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알아야 할 이유
글쓴이/봉민근
모르면 모든 것이 어렵다.
무지가 고통을 더하게 만들고 무능이 인생을 실패자로 만든다.
하나님을 모르면 신앙생활이 힘들다.
주님을 알지 못하면 기도하는 것이 짐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신앙에서 빗나가기가 쉽다.
여호와를 알되 힘써 알라 하셨다.
모든 지혜와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지혜와 능력의 원천을 알아야 한다.
원리를 알고 방법을 알면 익숙해지고 삶은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무조건 믿습니다가 전부가 아니다.
열심만으로는 부족하다.
핵심을 꿰뚫는 영적인 통찰력이 필요하다.
엉뚱한 것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 있다.
본질에서 벗어나면 모든 것은 헛수고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이다.
유언비어나 거짓이 우리의 영적인 것을 흐리게 만드는 것에
미혹당하지 않기 위해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세상의 학식이 높아도 잘못된 신앙에 빠지면
그 올무에서 벗어나기가 힘이 들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 힘쓰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 힘과 능력의 에너지는 곧 고갈되고 소멸한다.
무궁하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자료/ⓒ창골산 봉서방
변화와 변질
이런 것이 변화라는 것입니다.
여우같은 여자가 여유있는 여자로,
화난 여자가 환한 여자로,
따지는 여자가 따뜻한 여자로,
착각하는 여자가 자각하는 여자로,
색기있는 여자가 생기있는 여자로,
밝히는 여자가 밝은 여자로,
애먹이는 여자가 애태우는 여자로,
답답한 여자가 답을 아는 여자로,
빚을 지은 여자가 빛을 내는 여자로
바뀌는 것이 변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질은 반대입니다.
여유있는 여자가 여우같은 여자로,
환한 여자가 화난 여자로,
따뜻한 여자가 따지는 여자로,
자각하는 여자가 착각하는 여자로 ,
생기있는 여자가 색기있는 여자로,
밝은 여자가 밝히는 여자로,
애태우는 여자가 애먹이는 여자로,
답을 아는 여자가 답답한 여자로,
빛을 내는 여자가 빚을 지는 여자로
바뀌는 것이 변질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의 꿈
태양을 바라보며 살아라.
그대는 그림자를 볼 수 없으리라.
해바라기가 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지 말라.
머리를 언제나 높이 두라.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라.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쾌락은 거의 없다.
불구자라 할지라도 노력하면 된다.
아름다움은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
그대가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라.
그대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헬렌 켈러
유혹은 정확한 시점에 찾아온다
하나님은 정확한 때에 일하십니다.
그런데 마귀도 역시정확한 때에 일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영적 훈련을 받으려 할때
꼭 마귀가 찾아와서 시험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도 그렇게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시험받기 쉬울 만할 때,
환경적으로 가장 불평할 만할 때,
가장 배고플 때 마귀는 정확한 시간을 잡아
유혹의 손길을 폈습니다.(마태복음 4:1-11)
마귀를 얕보지 마십시오.
마귀는 우리보다 훨신 더 영악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과 허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 화를 내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가
그 순간에 화나게 만듭니다.
마귀는 우리가 넘어질 수 있는 그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부로 덤벼들지 않습니다.
정확한 때에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마귀의 특기입니다.
성경은 "마귀를 대적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의심의 파도가 일렁일 때,
영원히 의심 없이 잘 믿는 사람은 지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성령을 받았건 안받았건,
인간적인 의심을 한두 번씩 할 수 있습니다.
부인 보다 더 나를 괴롭히는 것은 확신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의심이 올때, 이때는 언제나 사탄의 유혹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탄을 물리치십시오.
육적인 그리스도인
육적인 그리스도인은 종종
회개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뉘우침이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곧바로 죄에 대하여 실패하곤 합니다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와 싸워 이겨야겠다는 결의가
거의 없거나 현저히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헐적으로
경험하기는 하지만 죄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그에게는 결국,주님의 은혜로도
자신의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불 신앙적인 패배의식이
마음에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하나님께
상실로 이어집니다.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을 가장한 충동적인 행동은 있지만
인격적인 주님과의 지속적인 사귐이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물론 신령한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실패하지 않고
늘 승리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실패
속에서 경험되는 영적 성장입니다.
육적인 그리스도인에게는 빈번한 실패만 있을 뿐
성장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깊은 침체와
무감각 가운데서 지내게 됩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병적인 유아 상태와
결별하고 건강한 영적 생활을 이어가는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실패한 삶의 한복판에는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있는 영혼이 있음을 인정하고,
오직 성령의 은혜로우신
역사만이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고 그분의
만져 주심을 기도해야 합니다.그렇게 함으로써
허위와 무기력에 가득한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 종말을 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사랑은.. 자신을 위해 상대에게 향하지만
영적인 사랑은.. 그리스도를 위해 상대를 사랑한다.
인간의 사랑은.. 상대와의 직접 접촉을 구하지만
영적인 사랑은.. 모든 관계가 예수를 통해 중재된다.
예수가 빠진 일대일 관계란 없다.
인간의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고 지배하려한다.
그러나 영적인 사랑은.. 상대를 규제하고 지배하고
강요하려는 모든 시도에서.. 상대를 놓아주게 된다.
영적인 사랑은.. 상대에게 그리스도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에게 상대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된다.
이 사랑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안의 진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사랑은 우리 자신의 판단과 잣대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력한 요청으로 그들 앞에 선다
동시에 상대(그들)을 위한 요청을 가지고 지혜로우시고 능력 많으신 왕앞에 선다.
내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을..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감히 그들과의 직접적 관계를 꿈꾸지 않는다.
나는 너와 함께,너에게, 너를 위해 해줄 일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예수와 나-가 너와 함께, 너에게, 너를 위해 해줄 일을 생각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네가 나와 함께, 나에게, 나를 위해 해줄 일도 생각할 수 없다.
너와 예수가 나와 함께, 나에게, 나를 위해 해줄 일을 생각할 뿐이다.
ㅡLife Together에서 디트리히 본회퍼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