 무교절 절기를 일주일을 더 연장하면서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기뻐하였다.
(대하 30:23) 온 회중이 다시 칠 일을 지키기로 결의하고 이에 또 칠 일을 즐겁게 지켰더라.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있었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백성들을 축복할 때 그 소리와 기도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이르렀다.
(대하 30:26-27)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기쁨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리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이르렀더라.
이 절기를 마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다 여러 성읍에 나아가 주상을 깨트리고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유다와 심지어 북쪽 이스라엘 지역의 온 땅에 있는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없애는 일대 영적 대 청소를 하였다.
(대하 31:1) 이 모든 일이 끝나매 거기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없애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자기들의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이랬던 유다 백성들이 히스기야가 죽고 므낫세가 왕위에 오르자 또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세월이 무려 므낫세 55년, 아몬 2년, 그리고 요시야가 8세에 왕위에 올라서 종교개혁을 단행하기까지 18년, 도합 75년간 동안 온갖 우상 숭배와 앗수르 사람들이 섬기는 일월성신의 형상과 하늘의 별들, 밀곰 숭배 등 타락을 일삼으며 살았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무사안일하게 술의 찌꺼기에 엉겨 붙은 자처럼 살던 자들에게 스바냐 선지자가 회개를 촉구하고 이에 도전받은 요시야 왕이 일대 종교개혁을 단행하면서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겨우 13년에 불과하였다.
요시야 왕이 죽은 후에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올랐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그 이후 유다는 영적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바벨론에 멸망당하게 된다.
이들이 바벨론에 멸망당하여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므로 그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에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죄를 짓는데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원주민과 통혼을 하면서 그들을 아내로, 며느리로 맞는 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그 죄에 방백과 고관들, 즉 지도자들이 더욱 앞장 선 것이다.
(에스라 9:1-2)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나라가 멸망당하고, 70년간이나 포로생활을 하고 돌아왔으면 이제 정신을 차리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골라서 하되, 그 일에 제사장이나 레위인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더욱 으뜸이 되었다는 것은 오늘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악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처럼 사람으로써는 도무지 소망이 없다.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 앞에서 살아날 자는 아무도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자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진노의 잔이 기울어지므로 환난과 고통이 순식간에 임하며, 황폐하고 멸망이 도둑같이 올 것이다.
그 날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캄캄하고 어두운 흑암의 구름으로 뒤덮인 날이다.
사람은 죄를 짓고자 하는 아담의 본성인 옛 사람이 있기에 그것을 죽이지 않으면 죄를 짓는데 정말 발 빠르게 움직인다.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
자신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속이는 자로써 무슨 소망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소망이 있다.
나는 스스로 죄를 씻을 수 없으나 오직 죄 없으신 주님은 그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셨다.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오늘도 살아서 능력으로 역사한다.
그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할 때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오염된 영혼은 깨끗하고 정결케 된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능력이요 보혈의 능력이다.
(시 32:3-5)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없다.
나는 십자가의 원수, 복음의 원수로 살았던 자이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십자가의 능력도 모르고, 복음도 몰랐으며 오히려 이 능력을 무시했던 자였다.
입술로는 예수가 구주임을 고백하고, 십자가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삶에서는 그런 능력이 전혀 나타나지도 않고, 기대도 하지 않는 자였던 것이다.
겉으로는 믿는 자처럼 행동하였지만,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복음과 상관없이 살아온 자였다.
죄짓고 그 죄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를 반복하는 지극히 종교적인 사람, 그저 종교인에 불과하였다.
불교인들이 죄를 짓고 그 죄를 상쇄하기 위하여 물고기나 자라들을 방생하는 것, 힌두교인들이 죄를 씻기 위하여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거나, 히말라야와 같은 높은 산에 차가운 얼음물 속에 들어가서 몸을 씻으므로 죄를 씻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그렇게 종교생활을 하였다.
남들이 볼 때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처럼 보였으나, 내 안에서는 끊임없는 환난과 곤고가 엄습하였다.
사역을 곧잘 했지만 사역을 마치고 나면 내 안에 모래알을 씹은 것과 같은 환난과 곤고는 끊이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사망의 증상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렇기에 이런 나의 실상 앞에서 항상 갈등하고 고민하였다.
그럼에도 문제의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내게 주어진 사역과 일은 열심히 하였다.
사역의 결과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하였다.
남들에게 인정도 받았다.
그런 나였기에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은 보아 넘길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이기고 내가 더 잘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이런 나의 모습은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그래서 부교역자들과 화합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는 사망의 증상인 환난과 곤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래, 큰 사역을 하고 나면 마음이 허전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듯 이런 환난과 곤고의 증상이 있게 마련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지내왔다.
그런 내게 주님은 복음을 알게 하시고, 복음을 통하여 말씀 앞에 나아가보니까 그곳이 바로 나의 무덤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말씀을 보아도 설교를 위해서 보았고, 내 유익을 위해서 보았으며,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말씀을 이용하던 나였다.
그러나 복음으로 계시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보는 자리로 나아가는 그곳이 바로 나의 존재적 무덤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나에게 상황적 무덤을 주셨지만, 나는 그것이 복음인줄 전혀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에게 닥친 고난의 상황을 해결해 달라고만 기도했었다.
그러나 말씀 앞에 서서 보니까 나는 정말 죽어 있는 자요, 나의 실존(失存)을 보게 된 것이다.
말씀은 양날의 검이 되어 나의 심장과 폐부를 찔렀다.
거기서 주님은 나를 심판하시고 대수술을 하셨다.
말씀이 나를 살리는 매스였다.
지금 나는 제 3의 인생을 살고 있다.
제 1의 인생은 어머니께로부터 태어난 육신과 혈통으로 받은 삶이다.
제 2의 인생은 교통사고를 통하여 죽음이 내 한 걸음 앞에 있을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다.
폐암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나는 죽었었다.
수술 이후에 나는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육적인 삶이었다.
제 3의 인생은 복음으로 계시된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 앞에서 나의 죽음을 보고 이제는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오늘도 주님이 보셨던 그 영광을 본다.
나에게 주신 주의 은혜는 정말 놀랍고 놀랍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사랑은 정말 크고 무한하십니다.
내가 나를 보면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나, 이런 나를 용납하시고 구원해 주셨나이다.
심판의 칼이 나를 향하여 날아와 마땅히 환난과 고통으로 황폐하게 파괴되고 멸망당할 죄인인데 그런 나를 구원해 주셨나이다.
나에게는 어떤 소망도 기대도 없었나이다.
전후좌우가 다 어두움뿐이요 깜깜한 흑암이었나이다.
그런데도 신실하신 주님은 나를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셔서 찾아오셨나이다.
나를 여러 번 교통사고나 암이나 질병으로 치시면서 두드리셨건만, 나는 그것이 주님의 노크인줄도 몰랐나이다.
주님, 이런 미련한 종이 어디가 그렇게 좋으셨나요?
어디가 예뻐서 나를 살려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셨나요?
날 용납해 주신 주님을 이제는 내가 용납하나이다.
그리고 내가 받은 이 은혜를 세상에 전하고 베풀겠나이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주님은 하실 수 있사오니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오늘도 주의 은혜로 사는 한 날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