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침묵 - 아함경이란 어떤 경전인가
불교의 이해와 실천 - 이중표 / 미주현대불교제공
지금부터는 [아함경]교리를 중심으로 불교의 교리를 이해하기로 합니다. 먼저 [아함경]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아함’이라는 말은 범어 agama를 음사한 것인데, 이 말은‘전승되어 오는 가장 권위 있는 문헌’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아함’은 인도의 모든 종교에서‘성전’(聖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불경 가운데는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법문을 기록한 초기의 근본경전(根本經典)과 후기의 대승경전(大乘經典)이 있습니다. 대승경전은 후대에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가 되면서 부처님의 근본정신이 왜곡되고 사라져 가자, 부처님의 근본정신을 되찾기 위해 발흥한 대승불교인(大乘佛敎人)에 의해 결집된 경전입니다.
후대 결집된 대승경전과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말씀을 모아 놓은 초기의 근본경전을 [아함경]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아함경]은 모든 경전의 뿌리임과 동시에 불교의 본질을 담고 있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함경]은 우리가 소승불교라고 부르는 스리랑카, 태국, 등의 남방불교권에서 [nikaya]라는 pali 어로 기록되어 장부, 중부, 상응부, 증지부, 소부, 이렇게 오부로 전해지고 있고, 대승불교라고 부르는 한국, 중국, 일본 등의 북방불교권에는 한문 [아함경]으로 번역되어 있는 장아함(長阿含), 중아함(中阿含), 잡아함(阿含含), 증일아함(增一阿含), 이렇게 사아함(四阿含)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니카야]와 [아함경]의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아함경]에 대하여 대승불교권에서는 약간의 오해가 있어 왔습니다. [아함경]은 근기가 낮은 중생들을 대상으로 설한 소승경전이라고 생각되어 온 것입니다. 그러나 대승과 소승은 경전에 의해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승경전을 공부한다 하더라도 그 목적이 일신의 안락을 얻는데 있다면 그 사람은 소승이고, [아함경]을 연구한다 할지라고 그 목적이 중생의 구원에 있다면 그 사람은 대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전으로 대승과 소승을 구별하는 것은 올바른 이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대승불교의 발흥은 불교의 교리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부파로 분열하여 대립한 부파불교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지, [아함경]의 내용을 비판하고 나온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승불교운동은 아함에 나타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부파불교에 의해 왜곡되고 있는 불교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불교부흥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승경전은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 다시 말해서 [아함경]의 참된 의미를 재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대승불교의 올바른 이해와 실천을 위해서도 [아함경]의 연구는 꼭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아함경에는 삼법인. 사성제. 오온. 십이연기.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팔정도. 사선(四禪) 등 우리에게 익숙한 교리가 다양하게 설해져 있습니다.
이들 교리는 부처님이 언어나 개념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사유하여 만들어낸 이론이 아니라 참선과 같은 수행을 통해 깨달은 내용을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자신이 행한 수행의 방법을 중도(中道)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중도의 수행법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언어로 표현한 교리에 대해서도 중도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불교는 실천수행으로서의 중도와 사상체계로서의 중도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팔정도와 같은 수행법은 실천수행으로서의 중도이고, 연기설과 같은 이론은 사상체계로서의 중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팔정도와 같은 중도수행을 통해 연기법과 같은 중도사상을 깨닫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교는 수행과 사상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수행과 이론을 분리해 놓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팔정도와 같은 수행이 없이 연기설과 같은 사상체계를 이해하려고 하면 그 사상은 공허하고 관념적인 것이 됩니다. 한편 연기설과 같은 사상을 배제한 채 수행을 한다면, 불교의 수행은 애매하고 환상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불교수행을 하면서도, 자신이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론은 그럴듯한데 그 말이 허망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은 것은 모두 수행과 이론을 일치시키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 둘은 하나의 체계 속에서 이해하면 연기설과 같은 이론은 팔정도와 같은 수행을 통해 자각되는 명증적인 진리로 드러나고, 팔정도와 같은 수행은 연기법과 같은 진리를 깨닫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이해될 것입니다. 이 강좌에서는 [아함경]에 나오는 실천적 중도와 이론적 중도를 하나의 체계로 이해해 보겠습니다. 무기(無記)의 의의를 살펴보는 데서 교리이해의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무기란 부처님께서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신 것을 의미하는데, 이 같은 부처님의 침묵을 바르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교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강의는 항상 이러한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부처님의 침묵은 부처님의 사상적 입장인 중도(中道)에서 취해진 것입니다. 따라서 무기의 의미를 살펴본 다음에는 중도는 어떤 입장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곳에서는 팔정도로 대변되는 실천수행으로서의 중도행과 연기설로 대변되는 사상 이론으로서의 중도설이 어떻게 하나의 체계로 통일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불교가 다른 종교나 사상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도 이야기 될 것입니다. 방금 이야기했듯이 중도에는 실천적 중도와 이론적 중도가 있습니다. 이 같은 두 가지 중도 가운데 이론적 중도인 연기설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연기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하고 있다는 부처님의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연기설은 불교의 존재론인 셈입니다. 연기설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 교리는 십이입처. 십팔계. 오온. 십이연기 등입니다. 이들 교리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이들 교리가 어떤 체계를 이루면서 존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부처님은 연기법이라는 진리를 통해 인생과 존재의 실상을 깨달았습니다.
이 강좌에서는 이 같은 진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를 검토해 본 후에는, 연기법이라는 진리의 깨달음은 어떤 방법에 의해 성취되었는지, 다시 말해서 연기법이라는 진리를 인식하게 된 인식 방법과 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에서는 구차제정(九次第定) 이라는 단계적인 선정이 주로 다루어질 것입니다.
이는 불교의 인식론에 해당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인 연기법과 그 진리를 인식하는 방법인 구차제정을 이해한 후, 불교의 이해는 실천적으로 어떤 삶은 요구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실천적 중도의 실현, 다시 말해서 진리에 따르는 가치 있는 삶은 어떤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밝혀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루게 될 교리는 사성제(四聖諦). 공(空). 무아(無我). 등입니다.
이 부분은 불교의 가치론에 해당됩니다. 마지막으로 사홍서원(四弘誓願)의 의의를 다루려고 합니다. 불교의 궁극은 서원의 실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왜 서원을 세워 이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밝히는 것으로 이 강좌를 끝맺게 될 것입니다. 이 강의가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지리란 생각이 듭니다. 인식론, 존재론, 가치론, 이런 말들은 철학적인 전문용어라서 일반 불자님들은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앞으로 이야기 할 내용은 여러분께서 익히 알고 있는 교리들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익숙한 교리들을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하려다 보니 그런 말들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강좌의 제목도 그렇습니다만, 불교는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불교는 긴 역사를 통해 여러 고승과 선지식에 의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확인되고 실현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고루한 사상이나 특정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 절에 다닌다고 하면 주위에서 이상하게 보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혼이 되고 얼이 되어 있는 불교가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불교에 대한 이해가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현대인이 알 수 있는 말로 해석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불교는 불교인들 사이에서만 논의되고, 다른 사람들은 함께 논의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 강좌에서 인식론, 존재론, 가치론과 같은 조금은 생소한 말을 쓴 것은 불교사상을 현대의 철학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 보기 위해서입니다.‘불교는 가장 위대한 진리다’라고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왜 불교가 위대한가를 다른 사상과 비교해 보고, 그 진리성을 다른 사람들과 논의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교가 모든 사람들과 함께 논의 될 수 있어야, 현대의 인류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현실적이고 능동적인 사상으로 되살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무기(무기)’란 부처님이 답변을 하지 않고 버려둔 문제를 의미합니다. 이것을‘버릴 사(捨)’,‘놓을 치(置)’를 써서 사치(捨置)라고도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같은 무기의 문제에 대하여 부처님은 왜 침묵하셨는가를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