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 장편소설 [[황산강]]을 주 4회 정도로 연재할까 합니다.
1부 아수라장, 2부 코피, 3부 모순, 4부 내 속에 하나의 우주, 5부 더덕 냄새, 6부 한없이 가벼운 사랑
제1부 아수라장 1
대밭각단 양접장의 할머니도 손자가 학병에 끌려가 죽은 뒤부터 역시 미륵당에 나왔다.
- 김정한 ‘수라도(修羅道)’에서 (1969/6 《月刊文學》 제8호)
완전 왕짜증이다.
감당도 못 할 저런 폭탄은 왜 건드리는지 모르겠다. 건드렸더라도 ‘감당 못 하겠다.’ 싶으면 그때라도 한 발짝 물러서야지. 운전하면서 후진할 줄도 몰라. 운전에서 후진이 얼마나 중요한 기술인데.
“김현중, 일어나라.”
“아, 씨X 좀 내비둬요.”
“뭐? 아, 씨X? 당장 안 일나나!”
나도 솔직히 좀 무섭다. 하지만 끼어들어야 할 때다. 현중이 녀석 꼭지 돌면 큰일 벌어진다. 저 사이에 끼려니 솔직히 겁이 났다. 저 덩치에, 저 성깔에, 그렇더라도 정말 꼭지가 확 돌지 않았다면 조금은 물러서 주겠지.
분위기도 모르는 ‘있제’ 쌤은 내 고마운 줄 알라나. 건방지게 끼어드는 날 미워하지 않으면 고맙지 뭐.
“너, 수업 마치고 학년실로 따라와.”
“아, 돌겠네.”
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몸무게는 두 배가 확실히 더 나갈 현중이 녀석이나 아담한 ‘있제’ 쌤이나 둘 다 꼭지돌기 직전이다.
둘 사이에 슬쩍 끼어들었다. 먼저 쌤한테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겸손하고 부드럽게,
“저, 쌤.”
돌려 현중이를 보았다.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또 최대한 부드럽게,
“현중아! 앉아 봐라.”
“쌤이 일나라 안 카나.”
짜증이 가득 묻어 있는 소리다. 꼭지돌기 직전이다.
“그래. 됐다. 그럼 앉지 말고 나하고 좀 나가자.”
쌤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쌤. 죄송합니다.”
현중이 소매를 잡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이 손 놔라.”
“아, 미안. 도서관에 잠깐 가보자.”
도서부 부장이라 도서실 사용이 자유롭다. 수업 중이라 도서관은 비어 있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도서관 열람실 가운데 있는 길쭉한 소파에 현중이 녀석이 털썩 앉더니 팔걸이에 머리를 대고 벌러덩 누웠다.
“야, 조아라. 너 칼장(카리스마 반장)이라고, 나대지 마라. 내가 니한테 쫄아서 여기 온 거 아이다.”
칼장(카리스마 반장)이란 별명을 지어 준 건 담임 강스(강 스파이크) 쌤이다. 내가 동급생들보다 한 살 많고 성적도 젤 좋아서 친구들이 내게 한 걸음 양보해주는 걸 그렇게 부른 것이다.
“안다. 존중해 줘서 고맙다.”
“놀리나?”
“아이다. 진심이다. 현중이 니가 교실에서 따라 나와 주지 않았다면 쌤이나, 친구들한테 어쨌겠나. 내 입장이.”
현중이 녀석이 별안간 벌떡 일어나서 날 내려다본다. 이럴 때 눈 맞추어보며 기 세웠다가는 꼭지 돌 게 틀림없다. 져주어야 한다.
김현중은 처음 입학했던 학교에서 사고치고 자퇴했다. (나는 특목고가 내게 맞지 않아 자퇴했다. 하긴 지난번 학교가 맞지 않았던 점은 같다.) 우리 둘 다 자퇴 후 새로 시험 쳐서 다시 우리 학교로 입학했으니 나이가 같다.
“내 여기서 잠깐 자고 갈 끼다.”
“그래, 쉬는 시간에 올게. 그때까지 자라.”
나와서 도서관 문을 잠그는데 알 수 없는 현기증 같은 것이 올라왔다. 문손잡이를 잡고 도서관 강화유리문에 잠시 이마를 기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