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경
직지경은 백운 스님이 지은 석가님에서 당신에게 까지 이어지는 계맥을 적은 서책이다.
백운(白雲 1299~1375) 스님은 고려 말에 계셨던 스님이다. 충렬왕 24년에 출생하여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전국의 선원을 참방하며 수행하시다가 당시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50여 세에 원나라로 유학을 떠나 스승 석옥 청공을 섬겼다.
석옥 청공을 섬기며 1년 여를 공부한 뒤 스승에게서「직지심체 요절」이라는 간결하게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계맥을 기록한 서책,「불조의 정맥」을 받아 돌아왔다.
불조의 정맥을 기록한「직지심체 요절」은「직지경」이라 하기도 하며 「직지심경⌟이라 하기도 한다. 백운화상이 스승에게서 받은「직지경」은 지금우리가 볼수 있는 당시까지의 계맥이 총 망라된 장대한 경이 아닌 간단한 내용이었다.
백운 화상께서 당신의 제자 법린화상에게 전해주기 위해 부처님으로부터 당시 지공 화상에 이르기까지의 전법을 위해 애쓰신 많은 스님들을 상세하고 세밀하게 기록하고 각각 스님들의 계맥과 전법과 행록을 기록하셨다.
처음 이 세상을 여신 과거 일곱 부처님 즉 비바시불을 비롯한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 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이 남기신 게송을 칠불통게라 하는데 이를 일일이 적었으며. 가섭존자를 비롯한 아난존자. 달마조사. 혜능선사. 임제선사. 등 수많은 조사님들 계보와 전하신 게송을 빠짐없이 찾아 기록하셨다.
백운 스님이 쓰신「직지심체요절」혹은 「직지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독일의 구텐베르그 성경 금속활자보다 70 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고의 자랑거리 문화유산이다.
서양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구텐베르그」의 성경 금속활자본은 15세기경에 만들어졌다. 우리의 직지심경은 그보다 70 년 앞선 1377 년에 백운 화상 문도인 석찬스님과 달단스님에 의해 청주 흥덕사에서 만들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금속활자를 만들었던 자랑스런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그 서책이 우리에게 남아 있지 못하고 프랑스의 국립 박물관에 단 한 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마도 프랑스인들이 강화도를 침범해서 병인양요를 일으켰을 때 가져간 것으로 여겨진다.
이전까지 목판 인쇄에 의존하던 서책발간이 금속활자가 만들어짐으로써 많은 양을 한꺼번에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책을 얻을 수 있고 많은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서 금속활자의 제작은 전혀 새로운 문화 시대로 접어들게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화의 근원이 종교였다. 음악이 그렇고, 인쇄가 그렇고, 건축이 그렇다. 뿐만 아니라 석조술, 제다 기술, 희화. 등 종교의례에 쓰이는 모든 것이 일반 사회문화의 선도적 역할을 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가 고대 우리 역사를 알게 하는 바탕이 되었고, 고려 대장경 경판이 국력을 기르고 외세를 물리치는 중심 역할을 했고. 백운의 직지심경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를 만들어 세계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후학들이 잠시라도 헛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알뜰하신 가르치심과 행적을 하나 빠트리지 않고 세세하게 적어서 튼튼하고 정갈한 길잡이가 되게 하셨다. 직지를 읽노라면 정성 다하시는 모습이 역력히 느껴진다.
백운 스님의 탁월하신 시대 정신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를 새기게 한다. 나이 들면 누구나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간에 읽고 경험해서 축적된 지혜를 뒷사람을 위해 길잡이가 될 지침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
문서화 되지 않은 기억은 세상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발하지 못한다. 아무리 훌륭한 지혜를 갖추었다 해도 글로 전해질 수 없다면 인류 문화를 발전시키는 토대가 되지 못한다. 백운 스님의 깨달음에 의한 지혜로운 노력은 우리 나라를 세계의 문화강국으로 우뚝 서게하는 탁월하신 선각자의 모습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