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 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레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헤헤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내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날이를 불거나 고개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창작과비평] 22호 1971.가을)
어휘풀이 꺽정이 .서림이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에 나오는 인물 쇠전 : 우시장.소를 파는 시장 도수장 :도살장.짐승을 잡는 곳.
(작가소개)신경림시인.1936-2024. 충북충주출생.1955'현대예술' 에 (갈대).(묘비) 등이 추천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