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대통령이 직접 회의 주재… 尹 “국가가 육아 책임지겠다”
새틀 짜는 저출산대책… 필요한 곳에 예산집중
윤진호 기자,최은경 기자
입력 2023.03.29.
윤석열 대통령은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7년 만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면서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저출산 대책 중에는 부동산 외에도 임신과 출산, 보육에 실제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담겼다. 2세 미만 신생아에 대해서는 입원 진료비를 무료로 하고, 난임 시술비 지원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정부가 2006년부터 지난 15년간 저출산 문제에 28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백화점 나열식 정책으로 정말 필요한 곳에 예산을 쓰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매년 40조원가량 투입되던 저출산 대책을 원점으로 돌리고, 내년부터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필요한 곳에 예산을 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세 미만 아동 입원 진료비 ‘0원’
우선 만 24개월 미만 아동이 병원에 입원할 경우 입원 진료비 본인 부담금을 없애기로 했다. 지금은 출생 후 28일 이내 신생아만 본인 부담금을 면제해 준다. 그 이후 아동은 입원 진료비의 5%를 내야 했다. 이를 무료로 만들어 어린아이가 심장 질환 등 중증 질환으로 장기 입원하더라도 비용 부담은 없게 하겠다는 것이 정부 발표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위원장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저출산위 회의는 2015년 이후 7년 만이다. /연합뉴스
현재 2세 미만 아기들의 진료비(외래·입원 포함)가 하루 평균 6만원 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0일 입원할 경우 최소 60만원 정도를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정부는 2세 미만 아동 입원 진료비를 지원하기 위해 197억원 정도 예산을 책정했다.
정부가 입원 진료비 지원 연령을 만 2세 미만으로 한정한 것은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방지하는 차원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는 지원 연령이 만 6세 미만이라 문제가 발생했다. 의료 업계 관계자는 “당시 일부 병원이 부모에게 불필요한 입원을 권하는 사례가 늘었고, 일부 부모도 의료보험·실손보험을 믿고 어느 정도 큰 아이를 보육원인 양 병원에 맡겨둬 문제가 됐다”고 전했다. 아동 입원이 급증하자 당시 정부는 2년 만에 이 정책을 철회했다. 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대신 지급한 입원 급여비가 2005년 2745억원에서 2006년 3838억원으로 40%가량 뛰었기 때문이다. 이후 정부는 6세 미만 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다시 10%로 높였다.
한 병원 신생아실에 놓인 아기 바구니 곳곳이 비어있다. /뉴스1 ⓒ News1 DB
◇난임 지원·돌봄 강화, 냉동난자 활용 지원
정부는 또 임신을 준비하는 부부를 위해 부인과 초음파, 난소 기능 검사, 정액 검사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게 한다. 여성에게는 10만원, 남성에게는 5만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난임 시술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소득 기준도 현행 부부 합산 연소득 7000만원에서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난임 휴가도 현행 연 3일에서 6일로 확대한다.
정부 관계자는 “기혼자들도 난임 여부를 사전에 검사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지 않고 민간 병원의 산전 검사는 비용이 수십만원에 달하는 경우가 많다”며 “비용 부담 없이 난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냉동해둔 난자를 임신을 위해 사용할 경우 그 비용도 지원하기로 했다.
국가 돌봄 서비스 규모도 대폭 확대한다. 현재 7만8000가구가 받는 아이 돌봄 서비스를 2027년에 3배 수준으로 확대하고, 현재 2만명이 이용하는 시간제 보육 규모도 2027년 6만명까지 단계적으로 늘릴 예정이다. 국공립어린이집도 자연적으로 줄어드는 어린이집 규모를 감안해 매년 500개씩 늘릴 계획이다.
초등학생 돌봄을 위한 ‘늘봄학교’도 설립한다. 늘봄학교에서는 방과 후 교육과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밖에도 기업에 대한 출산휴가·육아휴직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중소기업들에는 남성 직원에 대한 배우자 출산휴가 관련 급여 지원을 5일에서 10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에 대해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파격적인 조치가 아쉽다”며 “예컨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획기적으로 늘려주고, 난임 시술에 따른 심리 치료도 지원하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홍석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은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 조성이라는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했다”며 “(저출산 관련) 제대로 된 정책 평가 방식을 도입하고, 문제를 수정·보완할 수 있는 체계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