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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광동의 습창차와 민창차
중국에서 보이차의 개념은 숙차는 마시는 차, 생차는 장차용(30년정도)이다. 광동지역에서는 노차 이외에는 생차를 거의 안마신다. 그래서 판매를 촉진 시키기 위해서 생긴 이유중에 고수차가 등장한 것 아닌가 한다. 그 당시에는 고수차가 원료가 더 저렴했거나 비슷했다. 지금은 대지차에 비해서 비싸기는 하나 유명차산 빼고는 완성품에 비해서 원료는 그렇게 비싸지는 않다. 보이차에 있어서 광동이 얼마나 중요하나 하면 보이차 생산의 대부분 소비를 광동지역에서 한다. 다른성들의 보이차 소비는 아주 적다. 그중에서 거의 보이숙차를 마신다.
광동차는 예전에 습창이 많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습창차에 대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광동차는 광동기후에 의해서 자연습으로 발효가 되어 익어가는 것이라는 그런 관점에서 광동차들을 접해야 하는 것인지,습창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먼 것이었는지, 아니면 인위적으로 습창을 만들었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나라는 광동차는 습창차들이라는 생각들이 있는데, 그래서 차의 기준을 건창기준으로 하여 광동차에서 나는 독특한 향을 조금은 멀리 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차들에서 습창차들이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럼 그런 차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광동은 천년전부터 숙차를 마셔왔고, 습창차는 그러한 숙차를 만드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광동 특유의 숙차이고 그걸 즐겼던거 같다.(우리나라 홍탁을 생각하면 될것 같기도 하다.) 땅속에 묻어서 숙성 시키다가 땅값이 올라가는 바람에 아파트 위로 올라 갔다고 하는데 일리가 있는 이야기며,습창과 건창의 기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광동에서 처음부터 운남의 대엽종으로 숙차를 만든 것은 아니고, 근처의 소엽종으로 만들다가 가격이 올라 가는 바람에 싼잎을 찾았는데 그것이 운남의 대엽종이었다. 맛도 소엽종보다 좋고 후발효도 잘 되고 그래서 찻잎을 대량으로 광동으로 가져와서 만들게 된 것이다. 습창차는 광동인들이 즐겨 마시는 차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시기에는 좀 거부감이 있다.
광동보이차가 보이차의 기준과 같다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되어져서, 만약에 그렇다면 다시 광동차들이 수입이 될 확률이 높은데, 예전에 광동의 습창차들이 문제가 되고, 또한 보이차 노차들이 값이 뛰는 바람에 운남의 생차들이 더 각광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생차들이 쓰고 떫은 맛이 강하여 그 차를 바로 마시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고 보인다. 대체로 숙병을 많이 마셨다. 그런데 부드러운 고수차가 들어오고 나서 바로 마실 수 있는 고수차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동지역은 오래전부터 숙차를 주로 마셨다고 하셨는데,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일까? 단지 그 자역 사람들의 특성일까? 광동에서 거의 숙차*를 소비한다고 하셨는데, 습창차는 왜 또 만들어 마시는 것일까? 여기서의 전자의 숙차*는 인위적 발효 숙병을 의미하시는 것일 것이고, 전통적으로 숙차를 소비한다.라는 말은 익은차를 선호한다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인위적 미생물 발효의 숙병*을 광동에서 거의 소비한다.라는 의미일 것인데 그렇게 숙병*을 소비하면서 과숙한 습창차는 왜 또 만들어 마시는 것일까?
그리고 광동지역은 차가 다른 지역에 비해 잘 익어 간다면서 왜 습창차들을 마시는지, 그들이 만든 습창차들은 광동만의 숙차*개념인지, 아니면 익은차 개념의 숙차인지, 빨리 익어가는 기후에도 불구하고 더 빨리 숙성된 차를 원하는 것인지, 건창으로 익어가는 차와는 다른 맛의 숙차를 원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그리고 습창차를 만들어 보관하면(다 바로 마시기는 어려울 것이므로...)습창차는 더 빨리 발효가 촉진되는가?도 궁금하고, 그렇게 발효가 촉진된 차들을 보관하면 결과적으로 어떤 차맛이 나는지, 현재 예전에 한국으로 들어온 차들은 건창인지 습창인지도 궁금하다.?
문제가 된 습창차들은 거의 노차들 아닌가 한다. 2000년 이후는 방춘에서 만든 차 이외에는 없는 줄 알고 있다. 운남의 생차들이 각광을 받아도 생산되는 것은 숙차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포도주로 예를 들면 포도주는 오크통에서 10년 숙성돼서 나오는게 정석이다. 그런데 생차처럼 그 해에 나오는게 있다. 보졸레누보인데 포도주도 아닌 것을 매년 요란하게 선전을 한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인데 생차도 그와 비슷한 개념으로 본다. 고수차가 어느 정도 시장에서 자리를 잡으면 큰 회사에서 대량 구매하기 시작할 것인데, 그러면 지금보다 몇 배로 폭등하게 된다. 조그만 영세업체는 재료를 구매 못해 만들지 못할 뿐더러 구할 수 있어도 가격이 너무올라 경제성이 없다. 요즘 재미있는 현상이 모차 값이 너무 올라 신차 값이 05-07년도 차값하고 비슷하다.
숙차 이야기는 작년에 자주가던 차 가게 주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그분의 경험담이지 학계에서 공식 확인된 사항은 아니다. 운남에서 숙차를 생산한 것은 1975년이후의 일이다. 그전에는 숙차를 생산하지 않았다. 광동의 기후는 많이 습하다. 중국은 습해서 건물 1층에 주숙을 하지 않는다. 광동지역은 더 심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1층은 매일 물바다 이다. 기후 특성상 인위적으로 습창을 안해도 자연습창이 되는 지역이다. 과숙한 습창이란 한국사람 기준이지 광동사람 기준에서는 기름진 음식물과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줌냄새 나는 홍탁을 흑산도 목포에서는 아직까지 왜 먹을까? - 왜 먹는지 모르지만 가끔 먹으면 맛있다. 운남에서 숙차를 만든 이유를 알면 쉽게 이해가 된다.보이차를 연도별로 알아보면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것 같다.
보이차를 김치에 비교해서 말하곤 하는데, 김치에는 겉절이가 있고 김장독 김치가 있고 묵은지가 있다. 그리고 각 도마다 각기 다른 원료의 다른 맛의 김치가 있다. 좁은 한반도의 김치가 그 정도인데 광동성은 어떨까? 면적이 남한의 1.7배 인구는 외부 유입인구 포함해서 3배정도중국내에서도 광동성은 거의 딴나라 이다.
광동지역의 습창차는 숙병이 나오기 전부터 만들어 마셨고, 광동지역의 습창차를 본따서 숙병이 만들어지니 그 차를 광동지역에서 역시 많이 마시고 있으며, 습창차 역시 여전히 만들어 마시고 있다. 즉 습창차는 광동지역에서 합법적으로 만들어진 차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습창차는 광동지역 사람들에게는 전통적인 차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습창차를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기후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습창차가 만들어 지기도 한다. 하지만 광동지역에서는 민창으로 차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이 인위적으로 의도적으로 습창차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동지역에서 자연상태로 만들어진 습창차는 그렇다치고, 민창 역시 차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규제를 받지 않는가?
민창은 습창을 보완해서 만든걸로 알고 있다.사업자 등록증하고 위생허가증정도 있으면 되는 줄로 알고 있다. 광동지역에서 숙차는 한 번에 20kg 발효시켜서 마시는 줄 알고 있다. 그걸 1975년이후에 운남이 수출권이 생겨 대량 생산을 하면서 조금씩 늘려가 지금은 10톤단위로 하고 있다. 집에서 각자 김치를 담가 먹었는데 대형회사에서 소량으로 생산하려니 경제성이 없어 큰 공장을 돌린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 부분은 한국에서 끊임없이 옥신각신 문제되는 부분이었다. 광동지역에서 그들에게 굳이 문제가 없는 부분이 한국에서는 그동안 계속 문제가 되어 왔었다. 정확하게 무엇이 맞는지 알면, 논란이 될 필요가 없는 부분은 논란이 잠식 되어야 한다고 보인다. 광동지역에서 습창이나 민창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자세한 자료나 정보가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결국 그 부분이 정확하게 우리에게 인식되면, 이 부분은 소비자의 선택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자기에게 맞으면 구입하면 되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것이고, 하여 굳이 옥신각신 논쟁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가짜차 (즉 상표도용이나, 연도를 속이거나..등등)와는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통털어 습창차라고 한 것은 광동지역에서 1500년 전 부터 마셨던 육보차 역시 산차 형태이나 광동지역에서라면 자연습을 먹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습창차라고 하였다. 이 차를 본떠서 맹해차장에서 숙병을 만들었다고 하니, 광동지역에 차를 팔기 위해 이 지역의 자연습이 드는 차를 맹해에서는 하나의 기술적인 부분으로 접근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맹해는 광동지역에 차장을 하나 만들면 해결될 일을 왜 굳이 맹해에서 숙병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였을까? 교통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찻잎 때문이었을까? 찻잎 때문이라면 광운공병처럼 찻잎을 가져다가 만들었어도 될을텐데...?
사실 그것의 답은 아주 쉽다. 지금도 그렇지만 숙차 만드는 기술은 국가기밀사항이다(호남성의 복전차도 국가기밀사항이다.). 그 당시 운남은 차를 안 만들고 찻잎만 광동성으로 팔았다. 광동성에서는 대엽종 가지고 광운공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외로 수출을 해서 외화를 획득했다. 1975년도에 운남성에서 숙차를 개발한 동기는 운남성 상부에서 숙차를 개발하라고 지시를해서 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운남성도 조만간 수출권이 생겨서 찻잎이 아닌 차를 만들어 수출을 해서 외화를 획득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숙차의 어머니라는 오계영 등이 광동숙차 회사에 위장취업해 숙차 만드는 기술을 빼오게 된다.
2년의 연습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숙차 비슷한 것을 대량생산에 성공한다. 그 후로 광동 및 타 지역으로 찻잎이 나가는 걸 금지 시킨다. 그동안 대엽종으로 광운공병을 만들던 광동은 소엽종으로 광운공병을 만들게 되는데, 보통 80년대 광운공병은 인기가 없다. 소엽종으로 만들어서 대엽종으로 만든 것보다 구감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광동은 보이차 수출을 못하게 된다.
해외에 수출권(진출구)이 1975년 이전에는 운남에 없었다. 광동하고 복건성에 있었는데, 중앙정부에서 문화혁명 말기에 외화획득을 장려하면서 운남도 수출권이 생기게 된다. 찻잎만 팔아서는 마진이 적으니 찻잎 반출을 금지 시키고, 숙차를 만들어 광동에 공급하고 해외에 수출을 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광동은 운남으로 부터 찻잎을 공급을 못 받으니 차를 만들 수 없고, 기존 해외 거래처들은 운남으로 주문을 하게 된다. 보이숙차의 시장 주도권을 운남에게 내주게 된 것이다.
운남에서는 지역의 이권을 즉 어떤 지역이 가지는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 이겠다. 광동지역에 공장을 만들면 운남의 역할이나 이미지가 축소될 테니 말이다. 즉 뭔가 어떤 실질적인 것을 원했다.라는 말이다. 운남의 역할이 커지기를 바랬다라는, 인지도와 영향력을 갖고자 했다.라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보아서도 운남에서 차를 직접 만들어 파는 것이 이득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가 차나무가 자생하고, 찻잎이 거기서 나오는데 차를 만들지 않는다면 자존심이 손상되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운남은 차산지로서 위상을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이숙차 생산이 광동에서 운남성으로 이전된 것과 같고, 찻잎 생산지의 이점 때문에 숙차의 무대가 광동성에서 운남성으로 옮겨간 것이다.
찻잎이 없으니 차를 못 만들고 못 만드니 수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남에서 만든 차들을 광동으로 들여올 수 있는 것이니, 광동에서 보관된 차들이 다른 곳으로 팔려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광동에서 북경이나 대만 등등으로 나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다시 우리나라로 수입되어 들어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재미있는게 요근래에는 광동에서 수출하는게 아니고 역수입을 하고 있다. 중국의 생활수준이 높아져서 차마시는 소비량이 늘고 노차를 찾다보니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과거에 수출했던 보이차들을 수입해서 소비하는 실정이다. 광동에서 다른 곳으로 수출은 가격문제인 것 같다. 신차를 운남에서 살수있는데 돈을 더주고 위험을 감수하고 방촌시장에서 살 필요는 없는 것괴 같다. 참고로 광동이 차시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소비 기준으로 보면, 중국에서 차를 제일 많이 마시는 지역은 티벳인인데 그들은 3.75kg 소비한다고 한다. 차를 제일 많이 마시는 도시는 광저우인데 2.5kg이라고 한다. 광저우 인구를 1,200만 잡고 계산하면 일년에 3만톤정도 된다. 우리나라는 차 소비율이 연간 80g, 잔으로 치면 평균 7일~10일에 한 잔을 마시는 것이며 세계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국민 1인당 녹차 소비량은 연간 104g 수준으로 일본의 867g, 중국의440g이다.
광동과 같은 지역이 보이차 보관에 좋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광동이나 이런데서 많이 보관할거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런 차들이 중국내에서는 수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풀려나가서 다시 우리나라나 다른나라로 수출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차소비가 증가하여 광동인들 자신들 마시기도 빠듯하다고 한다.
광동지역이 보이차 보관하는데는 최상의 조건이나 요근래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여기도 조금씩 기후가 변하고 있다. 광동은 빨래를 널어도 마르지를 않는다. 24시간 날씨가 무더운데 요 근래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날들이 늘어 났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처럼 음식물에 거의 곰팡이가 슬지 않는데 2년전부터 조금씩 변한게 조금 건조(?)해 졌고 음식물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다. 보이차 보관에 곰팡이가 치명적인데 큰일인 것이다.
광동지역이 습해도 곰팡이가 잘 서식하지 않는데, 그러한 이유로 보이차가 습한 날씨로 인해 습을 먹어도 곰팡이는 잘 피지 않았던 이유이고,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광동인들이 습창 보이차를 즐겨 마실 수 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기후가 변하여 곰팡이가 서식해 간다면 보이차 보관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된다. 기후 자체도 습한데 곰팡이 균들이 퍼져 간다면, 보이차 보관시 이제 자연습에 노출되었을 때 그동안처럼 그저 놓아 둘 수만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름대로 보완책을 마련하여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동남 아시아 외에는 보이차가 숙성이 안된다. 운남, 북경, 처오, 한국 다 꽝이다. 보이차를 소개할때 멘트를 잘 보면, 전에는 광동의 습창 어쩌구 저쩌구 안좋은 것처럼 말하다가 요즘은 광동의 건창에서 보관된 보이차라고 소개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인위적 조작이 아나라면 습창은 없다고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한국에서 보관된 차들이나 광동이외의 지역에서 보관된 차들은 차로서 가치가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정도 익어서 가지고 들어와야 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에서 보관하여 차가 익어 간다는 것은 아주 불가능하다는 얘기인 것인가?
습창은 거의 없어졌다고 보여지고 민창은 아직도 있는 것 같다. 가치가 없는게 아니고 발효가 더딘거라고 생각한다.10년이면 될게 100년이상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광동의 습창차는 자연습이 먹어서 그리 된 것이지만, 민창은 습창을 더 보완한 것인데, 인위적으로 습창을 만들 조건을 조성하여 만드는 방식이다. 습창보다 더 빨리 과숙되게 할 수도 있다, 온도 습도를 더 잘 조절 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이 민창은 자연습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습을 먹인 것이 되기 때문에 자연습창차와는 조금은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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