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가 생기기 이전에도 미국에는 수많은 리그가 있었고 또 사라졌습니다. 물론 ABL처럼 오랫동안 생존한 리그도 있었고 NBL처럼 훗날 NBA에 흡수합병되는 리그도 있었죠.
또한 1920년대 40년대 심지어 그 이후에도 수많은 유랑 구단들도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할렘 글로브트로터스도 그 중 하나죠. ‘반스토밍(Barnstorming)’ 구단이라 불리던 이들은 오히려 프로리그에 속한 팀들보다 더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뉴욕 르네상스, 오리지널 셀틱스는 글로브트로터스와 함께 구단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죠. 셀틱스는 1920년대 짧게 EBL, MBL, ABL에 가입한 적도 있는데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실력을 과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1930, 40년대에 렌즈(르네상스), 셀틱스, 글로브트로터스와 함께 전국을 돌며 대결했던 중국인팀이 있었습니다. 바로 홍와 큐스(Hong Wah Kues)였죠. 차이나타운이 있어 중국인이 많이 거주했던 샌프란시스코 기반이었던 홍화 큐스(일명 Q’s)는 반스토밍 구단으로 글로브트로터스의 구단주 에이브 세퍼스틴이 에이전트 역할을 하며 상대를 섭외할 수 있었습니다.
홍와 큐스는 최장신이 180cm(5피트11)로 작았기 때문에 빠른 패스와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농구를 구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1939년 6명의 선수로 시작한 홍와 큐스는 이후 2차 대전의 영향으로 단 두 시즌 만에 해체되었다네요.
첫댓글 새로운 사실을 배웁니다 해설위원님 자주 들러주세요^^
글고 예전에 nba 해설 보면서 방대한 지식들에 감탄 한적이 많았습니다
홍와큐스의 실력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위원님~
빠른 템포의 패싱 농구를 바탕으로 7할 가량의 승률을 자랑하는 강팀이었습니다. 당시 여느 반스토밍 팀들이 다 그랬지만 열악한 환경에 돈을 벌려고 무리한 스케줄과 원정 이동을 감행하면서 올린 성적이죠. 2년밖에 지속 못된 게 참 아쉽죠.
@gabage time 작은 신장과 적은 멤버로도 승률이 장난 아니었군요 ㄷㄷㄷ
@태섭 사실 신장이 작긴 했으나 그 당시 다른 팀들도 그리 장신은 아니어서... 농구에서 키를 바탕으로 한 골밑 플레이가 지배적이란 인식이 30년대 6-5의 르로이 에드워즈의 출현으로 대세가 되었고 대학 농구에서 꺽다리들을 앞다퉈 센터로 세우던 건 40년대부터였죠. 이러다보니 6-10의 조지 마이칸이 6피트 겨우 넘는 상대팀 주전 센터와 팁오프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죠. 저 시절 농구 선수들 사이즈 보면 과거 80년대 무렵 농구대잔치가 연상되는데 키가 190이 안되는 신선우가 정상급 빅맨으로 활약하던 그런 시기와 비슷하죠.
@gabage time 답변 감사합니다. 덕분에 농구지식 얻고 갑니다!!
옛날 농구라는게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스포츠였죠. 흑인, 유대인, 그리고 저런 중국 이민자들... 이들은 백인들의 눈총에 야외에서 맘껏 스포츠를 즐기기 힘들었고, 그래서 자연히 눈치 안보고 실내에서도 뛸 수 있는 농구를 즐기곤 했죠. 느바 출범 훨씬 전에 흑인 농구단 뉴욕 렌스, 유대인 농구단 필라델피아 스파스, 그리고 본문의 큐스 같은 팀이 생겨난 이유기도 했죠. 당시 아이다호 주에는 중국인의 경제 활동을 금지하는 차별법이 있어서 큐스 팀이 아이다호 원정을 뛸때만 일시적으로 그 법의 시행을 중단하고 떠나면 다시 시행하는 촌극도 있었죠.
농구의 탄생과 nba리그 출범사이에 시간의 공백이 꽤 있는데 그 사이의 농구는 어땠을지 궁금한적이 있었는데 흥미로운 글이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