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목서 향기에 가을이 깊어가네
중국 호남성과 강서성에 소재한 선종고찰 십여 군데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스님과 신도들의 순레에 동참한 선禪 여행이었다.
만리향萬里香이라고도 불리는 은목서 향기에 취한 여정이었는데, 내 산방 뜰에
도 등황색 꽃이 만발하여 그 이름처럼 그윽한 향기가 만 리를 따라온 듯하다.
그런데 만 리를 건너온 것은 은목서 향기만이 아니다.
첫 순례지가 중국 오악 중 하나인 남악 형산의 마경대磨鏡臺였던바,
그것의 선향禪香이 내 산방에도 한가득 충만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지금
사유하고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 자리가 또 하나의 마경대라는 생각이 든다.
마경대 반석에는 조원祖原이란 한자가 음각돼 있었다. 나는 조원을
'조사祖師의 발원지'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우리나라 오대산 서대 염불암에
있는 우통수의 물 한 방울이 흘러 남한강이 되듯, 마경대에서 깨달음을
얻은 마조馬祖의 선이 천하에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더구나 통일신라 구산선문 중 무려 일곱 산문이 마조의 문하에서 흘러와 개창됐
으니 마경대에 새겨진 조원이란 두 글자는 거듭거듭 보아도 그 의미가 심장했다.
불을 일으키는 수부싯돌 세 줄기가 하얗게 박힌 두 평 남짓한
반석이 마경대라고 불린 것은 회양선사懷襄禪師가 마조를
다음과 같이 깨우쳐준 인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분명했다.
마조가 복엄선사福嚴禪師 산내암자 격인 전법원傳法院에 머물고 있을때였다.
마조는 밤낮으로 복엄선사와 전법원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낭떠러지 위의 경사진 반석에서 위험천만하게 좌선을 했다.
어느날 젊은 마조를 유심히 보아온 복엄선사 방장 회양이 반석으로 올라가물었다.
"그대는 왜 좌선을 하는가?"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자 회양이 기왓장 하나를 들더니 마조더러 보란 듯이 갈아댔다.
이번에는 마조가 물었다. "기왓장을 왜 가십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그런다고 기왓장이 거울로 바뀌겠습니까?"
그때 회양이 무섭게 일갈했다.
"기왓장이 거울이 될 수 없듯 좌선만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지!"
"어찌해야 합니까?"
"수레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수레를 다그쳐야 하겠는가,
소를 다그쳐야 하겠는가?" 순간 마조는 마음이 초연해졌으며
회양의 법문을 다시 듣고는 깨달음을 이뤘다고 한다.
이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해답은 단순 명쾌하다.
또한 해결의 열쇠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그런 맥락에서 마조가 깨닫게 된 계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현실 속에서 무언가 얽히고 꼬였을 때 그것을 풀어나가는 결정적인 해답은
외부보다는 내부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형산의 마경대는
천년이 지난 지금도, 환경에 길들여진 통념이나 스스로 담을 쌓은
아집의 덫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 같다.
나흘 전이니까 지난 토요일이다 .나는 중국 여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내 산방에 들른 손님들을 맞이했다.
손님 중에는 해군사관학교 생도도 있었다.
그 생도는 한 달 전에 이미 이메일로
질문요지를 보내와 방문을 허락받은 풋풋한 24세의 청년이었다.
진해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느라고 오후 5시쯤 느지막이 찾아왔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나를 곡 한 번 만나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해답을 구해보겠다는 제복 입은 청년이 반갑고 사랑스럽기가지 했다.
아내가 소반에 과일을 담아 오자 그는 내 몫마저 씩씩하게 다 먹으면서
자신의 오래된 고민과 장래 진로에 대한 불안까지 솔직하게 고백했다.
농촌에서 자랐던 성장기의 어려운 환경도 얘기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생도의 의지와
틀에 갇힌 고지식한 선가의 좌선이 어딘지 흡사했다.
나는 생도에게 생生이란 '파도치는 바다'이니 거친 바다를
건너려면 결코 바다를 피해서는 안 되며 무슨 일에 직면했을 때 내면을
성찰하는 데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해답을 밖에 찾지 말라고 했다.
내면을 관조하다 보면 풍랑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지혜로운
자아가 발현되고 나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임제선사의 말을 빌려 '서 있는
자리마다 주인공이 되고, 진리의 땅이 되게 하라'는 말로 대신했다.
무엇이 되기보다는 어떻게 잘 사느냐가 중요한데, 목적에 집착하지 않고
순간순간 온몸으로 사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을 외친 임제선사의 말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생도는 의문이 풀렸다며 감개무량한 얼굴로 일어섰고,
나는 캄캄한 밤에 30리 밖의 간이역까지 그를 보내주었다.
마침 순천 가는 막차가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내 산방의 관문인 사립문에도 가을이 깊어진 것 같다.
손님들을 말없이 맞아들이느라고 수고가 많았던 듯
여닫을 때는 삐걱하고 소리를 낸다.
창문 너머로 사립문 앞에 선 늙은 감나무를 보니 내 산방의 방장스님 같다.
늙은 감나무는 기왓장을 가는 대신 내 눈앞에서 때때로 낙엽을 떨어뜨린다.
아름답지 못한 작위을 버리고 순리대로 비우면서 살라는 무위無爲의 법문이다.
법정스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