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의 달밤
지난 7월 18일부터 미국에서 열린 평화순례는 서쪽 끝 LA 해안에서부터 동쪽 워싱턴에 이르기까지 열흘간 계속되었습니다. 연중 온화한 캘리포니아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출발한 일행은 네바다의 사막을 건너면서 무더위로 시름하다가 록키산맥을 넘을 때는 준비해간 잠바를 입어야 할 만큼 썰렁한 날씨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오래 머문 워싱턴의 날씨는 서울 못지않은 불볕더위였습니다.
주요행사가 LA, 시카고, 인디애나폴리스 그리고 워싱턴에서 열렸기에 그 사이사이를 네 대의 자동차로 연결한 것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광야와 협곡 그리고 중부대평원을 달리면서 너무나 넓어서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서 부아도 치오르는 그런 심정을 반복했습니다. 마치 카우보이와 마주 칠 듯한 황무지의 아득함과 인디언들의 숨결을 느낄만한 녹색평원의 지평선은 그 규모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평화순례는 2013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10차 총회에서 채택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결의’의 후속작업입니다. 이미 세계교회는 각 나라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고 화해와 치유를 돕기 위한 사역에 협력을 약속하였습니다. 이번 평화순례는 한반도의 위기와 평화를 알리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미국교회가 지원하여 보다 효과적이었습니다. 예정된 주요도시에서 현지 교회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캠페인을 했는데 기자회견과 홍보물을 나누는 수준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연합감리교회(UMC), 미국장로교회(PCUSA), 그리스도연합교회(UCC)와 제자교회(DOC)의 뜨거운 환대와 협조는 그리스도인의 친교와 우정의 진실함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거리의 무더위와 고달픔은 여행자인 우리 뿐 아니라 그들의 몫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NCCUSA는 워싱턴에서 머문 3일 동안 상원의원 사무실과 국무성 그리고 백악관에 이르기까지 워싱턴 네트워크를 통해 치밀하게 만남과 회견을 주선하고, 동행하였습니다. 북한인권대사 로버트 킹과 대화하고, 백악관에 한국교회의 입장을 전달하는 일은 그들이 쌓아둔 신뢰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마지막 날 일부가 백악관에 서명을 전달하고 대화하는 동안 일부는 피켓을 들고 홍보성 시위를 하였습니다. 샌들 밖으로 고스란히 노출된 발등이 새빨갛게 탈 정도로 뜨거운 날씨였지만, 다양한 시위대와 관광객이 뒤섞여 백악관 앞은 평화로운 장면을 반복해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이틀 전 저녁에 일정을 점검하면서 누군가 백악관 시위에 대한 집회신고를 질문했더니 총무 짐 윈클러 목사는 “백악관 앞 시위는 어떤 주제든, 언제나” 가능하다며 웃었습니다.
동쪽으로 달려갈수록 감리교회 동료들의 영향력이 돋보였습니다. 시카고에서는 근사한 한국음식으로 만찬을 준비하였고, 워싱턴에서는 내내 캐피탈(의사당) 앞에 위치한 UMC 사회국사무실인 연합감리교회빌딩을 사용하였습니다. 이곳은 ‘기독교 평화세력 소굴’이란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의 제자교회 본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교회 간 서로 동역하는 모습이었는데, 비록 다른 교파지만 UCC와 DOC가 연합하여 공동으로 세계선교본부를 운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평화순례는 우려와 달리 일회용 행사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연합감리교회만 하더라도 지난 5월 포틀랜드에서 총회를 열어 한반도평화를 위해 앞으로 4년간 교회마다 캠페인을 벌이고, 세계교회와 협력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총회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한인교회연합회 평화위원회의 요청을 받아 ‘Peace십자가’ 1천개를 제작하여 공수했던 것을 치하 받은 일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들은 워싱턴에서 방문하는 공공기관마다 ‘Peace십자가’를 전달하면서 십자가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시카고에서 만난 친구가 ‘랠리’(Rally)라고 불러준 평화순례는 아직 목적지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미 국무성을 방문하고, 백악관에서 시위를 벌였다고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는 것만큼은 작은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순례든, 랠리든, 십자가의 길이든 모든 만남과 대화, 평화만들기는 누구나 삶의 자리, 믿음의 자리에서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가는 만리 길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을 하나 꼽으라면 ‘콜로라도 강의 달밤’입니다. 2천여 킬로를 내달아 바다로 향하는 콜로라도 강이라도 상류는 강폭이 좁았습니다. 그러나 여울은 사나웠고, 물살이 거셌습니다. 록키산맥으로 향한 길을 나란하며 거슬러 흐르던 콜로라도 개울은 어린 시절 배운 노랫말처럼 아주 정겨웠습니다. 그 밤, 실트에 있는 모텔을 찾아 컴컴한 밤길을 달리던 차창 밖으로 둥글고 커다란 달빛이 비추었습니다. 현실은 어둡지만 달빛은 희망처럼 늘 제 자리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