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이 지방으로 가시면서, 그분들이 20여 년간 살았던 55평 아파트에 갑작스레 입주하게 된 서문경 씨(32세). 오래된 아파트라 개조는 필수였지만 젊은 부부와 네 살 된 아이, 세 식구가 살기엔 충분히 넓기 때문에 굳이 구조를 변경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빛바랜 벽지와 낡은 바닥재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갑자기 커져버린 집(이전 집은 32평)에 기존 가구만으로는 옹색할 것 같아 몇 가지 가구를 보충하는 것으로 인테리어를 완성하려고 했다.
하지만 집을 넓혀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하듯, 몇 가지만 손보고 보충한다고 해도 막상 시작하면 신경 쓰이고, 그렇게 신경 써야 할 것이 수백 가지라는 사실! 게다가 7년간의 전세생활을 청산하고 이사 다닐 걱정 없이 계속 살게 될 집에 입주하게 되면, 개조하는 김에 고쳐야 할 것들이 눈에 쏘옥 들어오며, 슬몃 욕심이 나게 마련이다. 서문경 씨도 마찬가지. 발품을 팔수록 ‘Dream List’는 쌓여만 갔다. 하지만, 예산이란 것은 얼마가 되었건 누구에게나 항상 부족한 기분을 주지 않던가. 어쩔 수 없이 서문경 씨는 이번에도 결혼생활 내내 고수해온, 그들 부부만의 ‘집 꾸밈 원칙’을 우선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가구는, 비싸더라도 한 번 살 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내 취향에 충실하게 구입한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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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서문경 씨는 결혼하고 나서 마련한 가구를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그녀가 결혼 후 살아온 공간(뉴욕에서 신혼 2년→귀국 후 10평 남짓한 원룸에서 2년→32평 아파트에서 2년)을 되짚어 생각해보면,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싫증이 나서, 또는 ‘딱 2년만 사용하지 뭐’하는 식으로 그때그때 가구를 손쉽게 구입하는 일이 오히려 쉬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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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문경 씨 부부는 꼭 필요한 가구만을 취향에 맞춰 ‘힘줘서’ 구입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10평대 집에 살아도 집이 가구로 넘쳐날 일은 없었고, 싫증날 일은 더더구나 없었다. “결혼할 당시는 유학생 신분이기도 했고, 넓은 집에 사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침대, 소파, TV, 오디오, 냉장고, 세탁기만 혼수로 마련했었어요.” 명품 가전 제품을 구입할 때도, 복합 기능보다는 단순 기능 제품을 선택했는데, 이는 단순 기능 제품이 잔고장 없이 수명이 길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서문경 씨는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냉동고를 각각 구비했다). TV는 적어도 10년 이상 쓸 것이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고 큼지막한 37인치를 골랐는데 55평 아파트 거실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때 살짝 무리했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든다고. |
아이가 생기고 32평 아파트로 옮기면서도 그들의 이 원칙은 유지되었다. “12자 장롱과 사각 스틸 테이블(각각 컴퓨터 책상과 식탁으로 사용) 2개, 그리고 오디오를 올려두는 용도로 아시안데코에서 작은 수납장을 구입했어요. 그땐 미니멀하던 신혼 가구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도 되었었죠.” 물론, 그때 구입한 가구들 또한 이번 집에서도 다 제 몫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오디오 올려두던 수납장은 오디오 옆에 놓여 전화기를 올려두는 테이블로 사용되고, 식탁과 컴퓨터 책상은 이어붙여 널찍한 컴퓨터 책상으로 사용되는 등등.
“집을 고쳐 이사한다고 해서 새것으로 싹 갈아치울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어울리도록 최선의 믹스매치를 찾아내는 것이 해법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일단, 원래 살던 집의 커튼과 롤스크린을 재활용했고요. 거실과 식당 창, 안방 커튼만 새로 맞췄지요.” 하지만, 기존 가구에 어울리는 새 가구를 구하는 것은 좀 더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가지고 있던 가구들의 성격이 너무나도 뚜렷했기 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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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둘 다 기본적으로 미니멀리스트예요. 예전엔 온 집 안이 직각으로 똑똑 떨어지는 미니멀한 공간에 살며, ‘집이 넓어 보인다’며 좋아했고, ‘우리집은 서울의 모마(MOMA : 뉴욕현대미술관)다’라며 농담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예정에 없이 넓은 집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그런 가구만으로는 집이 썰렁하고 황량해 보일 것 같더군요. 그래서 날카로운 모던 스타일에 약간 부드러운 스타일을 매치해보기로 했어요.” 미니멀한 기존 가구와 어울리기 위한 접점으로 잡은 것이 바로 ‘네오 클래식’(서구에서 19세기에 유행. 고대 그리스 건축물의 영향을 받아, 직선이 많고 장식이 상당히 절제된 스타일). 앤티크이지만, 직선이 많고 색도 밝은 편이라 모던한 가구와 적당히 어울리고 적당히 대조될 것 같았단다. 이것이 바로 클래식한 식탁과 아시안데코의 아기자기한 앤티크 리프로덕션들을 선택한 이유였다(부모님이 쓰시던 고가구와 동양화 액자도 미니멀 스타일과 잘 어울릴 것 같아 반강제(?)로 얻어왔다). 물론, 이때도 예외 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가구를 구입할 것’이란 원칙에 충실했다. |
벽지와 바닥재 또한 서문경 씨가 신중하게 고른 아이템이었다. 가구와 잘 매치되면서 대형 평수 아파트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집 안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두 아이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1층임에도 불구하고 화이트 벽지를 사용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 “만약 화이트 벽지를 사용한다면 부담스럽도록 심심해 보일 것 같아, 각 공간마다 포인트 벽지를 사용하고 베이지색 벽지로 나머지 벽과 천장을 마감했지요.” 그녀는 포인트 벽지는 각 공간의 메인 가구와 어울리는 것을 고르는 게 관건이라고 귀띔한다. 주방이라면 식탁에, 침실이라면 침대에, 거실은 소파에 맞추는 것이 정답이다. 바닥재는, 워낙에 안정감이 드는 어두운 색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네오 클래식한 가구와 미니멀한 가구들을 받쳐줄 수 있는 색상으로 딱일 것 같아 월너트를 선택했다. 가구와 벽지, 바닥재가 다 결정되고 난 뒤에는 이 요소들에 어울릴 만한 패브릭으로 커튼을 맞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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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찬찬히 둘러본 그녀의 집은 참 멋지고, 들뜨는(?) 공간 없이 유기적인 느낌이 들었다. 살짝 빈 듯하면서도 충만한 느낌이 드는. 무엇보다 집주인들의 취향이 엿보인다는 것이, 하나하나 고심해 자신들의 집으로 만들어가려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런 속내를 내보이자, 서문경 씨가 이런 얘기를 해준다. “이탈리아 『엘르 데커레이션』을 뒤적이다가 구두 디자이너 마놀로 블라닉의 런던 집을 봤어요. 구색 맞추려고 세트로 산 물건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는데도, 집 안 구석구석의 모든 물건이 설명하기 어려운 통일감을 갖고 있었어요. 마놀로 블라닉이라는 디자이너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더군요.” 그녀는 ‘사조’에 따라 집을 ‘꾸미는’ 미국식 마사 스튜어트와는 전혀 다른, 2백년 넘은 건물에 살 수밖에 없는 구대륙 사람들의 집 가꾸는(혹은 키우는) 지혜를 닮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서문경 씨의 집이 유기적으로 느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집을 보면 집주인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존재한다. |
집수리 계획이 생기기 전에도, 기회 닿을 때마다 각종 인테리어 잡지를 많이 봐뒀다. 마음에 드는 페이지는 오려 두거나 사진을 찍어두면 유용하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드는 커튼 색이 있으면 기사를 오린 뒤 커튼에 매직으로 크게 동그라미 쳐두고, 마루가 마음에 드는 사진은 오려두고 ‘마루 참고’라고 적어두는 것. 이번에도 쌓아둔 스크랩 기사 한 뭉치가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레몬트리』 앞부분에 나오는 ‘인테리어 신상품 소개’와 ‘욕망의~ ’라는 칼럼들은 꽤나 유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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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 노트를 장만해 집 안의 각종 가구, 기기의 사이즈를 적어놓았다. 가구나 자재 보러 다닐 때도 노트에 매장 명함 붙이고 가격을 적어두니 여러모로 편리했다. 도배지의 경우, 샘플책의 스와치를 잘라서 노트에 스테이플러로 붙여두면 도배 시공할 때 현장에 이 페이지만 두고 오면 되니까 설명이 간단해진다. 바닥재도 카탈로그의 사진을 잘라 노트에 붙여놓으니, 커튼이나 가구 고를 때 색상을 비교할 수 있어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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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브릭 색상 등에 관한 아이디어는 『엘르 데커레이션』과 각종 패션지를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색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는 편이라, 대략의 색상만 남편과 결정하고, 막상 도배지 결정과 커튼 패브릭을 결정할 때는 이런 일을 많이 해보신 어머님과 시누이를 청해서 동행했다. 마루와 도배지 색상 샘플을 들고 가면 패브릭 색상을 고를 때 한결 수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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