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매화마을 쌍계사
‘봄+섬진강’의 정답을 물어보면 관습적으로 ‘매화’가 튀어나온다. 봄꽃이 가장 먼저 핀다는 섬진강 매화마을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하지만 섬진강엔 매화말고도 보고 즐길 것이 많다. 매화를 메인요리 삼아 보리밭의 푸름, 섬진강의 넉넉함, 사찰의 고즈넉함을 맛보자.
섬진강과 매화마을 한강처럼 장대하지도, 동강처럼 굽이치지도 않지만 섬진강은 넉넉하고 포근하다. 지금은 봄가뭄으로 인해 강 특유의 비린내가 코를 찌릿하게 만들지만 섬진강은 남도의 젖줄기다. 이 강에 정을 붙이고, 뿌리를 내린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삶이 녹아있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800리를 뻗어간다. 강은 구례와 하동에 이르러 폭이 넓어지면서 위용을 갖춘다. 강이 모습을 갖추니 삶도 흥겨워진다. 강변을 따라 쭉 늘어선 배밭과 재첩음식점은 섬진강의 자랑. 전국 최고로 쳐준다는 재첩국을 맛보지 않으면 여행이 시시하다.
섬진강을 옆에 낀 화개장터는 이미 명소가 되어버렸지만 원래 화개골은 차밭으로 인정받는 곳. 차를 닦고 만드는 다원만 30곳이 넘는다. 십수년을 차만 연구하다보니 비법이 다르고 맛도 다르다. 섬진강물이 차맛의 깊이로 우러나온 셈이다.
좀더 하구로 내려가면 매화마을이 봄손님을 맞을 채비를 끝냈다. 지금은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먹고살기 힘든 빈촌이었다. 특히 3월 중순이 되면 청매실농원의 10만여평엔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사람을 몽롱하게 만든다. 예년보다 봄시계가 1주일가량 늦춰져 이번 주말이 돼야 봄향기에 완전히 취할 수 있다.
최참판댁과 고소산성 하동 악양은 중국 호남성의 아름다운 도시 악양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나당연합군의 소정방이 백제를 치러 왔다가 이곳에 들러 붙인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한국전쟁 때는 악양 평사리 벌판에서 국군과 빨치산의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이곳이 명성을 떨치게 된 이유는 소설 ‘토지’의 주배경이기 때문. 80만평이나 되는 들판을 바라보는 언덕에 지어진 최참판댁 세트장(사진 맨위)은 이미 명소가 되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주말이면 SBS TV 드라마 ‘토지’ 촬영이 있어 주위가 더 북적댄다. 이 작은 고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만주벌판까지 뻗어나간다는 생각을 하면 신기함마저 든다.
봄이 되면 보리밭으로 싱그러움을 더하는 평사리 들판 한가운데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자리잡고 있다. 원래 이 들판 대부분은 호수였다고 하나 호수가 밭으로 변한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소나무가 있는 곳은 물 가운데에 있던 섬으로 옛모습을 희미하게 추측할 따름이다.
최참판댁 뒤편의 고소산성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곳.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지만 일단 오르면 수만년간 섬진강이 흙을 퍼날라 만든 악양들판이 섬진강과 어우러져 한눈에 펼쳐진다. 15분 가량의 등산치고는 너무나 황송한 대가다. 고소산성은 고령의 대가야가 백제의 진출에 대비하면서 왜와의 교통을 위해 쌓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최근에 복원을 해놓았는데 산책코스로도 그만이다. 지리산과 쌍계사 쌍계사(맨 아래)는 절보다 절로 가는 길로 더 유명하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십리 벚꽃길은 한국 최고의 벚꽃명소로 손꼽힌다. 4월이 되면 7㎞ 도로가 거의 주차장으로 변해 버린다.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있어 절로 가는 길은 쓸쓸하지만 그것대로 맛이다. 그러나 쌍계사는 절 자체로도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웅장하면서도 오밀조밀한 맛이 느껴지는 사찰이다. 일주문, 금강문을 지나 대웅전까지 이어진 길은 말그대로 속세를 떠나는 길. 지리산 자락의 정기를 받아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경건함이 충만해진다. ‘문의 사찰’ 쌍계사는 산책로도 매혹적이다. 신라 성덕왕 21년(722년)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인조 10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사찰양식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화개장터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에 이르면 지역화합의 상징물로 지난해 7월 개통된 남도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5일장으로 산마을 사람들의 삶을 달래주던 화개장은 이제 상설시장으로 바뀌어 차와 황토염색 등 요즘 상품을 내놓고 있다. 초가지붕의 현대식 쇼핑센터가 즐비한 관광지가 수백년 역사의 오리지널 장터를 재현해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쌍계사와 칠불사 화개면에 위치한 쌍계사는 다양한 문과 전각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매혹적이다.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세워졌으나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인조 10년 다시 지은 것이다. 부도와 대웅전,팔상전 등 보물과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눈길을 끈다. 쌍계사 서쪽 반야봉 남쪽에 자리한 칠불사는 불교 남방전래설의 근거로 내세워지는 사찰. 가야 수로왕의 7왕자가 수도끝에 성불했다고 해 칠불사란 이름이 붙었다다. 이밖에 청암면 묵계리의 청학동과 삼성궁, 하동읍 섬진강변의 송림공원, 하동포구 공원도 둘러볼만하다.
교통 1)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나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한 후 전주IC에서 임실~남원~구례를 달리면 화개장터와 악양들판이 차례로 나타난다. 대전~진주고속도로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남원IC에서 19번 국도를 타도 된다. 5시간 정도 소요. 2) 서울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전주~남원간 산업화 국도. 남원 춘향터널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고가도로를 타고 구례 방향으로 접어든다. 19번 국도를 타면 악양들판과 하동읍을 만난다. 하동읍 맞은편에 광양 매화마을이 있다. 3)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진주에서 빠져 2번 국도를 타고 하동으로 오는 방법도 있다.
음식·숙박 하동뿐 아니라 구례나 쌍계사 앞 등에 숙박시설이 많다. 성운각(055-883-6302), 천마장(055-883-2506) 등이 화개쪽에 있다. 청매실농원(061-772-4066)에서도 민박이 가능하지만 예약을 일찍 안하면 어렵다. 섬진강변에 재첩국과 재첩회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19번 국도변에 있는 악양 인근의 고소성식당(055-883-6642)의 음식이 맛있다. 쌍계사 앞 수석원식당(055-883-1716)은 돌솥밥이 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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