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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는 세계 (천국) (1)
사단과 그 휘하 짐승들이 심판을 받고 사단을 따르던 악인들도 멸망한 후에 세계는 아름답고 새로우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온전하게 바뀌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환상으로 나타납니다.
신학자 모펫은 말하기를 ‘우리는 연기와 고통의 열기에서 벗어나 맑고 영원한 아침의 깨끗한 대기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곳 하늘의 숨결은 감미롭고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보석처럼 휘황찬란하다.’ 라고 하였습니다.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 중 한 사람인 헬만 바빙크 박사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인 21장 22장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 요한의 내세 곧 천국계시는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새 예루살렘에 대한 비유이니 곧 천국과 지상의 모든 피조물 중 무엇이든지 참된 것, 귀중한 것, 옳은 것, 깨끗한 것, 사랑스러운 것, 그리고 조화로운 것이 혁신되고, 개조되고, 또 최고의 영광을 입어 가지고 내세에 나타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학자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천국은 본문 1,2절에서 그 외관이 소개되는데 첫째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나타나고 이어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확실하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새 예루살렘은 바로 하늘나라의 상징이며 그곳의 주인공이 될 교회의 상징입니다.
우리들은 지고한 천국의 실존을 말이나 글로써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이 지상의 어떤 최고, 최상의 것보다 더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령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 세상에 있는 가장 귀한 것으로 비유한 것이지 실제로는 보석이나 진주나 맑은 유리나 정금 같은 것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요한이 받은 영감의 최고 최선의 경지인 천국에 대하여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1. 천국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둘째 사망이 끝난 뒤 세상이 전혀 새롭게 변화된 것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이 둘째 사망은 사단과 그 세력들이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패망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아직 영광스러운 찬란한 황금시대를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때, 그 때마다 시절을 노래하고 세월을 자랑했지만 인류가 누렸던 영화는 시기와 분쟁과 갈등의 연속이요, 입술로는 평화를 외쳤어도 실상은 전쟁과 음모의 어두운 세월이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지적하는 것과 같이 인류가 타락한 이후로 태어나고 죽어가는 이 유한의 세계에는 시련과 고통과 눈물로 얼룩진 아픔의 역사가 되풀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본 그 영화로운 세계는 영원한 미지의 세계로 끝나버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너무나도 확실하게, 또 자신 있게 모든 인류가 한결 같이 바라고, 염원하고, 동경하는 완전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바로 우리 눈앞에 도래하고 있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3:1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마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성령의 영감을 받은 많은 선지자들과 사도들도 이러한 황금시대를 한결같이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1) 창세기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한 송이의 꽃과 같습니다. 창세기에서 뿌린 씨가 구약의 여러 책들을 통하여 무성하게 자라다가 신약에 와서 꽃을 피우고 마지막 계시록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말했습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계시록에는 하나님의 재창조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고 있습니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하늘에 두 광명을 만드시고 해와 달과 그리고 별들이 하늘에서 땅에 비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에는 그 성에는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의 비췸이 쓸데없다고 하였습니다. 주님 자신의 영광으로 빛나고 그 영광이 등불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계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창세기는 실낙원을 말했습니다. 에덴에서 살았던 아담과 화와가 아름다운 동산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영원히 낙원을 잃어버렸습니다.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러나 계시록은 복락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렸던 낙원을 되찾은 것입니다.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창세기에는 마귀의 간교한 승리와 인간의 패배를 말했으나 계시록에는 마귀의 패배와 결박과 심판과 영벌을 말하고 성도의 통쾌하고 영원한 승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범죄 한 인간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사실을 말했으나 계시록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얼굴 앞에 나아와 그와 함께 새 장막에 거한다고 말했습니다.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창세기에는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막혀 버리고 쫓겨 나왔으나 이제 계시록에는 이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복스러운 권리가 회복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출현과 함께 처음 하늘과 처음 땅, 바다까지 없어져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바다가 없어지거나 소멸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 바다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는 창세기의 성취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과 땅은 완전한 창조였습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때의 창조된 천지는 하늘과 땅 곧 지구와 창공을 뜻하나 넓게는 지구를 포함한 전 우주계를 가리킵니다.
창세기 1,2장에는 ‘창조’ 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오는데 그 첫째는 ‘바라’ 이며 무에서 유에로의 완전한 신적 창조행위를 가리킵니다. 이 ‘바라’ 창조는 세 번 사용되었습니다. 먼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1:1절의 말씀이고 두 번째는 생물에게 생명의 근원을 주시는 창조 행위를 말하는 1:21절의 말씀이며 세 번째는 그 전까지 전혀 없었던 영적 존재의 창조를 가리키는 사람 창조인 1:27에 사용되었습니다.
두 번째 창조는 ‘아사’이며 이미 창조된 물질을 재료로 사용하여 더욱 나은 물체를 만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해와 달을 만드신 경우와 물고기와 새를 만드신 경우와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신 경우입니다.
세 번째는 ‘야찰’인데 ‘아사’와 비슷하나 특별한 목적에 따라 기존의 사물을 새로 완벽하게 조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신 경우와 선악과와 생명나무를 만드신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이처럼 완전했고, 선했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좋은 세상이 인류의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황폐하여졌으며 하늘은 문을 닫아 비를 멈추었고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죄악과 불안과 공포, 사망이 왕 노릇하는 비운을 맞게 된 것입니다.
바다가 무엇입니까. 이 바다는 짐승의 출처요, 활동무대입니다. 이러므로 세상은 갖가지 더럽고 추악한 모든 것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더 이상 세상은 그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렸고 멸망하기로 작정된 짐승의 형상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 의 출현은 창세기의 완벽한 성취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 목적과 기능에로의 복귀가 되어야 합니다.
2) 새 창조는 완전히 다른 새 질서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먼 곳에 있는 낙원이나 잃어버린 에덴동산의 발굴이 아니라 이 땅위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새로운 나라입니다. 헬라어에서 새 것을 의미하는 단어는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네오스’ 와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카이노스’ 가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할 때 후자 곧 ‘카이노스’ 가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물리적인 변형이나 갱신이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 질서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즉 ‘카이노스’ 로 표현된 ‘새 하늘과 새 땅’ 은 죄악과 사망과 고통이 지배하던 옛 땅이나 옛 하늘과는 달리 하나님과 어린 양을 따르는 성도들이 사는 영화로운 곳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에 천지가 없어진다, 바뀌어 진다,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헤어진다고 하는 이런 말들은 모두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와 그 의미가 직결되고 있습니다.
*시102:25-27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
*사51: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헤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시작이 있는 피조세계는 반드시 종말이 있으므로 이것들은 모두 유한한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영원하고 지속적인 모든 것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흔히 사용되지만 하나님과 비교될 때는 곧 낡아 없어지는 의복과 같은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새롭게 바뀌어야 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출현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새로운 세상에서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사도 요한과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고치고 나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이 만유를 회복한다고 하였습니다.
*행3:20-21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또 베드로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소개하였습니다.
*벧후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러한 성경의 표현들은 모두 우주의 대 변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의미를 이사야의 예언에서 그 뜻을 찾아야 합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여기서 ‘창조하나니’ 에 해당하는 말은 히브리어 ‘바라’ 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새 창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완전히 소멸되고, 소실되고, 해와 달과 별들과 바다, 곧 처음 것들은 완전히 없어지고 그것과 관계가 없는 신천신지가 물리적으로 새롭게 창조될 것이라는 루터파의 견해와 오늘날의 이단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많은 개혁주의 신앙을 하는 신학자들은 이 사실이 현존하는 만물의 소멸이나 전멸이 아니라 만물이 새롭게 갱신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세기의 성취 곧 제 1 창조의 완전한 영광의 회복을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가리웠기 때문에 인간의 구속 성취와 함께 만물의 본래의 영광은 자연히 회복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영광의 무대입니다. 만약에 우주의 소멸이나 멸절이 온다면 하나님의 원래의 창조가 잘못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구속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중생의 역사에서 시작됩니다. 중생은 기존 육체의 죽음이나 소멸이 아닙니다. 육으로 난 제 1 창조에서 영으로 출생하는 제 2창조입니다.
*요3: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니고데모는 늙은 육체가 죽고 다시 어린아이로 모태에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통일된 생각의 범주입니다. 사람은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육체가 그대로 현존하면서 영혼이 거듭나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놀라운 비밀을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영혼과 육체가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절대로 갈라질 수 없고, 새롭게 될 수 없듯이 처음 하늘과 땅이 그대로 존재하면서 어떻게 새롭게 되겠느냐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주장입니다.
그러나 거듭나는 첫째 부활의 역사는 인간의 육신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별개의 것에서 따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이 새롭게 되면 마침내 육신까지 새로워지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이것을 깨닫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벗고자 함이 아니요 덧입고자 함이라.’ 고 하면서 이 비밀을 전하고 있습니다.
*고후5:1-4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신자들의 마지막 육체의 부활은 무에서의 재창조가 아니라 기존 육체의 변화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타락한 인간의 육체를 소멸시키거나 멸절시킴이 아니고 마지막 날에 그 질료의 상태에서 영체로 부활시켜 본래 창조의 영광인 영생의 영화를 누리게 합니다.
‘새’ 라는 말은 ‘무에서 유’ 라는 물리적인 변화의 말이 아니라 신령한 재창조를 의미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더 이상의 어떤 악도 있을 수 없으며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한 치의 미흡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베드로가 말하는 ‘의의 거하는 바’ 라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 질서가 완전히 적용되는 초공간적인 곳이며 인간들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던 곳을 말합니다. 이곳은 도덕적이나 영적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세계입니다. 또 ‘불에 타서 없어지고’ 라고 했는데 이 말은 소멸이 아니라 용해입니다. 용해는 강한 열에 녹아져서 다른 새것으로 변형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화란의 주석가 크레다너스는 말하기를 ‘이 신천신지의 출현은 구천지의 형질과 조직이 변화되어 영화롭게 될 것을 가리킨다.’ 고 하였습니다.
3) 인류의 모든 비극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계21:1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이 말씀의 또 다른 뜻은 죄악의 역사와 죄악세계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의 심판과 함께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라고 하심으로 이전 것은 다 지나갔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어서 ‘이루었도다.’ 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고 밝히셨습니다. 여기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의 정체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에 대한 근거와 필연성을 보여줍니다.
알파는 헬라어 문자의 첫 글자요, 오메가는 끝 글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1번과 마지막 번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자신을 처음과 나중이라고 밝히십니다.
여기서 처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케’ 는 단순히 어떤 첫 시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원천과 기원이라는 의미에서 첫째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존재의 원천과 기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시작과 출생과 창조와 기원과 존재를 얻은 것이 다 하나님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또 마지막이라는 헬라어 ‘텔로스’ 는 시점의 마지막이나 순서의 마지막이 아니라 목표의 완성을 뜻합니다.
역사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고 존재되었듯이 역사는 참 목표와 완성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역사의 창조주이셨듯이, 하나님만이 구속의 섭리 주 이셨듯이, 모든 역사의 모든 완성도 하나님만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은 무죄세계의 새 출발입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인생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속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시켰습니다. 부패한 인생은 타락한 세계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을 받고 영화로운 부활의 몸을 입은 성도들은 더 이상 타락한 세계에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가는 특권을 받은 것입니다. 무죄의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그리스도의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사는 동안은 온갖 죄로 인한 낭패와 실망과 좌절 때문에 고통 받고 괴로워하고 비난하고 저주하며 고달픈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은 옛 일이나 이전 것은 기억하지도,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새 왕국에서, 새 신민으로, 새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하늘과 새 땅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를 중심으로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창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마지막 날에 있을 징조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처음 창조된 이 우주는 완전히 없어지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영원하고 찬란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주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의미만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배하던 사상과 종교, 도덕, 정치, 경제와 같은 모든 인간의 지혜가 동시에 사라져 버림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의 사상, 하나의 종교, 하나의 원리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라고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폐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창세기의 성취요, 만유의 갱신입니다. 이것은 비극의 종말과 함께 새로운 인류의 황금시대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이곳은 천국의 영토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아 누리는 복되고 신령한 세계입니다. 영원히 상속하고 계승할 우리들의 유업입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에게 주시는 어린양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목사님!!!!!!
아멘 !!!!!!!!!!!!!