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말을 찾아
김 난 석
“얼라! 이게 석이여?”
난리를 피해 외가가 있는 충남 보령의 새울로 내려간 때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일곱 해를 지나고야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려니와
난리 통에 살아 나타났으니 주변의 반응은 놀라웠을 게다.
무언가로 재거나 우쭐대고 싶었던지
막대기를 집어 들고 땅바닥에 이름 석 자를 끼적거려 대자
“얼라! 그게 뭐라고 쓴 겨?” 라고 물어왔을 때는
장하다는 뜻쯤으로 알아들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시작된 나의 행동거지가 하는 짓마다 신기하게 보였던지
주변사람들의 입에서 ‘얼라’ 라는 말이 쉽게도 튀어나왔었다.
어린 나에게야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은 한껏 고양되어
생경한 시골생활도 비교적 순조롭게 적응하면서
성장해 나간 게 아니었던가 싶다.
그로부터 얼마의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상경하여 서울생활을 하게 되자
언어생활 역시 서울의 표준어를 익히기에 힘써야만 했다.
‘얼라’ 는 쓰는 일도 듣는 일도 없었으니
차차 멀어져 추억으로 맴돌 뿐이고
그 대신 심심찮게 들려온 건
눈에 거슬리는 일을 보고 놀려대는
‘얼라리 꼴라리’ 였던 것 같다.
‘얼라’ 를 감탄을 자아낼만한 일 뒤에 받들어주는 말이라 한다면
‘얼라리 꼴라리’는 빈축을 살만한 일 뒤에서
발목을 잡아채는 말이라고나 할까 보다.
이제는 여성들만 쓴다는 ‘어머나’ 말고
남녀 모두 쓰던 정감 어린 격려의 감탄사 ‘얼라’를 찾아 나서고 싶다.
*난리 : 1950년 유월의 한국전쟁
*새울 : 충남 보령군 청소면의 어느 마을
몇 해 전 남산기슭 ‘문학의 집 서울’에서
문학어의 생명성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다.
문학어라 해서 특별한 게 있을 리 없고
단지 문학의 각 장르인 시나 소설이나 희곡이나 수필 등에 나타난
표준어 외의 사투리나 방언 등 토속어, 지방의 언어들이
어떤 생명성을 지녔느냐가 화두였던 셈이다.
더 나아가 언어생활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그런 것들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의 장이었던 셈이다.
나에겐 ‘얼라’ 라는 정겨운 말이 가슴에 맴돌아
책으로 엮어낸다기에 투고해 봤었지만
이것 말고도 이젠 ‘하냥’ 이란 말이
입가에 맴돌며 내뱉어지려 한다.
‘늘’ 이라 하면 충청도의 방언이지만
함께란 뜻이 되겠는데,
‘늘 가자’ 라든가 ‘하냥 먹자’ 라든가 ‘하냥 하자’라든가
뭐 그런 용례가 되어
함께 어울려나가자는 순박하고도 잔잔한 외침이니
외로울 수 있는 내 나이에는 딱 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제 점점 외로워지는 상황에선 이것저것 가릴 것도 없이
늘 이웃들과 하냥 했으면 좋겠는데
그 이웃들이란...?
어느 회원이, 이곳 삶의 이야기 방에서 글로 교감하는 이들을 친구라 했다.
그게 이웃들이 아닌가 싶다.
또 어떤 회원은 나의 외가가 있는 보령으로 피란을 갔다고 했다.
나도 그랬으니, 비록 시간의 차이가 있을망정
그도 나와 한 고장에서 살았던 이웃이 아닐까?
더 나아가 그는 나의 글에 '여우와 포도나무' 이야기로 화답했고
나는 오래전에 읽은 '이솝우화'로 화답할 생각을 했으니
이것도 이웃과의 어울림이 퇼 테다.
배고픈 여우가 지나가다가 포도나무를 보았다.
포도는 주렁주렁 열렸지만
나무가 높기에 그걸 따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저 포도는 매우 실 거야, 그러니 따먹을 거 없지.'
그러면서 지나갔는데
시대의 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걸 깨우쳐준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 있을까?
없다.
태산이 높다 하되 오르고 오르면 다 오를 수 있다지만
사람에 따라 오르고 오르고 오르기도 하고
그냥 체념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하기도 한다.
'거기 오르면 무얼 할까' 라거나
'다른 산도 있지 아니한가'라는 등으로 위안을 해보는 건데
능력과 자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안 된다고 불만만 품을 것인가?
아니면 체념하거나 대안을 찾을 것인가?
나는 대안을 찾는 편인데
그게 이젠 소확행이요
미식(美食) 기행을 따라가느니
집밥으로 달래보는 것도 그것일 테다.
2025. 2. 6. 도반(道伴)
첫댓글 얼라는 경상도 방언으로 어린아이를 지칭한다고 알고 있습니다.제 고향이 갱상도 진주 거든요.
늘 좋은 글로서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상도 방언, 그렇지요.
그런데 충청 전라지방엔 백제언어가 남아있답니다.
임금님을 어라하라 했다는데, 임금이 나타나면 어라하 어라하 하다가 얼라로 축약되고, 임금이 나타난것처럼 놀랄 일이 벌어지면 얼라라고 외쳤다는거죠.
충남대 어느 교수의 논문에 그렇게 나와있더군요.
글을 읽는중에 까맣게 잊고있던 고향 사투리가 생각이 났습니다.
충북청원 제 고향에선 놀라거나 감탄할때
'얼~래'라고 했지요.
놀릴땐 '얼라려~'
집안에서 나이차가 나는 막내이다 보니
전화를 주고받을 친척이라곤 동갑인 6촌 한명뿐이라
진정한 고향 사투리를 들을기회도 없네요
충청권은 하나의 언어권에 속하니까 비슷한 방언이 존재하겠지요.
저도 일찍 떠나서 고향맛을 다 잃어버렸어요.
사투리가 아닌 내고향 부산말
마초는 사랑하고 있답니다
어르신 말에 대한 묘미
잘 배우고 갑니다
단 결~!!
향토어로 대화를 해야 감칠맛이 나지요.
사투리가 구수하고 정감이 있습니다
다만 정치하는 사람이나 방송인들은
표준어를 써야 한다고 봅니다
지방색을 고취하려고 하는지 모르지만
진한 지방사투리를 고집하는 정치인들
이해불가입니다
특히 거만한 말투로 하대하는 듯한 말
지가 제일 높다는 것이겠지요
반드시 고쳐야 할 악습입니다
그럼요.
그래서 표준어가 있는 거니까요.
월래! 면까지 가트구먼유
원제 따땃헌 날 성님이랑 하냥 무궁화 타구 진죽 역에내려서 오서산으루 해서 댕겨와야것슈
청소 원제 오서산
그리고 댕겨~~~ㅎ
성님까지도 자별하게 느껴집니다.
얼라 (반가움)
이게 석이여?
얼라 (기특하고 신기함)
그게 뭐라고 쓴겨?
충청도 보령 외가마을에서 어른들의 신통방통하단 눈빛이
어른거립니다.
총명한 일곱살로 자라셨나봅니다.ㅎ
총명하다기보다
서울아이가 시골로 내려갔으니
매사 그럴만 했지요.ㅎㅎ
당시에 시골엔 비누도 없고
화장실에 화장지는 커녕 휴지도 없었으니까요.
道伴 님은 사랑과 관심과 기대를
받으며 유년시절을 보내셨나 봅니다.
우리는 애정 어린 말보다
잔소리와 욕만 들으며 살았습니다.
척박한 섬에서의 생활은 사랑을 받기보다
일꾼으로 살아야 했으니까요.
일곱살이면 밭에 가서
조, 고구마 이삭줍던 나이죠.ㅎ
위에 별꽃님에게도 드린 말이지만
서울아이가 시골로 내려갔으니
매사 신기했겠지요.
그러니 관심의 대상이었겠고요.
아우라님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보지만
가난했던 시골의 어린이는 보호대상이 아니었겠지요.
위로를 드립니다.ㅎ
우리는 얼라 라는 말을 아가야 하는 뜻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선배님의 글을 읽으니 그 뜻이 아닌 것 같아요
얼라는 감탄을 자아내는 말
얼라리 꼴라니는 빈축을 살만한 일
우리는 그 말을 놀리개로 사용하였죠.
하냥?충청도의 방언 함께라는 말
정감이 가는 말이네요
하냥 좋은 어감이 가는 말입니다.
이솝우화의 말씀과 함께
불만을 말하기 보다 대안을 찾아가시는 그 말씀에
깊은 공간을 표하면서
선배님의 글을 읽으며 절로 고개를 끄떡여집니다.
경상도는 어린이요
충청도에선 놀람의 표현인데
지역별로 그렇게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걸 통일한 게 교육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