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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라.
(시편 1:1-6)
오늘 우리교회 중등부으로 올라가서 예배드리는 박재민, 박수빈, 박예림, 이은규, 이진규가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을 마음 깊이 뜨거운 사랑으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학생들을 사랑하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학생들이 처음와서 예배드리는 학생을 비롯하여 오늘 예배를 드리는 모든성도에게 가장 큰 소원이 있습니다. 바로 복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의 조건으로 철학자 플라톤은 다섯 가지를 말했다고 합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사람들이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
이 다섯 가지가 있으면 행복한 줄 알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백 퍼센트 만족이 없습니다. 적당히 모자란 가운데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성실히 노력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람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복있는 사람입니까?
Ⅰ.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이 복 있습니다.(1-2절)
본문 1절~2절까지의 말씀에“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달리 표현한다면,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나쁜 사람들의 꼬임에 따라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죄인들이 가는 길에 함께 서지 않으며, 빈정대는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않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약성경 신명기 30:19-20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복을 받는 길과 저주의 길이 너희 앞에 있는데 스스로 선택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축복은 하나님께서 아무에게나 임의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두 청년이 함께 도박장으로 가다가 길가에 있는 예배당 정문 곁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설교 제목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는 강한 죄 의식과 함께 교회로 가고 싶었습니다.
한 친구는 교회에 가자고 했으나, 다른 친구는 뿌리치고 도박장으로 갔습니다.
30년이 지났습니다. 감옥에서 신문을 보던 한 친구가 울고 있었습니다.
신문 1면에 실린 기사는 그날 대통령에 취임한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30년 전,도박장으로 가다가 교회로 간 그 친구였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택했습니다. 롯은 세상을 택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택했습니다. 사울은 사람은 택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택했습니다. 가롯유다는 세상권력을 택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는 하나님편을 택했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택하고 돈을 택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길은 좁은 길이고 멸망의 길은 넓은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편이시라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내어 주신 분께서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혜로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불행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이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 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편에 서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죄이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닙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 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예수전도단 창립자인 오대원(David E. Ross) 목사님은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묵상은 단지 우리의 배고픈 영혼을 채우기 위해 이따끔씩 행하는 한 순간의 행동이 아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풍성히 거하시게 하는 과정이다”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봅시다. 과연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합니까?
너무 풍성해서 툭 터지면 쏟아져나올 것처럼 풍성합니까?
내 안에 말씀이 풍성하면, 사단이 내 안에 침투할 틈이 없습니다.
설혹 들어온다 하더라도 말씀의 검에 찔려서 그 자리에서 다 사망입니다.
우리성도들이 복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김동환목사님은 공부할 때 성경보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지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인생의 뜻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건강을 얻고 행복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성도들이 하나님편에 서 있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안에 풍성히 거하게 되어야 합니다.
Ⅱ. 시냇가에 심긴 나무 같은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3절)
본문 3절에“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이 받아 누리는 축복을 냇가에 심긴 나무에 비유한 말씀입니다. 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가뭄을 모르고 잎이 무성하게 자라납니다.
식물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도 반드시 강을 끼고 발달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도시에는 반드시 큰 강을 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한강이 있습니다. 충청지역 도시에는 금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영남지역 도시에는 낙동강이 있습니다. 호남지역 도시에는 영산강과 만경강, 섬진강이 있습니다. 이처럼 물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아니 될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이 물로 생활용수, 농업용수, 공업용수로 활용하기에 점점 발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냇물이나 강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강을 낀 지역이 발전하듯,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이나, 사회 그리고 국가는 반드시 흥왕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학자가 육신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조사해서 대조해 보았습니다. 예수를 잘 믿고 섬기는 사람들은 3,4대에 가서 큰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후손 가운데 정신병자나 장애인이 많이 나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역사를 볼 때 전 세계 170여 개국 가운데 선진국이 30여 개국입니다. 그 선진국 가운데 96%가 기독교 국가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나라가 잘된다는 증거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이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후손까지 풍성한 복을 누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성도들이 신앙의 뿌리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행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인생의 뿌리를 두면 형통하게 합니다.
요셉인생을 보세요.
형들이 시기하여 애굽의 노예로 팔았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충성한 결과 주인의 인정을 받아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 후 요셉은 여주인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곳에서도 간수의 인정을 받아 옥중의 제반 사무를 보며 다른 죄수들을 관리했습니다. 옥중의 자유인이었습니다. 이처럼 겹겹이 몰아닥치는 억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편에 서는 신앙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습니다.
인생의 아무리 어려운 고비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편에 서게 되면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그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십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너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우리성도들이 형통하는 길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형통이 나의 삶에 충만히 채워져야 합니다.
Ⅲ.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6절)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본문 6절에“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의인의 길은 인정하시나”라는 말씀의“길”이란“소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인정 하신다.”는 말씀은 결재하시고 허락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면 하나님이 들으시고“오! 그 소원이 옳구나.”하시며 인정하신 다음에 허락의 도장을 찍으시고“하늘 창고를 열고 내어주마”하시며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소원 성취의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려면 하나님께서 결재하시고 허락하시도록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구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분야의 실권자에게 인정받으면 그 사람의 생애가 바뀝니다.
축구선수가 축구로 인정받으면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농구선수가 농구로 인정받으면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학생이 공부로 인정받으면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농촌에서 자라났고 아버지가 남의 머슴이었어요. 8남매 가운데 여섯 째 아들이에요. 형제들이 공부를 하나도 못했어요. 초등학교 다닌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유태영 박사만은 다릅니다. 동리 사람들이 쟤는 너무 영리하고 똑똑하니까 초등학교라도 공부를 시키자 그랬어요. 그래서 초등학교에 넣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그 마을에 교회가 들어왔어요. 새벽기도를 하나니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습니다. 항상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면서 삽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의 신변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것을 안 봅니다.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요. 열심으로 기도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감동이 왔어요. 외국 유학에 대한 감동이 왔어요.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감동이 왔어요. 그래서 저 덴마아크 국왕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한국의 농촌이 이렇게 어려운데 나는 한국 농촌을 위해 일하고 싶은데 나를 이 지상에서 제일 농촌이 잘 되어 있는 덴마아크에 가서 공부를 하게 해 달라고 했어요. 덴마아크의 국왕이 감동을 받아서 유학을 시켜주었어요. 그래서 거기 가서 공부를 해가지고 돈 한푼 안들이고 비행기 값까지 다 보내주어서 거기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유박사는 우리 나라 농촌을 살리는 새마을 운동에 크게 공헌을 했어요. 또 이스라엘에 가서 공부를 해서 이스라엘의 국립학교에 가서 거기서도 박사학위를 받아 동양 사람으로는 최초로 이스라엘에 대학 교수가 되었어요.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건국대학교 부총장으로 계셨습니다.
이분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믿은 거예요. 하나님을 붙잡고 나가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유 박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꿈을 가지고 기도에 힘쓴 것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비결이었다고 말합니다.
구약성경 욥기에 나오는 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칠남 삼녀의 자녀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가진 재산도 다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되자 아내가 배신을 했습니다. 친구도 배신을 했습니다. 이웃이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편에 서있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욥은 옛 명성을 다시 회복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본문 6절에“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하시면서“의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 온성도들이 복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성도들이 복있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성도들에게 복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편에 서고자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영혼을 전도하고자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인생의 뿌리를 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형통을 채우는 온유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보고 인생을 살지 말고 하나님을 보고 인생을 사면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성도들에게 복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십시오. 애통하는 마음을 소유하십시오. 짜증내는 인생이 아니라 화내는 인생이 아니라 온유한 인생이 되십시오. 이것이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받아누리는 형통의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