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화지도를 그리다] <9> 해운대 ③
부산일보 기사 입력 : 2013-10-10 07:48:47 수정 : 2013-10-10 14:29:11
소박한 어촌과 첨단도시 얼굴 동시에 지닌 로케이션 명소
영화가 있어 더욱 행복한 가을이다. 12일 폐막을 앞둔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영화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제만큼이나 부산에서 제작되고 있는 영화 촬영 현장의 열기 또한 뜨겁다. 2013년 상반기 부산지역에서 촬영된 장편 극영화는 총 14편. 기타 영상물까지 포함하면 무려 38편에 이른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52%나 증가한 수치이다. 그중 해운대 지역에서 촬영된 영화는 올해 상반기에만도 9편 이상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부산 영화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해운대가 있다. 해운대는 지금 영화만큼이나 스펙터클하다.
산· 바다·강·온천 품은 사포지향
과거·현재·미래 손쉽게 재현 가능
올해 상반기에만 9편 촬영
촬영스튜디오·영상후반작업시설 등
꼭 필요한 제작 인프라도 구축
안정·집중적 작업 환경 제공 강점
■부산 영화 촬영지의 신세계
산과 바다, 강과 온천이 있는 천혜의 환경을 지닌 사포지향(四抱之鄕)의 고장 해운대. 2000년 이전의 해운대는 해수욕장으로 그 이미지가 대표되었지만 오늘날의 해운대는 부산의 최첨단 도시를 표상하고 있다. 해운대 지역의 로케이션 장소는 주로 해안선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송정 해수욕장을 시작으로 구덕포, 청사포, 미포로 이어지는 세 개의 포구와 해운대 해수욕장, 동백섬, 그리고 수영만에 이르기까지 해안의 특성과 첨단도시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다.
지역이 영화 촬영 장소로서 활용되는 조건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역의 특수한 이미지를 영화의 배경으로 재현해 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장소와는 상관없이 기술적, 미학적으로 촬영에 용이한 공간을 로케이션 장소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 '해운대', '깡철이'에서의 부산지역은 영화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배경이지만, '무방비도시', '세븐데이즈'와 같은 영화에서는 원래의 로컬 이미지 대신 프레임 속 공간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영화 기반시설과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협조 아래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상상을 손쉽게 재현할 수 있는 집약적 촬영 환경은 해운대가 로케이션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양성영 부산영상위원회 로케이션 팀장은 "해운대는 과거 수영요트경기장 야외상영관을 중심으로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1)의 로케이션과 영화촬영스튜디오 개관 이후 순식간에 영화의 도시가 됐다"며 "해운대 중심의 영화·영상 인프라 구축은 부산을 찾는 영화인들을 위한 긴밀한 협조와 더불어 좀 더 안정적이고 집중적인 제작 지원을 하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현실과 환상을 잇는 다리-광안대교
부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로케이션 장소는 바로 광안대교이다. 광안대교는 개통 전에 이미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촬영을 시작으로 2012년까지 25편의 영화에 등장할 정도로 선호도 높은 촬영지이다. 수영구 남천동과 해운대구 우동의 센텀시티를 연결하는 광안대교는 국내 최대 복층 해상교량으로 몽환적인 야간 경관조명과 세계불꽃축제 등의 볼거리를 갖춘 부산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무엇보다도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 위에서 바라보이는 주변의 도시경관은 카메라가 영화 속 이미지를 가장 흡족하게 포착할 수 있게 한다.
광안대교에서 본 마린시티와 센텀시티의 모습은 스크린 속의 환상을 그대로 재현한 듯하다. 첨단산업시설과 80층 초고층 주거단지는 도시의 위용을 뽐내고, 야간에는 빌딩들이 뿜어내는 휘황찬란한 조명들이 수면 위에 흔들리며 비정하고 물신화된 도시공간을 연출한다.
거대 쓰나미의 공포를 통해 도시의 스펙터클한 면모를 보여 주는 재난영화 '해운대'는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광안대교의 8차선을 전면 통제하고 촬영을 진행하였다. 광안대교 위 동춘의 에피소드는 상판에 꽂히는 컨테이너 박스들을 절묘하게 피하는 동춘(김인권)의 코믹연기와 함께 거대한 쓰나미가 다리를 집어삼키기 직전의 긴박한 상황을 완벽하게 재현하였다.
■살아 있는 공간-해운대 해수욕장
해운대 해수욕장은 도시와 바다가 공존하고 있다. 해수욕장 주변에는 초고층의 특1급 호텔들을 비롯하여 오락시설 및 부대시설이 많고, 각종 행사, 축제 등 해변을 중심으로 볼거리들이 다양하다. 하지만 이런 번화한 장소들만이 해운대를 표상하는 것은 아니다. 해운대 해변거리로 나와 31번 버스 종점 맞은편 국밥골목에 이르면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는 살아 있는 공간들을 체감할 수 있다. 부산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영화가 만들어 낸 스펙터클한 이미지의 해운대보다는 소소한 경험으로 체화된 살아 있는 해운대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는 종우(김명민)와 지수(하지원)가 해운대 국밥골목에 있는 한 국밥집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있다. 지수(하지원)가 볼멘소리로 "피자나 파스타 같은 거 먹고 싶은데"라며 종우(김명민)를 따라 국밥집에 들어간다. 3천500원짜리 국밥을 파는 허름한 공간이지만 두 사람의 다정한 대화는 이곳을 소박하고 낭만적인 데이트 장소로 다시 살아나게 한다.
■기억의 공간-해운대 어촌마을
해운대 해수욕장 동쪽 끝머리인 미포에서 시작해 조개구이 집들로 유명한 청사포를 지나 영화 '친구' 촬영지인 구덕포에 이르는 세 개의 포구는 과거 한적한 어촌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가을 하늘보다 짙은 바다 향내를 풍기는 한적한 어촌마을의 풍광은 느리게 걷고 싶은 해운대의 또 다른 모습이다. 특히 영화 '마음이', '파랑주의보', '해운대' 등의 촬영 장소였던 동해남부선 미포건널목은 바다를 낀 절경으로, 영화촬영 장소로서 뿐만 아니라 사진작가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하지만 안터깝게도 미포건널목은 철도의 복선화 계획으로 인해 곧 철거될 예정이다.
롤랑 바르트(R Barthes)에 따르면 '도시 이미지는 무한한 은유의 담론이기 때문에 도시 이미지에 숨겨진 의미는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분석적인 것'이다. 도시의 이미지는 심리적인 것이라 주관적이며,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영화 속 해운대는 대부분 첨단이라는 환상을 중시했다.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축제의 도시, 전시·컨벤션 도시, 국제도시 등 원도심의 파괴와 신도시의 생성 속에 가공된 이미지로 가득한 해운대이지만 일상의 삶과 바다 냄새 가득한 자연이 그대로 드러난 순수의 공간이 공존하는 곳도 역시 해운대이다.
촬영 명소는 부산의 이미지 제고와 관광자원 개발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더불어 해운대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촬영스튜디오 및 영상후반작업시설들은 해운대뿐만 아니라 부산의 영상산업 발전에도 직접적인 효과를 가지고 올 것이다. 이러한 해운대의 장점과 특성을 공간의 구체적인 의미와 함께 더욱 적극적으로 촬영 유치에 반영한다면 앞으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해운대를 방문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될 것이다.
글=김진희 부산대 영화연구소 연구원 kimjh0726@hanmail.net
사진=이경희 사진가 mizis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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