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미용실 건너편에는 은행나무가 심어져있는 마당깊은 2층단독주택이 하나 있다.
집안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마당에 한가득인데다, 집의 망가진곳이 오랫동안 수리되지 않고 방치되어있어서 그런지, 귀신이 나올것처럼 음침하기가 그지없다.
그집에는 70대 후반의 할매가 사시는데, 동네사람들은 그 할매의 남편이, 월남전에서 고엽제를 맞아 누워지내는탓에 월남댁이라 부르는데,
난 스스로 진상할매라 부르고 있다.
그할매를 진상할매로 부르는 이유인즉슨, 할매가 50억이 넘는 자산가임에도 불구 동네 가겟집을 다니며 온갖 수전노守錢奴(돈을 지키는 노예)같은 진상짓을 다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길어질것같아, 다른가게에서 벌어졌던 에피소드는 차치하고, 우리미용실에서 일어났던 일만을 여기에 적어보고자 한다.
때는 7년전, 유난히 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 때, 할매는 우리묭실 주인할매와 친한사이라-사실 주인할매는 친하다고 생각안하는데, 그 진상할매가 친하다고 주장하는것이
었다.- 시도 때도 없이 주인할매집을 드나들었다.(우리미용실이 건물의 2층이고, 주인할매집은 건물의 4층이다.)
그날 진상할매는 주인할매집에서 내려오더니 느닺없이 파마를 하고싶다고 그랬다.
당시 할매는 머리자르는 돈이 아까웠는지 짧은 머리를 안자르고 계속 기르는 중이었는데, 길이가 어깨를 약간 넘어갈둥말둥할정도로 자라 그머리를 올리고 다녔다.
그 머리를 말아달라고 그러는 것이었다.
당시 파마값이 3만원이었는데, 할매는 다짜고짜 2만원에 말아달라고 그러는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안된다고 몇번이나 얘기했었지만, 할매가 하도 막무가내로 나오고 게다 주인할매랑 친한것같아 울며겨자먹기로 그냥 2만원에 파마를 해주게 되었다.
파마는 아주 잘나왔고, 만족한 진상할매는 주인할매한테 2만원을 빌려서 값을 치르고갔다.
여기까지는 아무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두달후에 발생했다.
이때의 상황은 개그콘서트의 정여사모드로 진행된다.
"이봐 원장, 나좀 잠깐만 봐봐"
"아니 왜요 여사님"
"내가 2달전에 파마를 말았는데말야, 생각나지 두달전에 파마만거?"
"네네 생각나죠"
그러더니 진상할매는 머리핀을 빼더니 머리를 풀어헤치는것이었다.
"나, 머리 다시 말아줘"
"네?"
"아니 안들려 머리를 다시말아 달라구"
"아니 파마라는게 두달정도 되면 당연히 풀리죠"
"누가 두달정도되면 파마 풀리는거 몰라? 근데 이건 파마가 풀려도 너~~~무 풀렸잖아"
"아니 파마가 풀렸으면, 그 때 오셨어야지 두달만에 오셔서 말아달라고 그러면 어떡해요"
"그때 나도 왔었어야 되는데, 내가 너무 바빠서 못왔어"
"안되요, 저 못말아드립니다."
"아니, 내가 누군지 몰라?"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러십니까, 이건 경우가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이동네에서 50년을 넘게 살았어, 내말 한마디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아니 왜이러세요, 여사님, 이건 정말 경우가 아니죠"
"잔말말고 빨리 파마 말아줘"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은 진상할매의 우격다짐에 내가 항복을 선언하게 되고말았고,
할매는 긴머리가 거추장스럽다며, 짧은 숏컷트로 잘라서 파마를 해달라는 천인공로할 요구를 또 했는데, 긴머리보다는 그래도 짧은 머리가 더 수월할것같아
난 , 군말없이 할매의 요구를 수용해주는 순진한 작태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이 이야기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대화체에 약간의 가공을 더하긴 했으나, 거의 사실적으로 표현한것으로 보면 된다.
이후로도 진상할매는 내 속을 긁으러 몇번더 왕래를 하였는데, 올때마다 내가 불친절로 일관하자 나의 심기를 알아챘는지,
이후 미용실을 찾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할매는 미용용품을 취급하는 다단계 업체를 다니며, 미용용품을 판매하는데, 그 업체제품인것이 틀림없
는 희한하게 생락긴 허접한 가발을 낮이나 밤이나 비가오나 눈이오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한결같이 쓰고 다닌다고 그랬다.
그 모습을 나도 최근에 먼발치서 얼핏 몇번 보았는데, 멀리서 보는데도, 그녀의 비주얼이 얼마나 생뚱맞고 우스꽝스럽던
지, 만일 내가 그녀가족의 일원이었더라면 창피스러워 도저히 밖을 못다닐지경일정도였다.
어느날 주인할매가 머리를 하러 온날 우연히 진상할매의 얘기가 나오게 되었는데, 주인할매가 그러는것이었다.
" 그 월남댁말여, 요번날에 집에 식은밥 자기집 개준다고 가지러 왔는디, 나헌티 가발을 허라고 자꾸 해싸, 아니 나는 요렇게나 숱이 많은디 먼 가발이 필요혀, 그럼서 가발을 벗었는디, 아이구매, 머리짜르는것이 아까웠는가, 글씨 머리를 자기가 직접잘랐다고 그러는디, 텔에비에 나오는 영구머리같이 잘랐드래니께 하이고, 내가 배꼽을 잡고 웃었어, 허허허"
2012년 默樂무쿠라쿠씀(침묵을 즐거워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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