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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5일 고리산 테마 산행을 아래 지도와 같이 24명의 회원님과 하였습니다.
참석하신분 : 김선건대표님, 기산,로사 부부, 상록수1, 장록수 부부, 상수리, 도토리 부부, 신라의 달밤, 별밤 부부, 개동, 타샤, 미소, 메나리, 진산, 가을하늘, 대우, 나부산님, 태평동산님, 큰꿈, 뻐국이, 권순호 부자, 아람.... 마지막으로 대둘에 글을 많이 올리시나 처음 참석하신 곰탱이님입니다.
고리산 등산로 입구에서 기촬을 했습니다.
고리산은 옛날 세계적으로 대홍수 전설, 노아의 방죽 전설과 같이 이 지역이 크게 홍수가 났고, 이 산 정상에 배를 매어 놓수 있는 고리가 있다고 해서 고리산이라한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전설에 기초했는지 모르지만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으로 環山(환산)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전의 기록인 삼국사기 열전에김유신편에 古利山(고리산)이라는 말이 나오고, 삼국사기 지리편에 管城郡, 本<古尸山郡> <景德王>改名 관성군 본래 古尸山郡으로 경덕왕때 개명했다.라고 나옵니다. 이것을 볼 때 배 잡아 매는 고리라는 이야기는 삼국사기 이후에 전설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옥천군 농산물집산단지 예정부지내 문화유적 연장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및 현장설명회 자료- (2008. 12. 4. 중원문화재연구원) 5페이지 각주에
신라 尙州 管城郡(옥천군 옥천읍)의 옛 지명. 여기서 ‘尸’는 ‘羅’의 省文으로서 ‘ㄹ’ 받침을 나타내는 자 이니(梁柱東, 《增訂古歌硏究》, 一潮閣, 1965, 96쪽), 古尸山은 ‘골산’ 처럼 발음 났을 것이나, 여기서는 현재의 한자음대로 ‘시’로 읽어두었다. 古尸山郡은 본서에서 표기된 방식이 각기 달라서, 신라 진흥왕 15년 7월에 ‘管山城’ 전투에서 신라 高干都刀가 백제 성왕을 죽였다 하고(권4 신라본기), 그 전투 장소를 문무왕의 회고담에서 ‘古利山’이라고도 하였다(권43 金庾信傳下). 위의 ‘管山城·古利山’과 그 郡名인 ‘古尸山郡’ 및 郡북쪽 16리의 山名인 ‘環山’(《東國輿地勝覽》沃川郡山川條)은 모두 ‘고리산’을 音또는 訓을 따서 표기한 지명인 듯하다. 古利山은 현재의 충북 沃川郡郡北面環坪里뒷산인 環山으로 추정된다(鄭永鎬, 〈百濟古利山城考〉, 《百濟文化》7·8, 1975).
그리고 옛 우리말인 구결을 참고해 보면, 밑줄친 尸(주검 시)의 발음이 '러', 종성 받침으로는 'ㄹ' 발음이 되는 것으로 표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古尸山의 발음은 古利山과 같이 고리산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리의 의미를 생각하면
고구려 연구재단 서길수 교수는 '‘高句麗’ ‘句麗’ ‘高麗’ 국호의 소릿값(音價)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423년 장수왕 시절부터 ‘高句麗’ 보다는 ‘高麗’ 라는 국호를 사용했고, ‘高麗’ 라는 발음은 고리로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역사에 관심있은신 분은 서길수 교수의 '‘高句麗’ ‘句麗’ ‘高麗’ 국호의 소릿값(音價)에 관한 연구'논문을 하단의 첨부 파일 을 다운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충북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의 남성골 고구려산성과 월평동 산성 기초부분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 파편 및 유성구 복용동 당산마을 발굴 주민설명회 시 백제 시대 마을 전체 화재 흔적을 고구려 남진으로 해석하고 있는 점을 감안 시 고리산을 고구려산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굴다리를 지나 바로 앞에 있는 골짜기가 '황골' 일명 '승지골' 이고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옵니다.
관산성 전투 시 이곳에 백제 여창(위덕왕)이 주둔을 하였는데 신라군이 포위하여 공격하는 것을 백제 성왕이 후미에서 공격하여 신라군을 격퇴하였다. 그리고 성왕과 여창이 같이 있을 수 없어 갯골로 돌아가다가 신라 도도에게 기습을 받고 성왕은 죽었다는 전설입니다.
이 전설은 식장산 독수리봉에서 이백리까지의 능선길을 알지 못했을 때는 단지 전설로만 이해를 했는데 능선길을 걸어보고 전설이 아니라 전투 사실이 구전되면서 일부 왜곡이되어 전설처럼 된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백제군의 승리로 관산성으로 회군 못하고 낙오된 신라군은 백골산에서, 핏골에서 몰살 된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고리산제1보루 장대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찍은 식장산 전경입니다. 식장산 중계탑 왼쪽의 높은 봉우리가 독수리봉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끝에서 시작되는 자모리 계곡따라 왼쪽으로 가면 철탑 2개가 있고, 산이 움푹 파인 곳이 장고개(탄현)입니다. 탄현에서 왼쪽으로 높은 봉우리가 국사봉보루이고, 오른쪽으로 높은 봉우리가 쇠정골산성입니다. (모든 사진 크게 보시려면 클릭하세요)
그리고 고리산제1보루 산불 감시소에서 본 옥천읍 전경입니다. 오른쪽 멀리 보이는 큰산이 서대산입니다. 그 앞 가까이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용봉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고속도로 길이 세갈래로 나누어지는 위 2 봉우리 중 높은 쪽에 서산성이고, 옆에 v자 모양 오른쪽이 삼거리토성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높은 봉우리에 삼성산성(관산성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관산성을 서산성, 삼거리토성, 삼성산성,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삼양리토성 이 4개를 합해 관산성이라 합니다) 지난 9월에 유익한 테마 산행에서 삼거리토성, 삼성산성, 용봉산성, 동평리산성, 마성산성까지 산행한 적인 있는데 그곳이 지금 언급하는 능선입니다. 동평산성과 마성산성은 용봉에 가려 보이지않습니다. 용봉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산이 장령산입니다.
이곳은 고리산 2보루 옥녀봉을 우회길로 이곳에서 이정표되로 가면 옥녀봉, 제2보루, 증약소류지로 갑니다.
고리산제3보루의 성벽입니다. 3보루에는 조선시대에 봉화불를 피웠다는 봉화터입니다.
제4보루 가기전 능선의 바위 위에서 김선건대표님 대전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4보루에서 옥천쪽 전경입니다. 가운데 금강물 오른쪽으로 능선이 장계리에서 이슬봉거쳐 마성산까지 간 4월 테마산행길입니다.
제4보루에서 대전쪽으로의 전경입니다. 멀리 대전역에 있는 쌍동이 빌딩과 둔산과 유성이 보입니다. 그리고 월평산성이 있는 도솔산도 보입니다.
제4보루에서 내려오는 대우님과 큰꿈님
5보루, 고리산 정상 헬기장에서 점심 식사 후 모습,
성벽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6보루입니다.
6보루에서 본 대청호 전경, 왼쪽으로 성재산과 계족산성, 개머리산이 보이고, 마산동과 할매바위가 있는 노고산이 보이며, 앞쪽으로 가호리, 후곡리 능선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멀리 청주가 보입니다.
6보루에서 본 부소무니(부소담악, 병풍바위)입니다.
이평리갈마당쪽으로 능선을 타고 가다보니 부소무니 전망이 좋아 찍고 돌아서는데 성돌이 사진과 같이 있습니다.
고리산에서 가장 잘보이는 부소무니입니다.
주변에 성터 흔적은 없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할일 없어 이렇게 쌓을일은 없을 것이고,
아래 사진과 같은 전경에서 미소양이 가지않습니다. 멋있습니다. 고리산 공극재 능선이 보이고, 작년 12월에 산행한 방아실, 수생식물원, 꽃봉, 서탄리(석오산성), 오동의 국사봉이 보입니다. 그리고 서화천과 금강의 합수점이 보입니다.
위 사진 오른쪽 끝 바위에서 찍은 가을하늘님
미소양
개동님
미소님이 소나무와 하늘이 예쁘다고 해서 다시 찍었습니다. 참좋습니다. (개인사진은 클릭하시면 원본으로 다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바위를 타고 보니 무소무니가 보입니다. 그래서 마산동 대청호에서 부소무니까지의 파노나마 사진입니다.
소나무가 눈을 맞아 무거웠는지 트러지면서 쓰러져 죽어 있었습니다. 흔한 광경이 아니라.. 진산님과 타샤님
상수리와 도토리님
나부산님
미소와 큰꿈님
개동, 태평동산님, 가을하늘님
이평갈마당으로 내려와 아래사진은 왼쪽 위족으로는 금강과 합수지점입니다. 즉 서화천의 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소무니로 향하는 회원님 모습입니다.
상록수1, 장록수, 태평동산님
수정가든에서 부소무니로 가면서 서화천 건너편 모습입니다.
추소정입니다.
부소무니입니다.
기산님이고 로사님은 포즈가 안됩습니다.
타샤님과 신라의 별밤, 곰탱이님인데 포즈가 좀...
미소님과 김선건대표님
진산님과 대우님입니다.
신라의 달밤님과 개동님입니다.
권순호님과 상수리님입니다.
뻐국이님입니다.
나부산님입니다.
물이 차서 못간 부소무니입니다.
추소정 난간에서 찍은 부소무니입니다.
부소무니를 나오면서 건너편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가서 부소무니를 찍은 사진입니다.
고리산 주변의 경치가 매우 좋은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