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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대작전
서울 둘레길 길동무 팀은 2019년 꽃피는 봄의 프로그램으로 평화누리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울 둘레길 길동무 팀의 도보여행 프로그램은 수도권의 아름다운 명품 둘레길 평화누리길, 강화나들길 그리고 서울둘레길을 매년 새로운 팀으로 구성하여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현재 겨울 프로그램인 강화나들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공대작전은 먼저 수명산이 우리의 산줄기(백두대간과 9개 정맥, 1999년 2월 23일 ~ 2003년 10월 15일 완주) 백두대간을 시작하면서 시작됩니다.
대간(大幹)이란 큰 줄기를 뜻하며,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白頭山 2,750m)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를 말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 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 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한다.
백두대간에서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반도는 비로소 삼천리강산이 된다. 백두산을 뿌리로 하여 1대간 1정간 13정맥이 나무의 줄기와 가지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백두산은 한반도의 모든 산줄기와 통하며 우리 산의 시발점이며, 드넓은 만주대륙으로 뻗어나가는 정점이다. 이 땅의 모든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은 우리의 전통적인 지리인식체계의 바탕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산을 물줄기처럼 끊이지 않는 맥으로 보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산과 강이 공존하여 산은 물을 낳고 물은 산을 가르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비록 높은 두 산이 이웃해 있어도 사이에 물이 있으면 산줄기는 돌아갔으며 평탄한 지역의 독립봉이나 평야에도 면면이 지맥이 흘러 바다까지 이어졌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산이 그 고저를 가리지 않고 나무와 가지와 줄기처럼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전면적인 국토인식을 뜻한다.
이 땅의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은 우리의 전통 지리인식의 바탕이었다. 「택리지」의 이중환과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성호사설」의 이익이 모두 여기에 기초하여 지도와 지리서를 썼다. 그러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여 역사와 정신을 모조리 훼절하면서 백두대간의 개념은 뒤 안으로 사라지고 그들이 지은 이름인 마천령, 함경, 태백, 소백 등의 이름만이 공식적인 개념으로 남았다.
1900년과 1902년에 일본의 조선침략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광물탐사사업의 학술 책임자였던 고또 분지로는 탐사보고서를 펴낼 때 조선의 지리개관(The Orographic Sketch of Korea)과 조선지질도를 첨부했다.
그러나 지질학 교수였던 그는 당연히 지질 구조선에 입각하여 산줄기를 잘랐기 때문에 백두대간은 다섯으로 토막 나고 산맥은 강을 건넜으며 적유령, 마식령 등의 고개가 산맥 이름으로 붙었다.
사장되었던 백두대간이 다시 알려진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지도를 만드는 이우형씨 등이 「산경표」를 발굴하여 옛 개념을 되살린 것이다.
백두대간은 오천년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이어져온 한민족의 공간적 터전이다. 통일조국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우리 산줄기의 기본 개념인 백두대간을 원상 복구하는 것은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으로 자리 매김할 것이다.
지리산 종주가 한 때는 산꾼들의 꽃이였다면 새천년이 되면서 우리의 산줄기 백두대간이 산꾼들의 꿈이었고 목표가 되어 버렸다.
이제 특공대 이야기를 시작한다. 1999년 11월 22일 겨울의 길목에서 만났던 약수산에서 구룡령으로 내려서면 시작된다.
넓은 초지 에 신배령을 그냥 지나쳐 버렸다. 빨간 열매가 대원들을 유혹했다. 구기자라고 한다. 대간길은 90도로 방향을 틀면서 만월봉을 지나고 이어 응복산에 올라 허기를 채운다. 대간을 시작하면서 물을 갈아먹어 선지 아니면 대간을 한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가끔 배탈 때문에 고생이 여간 아니다. 오늘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부터 문제가 생겨 힘겨운 산행이 이어진다.
응복산에서 해결하고는 긴 내리막을 내려섰다 1261m봉을 오르기 위해 대원들 모두가 한차례 땀을 흘린다. 길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선 봉우리에서 다시 1280m봉을 오르고 약수산을 향하면서 1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한 대간에 한 페이지를 남겨놓았다. 오르면서 약수산 이겠지, 또 오르며 약수산 이겠지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정상인가 싶으며 다시 봉우리가 나타나고 다시 정상인가 하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 실망을 하게 했다. 네 번째 만에 안간힘을 써서 올라선 정상은 보잘것없는 작은 봉우리였고 삼각점 하나가 전부였으며 삼각 측량을 하느라 비어져 밑동만 남은 나무를 변명하느라 설치한 조그만 입간 판이 쓰려져 있었다.
정상을 뒤로하고 내려서는 대원에게 남은 숙제 하나가 있다. 경방기간으로 입산 금지 구역이라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예전이나 현재나 백두대간을 완주하려면 범법자가 되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가운 실정이다.
구룡령 직전에서 숨죽이며 대기하던 대원들에게 신호가 왔다. 대원들의 동작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급경사에 눈길, 또 한 가지는 잔가지를 베어 뿌리가 발길이 걸렸다가는 급사면에 계곡으로 곤두박질할 것 같은 길을 뛰어내려와 재빨리 승합차에 타고 구룡령을 떠났다.
우리가 명명한 잔디밭 특공대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삼봉약수 휴양림에 도착하여 노루사향이라 이름이 부쳐진 숙소에 짐을 내리고 힘든 하루를 보낸다.
수명산의 특공대작전 두 번째
1999년 12월20일 전국을 냉동시킨 한파는 강원 내륙지방에 영하 15도로 올 겨울 최저 기온이란 일기예보에 모두들 만반에 준비를 갖추고 한계령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매서운 바람은 사정없이 불어 제키며 특공대를 시험이라도 하듯이 발목을 잡는다. 백두대간 1차팀에서 완주를 한 김포에 조*옥씨를 포함한 8명은 6시20분 한계루를 지나 대청봉을 향한다. 조*옥씨는 주중 종주대의 대원은 아니지만 백두대간을 시작하면서 가족회를 열어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동안 며느리, 아내, 어머니 역활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던 대원이다.
가파르게 이어지던 오르막은 1,307봉을 지나면서 내리막으로 변하고 빙판으로 변한 바윗길은 모두를 힘들게 한다. 다시 오르막길은 설악에 아침을 열고 있는 서북능선이 마중나온다. 서북능선에 서니 눈이 덮인 찬란한 설악의 아침이 너무나 아름다워 모두를 할 말을 잃은 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 그렇게 불어 제기던 바람도 서서히 잦아지고, 전망 좋은 바위에 오를 때마다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보며 자연의 풍요로움에 또 한 번 젖어 들어본다. 암봉과 낭떠러지, 바위와 소나무의 어울림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끝청봉에 오르고 다시 중청봉을 지나 중청산장에 도착한다. 대청봉의 아침 기온이 영하 22도를 기록했다는데 정오를 지나면서 영하 14.5도를 가리킨다. 컵라면에 점심 식사는 꿀맛 같다. 중청산장에서 숙박하기로 하고 대청봉에 오른다.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동쪽으로 속초 시가지와 동해바다, 서쪽으로 오늘 걸어온 서북능선의 귀떼기청봉을 지나 안산과 언제 보아도 좋은 가리봉, 남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점봉산을 지나고 멀리 하늘금을 그은 오대산까지 봉봉들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끝이 없다. 북으로 힘차게 뻗어 나간 공룡능선, 천화대능선, 범봉 그리고 울산바위, 마등봉을 지나 황철봉은 겨울 설악에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바람을 피해 양지에 모여 앉아 꿈같은 대청봉에서 1시간을 보내고 산장에서 밤을 맞는다. 바람은 점점 거세게 불고 기온은 급강하 하는 것 같다.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지만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다.
종주 두 번째 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그렇게 불어 제키던 바람은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중청위에 금세기 마지막 보름달이 걸려 있다. 5시 20분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산장 문을 나선다. 어느새 중청 너머로 달은 숨어 버려 깜깜한 어둠 속으로 우둑 솟은 대청봉을 향해 오른다.
이제 특공대 작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백두대간을 물을 건너지 않고 통과하려는 소망의 하나로 이 능선을 택해야 하는 대간종주자들은 감시의 눈을 피해 새벽에 출발을 한다. 대청봉 정상 못미처 철조망을 넘어 희운각산장으로 내려서는 대간능선을 죽음의 능선길이라 부른다. 1969년 설악산 죽음의 계곡 조난사고는 1970년 히말라야 원정을 위해 설악산「죽음의 계곡」서 등반 훈련기간에 계곡의 막영지에서 취침 중 눈사태를 당하여 10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로 이름이 부처졌다.
한동안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통행이 없는 대간길은 10월 하순에 내린 눈이 응달이라 그대로 눈이 쌓여 비탈길을 내려서는 길은 고난에 연속이었다. 대장 지시가 손전등도 끄고 가라고 하니 눈뜬 장님과 진배가 없다. 미끄러지기 수차례 힘들게 내려선 희운각산장, 주위가 밝아 오기 시작한다. 설악산 종주 첫 번째 특공대 작전은 그런데로 성공을 한셈이다
1275봉을 오르는 오르막길은 바윗길에 얼음이 얼어 있어 빙판 길의 연속이다. 어렵게 안부에 올라서니 천막 안에서 얼굴을 내미는 털보아저씨, 지나는 등산객에게 차 한 잔으로 추위를 달래준단다. 잠시 휴식을 하고 마등령을 향하는 능선길에는 대청봉과 중청봉을 지나 귀떼기청봉과 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의 장쾌한 능선이 떠날 줄 모른다. 지난여름 올랐던 용아능선의 침봉들도 주위를 맴돌고 있다.
나한봉에서 내려다보는 설악의 수많은 바위산들이 뼈를 내보이며 크고 작게, 높고 낮게, 날카롭거나 둥글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적나 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채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태에 넋을 잃고 말았다. 어제와는 달리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는 추위를 대비해 입었던 덧옷들을 하나씩 벗게 한다.
마등령에서 마등봉에 올라 설악에 중간에 서서 걸어온 공룡능선과 작별하며 미시령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또 하나의 특공대 작전이 시작된다. 1249.5봉이 가까워지면서 커다란 바위가 포개진 너덜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설악산 북주능선은 두 번째 통과하는 길이지만 자칫 잘못해서 구멍에라도 빠지면 작전이 끝나는 것이다. 한겨울 살아서 돌아가기를 포기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저항령을 내려서는 너덜길은 바윗길이 미끄러워 아예 주저앉아 조심조심 통과를 해야 했다. 한차례 곤욕을 치르고 다시 황철봉을 향하는 오르막도 역시 너덜길이 이어지고 숨을 몰아쉬며 올라선 봉우리에서 쉴 새도 없이 어둡기 전에 내려서야 한다는 생각에 미시령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어느새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멀리 미시령 휴게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리에 힘은 점점 빠지고 온몸은 천근같다. 한겨울 13시간의 사투였다. 어느새 20년이 지난 이야기기다. 힘들었지만 특공대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거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영상은 잔디밭산악회 김종국 대장이 촬영한 영상입니다. 이 영상으로 인해 내가 바이러스가 걸려 디카로 영상을 찍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추억의 영상을 만들고 있답니다.
후일담(Epiloque)
또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있다. 대장을 포함한 8명중 한 명의 대원이야기다. 떠나는 전날 저녁 갑짜기 배탈 설사가 계속되면서 망설였지만 오직 완주의 목표를 꺽을 수 없어 생리대를 찬 남자가 되어버렸다. 생리대를 찬 남자~~~~
특공대 작전 세 번째(길동무 편)
이야기가 있는 겨울에 걷기 좋은 아름다운 강화나들길에도 가끔은 예전 산줄기를 걸으면서 펼쳤던 특공대 작전이 필요하다. 길동무는 2기와 3기는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원으로, 4기와 5기는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staff로 참가하면서 인연이 되어 동행하기 시작했다. 길동무들은 멀게는 일산, 의정부, 남양주, 성남, 군포 등에서 강화로 접근하기 쉬운 지하철 5호선 송정역을 만남의 장소로 이용했다. 2기 길동무들은 아침 7시가 가장 일찍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에 강화나들길은 친구 네 명과 함께 완주를 했고, 두 번째는 백두대간과 9정맥을 완주한 선배 그리고 친구와 함께 완주를 했다. 두 번의 강화나들길은 송정역에서 일찍 출발하는 3000번으로 강화터미널로 이동했기에 무난하게 완주할 수 있었고, 감꽃 부부가 운전하는 자가용을 많이 이용 했던 1기 길동무는 강화터미널로 이동하는데 불편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2기 길동무부터 가끔 특공대 작전이 시작했던 것이다.
강화터미널에는 새벽부터 많은 버스들이 부지런히 들락거리지만 정작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고는 조금만 늦으면 아니 몇 초만 늦어도 다음 출발시간까지 한 시간에서 어떤 곳은 두 시간 또는 세 시간 기다려야 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 참으로 불편한 것이 강화 군내버스 이용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몇 코스는 역방향으로 계획을 세워 진행을 했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 강화터미널에서 버스로 종점으로 이동하여 강화터미널로 돌아오기 쉬운 시점으로 오면 서울로 오는 길이 한결 쉬워지기 때문이다.
지난 7코스 낙조보러 가는 길 출발점인 화도는 2000번 버스를 타면 강화터미널에서 화도로 이동하는 시간보다 약 한 시간이 절약되는데 2000번이 송정역을 통과는 시간이 6시 50분에서 7시 사이(현재는 신촌역에서 출발하는 2000번이 6시 50분으로 변경 화도공영터미널에서 4번 버스 환승이 불가능)가 된다. 강화도를 오고 가는 버스 또는 강화군내버스는 정류장을 통과하는 시간이 교통 흐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항상 먼저 정류장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본다는 속담처럼 되어버리고 만다. 실제로 7코스는 2000번 탐승계획은 간발에 차이로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두 번째 20코스 갯벌보러 가는 길의 시작점인 여차리 가는 날은 조금 일찍 시동을 걸다보니 특공대 작전이 성공을 했고 진행하는 동안 여러 가지 사연들이 있었지만 마지막 돌격 작전으로 여유 있게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강화에서 서울로 오는 버스들이 조금 늦어지면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오후 3시 30분 이전에 걷기를 끝내려는 것이 내 생각 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다.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가 추축을 이룬 길동무들은 대개 산행경험이 별로 없지만 100원정대를 거치는 동안 많은 실력들이 늘어 길동무와 함께 동행 하는데 문제가 없는 듯했다. 사실이지만 서울둘레길 코스들이 만만한 것이 아니다. 지난번 서울둘레길을 역방향으로 진행하던 첫 날, 마주친 7기 100인 원정대에 몇 명의 대원을 보면서 157km를 완주할 수 있을까? 첫 날부터 힘겹게 걷는 모습을 보며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3개월의 과정을 거치면 달라져 가는 것이 100원정대에 모습이다. 이 자리를 빌려 살짝 말하지만 감꽃부부는 100인 원정대에서 매번 꼴지를 했지만 서울 근교에 있는 많은 둘레길을 걸었고 강화나들길은 두 번 완주하고 현재 세 번째 동행하는 길동무 중에 한 명으로 지구력 하나는 따라갈 회원이 없다.
지난 2기 길동무가 19코스 석모도 상주해안길을 걸을 때 한차례 특공대 작전을 벌린 적이 있다. 간발에 차이로 실패했지만 실패로 인해 동촌에서 석포선착장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했었다. 항상 몇 백 미터 앞에서 걸어가던 우리의 이기백 위원장이 그날따라 앞설 생각을 하지 않아 마지막으로 내가 예전 걷던 실력으로 부지런히 걸었지만 버스정유장을 한 오십 메터 남겼을 때 버스는 나잡아 보라는 듯 지나가고 있었다. 모두들 김빠지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 버스시간은 두 시간 후이기에 힘겹게 석포리선착장까지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더욱 조금은 일찍 서두르는 습관이 생겨버렸나 보다.
강화나들길을 완주하려면 앞으로도 몇 차례 시간을 맞추기 위해 특공대 작전을 펼쳐야 하는데 조금은 걱정이 된다. 아무튼 길동무와 함께 걷는 길은 행복하다.
첫댓글 고난의 행군 같군요 멋진 글
즐감하고 갑니다
올 겨울 가장 추운날이라기에 잠시 추억거리 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팀원들 리딩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익히 알고있는 수명산님의 산행실력은 대단 하시지요.
대간 하실때 그 시절이 그래도 좋았지요?
겨울철 강화나들길 계획에 즐거움만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요.
내일 뵐수 있겠지요? 예전의 아시는 분들, 보고싶고 반가운분들 많이 참석하신다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다 옛날 이야기지요. 가끔은 지나온 날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어떤길을 어떻게 걸었는지 그리고 그때의 동지들을 생각해 보곤한답니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둘레길에 처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회원들을 위해
수도권에 가장 의미있는 길을 매년 진행하게 되었지요.
다른 길들도 아름답지만 평화누리길, 강화나들길 그리고 서울둘레길을
혼자는 걷기 힘들어하는 회원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지요.
늘 응원 감사합니다^^*
역사와 전통,멋짐을 지닌 특공대 작전~♡
설원의 풍경이 참 좋네요.
내내 건강하고 즐거운 걸음 되시길요~👍
길동무 특공대들이 조금은 자랑스럽답니다. 감사합니다 ^^*
훌륭하신 발걸음 계속 건강하게
이어 가시기를 응원 드립니다.
우리 함께했던 작전이었지요. 그바랍에 감기 강화나들길 끝날 때까지 고생많았지요^^*
수명산 님 ! 예전 백두대간을 걸으시던 젊은 시절, 두번의 대간 감시자들을 피하기 위한 특공대작전부터
최근 서울둘레길 길동무님들의 강화나들길 대중교통 이용 특공대 작전까지 소설 같은 이야기를 즐감하였습니다~
서울둘레길 완주에 이어지는 강화나들길 트레킹은 추운 겨울철에 진행되기에
대중 교통 못지 않게 특히 건강에 유의하시어,
성공적인 특공대 작전과 리딩이 되시길 기원드립니니다~
지나고 나니 다 추억거리로 남더군요. 길동무들이 강화터미널까지 새벽부터 서둘러 나서는 것이 힘들지요. 강화나들길 7코스와 8코스를 끝내면 당분간 조금은 수월하게 진행됩니다. 감사합니다
특공작전 성공 축하합니다.
파이팅입니다.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걷다보면 부득이하게 특공대 작전을 펼쳐야될 때가 있지요. 뒤돌아 보니 다 추억으로 남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