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700평의 논밭을 손수 가꾸며 자연의 생명들과 더불어 마음공부를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이철수 화백.
농부 판화가 이철수씨 인터뷰
“벼 베기 전날은, 논에 날아오는 참새들에게도 너그러웠습니다. 그래, 오늘이 마지막 밥상이다. 많이 먹어라.”가을의 문턱, 노란 들녘에서 판화가 이철수(61)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너그럽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그의 ‘문전옥답’은 마음을 노랗게 물들일 만큼 샛노랗다. 풍년이다. 아흔아홉섬 가진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한섬조차 못 뺏어 안달하는 세상에서 참새에게조차 너그러워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농사꾼 흉내를 내는 한량이 아니고 땀 흘려 논밭을 일구는 진짜 농사꾼이라면 더욱더 그렇다.1970~80년대 저항의 횃불
30여년 전 산골행 농사 몰두
한때 그림 손놓다 ‘마음’에 눈떠
3년째 원불교 교조의 ‘대종경’ 판화작업
10월말 서울 시작으로 전국 순회 전시
외로움과 불안 벗어날 길은 마음공부문전옥답 코앞의 그의 집에 들어선 순간, 녹록지 않은 이씨의 성격이 보인다. 어찌 농사꾼이 이처럼 정갈하게 집을 가꿀 수 있으랴. 정원수며 잔디마당은 정갈한 학생의 머리 같다. 농기구는 말할 것도 없고 부지깽이 하나 어질러진 것이 없다. 열댓평 텃밭이 아니라 무려 1700평의 논밭을 일구는 농사일에, 판화작업까지 하는 이씨 부부의 일거리를 본다면 정원사를 두엇쯤은 두어야 가능할 성싶은 500평 집의 풍모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을 두 부부가 감당한다. 그러면서도 그 여유라니. 천리까지 향기를 피우는 천리향의 마음밭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씨가 논밭농사 말고 3년째 심혈을 기울여 지은 마음농사가 있다. <대종경> 판화다. <대종경>은 100년 전 원불교를 연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의 언행록인 교전이다. 대표적 판화가로 어느 종교에도 얽매이지 않고 세인의 마음을 치유해온 그가 원불교 교전으로만 3년간 씨름해온 것이 보통일은 아니다.그의 원불교와의 인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결혼한 그의 아내가 장모를 따라 원불교 교당에 다니고 있었다. 일요일이 되면 아내와 함께 원불교 중구교당에 갔다가, 때마침 벽화를 그리게 된 동월교회로 가 허병섭 목사, 영화감독 이장호, 연주가 김영동 등과 어울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구교당의 창타원 보현 교무의 인격에 끌리긴 했지만, <대종경>까지는 맛들이지 못했다. 그러다 결혼 2년 만에 산골로 들어오면서 원불교와의 인연도 끊겼다.
그런데 4년 전 원불교백년기념성업회를 맡고 있던 김경일 교무가 찾아왔다. <대종경> 판화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보현 교무와 함께였다. 이씨가 “내게 이 일을 하게 하려고 여기까지 함께 오셨느냐”고 묻자 보현 교무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러나 이씨가 형님처럼 모시던 고 권정생 선생의 <몽실언니> 삽화작업도 늦추고 있는 중인데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당부했던 <무문관> 판화작업 등 구상한 일만도 태산처럼 쌓여 있던 터라 다른 작업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러다 김 교무가 놓고 간 <대종경>을 별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대종경>이 그의 애초 구상을 송두리째 뒤바꾸고 말았다. 대종사의 언행은 자신을 신비하게 우상화하기 마련인 종교서적이 아니었다. 종교가의 뜬구름 잡는 식의 얘기와는 전혀 다른 ‘사실적’인 마음공부법이 그를 사로잡았다.그때부터 <대종경>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읽고 또 읽으며 한장 한장 그림을 그렸다. 그가 <대종경>의 한 말씀 한 말씀을 씹고 또 곱씹고, 걸으면서도, 일하면서도, 잠자면서도 소화하고 녹여냈다. 수많은 마음밭에 뿌릴 밑거름이 무려 300여장이나 됐다. 그 밑그림 가운데서 고르고 골라 203점을 판화로 떴다.최근엔 원불교 최고 어른인 좌산 상사가 찾아와 이씨의 판화로 쉽게 재탄생한 <대종경>을 음미했다. 좌산 상사는 다음날도 발걸음을 해 다시금 판화를 한장 한장 넘기며 이심전심을 보였다.그가 대종사의 마음과 이렇게 쉽게 계합할 수 있었던 것은 기실 오랜 농사로 온갖 생명과 함께한 덕이었다. 그는 말씀이 대종사와 예수와 부처의 입을 빌리기는 하지만, 모든 생명의 소리가 한 근원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게 됐다. 하루에 세번 옷을 모두 갈아입을 만큼 흠뻑 땀에 젖으며 부대낀 자연으로부터 마음으로 전해들은 소식이었다.
그는 애초 ‘도’(道)와는 상반되는 것으로 여기기 십상인 ‘저항’의 화톳불이었다. 1970~80년대 시위가 있는 곳엔 이철수의 판화가 있었다. 검경의 덫을 감수하면서 뜻을 좇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뜻이 좋아도 사람은 다 그러지 않았다. 어느 곳이나 별사람이 다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피해 숨어든 곳이 산골이었다. 경북 의성에서 농민운동을 하던 김영원 장로의 농장에서 2년 동안 그가 농사일을 배우며 산에 가 나무를 하는 동안 아내는 개울에서 얼음장을 깨고 빨래를 하고 군불을 지펴 밥을 했다.2년 뒤 ‘울고 넘는 박달재’ 너머인 이곳에 와서는 본격적인 농사일을 하며 판화를 그렸다. 그러다 독일 판화전시회에 갔다. 그런데 그곳의 한 지식인이 이씨의 그림에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동료가 “원래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니 개의치 말라”고 위로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넘겨지지 않았다. 귀국해서도 그의 말이 화두처럼 목에 걸려 삼켜지지도 뱉어지지도 않았다. 그림도 더는 그릴 수 없었다. 그렇게 1년 반을 폐인 아닌 폐인으로 보냈다.이씨는 “자연 속에서 산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하버드대 출신으로 25살에 버클리대학의 최연소 교수가 되었던 ‘테드 카진스키’를 예로 들었다. 카진스키는 월든 호수에 오두막을 짓고 산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교수직을 2년 만에 그만두고 현대문명을 거부한 채 야인생활에 들어갔으나 테러리스트가 되어 돌아왔다.그래서 그가 귀착한 곳은 ‘마음’이었다. 도시에 있거나 시골에 있거나, 놀 때나 일할 때나 자신을 지켜줄 그 마음이었다. 자연이나 사람과 어떻게 만나 어떤 관계를 맺게 하는지 결정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유일한 귀의처였다.그때 자주 만난 이들이 그가 ‘사람 농사’의 대인으로 꼽는 원주의 장일순 선생과 충주에 살던 이현주 목사, 안동의 권정생 선생 등이었다. 장일순 선생은 그에게 “뭘 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했다. 일에 대한 강박을 해소해주는 그런 감로수를 마시며 그도 안심을 되찾아 갔다.“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을 경멸하고 자신이 이룬 성취를 뽐내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도 불안해하며 위태롭게 벼랑 끝에서 살아가긴 마찬가지 아닌가. 오히려 잘 살펴보면 성취를 이룬 요소들이 우리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가 이미 100년 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주창한 소태산 대종사의 마음에 100퍼센트 공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물질적 부를 이뤄봐야 마음을 잃어버리면 허전함과 외로움과 불안함을 결코 벗어날 수 없어서다. 그래서 그는 사회참여자든, 부자든, 빈자든 누구라도 마음을 다잡기 위한 공부심, 즉 수도의 마음을 놓쳐서는 안 되기에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살자가 늘어나는 것도 본마음을 잃어버려 ‘자기 긍정’을 못하기 때문”이라며 “마음공부를 하면 농사짓거나 자연을 거닐면서도 생명들과 대화하며 늘 상대와 나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느라 무료하거나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고 말했다.이철수 <대종경> 판화전은 10월21일~11월3일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대구, 광주, 익산, 부산, 대전에서 잇따라 열린다,
30여년 전 산골행 농사 몰두
한때 그림 손놓다 ‘마음’에 눈떠
3년째 원불교 교조의 ‘대종경’ 판화작업
10월말 서울 시작으로 전국 순회 전시
외로움과 불안 벗어날 길은 마음공부문전옥답 코앞의 그의 집에 들어선 순간, 녹록지 않은 이씨의 성격이 보인다. 어찌 농사꾼이 이처럼 정갈하게 집을 가꿀 수 있으랴. 정원수며 잔디마당은 정갈한 학생의 머리 같다. 농기구는 말할 것도 없고 부지깽이 하나 어질러진 것이 없다. 열댓평 텃밭이 아니라 무려 1700평의 논밭을 일구는 농사일에, 판화작업까지 하는 이씨 부부의 일거리를 본다면 정원사를 두엇쯤은 두어야 가능할 성싶은 500평 집의 풍모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을 두 부부가 감당한다. 그러면서도 그 여유라니. 천리까지 향기를 피우는 천리향의 마음밭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언행록인 <대종경>을 이 화백이 해석해 그린 판화 작품들.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언행록인 <대종경>을 이 화백이 해석해 그린 판화 작품들.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언행록인 <대종경>을 이 화백이 해석해 그린 판화 작품들.
5. 초가집을 말끔히 개조한 집과 깔끔한 잔디마당, 그리고 문밖 그의 논에 노란 벼가 보인다.
첫댓글 참고로....원불교 교주인 소태산 대종사는
1916년에 득도한 분으로서, 전기, 전차 등의 존재와
"과학"이라는 용어를 이미 알고 있는 분이었죠.
즉, 현대 문명과 과학의 존재 및 그런 물질적 혜택과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마 "물질이 개벽되니, 이제 정신도 개벽하자"는 구호를
들고나온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견성: 자신의 본성이 자주적 존재(부처)임을 알아 차
리는것
성불: 모든사람 또한 자주적 존재(부처)임을 온전
하게 아는것
생불: 사람의 자주성(불성)을 일깨우며,
사람의 자주성(불성)을 억압하는 모든 지배체
제에 저항하여
세계의 자주화(불국토)를 위해 매진하는것
종교의 관념적 론리 라는 것 거의가
면질거리는 미끈한 말로 참,선,인 등등
내력을 포함시킨 에고이즘 왁꾸와
기복신앙적으로 매몰 시켜 버리는데..
그에 반해 배우섭형님께서는 위 알딸딸한 종파적 관념론리를
실천적인 혁명적 론리로 개조시키는 군요..
우섭형님의 해석글에 어마무시한 깨우침을 얻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먹고사니즘 원불교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익산에 있습죠..
그 재단의 경제활동을 보면 조폭을 끼고 건설업등 악랄하기가 초고조 입죠..
@먹고사니즘
뭔가...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불교 신봉자들이 그런 짓을 할 턱이 없다고 봅니다.
원불교가 무엇인지를 안다면....그런 상상 자체가 가능하지 않음도
아마 쉽게 알 겁니다.
@정론직필 방장님께서 바라보시는대로
더러 영혼이 맑은 분들도 있습죠..
원불교의 핵심적 지역이 전북이라는 건 잘 아실듯요..
제가 군산에 살면서 격어왔던 내력을 기술한 겁니다..
(이에 구체적 사항을 밝히지 못함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단 자칭 민족종교라면서 활동중인
증산교,증산도,대순진리교,통일교,등등 중에
그나마 모범썽을 견지한 종파가 원불교라고 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왜냐면...위 내용은 사실 원불교에 관련된 전문용어들로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원불교의 "대종경"이란 소태산 대종사의 실제 언행을 기록해둔 경전이지요.
법강항마위란....원불교에서 수행 정도를 나타내는 6 등급들 중 하나로서
적어도 견성을 한 등급이라고 합니다.
원불교 수행 등급:
보통급, 최신급, 법마상전급, 법강항마위, 출가위, 여래위
@정론직필
참고로...
오늘 새벽 4시경 여의도 방면 하늘에서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는데
여기에 기록해 두고자 합니다.
오늘 새벽 4시가 조금 지나 우연히 여의도 방면 하늘을 보니
이상하게도 평소 별이 없는 하늘에 별 두개가 보여
웬일인가 하고 바라보고 있었는데...둘 중 하나가 먼저 사라지더니
다시 나머지 하나의 별도 사라지더군요.
그런데 잠시 뒤 다시 두개의 별이 나타나더니, 먼저 하나가 사라지더니
다시 나머지 하나도 사라지더군요.
그것들이 별이 아니라고 느껴진 것은 어딘지
남쪽으로 흐르는 듯 움직이고 있더라는 겁니다.
암튼, 다시 더 오른 쪽에 다시 한번 나타나 그와 같은 동작을 보이더니
이제 다시는 나타나지 않더군요.
@정론직필 혹시 UFO일까요.아니면 옛 역사에도 나오는 시대의 징조인지,..신기해서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바보이반님이
이런내용은 정리를 해주시면 좋을텐데요.
조만간 미얀마로 출발하실 시간이
다가오는것 같군요.
9월초에 미얀마로 가신다고 하더군요.
@정론직필 대축복의 대광명의 길을 가시는군요. ()
바보이반님의 주옥같은 법문해설이 참 좋았는데 사라져서 아쉽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설혹 여래가
이러한 법들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그들이 이 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부질없는 일이 될 뿐이라.
세상 사람들에게
이와같이
어렵게 증득할 수 있는 이 법을
과연 설할 필요가 있을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세상 사람들이
이 법을 증득하기란 실로 어렵나니.
이 법은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고
심오하고
수승하고
미묘하여
보기 어렵나니.
어둠의 무더기에 덮여 있는
어리석은 자들
탐욕에 물든 자들
성냄에 빠진 자들
결코
이 법을 보지 못하리니.
**
세존께서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으로 기울 때
사함빠띠 범천은
'세존이시고 아라한이신 정등각자께서
법을 설하기보다는
.
.
.
@좋습니다 열반을 이루신 세존께서 위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내가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해 보라고 권한다고
내 말을 믿고 그렇게 할 사람이 몇사람이 있겠습니까.
다만 한사람이라도 알아 듣는 사람이 나올수가 있어서
혹 가다가 한번씩 올리는 것 뿐입니다.
@좋습니다 바보이반님 이후 새롭게 좋습니다님이 오셔서 법설을 해주시니 참 좋습니다.감사합니다.^^
견성이니 성불이니 등등등 으로 단계를 나누는 것은 석가모니의 가르침과는 다르지 않나요?
아 정말 장사꾼들이란.....
단계를 나누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 할수 있죠.
사람들은 이 세상을 계급사회라 비난하지만
인간의 삶은 철저히 계급, 등급에 따른 성장 진화하는
삶의 시스템속에 인간들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학사,석사,박사가 있고, 9급,7급,5급 공무원이 있어 이 급수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듯이
깨달음에도 견성,불성,열반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할수 있을 겁니다.
@나는지금여기있다 단계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라면 고통받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도 자연스럽지요. 그럼 깨달음을 얻으려 노력할 필요가 있나요?
저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잘 모릅니다. 다만 불교의 교리에 조금 관심이 있어요.
문제는 자아의 소멸인데. 두가지 설이 있지요. 하나는 "조금씩 조금씩 자아가 소멸이 될수있다". 또하나는 "조금씩 조금씩 자아가 소멸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아다". 석가모니는 어느쪽을 설했다고 보시나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할 만한 자격이 있지는 않아요. 다만 우리의 종교계의 현실이 너무 황당해서 이렇게 주제 넘게 이야기 하나 봅니다. 부디 헤아려 주세요.
@올빼미 님께서
핵심을 정확하게 짚으셨다고 동감하는데요..
(아~ 정말 장사꾼들이란....)
이남사회 전체 종교판데기란 것들 모두가 장사꾼들 입죠..
그럴듯한 구라빵으로
무지몽매한 노예들을 홀려
등골을 쪼오옥 빨아대는 세금없는
스트롱식 자본론리의 극치 입죠..
개도꾸는 예수 팔이
불교는 석가모니 팔이
까톨릭은 예수+성모마리아짬뽕 팔이
통일교는 문선명신+개도꾸짬뽕 팔이
증산교,증산도,대순진리교는 교주이름 기억안남???+증산미륵신 팔이
원불교는 박중빈신+미륵+불교짬뽕 팔이 등등등~~~
그렇싸한 개좆밥교들이라고 판단하면
그나마 양심을 견지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단 교리는 참고할 필요 있슴..
@먹고사니즘 증산교,증산도,대순진리교는 교주이름 기억안남???=강증산- 도인
@올빼미 깨달음을 얻으려 노력할 필요가 있는가?란 질문을 하셨내요.
이 질문에 답을 할것인데요.
저의 답을 이해 하려면 삶의 본질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의 삶은 끝없이 진화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삶은
깨달음과 앎...또는 지식의 습득을 통해 진화 발전해 갑니다.
깨달음이런 것도 하나의 앎인 것입니다.
즉 깨달음이란 방법으로 그 어떤 앎을 취하는 것이기에
깨달음을 통해 앎을 취하고 이 앎이 모두가 인정하고 이해 할수 있는 수준이 되면 그것은 지식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선택은 개인의 문제입니다.
깨달음도 예외일순 없는 것이죠.
그러나 인과가 분명한 삶의 구조속에서 뿌린만큼 거두게는 됩니다.
@나는지금여기있다 그리고 자아 소멸에 대한 질의는... 일체유심조로 답을 대신할까 합니다.
즉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내요..
그러니 부처의 두가지 속설중 어느것을 택하던 자신이 택한 그대로 될것이며
만먁에
그 외의 방법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 또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내요.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일체유심조의 핵심이죠.
진리를 세속적으로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려는 중생심은 2500년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지요.
싯달타가 열반을 이룬것이 아니라 *열반에 듦*이라는 표현이 맞는데, 왜냐면 성품을 본다는것은 눈으로나 오감으로 뭘 본다는 개념이 아니기에, 몰록 열반에 든 성품을 증득하는것이 곧 성불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하기에 열반과 견성 그리고 성불이라는 개념은 차서나 차별적 등급으로 나뉘어질수 없는 용어지요.
진리를 함축하여 설한 반야심경을 조계종단에서도 잘못된 한글 해석을 사용하고 있지요.
싯달타 부처님이 마음에 대해 설한 내용을 축약하였는데 물질이 어떻고 ...하는 그런 내용은 한글 해석을 잘못해서 그렇게 된것이지요.
오직 마음에 대해서 설했습니다.
물질은 과학자에게 약은 약사에게 물어야...ㅎㅎㅎ
하하하하하하하..
역쉬~~
물질은 과학자에게 약은 약사에게 물어야..
만약에 석가가 대제국의 황자였다면
예수가 로미제국의 황자라면
공자가 사생아가 아닌 귀족 출신이면
과연 어찌했을까.
답은 여기에 있지요.
견성(見性) 자기자신을 본다.
인체는 소우주라 편견없이 자신을 봄으로(虛靈不眛허령불매,虛靈明覺허령명각)
세상돌아 가는 이치를 알아
자기 몸은 최소한 지킬수 있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만의 왕조를
열수 있다는 뜻이죠(한고조,왕건)
나이 50 지천명이 아니고 지아(知我)조
석가의 견성은 44세가 지아죠.
소욕(小欲)종심 불유구지요
-하고자 하는 바가 적으면 마음 내키는 데로해도 무리가 없다-
-도을 아는자는 이치에 밝고
이치에 밝은자는 권(權)에 밝아
사물이그몸을 해치지 못한다.
인(人)가의 잣대로는
생각의 이치로는
도의 신통으로는
붓다의 오묘함을 볼수도 다가갈수도 없는데
비교하는 것은 더우기 있으수 없지요.
신(신중)과 하늘신들도 지킴의 왕들이
붓다에게는 한갖 위촉받은 문지기 정도에 불과한데
위의를 비교하는 것은 아직 알지못하는 무지의 소취로 볼수 있습니다.
결코 건방의 소리가 아님을 알립니다.
예전에 원불교 교무님께 대종사님은 시방삼계에 계셨던 여러 부처님중 한분의 화신이 아닐까 말씀드리니 교무님이 그럴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원불교는 불교가 아니고
도교에요~
그런데 무슨 부처님의 화신이네 뭐네 하면 구업만 짓는것이지요.
부처는요 적어도 수행하는 주위에 인연있는 수행자를 어느시기에 성불 할것이라는 것도 다 알고 수기를 주시고
주위에 어마어마한 신통 방통한사람들이 나타나서 옹호하죠.
스님들도 공부된 비구 대선사들은 신통력이 있었다는 기록이 많아요~
원불교 이름이 불교를 써서 불교인것 처
럼 보이지만 불교가 아니고 도교로 봅니다요~~
@마발이1 의견일 뿐이지 확신은 못하지요. ㅎㅎ...비화를 몇편 들어보니 대종사 정산종사 대산종사 세분은 보통 분들이 아니더군요.
일리아드에는 서양 신들의 속성이
나오지요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오입쟁이라 번뇌가 있지요
우리 동양에도 봉신방에 신들의 전쟁이 있지요.
여기에도 번뇌 하지요.
일체 유심조란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내 마음이 발하듯이
상대방 마음도 발하니
마음을 비우든지 포기하란 뜻이죠
이것이 안되니 신들도 싸우죠
우리나라 기후 여건상 소승 불교는 맞지을 않고
신도들의 도움이 필요한 대승불교가 맞아요
소승의 교리대로하면 얼어 죽습네다.
석가불이 위대한 것은
자아(自我)론에서 무아(無我)론으로 해서
위대하지요 그래서 잡신들도 고개 숙이고
아에서 집이 생기고 집에서 고가 생기죠
아를 멸하니 그게 바로 "도"
고집멸도
불교식이죠
견성이란 입류라고 하는 사다함위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수행력에 따라 일초직입여래지도 가능하겠지요.
일단 견성이 되야 법강항마가 가능하지요.
식이 맑은 사람은 일상적으로 견성 체험을 할수있는데 견성이 무엇인지 몰라서 모르는 것이지요.
마음에 일어나는 것을 색이라 하고
색이 공함을 알아차리면 성품을 본다고 하지요.
보통 감정이나 생각이 깨어있는 상태로 알고 있는데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깨어있는 상태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서로 보고 얘기 하는 거지요.
일상에서 수행방법은 우선 생각 나는대로 분별의식을 멈추는 습관을 들입니다.
아무때나 할수 있으니까 쉽지요.
분별의식을 멈출때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밀밀히 살피는 거지요.
견성과 성불을 하지 않은 자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구정물을 마시는 바와 같은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있지요.
옛날 자그만치 25년 동안 명상을 해오고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명상을 했답니다.
그런데 근처에 부처님이 놀러왔다길래 가서 이야기를 청했답니다.
그런데 도대체 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았답니다.
왜냐하면 그 명상가는 머리속에서 아직도 명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